남원시 주요명소
지리산국립공원(남원)
1967년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지리산은 예로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의 하나로 알려져 왔으며, 신라 5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해서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리워졌다고 한다. 또한 백두산이 반도를 타고 내려와 이곳까지 이어졌다는 뜻에서 두류산 (頭流山), 불가에서 깨달음을 얻은 높은 스님의 처소를 일컫는 뜻의 '방장'을 따서 방장산이라고도 불린다.
전라남도 구례군, 전라북도 남원시, 경상남도 하동군, 산청군, 함양군 등 3개도 5개 시.군에 걸쳐있다. 이곳은 남한 제2의 고봉인 천왕봉(1,915m)을 비롯하여 제석봉(1,806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등 10여개의 고산준봉이 줄지어 있고 뱀사골계곡, 칠선계곡 등 6개의 계곡과 구룡폭포, 불일폭포, 용추폭포, 칠선폭포 등 10여개의 폭포가 뛰어난 명승지를 자랑한다. 또한 화엄사, 연곡사, 쌍계사, 대원사, 실상사 등의 대사찰을 비롯한 수많은 암자와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산 93-4 구룡분소 063-625-8915~6 정령치휴게소 063-625-1172
여원치(여원재)
남원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운봉읍으로 가다보면 여원치(여원재)를 넘는다. 해발 477m의 여원치는 그 이름의 유래가 깊다. 교통이 불편하던 옛날, 남원과 운봉, 함양을 오가는 길손이라면 반드시 거쳐야했던 이 고개의 유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던 때 이곳 운봉현까지 왜구의 침략이 잦았다. 고개마루 주변 주막집을 들락거리던 왜구무리들은 주모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에 주모는 날이 시퍼런 칼로 왜구의 손을 탄 왼쪽 가슴을 잘라내고 자결한다. 한편으로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운봉에 당도한 이성계는 꿈자리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파로부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날짜와 전략을 계시받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성계는 꿈에 나타난 이 노파가 왜구의 손찌검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자결한 주모의 원신이라고 믿고, 고개마루 암벽에 여상을 암각한 다음 주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사당을 지어 여원이라고 불렀다. 이런 사연으로 여원치라는 명칭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현지 주민들은 이 여원치를 연재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필시 여원의 이름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렇듯 이 고개 이름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 됐으며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남원에서 운봉을 향하다 여원치 정상 바로 못 미쳐 한 굽이 휘돌다 우측의 옛도로 수풀사이에 발을 디디면 남원분지의 너른 들판과 지리산 시루봉을 비롯해 서쪽으로 장쾌하게 펼쳐진 산군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여원재에서 바라보는 일몰, 즉 여원낙조는 운봉팔경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아름답다. 등산동호인이나 문화유산 답사 애호가들은 지리산 연봉을 한눈에 감상하기 좋은 곳이 바로 이곳 여원치라고 대답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고갯마루를 지키고 있는 운봉대장군 석물상을 지나치면 들녁 끝에 지리산 산줄기에서 뻗어 나온 부운치와 팔랑치, 바래봉의 장엄한 능선이 펼쳐진다. 바래봉은 봄철 철쭉 군락지로도 유명하다.
한편 운봉읍은 목기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24번 국도 주변에는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여러 개의 목기공장과 전시장이 길손의 눈길을 끈다. 운봉이라는 고장은 목기 외에도 동편제라는 소리가 자랑인 곳이기도하다. 인월로 향하는 비전마을에는 송흥록에서 송만갑, 근대에 와서는 명창 박소월로 이어지는 동편제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곤 한다. 여원재 고개의 사연과 풍경을 감상한 후 지리산 단풍비경을 만나려면 운봉읍 주촌리에서 시작, 정령치를 넘는 산록도로를 찾아가 보도록 한다. 정령치 고개를 넘어 만복대와 반야봉 사이 지리산 관통도로 삼거리에 이르면 북동쪽으로 실상사, 남서쪽으로 노고단 성삼재와 시암재를 거쳐 천은사로 가게 된다.
남원시 운봉읍 장교리
* 남원시청 문화관광과 063-620-6161 * 운봉읍사무소 063-634-0024
영화 [춘향뎐] 촬영지
남원시 어현동 남원 관광지내에 소재한 곳(3만 5천평 규모)으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 뎐"의 촬영 장소를 포함하여 사랑의 테마가 있는 관광지로 조성한 곳이다."춘향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 속에 담아내 과거의 사랑과 이제 사랑을 시작 하는
이들이 사랑의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고 만남의 장, 맹약의 장, 시련의 장, 축제의 장 등 사랑의 5개 마당으로 춘향 테마의 일대기를 재현하고 있다.
또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완성된 동헌, 관아, 내아, 월매집, 부용당,옥사정을 비롯해 조선 중기 서민들의 삶이 깃든 고건물들이 있어 조선 중기 서민 문화와 춘향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있다.
남원시 천거동 광한루원
남원 춘향허브마을 [농촌전통테마]
봄이면 철쭉이 만발하는 지리산 바래봉 서쪽 산자락에 춘향허브마을은 봄이면 바래봉이 철쭉으로 붉게 물들고 들에는 향기로운 허브가 가득한 향기 가득한 마을이다. 도토리가 많이 나서 도토리 묵, 도토리 떡, 도토리 묵사발같은 생소하고도 맛있는 다양한 도토리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마을 주변에는 남원 광한루, 혼불문학마을 등 다양하고 유명한 관광지가 많을 뿐만 아니라 계절별로 풍성하게 준비된 축제에도 참여할 수 있다
남원시 운봉읍 용산리 063-626-2111
하늘에 닿는길(주천~저영치간 지방도 737호선)
1987년에 건설된 주천~정령치 간 지방도 737호선은 거대하게만 느껴졌던 지리산을 한층 가깝고 친근하게 변모시킨 도로이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남원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정면으로는 노고단, 반야봉을 거쳐 천왕봉까지 명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해발 1,172m에 달하고 길이는 약 9.2km에 이르며 지리산 조망이 가능하고 주변경관이 우수하다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 고기삼거리 ~ 정령치(지방도 737호선)
용담사
남원에서 동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백제 26대 성왕 때 지어진 것으로 절이 세 워지기 전에는 부근의 깊은 물 속에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살아 농작물을 해치고, 사람을 잡아먹는 등 갖은 행패가 심했으나 절을 지어 용담사라 한 후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다.
용담사지 석불입상은 고려 초기 거불상 계통을 따르고 있는 가장 우수한 작품의 하나로 평가 되며, 높이 10m에 이르는 홀쭉하고 긴 모양의 용담사 칠층석탑은 용담사 창건 당시의 유물로 여겨진다. 1914년에 옛터에 중창했고, 1930, 1989년에도 중창 불사를 했다.
남원시 주천면 용담리 292-1번지 용담사 063-632-9911
남원 황산대첩비
고려말 왜구의 침입 때 당대의 명장이며 도순찰사였던 이성계가 왜구를 크게 무찌른 전쟁터이며 벌판이다. 인월면소재지에서 운봉읍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이 황산대첩비를 만날 수 있다. 전촌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우회전, 남천이라는 실개천을 건너면 양지 바른 곳에 황산대첩비가 모셔져 있다.
고려 우왕 6년 (1386) 9월, 금강 어귀에서 최무선 등의 공격을 받아 퇴로가 막힌 왜구들은 충청도를 거쳐 함양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지리산을 넘어 운봉 인월역에 주둔하면서 광주를 거쳐 도망치려 하였다. 이에 도순찰사로 임명된 이성계가 군대를 거느리고 퇴로를 막은 다음 신궁이었던 그의 활솜씨로 왜구 장군 아지발도의 투구를 쏘아 벗긴 후 이성계의 의동생 이지란이 벗겨진 이마를 향해 즉시 화살을 쏘아죽였다.
10대 1의 중과부적이었지만, 이성계는 날이 저물자 계책을 써서 밤새 달아나는 왜구 패잔병을 섬멸했다. 이듬해 다시 이곳을 방문한 이성계는 자신과 휘하 장수의 이름을 암벽에 새겼으니 이것이 어휘각이다. 2백년 뒤인 선조 10년 (1577)에는 전라도 관찰사 박계현의 상소에 의해 황산 대첩을 기념하는 비석이 현재의 자리에 세워졌다.
그러나 지금 어휘각과 대첩비는 그 잔해만이 남아 있다. 패망을 앞둔 일제는 1943년 전국 경찰에 항일의식을 북돋는 반시국적 유물들을 파괴하라는 비밀지령을 내렸고 어휘각은 1945년 1월17일 새벽에 폭파됐다. 대첩비는 글자를 알아보지 못하게 정으로 쪼은 뒤 조각내 버렸다. 깨어진 대첩비는 현재 전각 안에 고이 모셔진 채 역사의 현장을 증언하고 있다.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344-1문화관광과 063-620-6171
국립민속국악원
민족의 명산 지리산과 판소리의 본고장 남원에 자리한 국립민속국악원은 전통음악문화를
호흡하고 느끼며 새로운 음악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마련된 문화공간입니다. 1992년 3월 개원한 이래 다양한 공연, 청소년 및 일반인을 위한 국악문화학교, 교사국악연수 그리고 민속악
자료발굴 및 학문적 정립을 위한 연구활동을 통하여 전통음악문화의 보존, 전승, 발전을 위한 중심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원시 어현동 양림길 55 (어현동 37-40) 국립민속국악원 063-620-2306
만인의총
만인의총은 정유재란(1597)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 관. 군 1만여 의사들의 호국의 얼이 서려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1592)때 호남을 침범하지 못해 승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왜군은 1597년 11만 대군으로 다시 침략, 적의 우군은 전주성을, 좌군과 수군 5만 6천은 남원성을 공략하였다. 조정에서는 남원성을 사수하기 위해 전라병사 이복남이 이끄는 1천여 군사와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천 병사로 하여금 남원성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으로 주민 6천여 명을 포함한 1만여 의사들은 분투 끝에 장렬하게 모두 순절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피난에서 돌아온 성민들은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시고 1612년(광해4년) 충렬사를 건립하였다.
몇 번의 이전을 거쳐 호국선현 유적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정부의 지원과 전 도민의 정성어린 헌수로 1979년 정화를 마치고 충렬사에는 50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만인의총에서는 매년 9월 26일에 만인의사에 대한 제향을 올려, 그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남원시 향교동 636번지 관리사무소 063-625-5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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