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가나안 신자와 초보 신학생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성경묵상 나눔 다른 복음은 없다(갈1:7)
장코뱅 추천 3 조회 321 24.10.12 08:49 댓글 23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작성자 24.10.12 08:59

    첫댓글 시간이 없거나 초신자인 분들은 위 묵상 본문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사간 여유가 많거나 중급자 이상인 분들은 아래 주석의 첨부를 읽으시면 다양한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 24.10.12 10:38

    네, 알겠습니다.

  • 24.10.12 16:37

    알겠습니다22

  • 작성자 24.10.12 09:01

    <매튜 헨리 주석>

    그들의 결함에 대한 사도의 염려(갈라디아서 1:6-9)

    여기서 사도는 서신의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는 이들 교회들의 신앙의 흔들림에 대하여 그들에게 전반적으로 책망함으로 본론을 시작한다. 이 책망은 본문에서 여러 번 나오며 더욱 구체화된다. 다음의 사실들을 생각하여 보자.

    Ⅰ. 그들의 신앙적 결함에 대한 그의 관심. 이에 대하여 그는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고 본문에 말하였다. 이 사실은 그의 마음을 즉시 대단한 슬픔과 놀람으로 가득 채웠다. 그들의 죄와 어리석음은 기독교의 교훈을 그들에게 전해 준 대로 견고히 붙잡지 않고 있는데 있었다. 그들은 그 가르침의 순수함과 단순함으로부터 떠나가 버렸던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잘못에 대하여 크게 책망을 받아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그들이 그들을 "부르신 이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저희를 복음의 친교 속으로 불러 들이는 데 도구 역할을 한 사도로부터 떠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떠났다.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에 의하여 복음이 그들에게 전파된 것이었고 그들이 복음의 특권에 참여하도록 초청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를 떠남으로 그들을 향해 베푸신

  • 작성자 24.10.12 09:02

    그의 친절과 긍휼을 크게 훼손시키는 죄를 그들이 범하였던 것이다.

    2. 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불리움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전하여진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가장 영광스럽게 기록된 것이었다. 이로써 그들은 가장 위대한 축복과 은혜에 불리움을 받게 된 것이었다. 즉 현세의 외롭다하심(Justification)과 하나님과의 화해 또한 장래의 영생과 행복에 불리움을 받은 것이다. 우리 주 예수는 이 모든 것들을 우리를 위하여 그의 고귀한 피를 치르시고 사셨다. 그리고 그를 정중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증여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이 향유한 특권이 큰 데 비례하여 이러한 특권을 버리고 스스로 이러한 축복들을 획득할 수 있는 바른 길에서 이탈한 저들의 꾀와 어리석음도 커지는 것이었다.

    3. 그들이 "속히" 복음에서 "떠났기"때문이었다. 매우 짧은 순간에 그들은 그들이 지닌 것처럼 여겨졌던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존경과 관심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율법의 행위에 의하여 의롭게 된다고 가르치는 자들에게 넘어가 버렸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바리새인들의 생각이 뿌리 깊이 혼합해서는

  • 작성자 24.10.12 09:03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타락시키고 있었다. 이렇게 넘어간 것은 그들의 연약함의 실례요, 나아가서 저희의 꾐에 빠짐이 그들로 자기들의 죄를 한층 무겁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었다.

    4. 그들이 "다른 복음"을 좇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직 다른 복음은 없다"고 바울은 장담한다. 사도는 이 말을 통하여 유대 교사들의 가르침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그들의 가르침을 다른 복음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르침은 복음에서 계시된 의인과 구원의 방법과도 전혀 다른 의인과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율법의 행위에 의하여 구원받는 길을 그들이 제시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복음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뜻으로 이 말을 하였다. "너희는 그것이 전혀 복음이 될 수 없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거나 그 복음의 기초를 전복시키지 않고서는 다른 복음은 없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하여 계시된 것 이외에 다른 하늘 가는 길을 세우려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부 파괴하는 죄를 짓는 것이며 이러한 것을 추구함을 통하여 그들은 자기들이 커다란 실수를

  • 작성자 24.10.12 09:03

    범하였음을 발견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같이 사도는 갈라디아인들에게 복음에 의해 의롭게 되는 길을 떠난 그들의 죄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기 위하여 이 사실을 강조한다. 동시에 그는 그들을 온유함과 부드러움으로 책망한다. 그리고 그들이 자진하여 저희들이 가르침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그들을 괴롭히는 자들의 간교함과 끈질김에 의하여 넘어간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나. 그들의 잘못의 정상을 참작할 수 있는 이유는 되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책망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가 신실할 것을 가르치시며 또한 우리도 남을 책망할 때 상냥하게 할 것이며,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들 바로 잡으려고" 애써야 할 것을 가르치신다(6:1).
    Ⅱ. 그는 자기가 그들에게 가르친 것이 오직 참된 복음임을 자신 있게 확증한다. 그는 이 사실을 너무나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복음을 가르치고자 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선언한다(8절). 그리고 그는 이러한 저주가 그의 난폭함이나 또는 걷잡을 수 없는 불 같은 성격에서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님을 저희에게 보여 주기 위하여 9절에서 다시 이 사실을 반복한다. 이러한 말들이 있다고 해서

  • 작성자 24.10.12 09:04

    우리와 사소한 견해 차이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저주를 퍼부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본문은 다만 새로운 복음을 꾸며내는 자들에 대한 것으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義) 대신에 율법의 행위를 앞세움으로 은혜의 계약의 기초를 전복하려고 하며 기독교를 유대주의로 전락시키려고 하는 자들인 것이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복음을 배척한 것이었다. 그는 "우리가 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정말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거짓말을 전하는 사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기 위하여 이렇게 표현한 것이었다. "만일 너희가 우리의 이름을 빙자한 다른 사람에 의해서거나 또는 천사 자신에게 복음을 받았다고 하는 자에 의해 너희에게 전해지는 다른 복음을 받는다면 너희는 속임수에 빠진 것이요 누구든 다른 복음을 전한 그 사람에게는 저주가 있을 것이요, 그것을 받아들인 너희도 그 저주 아래 처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라는 말씀이다.

  • 24.10.12 10:54

    @장코뱅 내용이 다 좋고요. 천사와 관련한 현실적인 해석에 특히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10.12 09:39

    <호크마 주석: 갈라디아서>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 - '부르신 이'는 3절에 나오는 '우리 하나님아버지'이시다. 구속 사역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며(엡 1:3-5;벧전 1:2) 또한 계획하신 대로 당신의 백성을 부르시는 분이시다(고전 1:9). 바울은 이처럼 당신의 자녀를 부르시는 분이 삼위 중에 제일 위격인 성부 하나님이라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15절;롬 8:30;9:24;고전 7:15, 19;살전 2:12 등). 하나님이 성도를 부르시는 것은 명백한 계획으로 되었고 그 계획은 완전하며 하나님의 의지에 속하는 것으로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갖는다. 그러면 성부 하나님이 성도들을 부르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1)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케 하기 위해서 부르셨다(고전1:9). (2) 성도들로 하여금 부정한 가운데 있지 아니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부르셨다(살전 4:7). (3) 평화를 위하여 부르셨다(고전 7:15;골 3:15). (4)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해서 부르셨다(살전 2:12). (5)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기 위하여 부르셨다(살후 2:13).

  • 작성자 24.10.12 09:39

    이와 같이 성부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부르셔서 구원을 얻게 하셨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에는 부르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자들이 있었다. 당시갈라디아 교회에는 거짓된 유대주의자들이 하나님을 빙자(憑藉)하여 율법의 교훈들을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같이 속히 떠나 - '이같이'(* , 후토스)라는 말속에는 바울의 깊은 탄식과 안타까움이 있으며 '속히'(* , 타케오스)라는 표현 속에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상황이 갈라디아 교회에서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거짓 복음을 좇은 것도 이상한데, 상상외로 빠르게 복음을 떠나는 모습들을 보았을때 더욱 의아해 하고,안타까워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갈라디아 교인들 중 유대주의를추종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떠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잃어버리고 하나님께서 부르신거룩한 삶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진리를 버리고 구원에서 떠나는 자들이 되었을 것이다.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 '다른'(* , 알로)은 6절에 사용된 '다른'(* ,헤테론)과 차이가 있다. 즉 '알로'는 많은 것들이 있는 가운데 다른 것을 지칭하고,'헤테론'은 단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가리킨다(TDNT).

  • 작성자 24.10.12 09:40

    이렇게 볼 때 본절에 '헤테론'대신 '알로'가 사용된 것은 복음의 절대성과 유일성을 강조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수 있다. 한편 6절의 '다른 복음'은 '또 하나의 복음'이 아니라 왜곡된 복음을 의미한다(Cole). 왜곡되어 그릇된 복음은 이미 복음이 아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완전하기 때문이다.
    너희를 요란케 하여 - 헬라어 '타랏손테스'(* )는 문자적으로 '소란케 하는 자들'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거짓 교사들'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행17:8에서 바울을 시기하는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소요를 일으켰던 일에 사용되기도 했다. 거짓 교사들이 교회를 소란케 하는내용은 (1) 복음을 변질시키며, (2) 교회의 질서를 혼란시키는 것이다.

    =====1:8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 갈라디아 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거짓의 율법을 강조하면서 천사에 대해서도 가르쳤는지 모른다(Cole).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천사를 율법의 중보자(仲保者)로 생각했다. 특히 이러한 사상은 후기 유대교의 이단들에게서 부각되었다. 아무튼 바울은 그릇된 사상을 가지고 복음을 왜곡시키려는 것은 도무지 용납될 수 없음을 단호하게 설명한다.

  • 작성자 24.10.12 09:40

    =====1:9
    누구든지...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바울은 8절에 이어 저주를 반복한다. '저주'의 헬라어 '아나데마'(* )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 것으로 우상이 파멸되는 것과 갈은 저주를 뜻한다(신 7:26). 바울은 이 단어를 같은 의미를 가진 '카타라'(* )와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카타라'는 3:10, 13에서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주께서 십자가위에서 받았던 저주는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저주를 대신 지신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받은 저주를 부인하고 다시 율법의 저주 아래로 들어가려고 하는자는 우상의 파괴와 같은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한편 '누구든지'라는 말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모든 자들'을 의미하는바 앞절의 '어떤 사람들'(7절), '하늘로부터 온 천사들'(8절), 심지어는 사도 바울 자신까지 포함하는 모든 자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否認)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저주를 받을 것임을 바울은 극명하게 보여준다.

    =====1:10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 갈라디아 교회의 유대주의자들은

  • 작성자 24.10.12 09:41

    율법적인 배경을 갖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헛된 것에 불과하다고 가르쳤던 것 같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증거한 바울의 가르침은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율법의 요구들을 포기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바울은 이에 대해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을 얻으려는 인간적 야심을 결코 갖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종'(* , 둘로스)은 한 주인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율법에 열심을 가진 자였으나 이제 율법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에게 철저히 복종한다.

  • 24.10.12 11:03

    @장코뱅 성도들 모두는 주님을 믿고 섬기는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 작성자 24.10.12 09:56

    <박윤선 주석>

    갈 1:6
    이같이 속히 떠나 - 인간성은 부패하여 순식간에라도 진리를 버릴 위험이 있다.

    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 곤,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를 유일(唯一)한 구원 공로로 전하는 복음은 없다"는 말이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유대주의자들은 "복음"이란 말을 사용하면서도 구원 받을 공로로 인간의 의(義)도 주장하는 다른 내용을 섞어 가르치니 그것은 진정한 복음이 아니다(5:2)

    갈 1:8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 이 말은 복음에가 대한 사도바울의 확신과 그 진리 파수의 견고한 입장을 보여준다. 사도 자신과 "천사"와 같은 이들도 복음에서 탈선되면 용서 받을 수 없다는 것은, 공정하고 따라서 엄격한 선언이다.
    우리가 너희에게 전하 복음 - 이것은 바울이 사도의 권위로소 전한 복음을 가리킨다. 그는 이 말로써 사도적 복음(使徒的福音)이 독일무이(獨一無二)한 권이 있는 것임을 밝혀둔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이 말씀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직접 불러 세우신 종(사도)이 전한 복음 진리가 그 중요성에 있어서

  • 작성자 24.10.12 09:56

    모든 것을 초월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잘못 전하는 자는 저주 받을 정도로 그것이 거룩하다."
    저주"란 말(*)은 하나님의 진노에 던짐이 됨을 의미한다.(롬9:3). 고전 16:22 참조.
    이 복음을 전한 사도의 권위가 참으로 특수하고 위대한 사실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일반 교역자나 목사는 이 복음을 그대로 받들어 전달하는 수종자(심부름하는 자)이다. 그러니만큼 이들은 봉사자의 심리로 사역해야 된다. 이들이 교회에서 지배자의 자세를 취하면 이는 사도의 권위를 도용(盜用)하는 죄가 된다.

    갈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 "전에 말하였"다는 것은 전날 말한 적이 있음을 이름이다. 여기 "지금"이란 말 얄티(* )는 잠시 전과 대조되는 어떤 과거를 의미한다(H.N.Ridderbos).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앞 절(8절)의 "다른 복음을 전하면"이란 말은 단순한 가상(假想) 뿐이다. 그 이유는, 여기 "하면"이란 말(* )이 미래에 대한 가정법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갈라디아교회의 현실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고 일반적 경우를 가리킨다.

  • 작성자 24.10.12 09:57

    그러나 본절의 "하면"이란 말(* )은 현재의 사실상 조건에 대한 표현이다. 이것은 갈라디아 교회의 그 때 당면한 현실을 가리킨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하랴...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 바울의 원수들은 그를 오해하기를, 그가 진리를 희생하고도 사람에게 아첨한다고 하였다. 바울이 사람들을 얻기 위하여(믿게 하기 위하여)어는 정도 환경에 따라서 적응(適應)하는 일은 있었다(고전 9:19-23; 행 16 : 1-3). 그러나 그것은 복음 진리를 희생하면서 까지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 24.10.12 11:17

    @장코뱅 박목사님은 간단명료 하게 설명하는 장점이 있네요.

  • 24.10.12 11:18

    간결하게 다른 복음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올바른 복음에 대한 강조를 잘해주신 것 같아요. 공감합니다.

  • 24.10.12 13:20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유일한 통로라고 믿고 따르는 것이 복음이고, 여기서 빗나가면 다른 복음이 되는 것인데요. 갈라디아 교인들 중에 다른 복음을 추종하는 무리는 유대교의 율법주의 때문이었죠. 이후에도 이단들은 끊임없이 나타나는데,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는 교리와 행위로 이단들이 되는 것 같습니다.
    본문에서 다른 복음, 유사 복음을 전하는 이단들에 대해서 왜 그런지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정통 교리에서 벗어나서 자꾸 뭔가를 첨가하고, 살짝 왜곡시키고, 본질에서 벗어나 다른 것에 몰두하게 하는 등등의 교리와 행태가 결국은 차이가 난다고 봐야겠죠.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교단과 교회들이 그건 틀렸다고 하면 그 말을 좀 귀담아 들으면 이단으로 빠지지 않을텐데 정통 교리가 오히려 잘못됐다고 하면서 귀를 막아버리니 문제가 되네요.
    비행 청소년이 안 되려면 주변의 권고를 잘 듣고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야 하죠. 너 잘못됐다 하고 올바른 말을 누군가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잘못을 깨닫고 돌이킬 수도 있겠죠.
    바른 교리, 바른 신앙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잘 깨닫습니다.

  • 24.10.12 11:24

    다른 복음에서 '다른'은 교란과 왜곡이 핵심인 것 같습니다.

  • 24.10.12 16:42

    공감합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