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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는 우리가 믿음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께 최고의 영예를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반면에 불신앙은 하나님을 최고로 불명예스럽게 만든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진실과 의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존중해주심으로써 영혼이 의롭고 참되게 된다고 말한다. 믿음은 신랑과 신부처럼 그리스도와 우리의 영혼을 연합시킨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재화와 축복은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의 영혼이 가진 악덕과 죄는 그리스도의 것이 됨으로써 즐거운 교환과 싸움이 일어난다고 한다.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장자로서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시고,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에게 장자권을 주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케 하셨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만물의 주가 되어 만물을 통치할 뿐만 아니라 제사장이 되어 기도로써 하나님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상호간 인정
11. 믿음의 본질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믿는 것은 그 사람이 의롭고 참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명예이다. 반대로 최고의 수치는 그 사람을 부도덕한 자, 거짓말쟁이, 경박한 사람으로 여기는 경우이다.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확고하게 믿는 경우도 이와 같다. 즉 영혼이 하나님을 진실하고 공정하며 의로운 존재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영예를 돌려 드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영혼은 하나님의 옳으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존경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영혼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의롭고 참되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보다 하나님께 더 불명예스러운 일은 없다. 이 불신앙으로 영혼은 하나님을 무능하고 거짓말쟁이이고 경솔한 존재로 간주하며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혼은 마치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잘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대적하며 경솔함으로 마음속에 우상을 세운다.
만일 영혼이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존경하고 있음을 하나님이 보신다면, 하나님도 그 영혼을 존중하시며 의롭고 참된 것으로 간주하신다. 영혼 역시 그러한 믿음으로 의롭고 참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리와 의라는 영예를 돌려 드리는 일은, 바르고 참된 것이며 또한 우리 자신을 의롭고 참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실하심이 인정되는 것은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믿음 없이 많은 선행을 하며 애쓰는 자들은 이러한 일을 하지 않는다.
믿음은 영혼을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한다
12. 믿음은 영혼을 하나님 말씀처럼 모든 은혜로 충만하며 자유하고 복되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신랑과 신부처럼 영혼을 그리스도와 연합시킨다. 이러한 결혼의 결과는 성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영혼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엡 5:30). 또한 이 둘의 재화, 즉 행복과 불행,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은 서로 공유된다. 그리스도가 가진 것은 믿는 영혼의 소유가 되고, 영혼이 가지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다. 그리스도의 재화와 축복은 모두 영혼의 것이 된다. 영혼이 가진 모든 악덕과 죄는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다. 여기서 즐거운 교환과 싸움이 일어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이어서 죄를 지으신 적이 결코 없다. 그의 의는 정복당할 수 없고 영원하며 전능하다. 그가 이제 믿는 영혼의 죄를 신부의 반지(곧 믿음)를 통하여 자신의 것으로 삼고 자신의 죄처럼 대한다면, 그 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삼켜지고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복당할 수 없는 그의 의가 모든 죄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혼은 오직 믿음이라는 약혼선물을 통해 모든 죄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롭게 되며 신랑 그리스도의 영원한 의를 갖게 된다. 부유하고 고귀하고 의로우신 신랑 그리스도가 가난하며 업신여김받고 자란 악한 창녀와 결혼하여 그녀를 모든 악으로부터 해방하고 모든 좋은 것으로 치장해 주신다면 얼마나 즐거운 결혼식인가!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죄가 그녀를 저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죄가 그리스도 위에 놓여있고 그 안에서 삼켜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신랑의 풍성한 의를 갖게 된다. 모든 죄가 그녀에게 놓여있을지라도 그녀는 다시 한번 죄에 대항하고 담대할 수 있다. 이에 관해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7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말한다.
믿음만이 제1계명과 다른 모든 계명을 성취한다
13. 여기서 우리는 많은 것이 믿음 덕택으로 여겨지는 이유를 알게 된다. 바로 믿음은 모든 계명을 성취하고 다른 어떤 행위 없이 사람을 의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믿음은 "너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명하는 첫 번째 계명을 성취한다. 당신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전히 선한 행위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아직 의롭지 않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첫 계명을 성취하지도 못한다.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크신 선하심이 사실대로 인정되지 않는 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진실하고 자비하시다는 영예를 돌려 드리는 것은 선행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의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만이 인간의 의이고 모든 계명의 성취이다. 주요계명인 제1계명을 성취하는 자는 또한 다른 모든 계명도 확실하고 간단하게 성취할 수 있다. 행위는 죽은 것이다. 행위는 하나님을 공경하거나 찬양할 수 없다. 물론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 목적으로 행위가 행해질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묻는 것은 행위처럼 행해지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행위를 자발적으로 하는 행위자, 행위의 주인(주체)이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믿음이다. 마음의 믿음이 의의 핵심이자 본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들을 행위로 성취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위험하고 사악하다. 계명의 성취는 행위 이전에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후에(다음에서 보는 것처럼) 비로소 행위가 이 성취를 뒤따른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과 제사장이시다
14. 그리스도로부터 무엇을 가지며 바른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지 더 잘 알기 위해,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사람과 짐승 태생 중 처음 난 모든 것을 구별하셨음(출 13:2.4; 민 8:17)을 알아야 한다. 장자(직분)는 귀한 존재였고 다른 모든 자녀보다 더 우월한 지배권과 제사장이라는 특권(왕권과 사제권)을 가졌다. 그래서 지상에서 처음 난 남자아이는 그의 모든 형제의 지배자였고 하나님 앞에서 사제이자 교황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는 사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하나님 아버지의 장자인 예수 그리스도다. 그는 영적인 의미에서 왕이며 제사장이다. 그의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니며 이 세상의 것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의 나라는 진리, 지혜, 평화, 기쁨, 구원과 같은 영적인 재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의 통치권에서 세상의 재화가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서든 땅에서든 지옥에서든 모든 것은 그에게 굴복되어 있다. 물론 그는 비가시적으로, 영적으로 통치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보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 역시 외적인 예식과 의복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비가시적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자기 백성을 변호하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며 신실한 제사장이 하는 모든 일을 행한다. 바울이 로마서 8장 34절에서 말하듯이 “그는 우리를 위해 간구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에 내적으로 가르치신다. 이것이 제사장이 갖는 본질적이고 바른 두 가지 임무이다. 외적인, 인간적인, 세상적인 제사장들도 이처럼 기도하며 가르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왕이자 사제이다
15. 장자권과 그 영예 및 직분을 갖고 계신 그리스도는 이것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나누어 주신다. 그래서 그들 역시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과 제사장일 수밖에 없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결국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통하여 만물 위로 높이 올려지고 영적으로 만물의 주가 된다. 어떤 것도 그가 구원받는 데 해를 끼칠 수 없다. 오히려 모든 것이 그에게 굴복하고 그의 구원을 돕는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장 28절에서 생명이든 죽음이든, 죄이든 의이든, 선이든 악이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리고 고린도전서 3장 22절에서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 다른 사람들처럼 만물을 육체적으로 소유하거나 사용할 권세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에서 도망칠 수 없는 육신에 매인 존재이며,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처럼 아직 다른 많은 것들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육체적으로 억압받을 때도 영적인 통치가 지배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외적인 도움 없이도 내 영혼은 강건해질 수 있고, 죽음과 고난조차 나의 구원에 이바지하거나 도움이 된다. 바로 이것이 높고 영광스러운 직분, 강력한 통치, 그리고 영적인 왕국인데, 여기서는 어떤 것도 그렇게 좋거나 나쁜 것이 없고 단지 믿기만 하면 나에게 도움이 된다. 믿음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내게 필요하지 않다. 보라, 이 얼마나 값진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며 권세인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제사장직
16. 우리는 또한 제사장이다. 이 직분은 왕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서서 기도하는 것은 제사장에게만 속한 권한이다. 제사장이 백성을 위해 육체로 나아가 간구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적으로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는 만물의 종일 뿐이고 모든 일에 화를 낸다. 이뿐만 아니라 그의 기도는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으며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다. 누가 그리스도인의 영예와 고귀함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은 왕권을 통해 만물에 관한 통치권을 갖고, 제사장 직분을 통해 하나님께 영향력을 행사한다. 시편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이 간구하고 원하는 것을 행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시 145:19).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영예를 갖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서이다. 그리스도인은 만물로부터, 그리고 만물을 초월해 자유하기에 의롭게 되고 구원받기 위해 어떤 선행도 필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믿음이 모든 것을 풍족하게 가져다준다. 만일 그가 어리석어 선행을 통하여 의롭고 자유하며 구원받고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한다면, 그는 믿음과 더불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마치 고깃덩어리를 입에 물고 있는 개가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덥석 잡으려다 고기와 자기 모습 두 가지 모두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차이
17. “모든 그리스도인이 제사장이라면 제사장과 평신도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사제, 목사, 성직자, 그리고 이와 유사한 말을 그리스도인 다수의 무리가 아니라, 오늘날 '성직자 신분’으로 불리는 소수의 무리에 한정시킨 것은 부당한 처사였다."
성서는 신학자(교사)나 성직자를 봉사자(ministri), 종(servi), 집사(oeconomi)로 제시하는데, 이것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와 믿음,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설교하는 자들이다. 우리 모두가 제사장일지라도 모두 섬기거나 관리하거나 설교할 수는 없다. 이런 의미로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절에서 말한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나 오늘날 청지기직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세상적인, 외적인, 거만한 지배와 권력이 되었다. 그것은 세상 권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력화되어 평신도는 마치 그리스도인이 아닌 존재처럼 되어버렸다. 기독교의 은혜,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믿음,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가진 모든 것, 아니 그리스도 자체에 대한 모든 이해는 사라졌다. 그 대신에 우리는 많은 인간적인 법과 행위를 물려받았고 세상에서 가장 타락한 자들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가
18.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삶과 행위를 피상적으로, 단지 이야기와 연대기로 설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하물며 그리스도에 관하여 전적으로 침묵하고 교회법이나 인간의 법과 교리를 설교한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동정하거나 유대인들에게 분노하는 자들, 그리고 그 밖에 다른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설교하거나 이해하는 자들 역시 여전히 많다.
오히려 우리는 믿음이 자라고 유지되도록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한다. 믿음이 자라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왜 그리스도가 오셨는지, 어떻게 그리스도를 대하고 그로부터 유익을 얻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가 내게 가져다준 것과 선사해 준 것이 무엇인지 설교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그리스도인의 자유, 즉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왕과 제사장으로서 만물을 지배하며 행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 마음에 들고 하나님 앞에 상달된다는 사실을 바르게 설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이렇게 들으면 마음은 중심에서 온전히 기뻐하고 위로를 받으며 호의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일은 율법이나 행위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그렇다면 누가 그러한 마음에 해를 끼치거나 마음을 두렵게 할 수 있겠는가? 죄와 죽음이 엄습해올지라도, 마음은 그리스도의 의가 자신의 것이고 자신의 죄는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임을 믿는다. 이러한 믿음의 결과 죄는 그리스도의 의 앞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마음은 사도와 함께(고전 15:55 이하) 죽음과 죄에 저항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된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마틴 루터 저, 권진호 해설 및 번역, 『루터, 구원을 말하다』(서울: 신아사, 2023), pp. 28-37.
첫댓글 좋은 포스팅입니다. 초신자도 아는 만인제사장(전신자 성직자) 교리도 나오고, 루터의 교리를 알려주는 내용이 많네요.
네, 그렇네요.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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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상호간 인정" --> 이 부분의 궁극적 기원은 아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창1:26-27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 진리이신 분이라고 알고 믿고 따르면 하나님께서도 그에 상응하여 우리를 대우해주신다는 설명이 매우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어 좋습니다.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과도 매칭이 되는 것 같습니다.
네, 공감합니다.
"믿음은 영혼을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한다" --> 이(그리스도와의 연합)는 루터 외에 칼빈 등 개혁주의의 핵심 교리이기도 합니다.
개혁주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구원의 서정으로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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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신자들에 대한 구원의 적용에 있어서 한 '순간' 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신자들이 영원 전에 (선택을 통해), 과거 역사 속에서(구속을 통해), 현재에(효력 있는 부르심, 칭의, 성화를 통해), 미래에 (영화를 통해) 그리스도를 향유하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표현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관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는 일은 성령이 효력 있게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부르시고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붙들어 그리스도의 모든 부요함을 누릴 수 있는 믿음을 주실 때 발생한다.
마이클 호튼, 『언약적 관점에서 본 개혁주의 조직신학』, p.587.
네. 중요 포인트를 짚어주셔서 도움이 됩니다.
좋은 내용 다시 잘 읽었습니다.
"믿음만이 제1계명과 다른 모든 계명을 성취한다" --> 아주 좋은 표현입니다.
1계명의 우선성을 잘 표현한 것으로 보이고요. 1계명이 하나님의 절대적 속성과 성도들의 믿음과 예배의 시작이 된다고 봅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일단 위 본문만 보면 루터에 의해 그리스도의 선지자 직분은 덜 언급된 것 같습니다(2중직).
개혁주의는 그리스도의 3중직을 기본 교리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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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
https://cafe.daum.net/1107/Y4OQ/165
종합적인 이해를 돕는 포스팅을 다기 잘 읽고 유익을 얻습니다.
오늘 내용은 미리 조금은 알고 있던 종교개혁 교리의 핵심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좋은 내용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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