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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 성경적 신앙 뿌리를 깊이 내리는 해(前,後) † 구약(舊約) ☆ (大先知書)
☞(祝) 바보 해방동이 8:15광복 (福)☜
사60:1-11절) 조국(祖國)의 광복(光復), 나의 광복(光復)
Ⅲ.온 세상(世上)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됨(하)
교회(공동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여 진리(眞理)의 빛을 발(發)하면, 온 세상(世上)이 그들에게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공동체)의 영광(榮光)이요, 축복(祝福)입니다.
60:4-5절)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이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교회(공동체)가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선포(宣布)할 때, 온 세상(世上)이 그에게로 나아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들들’과 ‘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그들이 진리(眞理)앞으로 나아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곳에 오지 않으면, 자기(自己)자신(自身)을 회복(回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形像)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설계도(設計圖)로 해서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예를들어서 벤츠 자동차(自動車)가 고장(故障)이 나면, 벤츠 공장(工場)으로 갈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곳에는 설계도(設計圖)가 없기 때문에 도저히 그 자동차(自動車)를 고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 대(對)한 모든 설계도면(設計圖面)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前)에는 무슨 짓을 해도, 그 사람이 자신(自身)의 존귀(尊貴)함을 회복(回復)할 수 없습니다.
교회(공동체)에서 선포(宣布)되는 진리(眞理)가 곧 하나님 생명의 말씀이며, 그 말씀을 들음으로 사람은 고장(故障)난 부분을 치료(治療)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世上)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바다의 부(富)’와 ‘나라들의 재물(財物)’을 가지고 말입니다.
당시에 귀(貴)한 것은 모두 바다 위에 떠다녔습니다. 즉 모두 큰 배(船)로 무역(貿易)을 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듣고 나면, 두 가지 반응(反應)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자신(自身)의 가치(價値)를 찾았기 때문에 삶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애씁니다.
젊은이들에게 복음(福音)을 전(傳)하면, 어떻게 될까? 피가 끓는 자신(自身)의 젊음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려고 합니다. 그 머리 좋은 사람들이 학벌(學罰)이나. 미래(未來)를 모두 버리고, 복음(福音)을 위하여 헌신(獻身)하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복음(福音)을 전(傳)하는 교회(공동체)는 최고(最高)로 우수(優秀)한 두뇌(頭腦)들과 최고(最高)로 뛰어난 헌신(獻身)자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원(永遠)한 멸망(滅亡)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하나님께서 영원(永遠)한 영생(永生)으로 구(求)해 주셨으니, 주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은 자신(自身)의 모든 삶을 하나님의 영광(榮光) 을 위해 사용(使用)하게 됩니다.
예를들어서 전(前)에는 내게 이익(利益)이 생기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했는데, 이제는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열방(列邦)의 재물(財物)이 돌아온다는 것은 교회(공동체)가 부자(富者)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재물(財物)이나 학식(學式)을 올바로 사용(使用)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榮光)이 된다는 뜻입니다.
60:6-7절)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여기에 나오는 미디안, 스바, 게달, 느바욧 사람들은 아라비아 반도(半島)나. 사막(沙漠)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평소(平素)에 하나님에 대(對)하여 별로 관심(觀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信仰)이 체질(體質)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변화(變化)되어 하나님께 낙타를 바치고, 양(羊)과 숫양(羊)을 바치며, 하나님의 찬송(讚頌)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가끔 직장동료(職場同僚)나. 친구(親舊)들 중에 정말 자기(自己)는 신앙(信仰)이 체질(體質)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主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진지(眞摯)한 것을 싫어하고, 주로 노는 것이나.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신앙(信仰)을 주로 외로운 사람들이나. 여자들에게 맞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자기(自己) 자신(自身)에 대(對)해 진지(眞摯)하게 생각(生角)할 시간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을 갈망(渴望)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自己)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몰라서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世上)에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위대(偉大)한 사랑은 없습니다. 그분은 독생자(獨生子)를 우리를 대신(代身)해서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이것을 알면, 마음이 녹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人間)에게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마치 맹인(盲人)이 눈을 뜨는 것과 같습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손으로 더듬을 때와 눈으로 밝히 볼 때,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 보입니다. 우리가 더듬을 때, 아름답게 생각(生角)되었던 것들이 눈을 뜨고 나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요하다고 생각(生角)했던 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처음 믿으면, 심한 정신적(精神的) 홍역(紅疫)을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게달 사람들에게 양(羊)은 모든 것이며, 느바욧 사람들에게 숫 양(羊)은 가장 귀(貴)한 것인데, 어떻게 이런 것들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그들이 더 귀(貴)한 것을 발견 (發見)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은 양(羊)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들도 얼마 전(前)까지 이 세상(世上)에 있는 것들을 최고(最高)로 중요한 줄 알고, 그것들을 위해서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한번 만나고 나면, 그 영광(榮光)의 빛이 얼마나 강(强)한지, 세상(世上)의 빛들이 모두 빛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안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민(苦悶)이 무엇일까? 이제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는 것입니다. 즉 옛날처럼 세상(世上)에 있는 것들을 위해서 살 순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다른 나라에 선교(仙敎)로 떠날 수도 없습니다. 이제 나의 목표(目標)는 모든 것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이것입니다.아-멘
찬송가 294장 *하나님은 외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