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LA 컨피덴셜Confidential>은 1997년 제50회 칸 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진출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어내지 못했다. 대신 '고국' 미국의 평론가들의 칭찬으로 보상을 받았다. 전미 비평가협회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뉴욕·LA·보스톤비평가협회의 작품·감독·각본상을 휩쓸었다. 1998년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에는 9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나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타이타닉>에 밀려 각색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데 그쳤다. 다른 때 나왔다면 상을 휩쓸고도 남았을 명작인데 하필이면 <타이타닉>을 만난 탓이다. 역대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운이 없는 영화로 꼽힌다.
<요람을 흔드는 손> <리버 와일드>의 커티스 핸슨이 감독한 이 영화는 오랜만에 등장한 '필름 누아르'의 적자로 손꼽힌다. 프랑스 평론가들이 경찰 또는 탐정이 등장해 도시의 이면을 파헤치던, 조명 역시 어둡고 명암 대비가 날카롭던 1940년대의 할리우드 암흑가 영화들에 이 프랑스 이름을 붙여놓았다. 미국 평단이 <L.A. 컨피덴셜>을 유별나게 총애하는 모습은 미국 음악이 재즈를 대하는 양상과 비슷하다. 재즈도 필름누아르도 이제 미국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 되어 버린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뒷골목에서 성장한 소설가 제임스 얼로이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1953년 크리스마스 이브의 로스앤젤레스에서세 명의 경찰을 축으로 시작된다. 잭(케빈 스페이시)는 <경찰청 사람들> 식의 텔레비전 드라마에 자문 역할을 맡아 유명세를 챙기고, 선정적인 폭로지 <허시허시> 편집장 시드(대니 드비토)에게 뇌물과 정보를 챙기며 재미를 보는 적당히 부패한 경찰. 시드는 자신이 정보를 제공한 '범죄 현장'에 잭이 출동하면 그 특종기사로 신문의 판매부수를 올린다. 버드(러셀 크로)는 동료애와 정의감이 두터운 소위 '의리파'이고, 순직 경찰의 아들 에드(가이 피어스)는 교과서적 이론과 기회 포착에 뛰어난 모사형이다.
전직 경찰 스탠스가 한밤 커피숍의 집단살인극에 희생된 사건을 수사하면서 세 사람은 마약과 매춘과 경찰과 언론이 질기게 얽혀 있는 로스앤젤레스의 비밀(컨피덴셜)을 파고들게 된다. 버드와 한 조였던 스탠스는 경찰서에 잡혀들어온 멕시코인을 구타한 사건으로 면직된 직후였다. 에드는 동료일이라고 모두 쉬쉬하는 그 사건을 증언하고 승진 기회를 포착해 버드와 앙숙이 됐다. 핸슨의 드라마는 로드니 킹을 연상시키는 경찰 폭력사건을 인권문제가 아니라 동료애 문제로 축소하는 수준에서 출발하는 셈.
반면 여기서 돋보이는 건 그 모든 인물의 성격을 하나하나 살려 내고, 그들이 갈등하고 끝내 연대하게 되는 미로와 같은 수사 경로를 짜나가는 연출과 시나리오. 또 '스타급' 배우는 커피숍 피살자 가운데 들어있던 수잔의 친구인 고급 매춘부 린 역으로 오스카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킴 베이싱어 정도지만, 감독은 모든 배우에게서 맡은 인물의 성격을 정확하게 뽑아냈다. 제작비와 첨단 기술이 아니라 탄탄한 시나리오와 연출로 완성도를 높여간 <LA 컨피덴셜>의 경험에는 참조할 부분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