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 훠어얼 훨
남궁선순
TV에서는 몇 십년 만에 찾아온 추위라고 연일 한파주의보를 예보하는 이 혹한에 남편의 60년지기 친구들과 부부동반 나들이.
이제 연식이 되어 장거리 운전을 싫어하는 탓에 깜깜한 꼭두새벽에 두꺼운 외투도 시원찮아 내복까지 껴입고 인천공항으로 출발.
네댓 시간 동안 구름에 가린 하늘을 훨훨 날아 필리핀의 세부공항에 내려앉았다.
한여름처럼 후덥지근하여 비적비적 땀이 흐른다. 입고 온 외투는 벗어 던지고, 막탄에 있는 사보이 호텔에 짐을 풀다 보니 로비에 있는 사람 모두가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하고, 길거리에 서있는 야자수는 바람에 덩실덩실 춤을 추니 딴 세상처럼 느껴졌다.
사보이는 서울 명동에 있던 아담한 호텔
그 옛날, 교직시절 즐겨 찾던 단골 양장점
국립극장 앞 사거리에 누우런 전기구이 통닭집이 있던 추억의 거리
귀에 익은 숙소라 편한 느낌이었다.
몇 천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도서 국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높은 경제수준의 민주국가였으나 마르코스의 장기집권으로 국가발전이 침체되어 이제는 후진국이 된 나라
6.25땐 7000여명을 파병한 형제나라이다.
한 사람의 정치지도자가 이처럼 국민들의 운명과 나라의 역사를 바꿔놓을 수 있다 생각하니 도돌이표 제자리 걸음을 하며 한참 떠들썩한 내 나라 걱정이 앞선다.
스페인, 일본, 미국의 지배를 받아 그 오랫동안 식민지 생활을 했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그들은 바보인가 아니면 현명한 것인가?
그들은 사람을 만나면 모르는데도 아는 사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긍정적인 생활습관이 몸에 밴듯하다.
세련된 옷을 입고 화난 것처럼 철학자 표정으로 정중해 보이는 우리들보다 허름한 모습으로 그냥 활짝 웃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
한두 번씩은 다녀본 동남아인데다, 나이 든 영감들이라 복잡한 관광놀이는 피하고, 한가한 스케줄을 택하였다.
음식은 교포들이 운영하는 한국식보다는 현지식으로 이것저것 맛보았고 더위를 피해 바닷가로 온 피서객이 아닌, 추위를 피해 열대지방에 와서 수영도 하고 비치파라솔 아래에서 파아란 태평양을 바라보며 담소하니 마냥 여유롭기만 하였다.
이곳 저곳 기웃거렸으나, 그 중 올랑고 섬에 있는 쌍뚜아리는 유네스코 지정을 받은 철새 도래지란다.
60년대 우리나라 삼륜차처럼 오토바이 옆에 사람이 탈 수 있는 공간을 개조해 만든 깡통차 트라이시클을 타고 섬에 도착하니 손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맛이 신선하였다.
그 옛날 우리나라 도시의 판자집을 방불케 하는 동네를 한바퀴 돌고 쌍뚜아리를 가기 위해, 잠자리처럼 날개가 있는 “방카”라는 배를 타고 낚시를 했다. 까닥까닥 손에 잡히는 입질 촉감이 싱그럽다. 이 맛에 사람들이 배낚시를 즐겨하는 듯싶다.
파아란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배 선상에서 영화 「타이타닉」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머리카락을 날리며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는 장면도 연출해 보았다.
물 반 고기 반인 138개의 돌다리를 건너니 바다 한가운데에 썰렁한 정자가 있고, 그 옆에 바닷물 속에서 자라며 새끼를 낳는다는 맹그로브 나무숲이 있다.
깊은 산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이 태평양 바닷물 속에 잠겨 있으니 신기롭기만 하였다.
붉은 뿌리가 물밖으로 나와 있어, 호흡을 하며 자란다는 이 나무는 지리적으로 잦은 태풍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고 바닷물을 정화시켜 준단다.
섬 전체가 보호 구역인 이곳이‘포카리스웨트’광고 촬영지란다.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중 원주민 아이들을 만났다.
맨발에 웃통을 벗고 깡마른 체구로 시커멓게 그을렸지만 해맑은 동네 아이들,
갓난아이를 안고, 평화스러운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는 아낙네들,
가방에 있던 주전부리를 나누어 주니 그리도 좋아한다.
떼지어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에게 한국 돈이건 달라건 용돈을 쥐어주니 검게 그을린 얼굴 사이로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고맙다고 난리법석이다. 나는 잔돈이 없어 20달라, 1장만 건네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 돈 1000원짜리나 1달러짜리 여러 장을 갖고 와 여러 아이들에게 골고루 선물할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삼 일째에는 구 시가지에 있는 재래시장을 둘러본 후 신시가지를 찾아 나섰다. 가이드는 이 다리를 건너면 다른 세상이 있으니 깜짝 놀라지 말라고 호기심을 깨운다.
한참을 따라가니 좀 전의 모습과는 달리, 마치 서울 강남처럼 깔끔하고 세련된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 일류 백화점이나 공항 면세점을 방불케 하는 오색 불빛이 찬란한 초호화 쇼핑센터에는 세계 유명 브랜드가 모두 입점해 있었다.
이곳의 최고급 아파트는 몇 백억을 호가한단다.
다리 하나 사이로 한 도시 안에서 빈부의 격차를 실감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카지노에 들러, 마치 겜블러인양 도박도 해 보았다. TV에서나 보던 호화찬란한 조명과 고급스런 시설이 인간의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준비했던 투자금은 1시간도 안 되어 다 털렸다. 도박은 돈을 버는 곳이 아니고, 얼마 동안 즐기느냐의 시간 싸움인 듯 싶었다.
여기도, 우리나라에서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란다.
자기 친구들 모임이라 하지만 여자들도 만난지가 근 50년이 다되어 오랜 친구처럼 안 할 얘기, 못할 얘기 다 하는 흉허물이 없는 사이이다. 가끔 누가 실수해도 서로 덮어주고 보듬어주는 친구와 자매처럼 마냥 편하다. 우리끼리 남편 흉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나는 이 중에도 막내급이라서 나이 든 형님들은 날보고 영계란다. 이 나이에 이런 취급받으니 과히 싫지는 않다.
이 젊은 여자와 사는 내 영감이 고마운 줄을 알려는지, 모르는지.
자기들은 부드럽고 자상하다고 하지만 꼰대성이 있는 남편들은 교수, 법조인, 은행가, 전문 경영인, 사업가, 사진작가, 문학인 등 사회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처럼 만나면 민망할 정도의 막말로 어렸을 적 고향의 추억을 곱씹는 이들이다.
결혼 초에는 내 신랑은 안 그런데 왜 친구들은 저리도 몰상식할까 하여 오만 잡정이 떨어진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정기적으로 부부 동반하여 만나고 애경사를 꼭 챙기는 끈끈한 우정을 보노라면 묵은 장맛처럼 변치 않는 정 나눔이 대견스럽게 느껴지고 이제는 이 모임이 삶의 일부인양 편안하고 가족처럼 느껴진다.
나들이를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활주로에는 흰눈이 펄펄!
공항에서 겨울옷을 꺼내 입으며 생각하니 7일 동안 꿈 같은 연극을 연출하고 한편의 드라마를 촬영하고 온 듯했다.
공항 구내식당에 둘러앉아 면세점에서 갖고 온 반주를 곁들여 따끈한 북어국으로 해단식을 하였다.
“잘가요.”
“즐거웠어요.”
“행복했어요.”
“또, 만나요.” 서로 포옹을 하며…
파고드는 겨울바람에 외투깃을 여미고, KTX타고 버스타고 다시 내 자리 무릉골로 돌아왔다.
수십 년 살다보니 좋은 줄 몰랐던, 내 집 잔디밭에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보니 왜 그리 편안해 보이는지…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