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버스 - 종교 개혁이 일어났어요1517년 루터의 종교 개혁
인기멤버
hanjy9713
2023.09.05. 14:04조회 3
댓글 0URL 복사
세계사 버스
종교 개혁이 일어났어요
1517년 루터의 종교 개혁
- 루터(1483~1546) : 독일의 종교 개혁가예요. 교황청이 면죄부를 파는 데에 항의해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고 종교 개혁의 계기를 마련했어요.
- 칼뱅(1509~1564) : 프랑스의 종교 개혁가로 제네바에서 종교 개혁을 주장했어요. 예정설에 따라 엄격하고 도덕적인 교회 규율을 만들었어요.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교회와 신이 중심이 되던 중세시대는 끝이 났어. 그렇다면 교회는 그 뒤 어떻게 변화했을까? 그 변화 속으로 우리도 버스를 타고 함께 가 보자.
르네상스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변했어. 그리고 중요한 변화 중 하나가 바로 교회와 교황의 권위를 비판하기 시작한 거야. 당시 교회는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 데다 막강한 권력까지 누렸어. 또한 농민들을 마음대로 지배하거나 재산을 불리는 데에만 신경을 쓰며 교회가 해서는 안 되는 올바르지 못한 일들도 많이 저지르고 있었지.
그렇게 16세기에 들어서자 교회의 개혁을 주장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어.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신학자인 에라스무스로 그는 교회의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을 비판했단다.
이처럼 교회 개혁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던 때, 마침내 한 사건이 터졌어. 독일 작은 마을의 수도사였던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의 정문 앞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거야. 여기에는 면죄부(벌을 면하게하는 증서) 판매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지. 면죄부는 교황이 파는 증표로, 이것을 사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어. 하지만 이것은 실은 교회가 돈을 벌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였지.
이처럼 타락한 교회를 비판한 루터의 반박문은 당시 발명되었던 인쇄술 덕분에 2주 만에 독일 전 지역으로 퍼져 나갔어. 그러자 교회는 크게 놀랐단다. 그때까지 교회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은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 하지만 루터의 생각은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어 마침내 사회 전체의 개혁 운동으로 퍼지게 되었어. 이것이 바로 ‘종교 개혁’이야.
그 뒤 루터는 파문을 당하고 숨어 지내야 했지만 그동안에도 라틴어로 쓰인 《성서》를 모국어인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루터가 번역한 《성서》를 읽고, 루터를 따라 가톨릭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했지. 이들을 ‘신교’, 또는 ‘프로테스탄트’라고 해. 프로테스탄트는 ‘항의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독일어판 《성서》
루터가 어려운 라틴어 대신 독일어로 《성서》를 번역하면서 보통 사람도 교리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종교 개혁을 주장한 또 다른 사람으로는 칼뱅도 있어. 그는 도덕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하며, 신에게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예정설’을 주장했지. 이런 칼뱅주의는 스위스와 네덜란드, 북아메리카 등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어.
종교 개혁은 교회의 개혁에 목적을 두고 시작되었지만 나중에는 정치나 경제, 사회 각 분야에도 영향을 주었어. 또 사람들 역시 이제 서서히 신 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 경제나 사회 문제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단다.
이번 정거장에서 더 알아보기 종교 개혁의 불씨가 된 루터의 주장 루터는 인간은 신의 은총을 절대적으로 믿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야 한다고 했어요. 착한 일이나 자기 능력만으로 구원을 받지는 못한다고 했지요. 또한 교황은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할 권한이 없다고도 주장했어요. 특히 돈이나 면죄부로 천국의 문을 여는 것은 《성서》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내용으로, 말도 안 된다고 못 박았지요. 구교와 신교 간의 오랜 종교 전쟁 크리스트교는 종교 개혁을 지나면서 이전의 크리스트교인 가톨릭(구교)과 새롭게 탄생한 개신교(신교)로 나누어졌어요. 그러자 유럽 여러 나라의 왕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어요. 그래서 1555년 독일의 아우크스부르크에 모여 회의를 열고는 각 나라의 왕들이 어떤 종교를 믿을 것인지 결정하기로 했지요. 하지만 종교를 법으로 정할 수가 없어 대립만 더 커졌답니다. 그러던 중 1562년 프랑스에서는 신교와 구교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어요. 결국 1598년 프랑스의 앙리 4세는 신교인 위그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낭트칙령’을 발표하지요. 하지만 그 뒤로도 유럽에서는 100여 년간 종교 때문에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어요. |
연관목차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