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묵상:
1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
구약성경을 의미할까?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아직 없었으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들을 의미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히브리서 1장에서부터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할까?
히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신학자들마다 다양한 의견을 내고 있고,
나름대로 모두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크게 3가지 이유가 있다.
1. 본문에 나오는 "말씀"은 헬라어로 "Logos"이기 때문이다.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
여기서 사용된 "말씀"이라는 단어는
요한복음 1장 1절에 나오는 "말씀"과 똑같은 헬라어 "Logos"이다.
요 1:1,
"태초에 말씀(Logos)이 계시니라"
"이 말씀(Logos)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Logos)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 1절에 나오는 "말씀"은
당연히 예수님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태초에 계셨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좌우에 날선 검"은
요한계시록 1장에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계 1:16,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좌우에 날선 검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고,
말씀이신 예수님은 좌우에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하다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의 사역 때문이다.
본문을 천천히 읽어보자.
하나님의 말씀이신 분이 어떤 사역을 하시는지 알아보자.
12절,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는 무엇을 의미할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혼과 영"은 비물질적인 것,
"관절과 골수"는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혼과 영"은 물질세계를 떠난 죽은 자들을,
"관절과 골수"는 물질세계를 살고 있는 산 자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오늘 이 본문이 궁극적으로 죽은 자와 산 자의 심판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12절에 나오는 "판단하나니"는
NIV 영어성경에서 "Judge(심판하다)"고 번역을 했다.
그리고,
이 번역과 해석은
그 다음 구절 13절에서 보다 명확하게 뒷받침해 주고 있다.
13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질 최후의 심판 장면이다.
"지으신 것"은 산 자나 죽은 자나 모두를 의미하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는 최후 심판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의미한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보자.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이유가 무엇일까?
심판주이신 예수님 앞에
그들의 모든 행위가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고 말씀한 것이다.
사도 바울도 이와 비슷한 메시지를 전했다.
롬 14:9,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주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구절을 보면,
죽은 자와 산 자의 주라는 것은 심판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롬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그러니까,
죽은 자나 산 자나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롬 14:11~12,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내가(주님께서) 살았노니"라는 말씀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와 병행이 된다.
그리고,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는 말씀은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는 말씀과 병행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역사하실 때,
죽은 자나 산 자나 모두, 자신의 죄를 깨닫고 스스로 자백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 다음 구절은 더 명확하다.
롬 14: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최후의 심판 날에
죽은 자나 산 자나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고,
각 사람은 자기가 행한 모든 일을 하나님께 자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너무나 명확해서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사도 베드로도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벧전 4: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는 누구를 말할까?
사도신경에서 나오듯이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예수님"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산 자와 죽은 자가) 예수님께 사실대로 고백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히브리서 오늘 본문은 궁극적으로,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주가 되시는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인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어떤 책은 하나님을 심판주로, 또 어떤 책은 예수님을 심판주로 묘사한다.
그런데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시면서 곧 하나님이신 분이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원초적인 질문을 하나 해 보자.
히브리서 저자는 왜 이 메시지를 전했을까?
이 메시지를 듣는 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모든 죄가 벌거벗겨질 것을 두려워하도록 하기 위해서일까?
이 부분도 분명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심판에 대한 두려운 마음때문에 예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본문과 이어지는 문맥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히 4:14,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신다."
이 문장에서 강조해야 할 부분은 "우리에게"일 것이다.
최후 심판의 날에 우리의 모든 죄가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고,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큰 대제사장이 계신다는 것이다.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승천은 곧이어질 심판과 연관이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대제사장이 바로 최후의 심판 때의 심판주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두려움이 아니라 큰 확신을 가지고
심판의 보좌가 아니라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주님,
이 시간에도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갑니다.
저희의 공로가 아닌 오직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의지해서 나아갑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임하실 때,
만물이 벌거벗은 것과 같이 드러날 것입니다.
어차피 드러날 저희의 모든 죄악을 최후의 심판이 오기 전에
지금 이 시간 십자가 앞으로 가지고 갑니다.
주님의 대속의 피로 저희를 정결케 하옵시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담대함과 큰 확신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