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40년 전인 70년대의 가수 얘기를 한다는 것은 우리 중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김정구, 현인, 백설희 등을 회상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ㅎ
우리 세대에 김정호를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그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가 최근에 우연찮게 알게 된 내용을 정리한다.
본명: 조용호
1951년 전남 광주시 북동 産
광주 수창초등학교- 2학년때 서울 교동초등학교 전학~ 대동상고 때부터 공부는 안하고 음악에 빠지게 된다.
(지금도 대동세무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중앙고등학교와 함께 북촌에 그대로 있다.)
김정호의 부친은 경찰서장 출신으로 출판업을 했다고 하는데 그 시절 대부분 그렇듯 집안이 어려웠다고 한다.
음악적 재능은 순전히 외탁이었다.
외갓집(전남 담양읍 객사리)에 외할아버지 박동실 명창은 근대 창작 판소리의 효시라고 한다.
전래 판소리만 부르는 것에 머물지 않고 직접 작사, 작곡한 판소리 신곡을 발표하는 등 음악가로서의 재능이 뛰어났던 사람이었다.
1947년 국악원의 창악부장을 지냈으며 1948년 5월 창작 창극 "고구려의 혼"을 공연하였다.
"유관순傳, 이준傳, 안중근傳, 윤봉길傳" 으로 구성된 판소리 '열사가(烈士歌)' 와 '해방가'등 판소리 작곡가로서의 위상이 높았지만 월북하여 그의 이름과 작품이 금기시 되었다.
월북 후에 평양음대 교수, 인민배우, 훈장 등을 받으며 음악가로 나름 순탄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서편제 명창 중에 박동실의 제자들이 많지만 모두 쉬쉬하여 우리 귀에 낯설게 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월북 예술인들에 대해서 해금(解禁)되고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담양군은 지곡리 가사문학관 경내에 ‘명창 박동실 기념비’를 건립했다.
외삼촌 박종선 - 아쟁 명인
모친 박숙자 - 판소리 명인
모친은 아들에게 국악을 안 시킬려고 일찌기 서울로 전학을 보냈지만 결국 국악 대신 대중음악가가 되었다.
'하얀나비' 의 음계는 다름아닌 '궁상각치우' 라고 한다.
부인은 중학교때 부터 알고 지내던(짝사랑했던) 여학생이었다고 하며 졸업 후에 부인이 김정호한테 연애감정이 싹터서 맺어지게 되었단다.
부인은 그 후로 재혼을 하지 않았으며 슬하에 딸 쌍둥이가 있는데 그중 한 명은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나 아버지의 재능을 넘지는 못하는 것 같다.
2015년 9월에 광주에서는 그가 다녔던 수창초교에서 ‘제1회 김정호 가요제’가 열렸다.
그리고 광주시는 그가 태어난 북동 생가터에서 수창초교에 이르는 1.3km의 길을 ‘김정호 특화 거리’로 조성키로 했다고 하는데 지지부진하다고 한다.
천재 가객으로 불리는 김정호는 33살 요절할 때까지 12년동안 총 57곡을 발표했다.
그럼 40년이 흐른 뒤에 다른 뮤지션은 '하얀나비'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2014년 865만명이 보았던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주인공 심은경이 부른 '하얀나비'를 소개한다.
첫댓글 슬프다 . 내가 학창시절 키타만 매면 불렀던 노래인데 ....
노래를 잘하는분은 요절한다.고로 난 노래를 못부르기로 했다
ㅎㅎㅎㅎ
그렇게 깊은 뜻이?!
일부러 못 부르기가 쉽지 않은데....
욕보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