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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6일, 성탄 후 제1주
[*. 성경, 찬송가를 준비합니다.]
*. 예배의 부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2021년 12월 26일, 성탄 후 제1주 주일입니다. 함께 인사 나누고 예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
예수님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
성령님 안녕하세요, 평안합니다. ~
*. 다 함께 조용한 기도를 함으로 성탄 후 제1주 주일예배를 시작합니다.
온전하신 하나님, 지난 한 주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지켜 주시고, 오늘 거룩한 주일 맞이하여 예배 가운데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온 몸과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주님 기뻐 받으실 신령과 진정의 예배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셔서 영광 받아 주시고, 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죄와 허물이 사함을 얻게 하시고,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힘과 능력과 위로와 소망을 얻게 하옵소서. 예배의 처음부터 나중까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였습니다. 아멘.
*. 경배찬송(일어서서):
찬송가 12장 (다 함께 주를 경배하세)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성시교독(일어서서):
시편 148편 1~14입니다. 한 절씩 교독합니다. (성경)
1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3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4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5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6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7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8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광풍이며
9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10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11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
12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13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14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
*. 대표기도: 안젤라 애쉬윈, Angela Ashwin
예수님, 우리의 마음이 종종 차갑지만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나타내는 금을
주님께 드립니다.
우리의 영은 미지근해질 수 있지만
기도에 대한 우리의 열망을 나타내는 유향을 주님께 드립니다.
마음 속에 자기 연민과 원망이 생길 때에도
우리의 절망과 어려움을 나타내는 몰약을
주님께 드립니다.
우리의 선물을 받으시고
우리를 향한 주님의 큰 사랑으로 그것을 사용해 주소서.
우리가 동방박사들처럼
베들레헴에서 무릎 끓을 장소를 발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말씀:
골로새서 3:12~17절입니다. (성경)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 특별찬양: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을 찬송합니다.
*. 말씀선포: 또 무엇을 하든지
1. 들어가는 말
오늘은 성탄 후 제1주 주일입니다. 강림절을 보내고 성탄절을 보내는 지금 아기 예수님을 만나시고 나서 삶이 조금 바뀌셨습니까? 예수님 오심은 삶의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주님을 만났으니)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을 시작하라는 말씀입니다. 새 생활은 세 가지 지평에서 이루어집니다. 삼위 하나님의 지평입니다.
[*.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을 때 몸통을 만드셨습니다. 오장육부가 다 들어 있는 몸통의 중심은 가슴입니다. 그런데 속이 보이지 않자 잘 보라고 속 모습을 쑥 빼어 머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또 보니 움직일 수가 없어서 움직이라고 손과 발을 만드셨습니다. (동의보감을 토대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머리, 손과 발, 그리고 몸통인 가슴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머리는 성부 하나님의 지평이고, 가슴은 성령 하나님의 지평이고, 손과 발은 성자 하나님의 지평입니다. 그렇게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세 지평에서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의 삶을 살라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2. 손과 발, 온전하게 매는 띠, 사랑
손과 발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람을 잘 섬기라고 있는 것입니다. 땀 흘리는 행함(doing)이고, 일(working)입니다. 일을 행하라고 손과 발을 주신 것입니다. 12-14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첫째, 주어진 일을 겸손하게, 나의 십자가를 지듯이 하십시오.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우리이고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 짐을 얹어 주십니다. 겸손히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새에게 날개는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날 수 있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항해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짐이 되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 모든 섬김을 사랑으로 행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온전하게 만듭니다. 사랑은 모든 섬김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모든 갈등을 푸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는 마술과 같은 것입니다. 마치 <미인과 야수>에서 마법에 걸린 야수가 사랑 고백을 듣는 순간,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오듯이 말입니다. 쓴 약도 먹을 수 있게 해 주는 감초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배신을 예고 하신 후에, 즉 십자가 죽음이 있을 것을 감지하신 후에, 새 계명을 주십니다. 십자가 사건으로 인하여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다. 나는 이제 간다’ 하시면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사도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요한은 요한 일서에서,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한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4장 12절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사랑이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의 구체적인 계명들을 주신 것이 아니라, 새 계명을 주신다고 하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 사랑을 몸소 실천하시어 저 고난의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어떻게, 누구와, 어디서, 언제 사랑을 하라는 것인지, 예수님께서 주신 사랑은 우리에게 숙제를 남기고 있습니다. 즉, 사랑이라는 열쇠를 가지고 우리의 삶의 정황 속에서 적용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에서 성도들과 사랑하기, 부모, 남편, 부인, 자녀 등 가족 사랑하기, 이웃 사랑하기, 일터에서, 사회, 국제 정세, 감리교회를 보며 사랑하기 등등의 숙제를 요청 받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 곧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니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으로 옷을 입으라고 합니다. 불만이 있다면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합니다. 손과 발이 따르는 모든 섬김의 일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새 생활의 (손과 발의) 삶입니다.
3. 머리, 그리스도의 말씀
몸통에서 쑥 빠져 나온 머리는 생각하라고, 배우라고, 진리를 찾으라고, 하나님을 깨달아 알아가라고 내어 주신 것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말씀을 풍성하게 거하게 하고, 말씀에 드러난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라고 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성경말씀의 소중함과 그 가치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 때때로, 홍수가 나서 온 세상이 물로 뒤덮여도 정작 마실 물을 찾기가 가뭄에 물 얻기 보다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정보화 시대를 사는 우리는 많은 지식과 문화의 홍수, 정보와 첨단기술의 홍수 속에 살지만 정작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말씀에는 목말라 있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물을 마셔야 하는데 말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니라(요한복음 4 : 14)]
#독일의 유명한 작곡가 헨델의 일화 입니다. 어느 날 헨델이 길을 가다가 가발을 잃어버렸습니다. 당시에 가발은 매우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한참 동안 난처해 하고 있을 때 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그의 가발을 찾아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근처 이발관에서 일하는 아가씨였습니다. 그 후 헨델은 고마운 마음으로 그녀를 자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그녀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헨델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자신의 오라토리오 ‘메시야’의 친필 악보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헨델은 그녀와 결혼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헨델은 그 이발관에 다시 들렀습니다. 그 아가씨는 헨델이 온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발을 하러 온 한 손님의 머리를 만지고 있던 그녀는 무심코 다른 이발사에게 “머리를 말게 악보 몇 장만 갖다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헨델은 조용히 이발관을 나왔고 그 후로 다시는 그 이발관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헨델의 명작 ‘메시아’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여인처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지만 그 말씀을 다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깊고 오묘한 진리를 담고 있으며 성령님께서 조명해 주셔야만 그 깊이 있는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그저 한 권의 책으로 볼 뿐이며 하나님의 귀한 말씀임을 알지 못하게 마련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 105)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풍성하게 거하게 할까요? 첫째, 일단 계속 말씀을 묵상하고, 읽고, 탐구해야 합니다. 글을 계속 쓰는 사람이 잘 쓰고, 사진은 계속 찍는 사람이 잘 찍듯이 무엇이나 계속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습니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모이기를 힘쓰고, 말씀을 늘 가까이 두고 묵상하며, 읽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되기 어려워도, 그리스도가 되는 것은 가능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을 깨우면 됩니다. 영이 깨어나면 말씀의 의미도 쏙쏙 잘 들어 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말씀이 감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16b)가 되어야 합니다. 시와 찬송과 노래가 된다는 것은 비로소 그 말씀이 나에게 체화(體化)되었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체험이 되면 시가 되고, 찬송이 되고, 신령한 노래가 됩니다. 우리 말에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 자주 하는 말을 일컬어서 ‘아주 노래를 불러요~’라고 표현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을 자주 묵상하면 노래가 됩니다. 시편 59:16~17입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머리의 모든 것(생각)에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풍부하게 채우십시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가 되게 하십시오. 말씀이 마음까지 내려간 새 생활의 (머리의) 삶입니다. 신명기 6:6입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잠언 3:1입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잠언 3:3입니다.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4. 가슴,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도록 하라
가슴은 최초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체입니다. 몸통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해당합니다. 마음 상태(being)를 나타내는 부분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다른 어떤 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시편 22:26입니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영원히 사는 것은 마음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마음(가슴)을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게 하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이 내 ‘마음 상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한 정신병자가 밤에 몰래 백화점에 침입했습니다. 밤새도록 장난질을 했습니다. 가격표를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 붙인 것입니다. 만원 자리에는 100만원자리를 붙여놓고, 200만원자리에는 5천 원 붙여놓고, 자기 마음대로 장난을 쳤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백화점 문을 열고 손님을 받았는데, 손님들이 들어와서는 이상한 눈빛도 없이 그냥 엉터리 가격표를 보고 그대로 물건을 사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현대인들의 가치관을 비꼬아 만든 이야기입니다. 현대인들은 가치관이 혼돈되어 있는듯 보입니다. 뭐가 정말 중요하고 뭐가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가치 있는 것은 오히려 싸구려 취급을 하고 별로 쓸모 없는 것이 오히려 정말 귀한 것인 줄 착각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
(명품)백 하나가 수 백만원, 수 천만원을 호가한다는 것이 오늘 뒤바뀐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가만히 자신의 생활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정말 아까운 내 인생,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정말 내가 귀하다고 붙잡고 있는 그것이 내 인생에게 귀한 것인가, 한번 다시 보라는 것입니다. 아까운 인생을 쓸데없는 것, 가치 없는 것을 붙잡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몸부림치다가 인생을 마친다면 안타까운 일 아니겠습니까?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씩 멈추어 자신의 마음을 챙겨야 합니다. 진짜 힘은 멈춤에서 나옵니다. 팔씨름할 때 힘을 주려면 숨을 멈추어야 합니다. 심호흡을 할 때의 날숨과 들숨 사이에도 얼마간의 멈춤이 있을 때 힘이 생깁니다. 뭔가 힘을 들여야 할 때도 우린 호흡을 멈춥니다. 음악도 쉼이 있어야 그 여운을 즐길 수 있습니다. 춤도 정지의 순간이 없으면 춤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도 잠시의 멈춤이 힘을 만들어 줍니다. 일상으로부터의 멈춤, 어쩌면 힘써 달리는 것보다 더 필요한 힘일 수도 있습니다. [*이시형의 《내 안에는 해피니스 폴더가 있다》 중에서]
사람은 대체로 멈추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끊기는 것 같고, 뒤쳐지는 것 같고,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정반대인데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자동차도 기름이 완전히 떨어지거나 고장이 나면 강제로 멈춰 섭니다. 사람도 큰 병이 나면 (영원히) 멈춰 섭니다. 힘이 남아 있을 때 멈추어야, 더 큰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예배, 주일성수는 우리 삶을 돌아보는 멈추는 시간이 됩니다.
이 중요한 마음을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려면, 첫째,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더 낫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골로새서 2:3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면 마음이 평안합니다. 다툴 일이 없어집니다.
#편작은 화타와 더불어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중국의 명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두 형도 모두 의사였습니다. 다만 두 형은 막내인 편작만큼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 못했을 뿐입니다. 위나라 임금이 편작에게 물었습니다. “그대 삼 형제 중 누가 병을 가장 잘 치료하는가?” 편작은, “큰 형님의 의술이 가장 훌륭하고 다음은 둘째 형님이며 그 다음이 저의 의술입니다. 저의 큰 형님은 환자가 아픔을 느끼기 전에 얼굴빛으로 이미 그 환자에게 다가올 병을 압니다. 그리하여 그 환자가 병이 나기도 전에 병의 원인을 제거하여 줍니다. 그리하여 환자는 아파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치료를 받게 되어 저의 큰 형님이 자신의 고통을 제거해 주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의 큰 형님께서 명의로 소문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둘째 형님은 환자의 병세가 미미할 때 그 병을 알아 보시고 치료에 들어 가십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저의 둘째 형님이 자신의 큰 병을 낫게 해 주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반면에 저는 병이 커지고 환자가 고통 속에서 신음할 때에야 비로소 병을 알아 봅니다. 환자의 병세가 심각하므로 맥을 짚어 보아야 했고, 진기한 약을 먹여야 했으며 살을 도려내는 수술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저의 그런 행위를 보고서야 비로소 제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주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제가 명의로 소문나게 된 것은 이렇게 하찮은 이유에서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누가 더 잘 치료하는 명의인지는 더 살펴봐야 하겠지만, 형들을 더 낫게 여기는 편작의 마음이 곱습니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면 마음이 평안합니다.
둘째, 마음이 평안하면 미소가 나옵니다. 그러니 (거꾸로 하면) 미소를 지으면 평안해 집니다. 웃으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될수록 웃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웃는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고 했습니다. 웃는 집에는 많은 복이 찾아옵니다. 또 '일소일소 일노일로 (一笑一少 一怒一老)'라고 했습니다.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분노하면 한 번 늙어 집니다. 성을 내는 것처럼 몸에 해로운 것은 없습니다. 항상 웃는 사람의 얼굴에는 화기가 돌고, 윤기가 흐르고, 정기가 빛납니다. 그러나 웃지 않는 사람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기운이 없고, 표정이 어두워 보이는 법입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하루에 적어도 한 두 시간은 웃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먹은 것이 소화도 잘 되고, 건강에도 좋고, 일에도 좋고, 인간관계도 좋아집니다. 그러나 항상 얼굴을 찌푸린 사람, 웃음의 밝은 표정이 사라진 사람은 무슨 일이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웃음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주신 선물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언 17:22)
[*.프랑스의 의사들이 가장 많이 처방하는 '약품'가운데 하나가 바로 '웃음'이라고 합니다. 의사들이 이같이 말하는 근거를 보면 웃음은 우선 폐와 기도를 확장시켜 공기의 유입과 배출을 촉진시켜 주고 상부 호흡기를 청소해 호흡을 정상화시켜 주는 탁월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웃음은 또 신경성 위장 장애와 신경성 고혈압, 신경성 심장병, 신경성 두통을 비롯해서 우울과 히스테리 같은 신체와 정신의 병을 다스리는 치료제로서의 역할도 합니다.]
서로서로 미소를 지으십시오. 평화는 미소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이 전연 미소 짓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하루에 다섯 번씩 미소 지으십시오. 평화를 위해서 그렇게 하십시오. (도로시 헌트의 《마더 데레사 일일묵상집-사랑은 철따라 열매를 맺나니》중에서)
미소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오늘부터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미소 짓는 연습을 몇 번씩 해보시면 어떨까요. 여러분의 웃는 얼굴이 예쁩니다. 당신은 웃을 때 가장 아름답다. (칼 조세프 쿠쉘)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고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찾아 온다는 뜻이 됩니다.
셋째, 마음이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채어지면 좋은, 선한 말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꾸로 마음을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채우려면) 좋은 말, 선한 말을 하면 됩니다. 좋은 말을 하면 마음도 좋아지고 나쁜 말을 하면 마음도 나빠집니다. 마음을 좋게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미안해요. 괜찮아요. 이제 잘될 거예요. 사랑해요. 고마워요. 감사해요 등등”의 말들입니다. 따지고 보면 온통 고마운 일뿐입니다. 인생이 고맙고, 만남이 고맙고, 공기가 고맙고, 일용할 양식이 고맙습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생각이 자리를 잡습니다. 말을 통하여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디 말로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 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말은 마음의 창문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태복음 15:18) 더러운 말을 하면 안되겠지요.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잠언 15:28), (잠언 16: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5.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부자였지만 어리석기가 그지 없는 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부자가 이웃 마을에 다니러 갔다가 그 마을에 제일가는 부자의 삼층 집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러운 마음으로 돌아와서는 자기 집이 불만족스러워 무척이나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목수를 불러서 그 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목수에게 그 집처럼 멋있는 집을 지을 수 있느냐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그 집은 목수 자신이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는 집을 짓는 것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목수는 이제 땅을 고르고 벽돌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가 하는 말이 나는 삼층 집을 원한다고, 아래 두 층은 갖고 싶지 않고 3층부터 지어달라고 합니다. 목수가 말합니다. ‘일층을 짓지 않고 어떻게 이층을 지을 것이며 이층을 짓지 않고 어떻게 삼층을 지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로 ‘내가 집이 없어서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나는 삼층이 필요해’하면서 때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1층없이 2층, 3층으로 가시려는 분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모래에 지은 집과 같은 것입니다. 현재[가슴 상태, being]를 잘 살지 못하면서 잘 사는 미래를 꿈꾸는 것은, 1층 없이 2층 3층으로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 하나님, 곧 가슴의 지평이 1층입니다. 마음을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게 하는 것이 1층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2층, 3층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손과 발(doing & working)은 2층이고, 머리(thinking)는 3층입니다. 손과 발은 일(working)이고, 머리는 말(wording)입니다. 2층과 3층입니다. 2층 3층은 뒤바뀌어도 괜찮습니다. 사람의 개성에 따라 일 혹은 말이 앞 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층은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게 해야 하는 마음입니다. 바울은 이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라고 표현합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고 합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는 것은 마음이 주 예수의 이름에 가 있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그리고 신명기 5권을 모세 5경이라고 이름 붙이며 모세의 이름을 빌려온 것이고, 제2이사야 혹은 제3이사야의 내용도 이사야의 이름을 빌려 붙인 것이고, 몇몇 의심되는 서신들도 바울의 서신이라고 바울의 이름을 빌려오는 까닭은 저자가 그 이름에 마음이 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는 것은 마음이 주 예수의 이름에 가 있다는 뜻입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가슴, 마음의) 1층을 튼튼히 짓고, 그 위에 2층 3층, 곧 (그리스도의 말씀인) 말(wording)이나 (그리스도의 섬김의) 일(working)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19:14입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6. 나가는 말
아기 예수를 만난 후 새 삶을 시작하는 우리들은 옛 생활을 버리고, 세 지평 속에서 새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자 하나님, 손과 발의 지평은 주어진 일을 겸손하게, 나의 십자가를 지듯이 감당하고, 모든 섬김에 사랑을 더하여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 머리의 지평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풍성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계속해서 말씀을 묵상하고, 읽고, 탐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시(詩)가 되고, 찬송이 되고, 신령한 노래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 가슴의 지평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게해야 합니다. 마음에 그리스도의 평강을 채우려면,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더 낫게 여기고, 기쁜 마음으로 웃고 미소를 지으며, ‘미안해요. 괜찮아요. 이제 잘될 거예요. 사랑해요. 고마워요. 감사해요 등등’의 선한 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1층을 튼튼하게 지어야 2층, 3층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 가슴의 지평이 1층에 해당합니다. 1층, 마음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마음을 채우십시오. 그 위에 말과 일을 더하는 것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십시오.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잠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신 4:9)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
주님의 나라 온전하게 누려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찬송: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봉헌찬송(일어서서):
찬송가 50장 1절 부르며 헌금합니다. (찬송가)
*. 봉헌기도(일어서서):
예배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예물을 정성껏 모아 주님 앞에 드립니다. 이 땅 위에 주의 나라 세워가는 거룩한 사역을 위해서 온전하고, 아름답게 쓰이는 예물 되게 하시고, 귀한 열매 맺어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예물에 담긴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헤아려 살펴 주셔서, 주님의 뜻 가운데 응답 받게 하옵소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주의 성령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저희 있는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비-대면예배로 드릴 경우, 헌금은 따로 잘 보관했다가 교회에서 예배할 때 함께 봉헌합니다. 혹은 신협 131-019-734759 (주안대신교회)로 송금합니다.]
*. 교회소식:
*. 찬송(일어서서):
찬송가 462(생명 진리 은혜 되신)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축도 혹은 주기도문(일어서서):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
##. 감사합니다. 행복한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