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윤동재
이른 새벽부터 늦도록 고추 모종을 심고 나서
저녁을 먹으러 청송 읍내 짜장면집에 갔지요
여든이 넘은 주방장이 손님이 오면
그때부터 직접 손으로 면을 뽑기 시작하지요
‘동네 한 바퀴’라는 방송 프로에도 나온 집이지요
그런데 거기서 낯익은 얼굴을 만났지요
조선 중종 때 영의정 성희안과 청송 부사 정붕이었지요
두 사람은 짜장면 곱빼기를 시켜 먹고
자리에서 막 일어서고 있었지요
나를 보더니 자리에 도로 앉고는
나와 한참 얘기를 나누었지요
영의정 성희안이 겸연쩍어하면서 말했지요
오백년 전에 청송 부사 정붕에게
청송 잣과 청송 꿀을 구해 달라 부탁했다고 했지요
그때 청송 부사 정붕이
청송 잣은 마카 높은 산만디기에 있고
청송 꿀은 마카 백성들의 벌통 속에 들어 있으니
구해드릴 수 없다고 답했다 했지요
성희안이 답장받고 괘씸하게 여겼는데
오백 년이 지나고 보니 자신이 잘못했다 싶어
청송에 내려와 정붕에게 직접 사죄하고
짜장면 한 그릇 대접했노라 했지요
성희안의 말을 듣고 나니
요즘 위정자들에 대해 참았던 울화와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지요
그들은 어쩌자고 도대체 어쩌자고
엄청난 잘못을 하고서도
사죄 한번 하지 않는 걸까?
아무리 큰 사고가 일어나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걸까?
그들이 사죄하고 책임지는 모습은 언제쯤 볼까?
수수만년 수억 만년 뒤면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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