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대교육 / 조선희
요즘 들어 출근길에 자주 만나는 풍경이 있다. 청바지 차림의 한 할아버지와 병설유치원 원아가 손을 잡고 발 맞춰 운동장을 도는 모습이다. 알고 보니 그 분은 교문 밖에 세워져 있곤 하던 택시의 주인이었다. 고흥읍에서 과역까지 15분 정도의 거리를 택시로 통학하는 아이들과 함께 손녀를 싣고 오는 거다. 통학차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기에 다른 친구들이 올 때까지 할아버지는 손녀의 손을 잡고 함께 있어 주는 중이었다.
'꼬마 농부'라는 이름으로 마을학교 연계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3년 째다. 고흥 영농 협회에서 강사를 지원하여 '텃밭 가꾸기' 수업을 하고 있다. 감자를 심고, 옥수수와 토마토, 파프리카 모종을 심은 뒤로 아침마다 물주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덕분에 만나는 아침 풍경 중 가장 예쁜 그림은 손녀와 할아버지의 다정한 모습이다. 어느 날엔 가만히 귀 기울이니 손녀의 말이 제법 많다. 천천히 하나하나의 말에 응대하고, 눈높이를 맞추어 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한다.
가끔씩 떠오르는 영화 속 장면이 하나 있다. 이청준 원작, 임권택 감독의 「축제(1996)」 중 한 부분이다. 팔순 노모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죽음을 비극이 아니라 축제로 이끌고, 가족 간의 불화와 미움을 화합으로 이끄는 내용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화면으로 구성되나 유독 환한 봄날의 한 장면이 나온다. 시골집 담장 안 장독대 위로 벚나무 한그루가 화사하 게 피어 있고, 머리가 하얗게 샌 노모는 마당에서 닭 모이를 주고 있다. 손녀 은지는 엄마나 아빠가 곁에 있어도 더 자상하고 알뜰히 보살펴 주는 할머니를 따른다. 설정은 다소 작위적이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은지의 내래이션이 내겐 유독 와 닿았다.
"할머니는 엄마나 아빠보다 나이도 많고 집안의 어른인데 왜 키가 더 작아요?" 하는 은지에게 할머니는 “그야 은지가 할미 나이를 다 뺏어 먹으니까 그렇지.” 한다. 할머니는 원래 컸는데 자식에게 나눠 주느라 작아지고, 또 은지에게도 나눠 주느라 더 작아진다는 말에 어린 은지는 처음엔 미안해 한다. 싫더라도 어른은 되기 마련이고, 할머니의 세상은 지나고 은지의 세상을 맞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고마워하며 편안해한다. 논리적으로 다소 어색한 말이긴 하지만 할머니가 나눠주는 사랑으로 아이가 자라고, 그만큼 할머니는 조금씩 작아지고 어려진다는 말이 뭉클했다.
영화에서 할머니는 시간이 흐를수록 몸이 점점 더 줄고, 치매까지 찾아온다. 한동안은 시집 올 때의 기억 속에서 살다가, 이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 '늙은 아이'가 된다. 자연의 이치가 아무리 그러하다 해도 치매 걸린 할머니를 수용할 수 있는 손주가 과연 있을까? 어른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은지라면 그런 할머니가 더 이상 추하거나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혹자는 격대교육(隔代敎育)에서 교육의 희망을 찾기도 한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손자의 교육을 하는 사례들을 많이 보고 있다. 일상의 글쓰기를 함께 하고 계신 곽주현 선생님이나 이훈 교수님의 사례도 훈훈한 마음으로 듣고 있다. 20여년 전 쯤이었을거다. 향우회 회식 자리에서 한 선배님께 학생 생활지도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을 때 “할아버지가 손주를 대하듯 아이들을 보면 돼!” 하던 말씀이 오래 남아 있다. 물론 그 당시엔 행하기 힘든 말이었지만, 언젠가는 나도 아이들을 평화와 여유로 대할 수 있겠거니 했었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두해 전에 퇴직한 오빠가 있다.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두었는데 벌써 손자가 다섯이다. 아들 딸을 키우면서 그리 다정하지 않아 올케언니의 불만이 많았었는데, 그 오빠의 프로필 사진은 언제나 손자들 사진이었다. 시골에 작은 주말 주택을 마련한 뒤로 자녀들이 자주 다니러 오자 오빠는 손자들이 놀 수 있는 그늘막을 마련하고, 수영장까지 손수 만들어 주기도 했다. 가끔 손주들을 안고 함께 그네를 타는 모습은 평화로움 자체였다. 무뚝뚝한 아버지로서의 과거사를 보상이라도 하듯 할아버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자애롭고 너그러웠다. 당연히 아이들은 각각의 개성과 재능을 발휘하며 무리없이 성장해 가고 있다.
직업인으로서, 아이의 엄마로서, 한눈팔 새 없이 최선을 다해 살지만, 지나 놓고 보면 아쉬운 일 투성이인 것이 인생이다. 그러고 다시 시작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 마음이 아들에게 전해진 걸까. 이제 20대 후반이 된 아들이 훗날 아이를 낳으면 엄마에게 키워달라 부탁하고 싶단다. 난 그럴 수 있다면 기꺼이 응하겠다고 했다. 나를 희생하겠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3대가 가까이 살면서 서로의 것을 나눌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으나 이제는 안다. 본디 아이들은 영성(靈性)이라는 것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미성숙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아직 싹틔우지 않은 우주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어린 아이를 대할 때 충분히 존중하고 수용하려 한다. 어리다고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화가 난다고 여과 없이 아이를 대해서는 안될 일이다. 요즘 들어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내가 만난 아이들이 참 예쁘다는 점이다. 그 우주를 품은 아이들을 매일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임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지금 그 선배님의 말씀처럼 할머니가 손주를 대하듯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걸까? 아직 마음은 청춘인데 할머니의 품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겠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살아있는 교육이 뭘까 생각해봤네요.
아이들이 예쁜 지금이 행복한 시절이네요.
격대 교육!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말이예요.
아직은 때가 덜 묻은 아이들을 매일 만날 수 있는 것 큰 복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 왔는데, 저랑 생각이 같네요.
글 속에 곽주현 선생님, 이훈 교수님의 실명이 거론되니 재미나게 읽힙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