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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산(367m),태봉산(245m),남산(333.1m),바카프미산(332.9m)/ 경기 안성 죽산면
산행일자;2021년12월 25일(토). 날씨;맑음(영하13도춥다). 산행거리;13.9km. 산행시간;약5시간30분.
교통편;
-<갈때>; 남부터미널(07;10)-(6,800원/1시간10분)-죽산터미널(08;20) (08;20~08;30/10분 산행준비후
(08;30) 산행시작
-<올때>;(14;00)산행종료.
어울림식당(걸미고개 근처)에서 씻고 환복후 뒷풀이(14;00~16;30/1시간30분/자연산 버섯전골 .맥주1병.막걸리2병/50,000원) 후 (16;30)카카오 택시 콜 (16;40)걸미고개 어울림식당 출발- 택시(10분/7,800원)-(16;50) 죽산터미널 도착
죽산터미널(17;00)출발-(6,800원/1시간10분)-서울남부터미널(18;10)
■ 산행코스: 죽산시외버스터미널→ 영남길→ 매산리석불입상→육교→성은사→ 죽주산성→ 비봉산(367m)→ 서낭당고개 → 태봉산(245.2m) →142.9봉 → 82번 도로 →두원공대입구 →구제역방지 철망문→ 남산(333m) → 286봉 → 바카프미산(333m) - 한남금북정맥-걸미고개
■죽주산성( 竹州山城 )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북진 과정에서 축조한 성곽. 산성으로 성 둘레 1,688m,높이 2.5m의 토석성으로 현재 석축만 남아 있다. 시도기념물.죽주산성은 1236년(고종 23) 죽주방호별감 송문주가 몽골군과 15일간 전투를 펼쳐서 승리한 곳이다. 이는 6차에 걸친 몽골 침입에서 고려가 승리한 대표적인 전투 중 하나이다. 조선시대에도 한양으로 통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되어 지속적으로 산성을 보수하여 활용하였다. 국난극복의 성지로 알려져 산성에 대한 정비가 추진되었고 그 과정에서 2001년부터 발굴조사도 연차적으로 실시되었다. 그 결과 죽주산성은 내성, 중성, 외성 등 3중 성벽으로 구조로 밝혀졌다. 내성은 조선시대, 중성은 신라시대, 외성은 고려시대 등 축조시기도 규명되었다. 전체 둘레는 약 1688m이고 원래 높이는 6∼8m(내성 및 복원 성벽은 2.5m 내외) 정도이다.성 안에는 몽고 침입 때 큰 공을 세운 송문주 장군을 기리는 사당이 있고 함께 싸우다 죽은 군민들의 넋을 기리는 당집이 있다.
죽산(매산리)은 영남대로가 조령과 추풍령 방면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었다.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도성의 방어와 관련하여 중요시되었다. 6세기 중반경 신라가 북진하는 과정에서 서울 지역과 대중국교역항이 있었던 당항진(남양만 일대)으로 진출하기 위한 거점으로 산성이 축조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중성 북동쪽 2개의 능선과 계곡을 막아 외성을 축조하였다. 축조시기는 출토되는 기와편으로 보아 고려 전기(광종∼현종)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중성을 수축하고 그 안으로 내성도 축조하였다. 그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광해군)로 추정되며 성벽을 겹겹히 두어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치성에는 왜성의 축조 기법을 도입하고 포루도 설치하였다.
죽주산성 발굴조사는 주로 성벽에 대하여 실시되었다. 복원성벽이 붕괴되어 보수하면서 동벽과 남벽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성벽은 최소 3차례 이상의 수축한 흔적이 보인다. 성벽은 체성과 보축성벽으로 나누어진다. 보축성벽은 한강 유역 신라 산성 중 가장 빠른 시기의 성벽이다.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하여 단면 삼각형의 형태로 외벽 하단부를 덮은 형태이다. 석재를 약 45° 각도로 기울여 쌓아 올라가고 그 전면에는 다시 점토를 다져서 덮은 형태이다. 이러한 형식은 성벽에 부분적으로 보축을 하거나 단면을 계단식으로 축조하는 후대의 양식에 선행하는 것이다. 체성벽은 풍화된 암반의 경사면을 계단식으로 삭토하여 기초를 조성하고 경사진 지반에 의지하여 석재로 외벽을 쌓았다. 다시 석벽 내부는 점토를 다져 넣어 빗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았다. 계곡부를 통과하는 지역은 외벽과 내벽을 모두 축조하여 더욱 단단하게 쌓았다. 성벽의 높이와 너비는 1:1의 비율을 이루고 있다. 또한 외벽을 따라서 외항(성벽 앞에 땅을 파거나 석재로 도랑을 만든 방어시설)이 둘러쳐 있는 것도 특징적인 것이다. 전반적으로 죽주산성의 성벽은 영남지방의 신라산성의 형식이 한강 유역으로 전달되는 과도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성벽은 신라시대 체성벽 상면에 축조되었다. 대부분 무너지고 일부에 흔적만 보이고 있다.
성내부에서는 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계단식 저수시설 8기가 출토되었다. 물이 흘러내려가는 낙차를 고려하여 계단식으로 저수시설을 배치하여 물을 활용하고 조경시설도 꾸몄다. 저수시설 내부에서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각종 기와와 토기 및 무기류와 공구류 등이 출토되었다.죽주산성은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 과정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되어 신라의 북진 전개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는 유적이다. 또한 신라말 지방세력(기훤, 궁예)과 관련되어 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기록에도 자주 보이고 있다. 고고학적으로는 각 시대별 성벽 축조 방법과 활용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통일신라시대 처음 축성된 것으로 알려지며 고려시대에 크게 중수 하였다.성의 이름은 죽산의 옛 이름 죽주에서 유래하며 신라 후기 진성여왕 때 견훤이 이 성에 진을 치고 세력을 키웠다. 고려시대의 1,236년(고종 23)몽고군의 제3차 침입 당시에는 방호별감 송문주가 성 안에 피난해 있던 백성들과 합세, 몽고군과 싸워 이긴 전적지이다.
조선시대에도 청주와 충주의 두 길이 만나 서울로 통하는 요지인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강조되어 성을 보수 하였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여기에도 진을 치기도 하였다.산성은 3겹 석성으로 본성 1,688m,외성 1,500m,내성 270m에 이른다.
성 안에는 몽고 침입 때 큰 공을 세운 송문주 장군을 기리는 사당이 있고 함께 싸우다 죽은 군민들의 넋을 기리는 당집이 있다.통일신라시대 처음 축성된 것으로 알려지며 고려시대에 크게 중수 하였다.성의 이름은 죽산의 옛 이름 죽주에서 유래하며 신라 후기 진성여왕 때 견훤이 이 성에 진을 치고 세력을 키웠다.
■비봉산(飛鳳山 372m)은 비봉산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위치한 산이다. 안성시의 삼죽면, 죽산면, 용인시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이다. 산 하구에 죽주산성과 죽산중학교, 죽산고등학교가 있고, 죽산중학교 교가에도 나온다.
또 다른 안성의 비봉산은 높이가 227.8m로 아담하고 편안한 산이다. 비봉산에는 산정의 9부 능선에 마치 허리띠를 두른 듯 토성이 축조되어 있으며 정상에 옛날 장수가 앉아서 흔적이 생겼다는 장수바위가 있다. 또한 비봉산에는 약수사외 5개의 절이 있고, 산책로와 운동기구(헬스장,베드민턴등)가 있어 가족과 함께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최적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비봉산 정상에 오르면 안성 시가지는 물론 인근 보개, 금광, 대덕 고삼면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비봉산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안성8경 중 하나이다.
■바카프미산(333m)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장계리에 소재한 산이다. 지명유래는 미상. 안성시 게시판에 누군가가 "바카프미산"에 대한 지명유래를 문의하였으나 "그 지역의 주민에 문의하고 자료를 확인하였으나 정확한 자료가 없어 명확하게 유래를 알 수는 없었고, 다만 마을주민들에 의해 구전되어 내려온 명칭이어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고 되어있다.
■남산(333m)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소재한 산이다. 어느 지역에나 있는 남산 처럼 죽삼면의 남산(333m)은 죽산면에서 볼때 남쪽에있는 산이기에 남산이란 이름을 얻은 듯 싶다.
■매산리 석불입상은 미륵당 5높이 3.9m의 보살상으로 머리에는 보관(寶冠)이 높이 솟아 있는데, 고려 초기 보살상에서부터 흔히 나타나는 모습이다. 얼굴은 넙적하고 눈·코·입은 비례가 맞지 않아 독특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러한 토속적인 얼굴은 높은 관과 더불어 보살상의 시대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중략). 안성 봉업사지 인근에 있는 높이 3.9m의 보살상이다. 볼륨감 없이 평평한 돌기둥 같은 신체에 전체적으로 세부를 정교하게 조각하지 않고 높은 원통형의 보관에 사각의 보개(寶蓋 ; 인도에서 귀인의 외출시에 사용하던 양산을 불상의 머리 위에 갓처럼 씌운 것)까지 얹은 표현은 고려 전기 불상의 양식적인 특징이다. 보개는 이후 변형을 이루면서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한 불상에 많이 나타나는 고려 전기 불상의 특징이다.
방형의 넓적한 얼굴에는 가늘게 뜬 눈이 수평으로 표현되고 짧은 코에 작은 입을 표현하였다. 얼굴의 세부 표현은 높은 관과 더불어 이 작품의 시대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둥근 어깨에는 왼쪽 어깨에만 다소 두꺼운 법의를 걸쳤는데, 왼쪽 어깨로부터 신체 전면을 덮으며 내려오는 법의는 가슴에서부터 ‘U’자형 주름이 계단식으로 표현되었고, 이는 다시 양쪽 다리에서 각각의 ‘U’자 모양을 이루며 발끝까지 이어진다. 보살상답게 양 손목에는 팔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에서 손바닥을 밖으로 내보인 상태로 손가락을 살짝 구부리고 있고, 손등을 밖으로 한 왼손은 배에 대고 있다. 원형 보관과 보개로 이루어진 머리장식과 돌기둥 같은 신체 표현 등에서 고려 시대 전기에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유행한 대형 석불의 계통에 속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2021.12.25(토)(06;11)가양역에서 9호선 급행을 타고 출발 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 3호선 환승 (06; 55) 남부터미널역에 도착합니다. 성탄절 아침이지만 엄청 추운 것 말고는 달라진 것이 없는 Covid-19의 팬데믹 상황입니다. 산마루님과 함께 진천행 시외버스를 타고(6,800원/1시간10분) 산행들머리 (08;20) 죽산터미널에 도착합니다. 죽산 터미널 대합실에서 약[10분](08;20~08;30) 산행준비후 (08;30) 산행시작 합니다.
0km 0분[죽산시외버스터미널](08;30)
도로건너 좌측으로 진행 4거리에서 우측으로 간다. "영남길" 안내 표기가 인도 하는 소로길 따라 간다. (08;40)표지목(죽주산성1.23km/죽산면사무소0.7km)를 만나고(cf 죽주산성12.3km는 1.23km의 오기인듯), (08;51)매산리 석불입상 입간판을 지나 좌측으로 소슬대문 들어간 곳에 (08;52) 오층석탑과 매산리 석불을 만난다. 잠깐 둘러보고 도로변 인도 따르니 (09;00)죽주산성과 성은사 입구로 삼는 육교다.[2.0km][30분]
2.0km 30분 [육교] (09;00~09;02)[2분]
육교 끝나는 지점에 "성은사" 표지석 서있고 ,여러기의 공덕비가 서있다. 1차선 포장도로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면 (09;03) 우측에 "죽주산성" 표지석이있다. 도로를 따라 들어서고 성은사 갈림길에서 성은사는 먼발치로 일별하고 (09;10)"죽주산성안내판" 서있는 죽주산성입구에 선다.[0.4km][8분]
2.4km 40분 [죽주산성입구](09;10)
비봉산 광관 안내지도 표시판과 죽주산성 설명판 서있다. 차량은 출입을 통제하는 말목을 지나 도로따라 좌측으로 가다가 우측으로 오르는 구조다. 죽주산성 안으로 들어간다. 여러 가지 시설이 된 성안이다. (09;17)신출귀몰한 장군 신명 송문주 장군의 설명판과 이정표(송문주장군 경각0.44km/포루0.1km) 서있다.
송문주(宋文胄)는 1231년(고종 18) 귀주성(龜州城)에서 몽고군의 공격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워 낭장(將)에 초수(超授)되었다. 1236년에는 죽주방호별감(竹州防護別監)이 되었고, 다음 해에 몽고군이 죽주(竹州)를 공략하자 15일 동안을 싸워 끝내 적을 물리쳤다. 이때 구주성싸움의 경험으로 몽고군의 작전과 장비를 잘 알아 적절히 대응하였으므로, 성안의 사람들이 신명(神明)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이 공으로 좌우위장군(左右衛將軍)이 되었다. 죽주산성(竹州山城은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곳이다. 수십만 대군으로 무장한 홍건적의 침입 때는 항복을 위장하여 환영식을 베풀고 술에 취한 적장 6명을 사살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도 방어에 성공 했다.
몇 계단 걸어 오르다가 (09;18)바람이 없고 양지바른 계단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과자와 떡도 그리고 과일도 먹으면서 휴게 시간 (09;18~09;35)[18분] 갖는다.
그리고(09;35) 계단 길 올라서니 (09;40) 죽주산성 포루 고사목이 서있는 멋진 조망터다.
잠시 조망 즐기고 산성길 이어가 (09;47)영남길 표지목 (황새울입구정류장9.10km) 을 지나(09;52)이정표(비봉산정상1.4km/북문지0.30km/남문지0.36km/ 포루0.47km) 서있는 비봉산성정상에서 산성을 버리고 이정표 (비봉산1.4km) 방향 우측으로 내려서고 다시 이정표 (비봉산 정상)방향 좌측으로 내림길 내려서니
(09;58)매곡마을 갈림길 이정표(비봉산정상1.0km/매곡마을0.6km/죽주산성0.2km)를 지난다.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내려 섰다가 다시 오르고 (10;21) 목책계단을 밟고 올라선다. (10;23)일죽면 방초리 갈림길 이정표(비봉산 정상 0.1km/ 일죽면 방초리/죽주산성 1.1km)에서 완만히 산정으로 올라선다. 비봉산 정상이다.[2.4km][
4.8km 115분[비봉산](367m)(10;25~09;27)[2분]
비봉산 정상표석, 돌탑, 삼각점, 운동기구, 탁자 등이 있다. 조망 즐긴후 인증사진 남기고 가파르게 픽스로프를 따라 계속 내려간다. 이정표( 두현리 하삼 1.2km/ 죽산면사무소 1.4km/ 삼죽면 내장리 0.4km/비봉산 정상 0.5km)서있는 서낭당 고개를 지나 완만히 봉우리에 올라선다. 291봉을 지나 완만히 계속 내려간다. (10;49)구교동갈림길 이정표( 태봉산 정상 100m/ 구교동 0.5km/비봉산 정상 1.0km)에서 완만히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10;50)태봉산 정상이다.[1.1km][23분]
5.9km 140분[태봉산](245m)(10;50~10;55)[5분]
공터에 정상표석과 돌탑이 있다. 인증사진 남기고 잠시 다리쉼한 후 90도 좌측으로 꺾어 가파르게 내려간다. 내림길이 끝나고(11;07) 뚜렷하고 부드러운 능선으로 점점 완만해지면서 내려간다. 양쪽으로 소나무가 도열한 참으로 걷기 좋은 길이다. 직진하여 능선을 따라 내려서 (11;19) 마을길을 좌측으로 따르니 (11;20)82번 도로와 구교동길 사거리다.[1.6km][25분]
7.5km 170분[82번 도로와 구교동길 사거리](11;20)
도로교통표지판(두원공대/장호원.일죽IC/구교동/두원공대)서있는 4거리에서 도로를 따라 두원공대 방향으로 간다. (11;25)관음교를 건너 38번 도로(서동대로) 굴다리를 통과하니 (11;28)두원공대 입구다. 두원공대 입구로 트랙이 되어있지만 교정을 통과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 듯하여 학교로 들어가지 않고 좌측으로 도로 따른다. (11;29) 죽산 제일교회를 지나고 첫4거리에서 우회전 "장원 공단 길" 따라 공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진행 "장원길" 따라 진행하니 (11;47)두원 공대 본관 뒤를 통해 나오는 지점 즈음에 (방음벽이 서있지만 방음벽 끝나는 지점 정도로 나올수는 있겠다.) 남산쪽으로는 구제역 방지 철조망 울타리가 처있어 철조망과 방음벽 사이 도로를 20여m 따르다가 남산 입구 "철조망 문"을 만난다.[2.0km][28분]
9.5km 200분[남산입구 철조망 문](11;48~11;50)[2분]
구제역 방지 철조망 울타리 사이 남산 입구 "철조망 문"이 걸쇄로 잠겨 있어 걸쇄 빼고 열고 들어가 문을 닫고 다시 걸쇄 걸어 둔다. 안으로 들어가 좌측 능선으로 희미한 길을 따라 올라서니 뚜렷한 등산로를 곧바로 만난다. 우측으로 산판길 같이 넓은 등로 따라 완만히 올라서니 (12;05)넓게 자리잡은 비석 상석 없는 묘지에 이르고 다소 가파르게 계속 올라간다. 그런대로 뚜렷한 능선길을 걸어가자 (12;20) 남산 정상이다.[1.5km][30분]
10.0km 230분 [남산](12;20~12;26)[6분]
사각형 나무판재에 매직으로 쓴 남산 337m 정상 표지판 글씨가 퇴색되어있어 (12;20~12;26)[6분] 매직으로 덧칠 수선하고 인증사진 남긴다. 선답자님들의 표지기도 많이 부착된 정상이다.
근처 용설호수 수변산책로는 멋있게 꾸미면서 주변에 있는 남산은 정상석 하나 없어 아쉽다.
(12;26)우측으로 꺾어 내려서고 완만한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점점 더 완만해지면서 안부에 이르니 갈림길이 있고 완만히 올라 넘어서니 고개다. 오름길 올라 286봉 을 지나고 올라선 둔덕은 좌측으로 비켜 지나고 완만히 안부를 지나서 완만히 계속 올라선다. 리기다소나무와 참나무류 사이로 나 있는 길이 계속 이어진다. 경사가 거의 없는 부드러운 산길이라 걷기에 좋다. (13;23)장수봉으로도 불리는 바가프미산 정상에 도착한다.[2.0km][57분]
12.0km 293분 [바가프미산](333m) (13;23~13;25)[2분]
산 이름 치고는 특이하지만 엄연히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올라 있다. 바가프미산 정상에도 남산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표지판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다행히 매직글씨가 수선되어 있어 그대로 인증사진 남긴다.
바가프미산(333m)에는 엄청나게 많은 표지기들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한남금북정맥 종주를 하는 산님들이 정맥 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이곳에 들려 가는 탓일 것이다. 능선길 내려서 (13;29) 한남금북정맥과 만나는 3거리다.
한남금북정맥은 "한남금북정맥1차완주; 2004년2월1일~2004년5월26일 (10구간)(창투산악회)
한남금북정맥2차완주; 2006년6월14일~2006년9월24일(9구간) (잔디밭산악회)"로 진행한 봐 있어 우향 걸미고개로 하산길을 택한다.
능선길 가다가 (13;18)약15년의 세월동안 지켜준 "배창랑과 그일행=山君들/1대간 9정맥(2차)" 표지기를 만난다. 낡고 얼어 붙어 있어 수선도 못한채 인증하고 내려선다.
공장부지가 맥길 능선 까지 침범 조성중이다. 공장 부지 절개지 따라 가다가 좌측으로 걸미고개 조금아레 어우림식당에서 산행종료한다.[1.9km][35분]
13.9km 330분[걸미고개](14;00)
(14;00)산행종료합니다. 영하 13도 (체감온도 영하 18도)엄청 추운 날씨에 언몸을 걸미고개근처 "어울림식당"에서 주문해두고 온수 나오는 사워실에서 씻고 환복 하니 살 것 같습니다. 따근한 난로 앞에 상차림된 식탁에서 산마루님과 뒷풀이(14;00~16;30/1시간30분/자연산 벗섯전골 .맥주1병.막걸리2병/50,000원) 건배 그리고 또 건배 합니다.
(16;40) 콜한 카카오택시 도착 되어 걸미고개 어울림식당을 출발 택시타고(10분/7,800원) (16;50) 죽산 터미널 도착합니다.(16;50~17;00)[10분]죽산터미널출발 (6,800원/1시간10분) (18;10)서울남부터미널에 도착 합니다. 3/9호선으로 (19;00) 귀가 합니다.
08;30 죽산 터미널입니다.
08;40 이정목(죽주산성1.23km/죽산면사무소0.7km)입니다
08;40 봉업사 /수담원 입간판입니다.
08;51 매산리 석불입상 입간판입니다.
08;52 매산리 석불입상 표지석과 설명판입니다.
05;52 매산리 석불입상과 5층석탑입니다
09;00 육교 입니다.
09;01 성은사 표지석입니다.
09;01영남길 표지목(황새울입구정류장10.2km)입니다
09;02 공덕비들(?)입니다.
09;03죽주산성 표지석입니다.
(09;10)비봉산 관광 안내지도 표시판과 죽주산성 설명판 서있습니다.
09;11 죽주산성 설명판과 죽주산성 현황도 입니다.
09;12 산성으로 오르는 도로(차량통행 통제)입니다.
09;14 성문으로 들어 갑니다.
(09;17)신출귀몰한 장군 신명 송문주 장군의 설명판과 이정표(송문주장군 경각0.44km/포루0.1km) 입니다.
(09;18)바람이 없고 양지바른 계단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과자와 떡도 그리고 과일도 먹으면서 휴게 시간 (09;18~09;35)[18분] 갖습니다. 그리고(09;35) 계단 길 올라서니 (09;40) 죽주산성 포루 고사목이 서있는 멋진 조망터입니다.
09;40 조망입니다.
(09;40) 죽주산성 포루 고사목이 서있는 멋진 조망터입니다.
(09;47)영남길 표지목 (황새울입구정류장9.10km)입니다.
(09;52)이정표(비봉산정상1.4km/북문지0.30km/남문지0.36km/ 포루0.47km) 서있는 "비봉산성"정상입니다.
(09;58)매곡마을 갈림길 이정표(비봉산정상1.0km/매곡마을0.6km/죽주산성0.2km)입니다.
(10;21) 목책계단을 밟고 올라섭니다.
(10;23)일죽면 방초리 갈림길 이정표(비봉산 정상 0.1km/ 일죽면 방초리/죽주산성 1.1km)입니다.
10;25 비봉산 정상입니다.
10;25 비봉산 정상에서 조망입니다.
10;25 비봉산 정상에서 조망2 입니다.
10;25~10;27[2분] 비봉산 정상석입니다.
10;25~10;27[2분] 비봉산 정상 인증사진입니다.
(10;49)구교동갈림길 이정표( 태봉산 정상 100m/ 구교동 0.5km/비봉산 정상 1.0km)입니다.
(10;50)태봉산 정상석입니다.
(10;50)태봉산 정상 돌탑입니다.
(10;50~10;55)[5분]태봉산 정상 인증사진 남기고 잠시 다리쉼 합니다.
(11;07) 뚜렷하고 부드러운 능선으로 점점 완만해진 길 양쪽으로 소나무가 도열한 참으로 걷기 좋은 길입니다.
(11;19) 마을길입니다.
(11;20)도로교통표지판(두원공대/장호원.일죽IC/구교동/두원공대)서있는 4거리에서 도로를 따라 두원공대 방향으로 갑니다.
(11;25)관음교를 건넙니다.
11;29 죽산 제일교회입니다.
(11;47)두원 공대 본관 뒤를 통해 나오는 지점 즈음에 방음벽이 서있지만 방음벽 끝나는 지점 정도로 나올수는 있겠습니다.
(11;48~11;50)[2분]철조망 울타리가 쳐있어 철조망과 방음벽 사이 도로를 20여m 따르다가 [남산 입구 "철조망 문"]을 나와 뒤돌아본 모습입니다. (구제역 방지 철조망 울타리 사이 남산 입구 "철조망 문"이 걸쇄로 잠겨 있어 걸쇄 빼고 열고 들어가 문을 닫고 다시 걸쇄 걸어 둡니다.)
(12;05)넓게 자리잡은 비석도 상석도 없는 묘지입니다.
(12;20~12;26)[6분]사각형 나무판재에 매직으로 쓴 남산 337m 정상 표지판 글씨가 퇴색되어있습니다.
(12;20~12;26)[6분]사각형 나무판재에 매직으로 쓴 남산 337m 정상 표지판 글씨가 퇴색되어있어(12;20~12;26)[6분] 매직으로 덧칠 수선하고 인증사진 남깁니다.
(13;23)장수봉으로도 불리는 바가프미산 정상표지판입니다
(13;23~13;25)[2분]산 이름 치고는 특이하지만 엄연히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올라 있는 바가프미산 정상 인증사진입니다
(13;23~13;25)[2분]산 이름 치고는 특이하지만 엄연히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올라 있는 바가프미산 정상 인증사진입니다
13;23~13;25[2분]바가프미산(333m)에는 엄청나게 많은 표지기들이 나무에 매달려 있습니다. 한남금북정맥 종주를 하는 산님들이 정맥 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이곳에 들려 가는 흔적일 것입니다
13;29 멀리 용설저수지를 조망합니다.
13;30 조망입니다.
13;30 3번째 걷는 한남금북 정맥길입니다.
(13;38)약15년의 세월동안 지켜준 "배창랑과 그일행=山君들/1대간 9정맥(2차)" 표지기를 만납니다. 낡고 얼어 붙어 있어 수선도 못한채 인증만하고 내려섭니다. 한남금북정맥은 "한남금북정맥1차완주; 2004년2월1일~2004년5월26일 (10구간)(창투산악회)한남금북정맥2차완주; 2006년6월14일~2006년9월24일(9구간) (잔디밭산악회)"로 진행한 봐 있 습니다. 생애 또다시 만날수 있을 지~~
(14;00) 걸미고개 근처 어울림 식당에서 산행 종료 합니다.
e- 동아 트랙지도
오록스맵트랙지도
산행기록표입니다.
트랙입니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하산주님.
감사합니다 ~^^
사진에서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느낌입니다~ 15년 전의 표지기를 보신 감흥도 남다르셨겠고요~~
산아희님
갑작스럽게 추워지니,,,,
앉아 쉬기가 겁났습니다.
오랜세월 풍상속에 역활을하던 표지기가
반갑고 한편 애처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아니 무슨 시그널을 금딱지로 만드셨데요🤗🤗🤗 나무가 자라서 높이도 올라갔네요^^ 15년후에 다시 보실수 있으실겁니다😄😄😄연말 알차게 보내세요^^
강화도령님
고마운 덕담 감사합니다.
강화도령님 께서도
알차고 보람 있는 연말 되시고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 하시길빕니다.
감사합니다 ~^^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상생님.
감사합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매직님
감사합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9연대님
감사합니다 ~^^
추운날 수고하셨습니다
산다라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