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5일 성령치유집회
-오늘의 말씀-
성령을 따라 행하라
09/23토(土)갈 5:16-26
예수 믿고 구원 받으면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십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불신자와 신자가 다른 점은 신자에게는 성령이 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사람은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성령을 따르지 않는 것은 육신을 따라 행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이 볼 때 불신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를 영접해서 성령은 와 계시지만 육신을 따라 행하는 사람을 육의 사람,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사단의 세력)이 싸우고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살면 사단이 쫓겨납니다. 여기에서 쫓겨난 사단의 세력은 육신에 거합니다.
성령과 사단이 역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성령은 신자가 원할 때만 역사합니다. 성도가 성령을 원하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그러나 사단의 특징은 내가 원하지 않는데 강제로 역사합니다. 신앙에는 중간이 없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으면 성령은 가만히 있고 사단이 움직이므로 육신이 지배하게 됩니다. 신자가 성령을 거부하거나 무시하면 성령이 탄식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인격적입니다. 내가 원할 때, 기도할 때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면 실수하지 않는 인생,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 됩니다. 성령의 역사는 100%후회가 없습니다. 다시 살아도 이 길 밖에는 없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이겨야 합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우리에게는 육신의 세력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짊어져야 합니다. 양심의 가책이 있으면 회개하고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면 불신자와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천국의 유업이 없습니다. 육신의 세력은 육신이 죽는 동안 우리를 괴롭힙니다. 우리가 육신의 세력을 없앨 수는 없지만 이길 수는 있습니다. 이기는 것이 신앙이고 믿음입니다. 날마다 육신을 이겨야 합니다. 육신을 이기면 성령을 따라 행하게 됩니다. 육신은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믿음이 이길 수 있는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십자가에서 내 육신이 죽었다고 믿는 믿음입니다.
십자가에서 내 육신(옛 사람)이 죽었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믿으면 사단이 나에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속게 됩니다. 이 믿음을 가지면 사단의 진지가 잘라집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혔느니라”(갈 5:24) 정욕과 탐심은 십자가에서 끊어집니다.
내 속에 성령이 계신다고 믿으면 사단이 떠나갑니다.
이미 나의 옛 사람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말씀이 흐려지도록 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시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내 속에 성령이 계신다고 깨우쳐 줍니다.
성령에 따라 은혜의 세계에 들어갑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갈 5:18)
성령이 인도할 때 은혜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절로 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면 율법세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 이지만 하나입니다. 성령을 따라 살면 열매가 맺어집니다.
나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입니다. 사랑 받을 때 행복합니다. 사람의 사랑을 받지 못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행복합니다. 나도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나를 이용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감싸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억울하지 않습니다. 희락은 샘솟는 기쁨입니다. 화평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 큰 자가 느끼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받으면 타인과 화평할 수 있습니다.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성령의 열매는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입니다. 인간과의 관계에서 오래 참음은 인간관계를 잘 유지시켜 줍니다. 자비는 용서하는 마음으로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양선은 선하게 되며,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해 줍니다.
나와 세상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성령의 열매는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충성은 변함없이 최선을 다 하는 것입니다. 온유는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합니다. 섭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절제는 하고 싶은 것을 조절하는 능력입니다.
And...
희랍의 한 신이 왕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당신의 소원 한 가지를 이루어주겠다”고 말합니다. 왕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금을 많이 가지고 싶으니 내 손이 닿는 것마다 금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소원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정말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는데 마이크를 잡으면 마이크가 금이 되었고, 종을 잡으면 종이 금으로 변했습니다. 너무 신이 나서 왕비에게 알리려고 가다가, 강아지가 반갑게 다가와서 껴안으니 강아지가 금 강아지로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꼭 껴안았더니 아내가 금덩이로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와서 안기니까 그 아들도 금덩이가 됐습니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려고 수저를 들었더니 수저도 금덩이요, 밥도 금덩이로 변해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어서 쫄쫄 굶다가 굶어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다면 오히려 우리에게 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태리의 프란체스코의 수녀이며 신비 사상가인 안제라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성령이 어떤 사람의 영혼에 부어지면 성령은 그 사람의 외양도 완전히 정숙하게 한다. 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일 뿐이다.” 오늘날 성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들의 태도도 이 말로써 측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성령 충만함을 받을 때 맺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 일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며 중요한 일입니다. 믿음과 은혜의 성장은 성령으로 인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충만하게 받지 못하면 우리는 불가불 하나님께 욕을 돌리고 교회에서는 무익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오스틴 오말리는 “반쯤 익은 설교는 영적인 소화불량을 일으킨다”고 말했습니다. 반쯤 익은 설교란 성령이 충만하지 못한 상태의 설교를 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성령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는데 그런 사람 중에는 순전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기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의 뜻과는 상관없이 성령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 거듭난 사람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열매들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맺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맺어지는 열매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런 열매들을 맺으려면 날마다 순간마다 죽어야 합니다. 이런 열매는 자아가 살아있을 때는 불가능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음으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자신은 성령 충만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성령이 지배한다면 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대가 변하기를 위해 기도하지 말고, 자신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는 성숙한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