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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107편1~22절
제목 : 속량하시는 하나님
시편 107편은 시편 제5권을 열어주는 첫 시편입니다.
핵심 내용은 하나님께서 그 인자하심을 따라 부르짖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107편은 찬양시의 성격과 지혜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전체 구조를 보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두 후렴구의 반복을 통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1~22절은 그 전반부로서 광야에서 거주하던 자들 및 사망의 그늘에 매인 자들을 구원하신 내용을 제시합니다.
시인은 고난 중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놀랍게 구원하시는 주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합니다.
1. 속량하고 채워주시는 구속자(1~9절)
1) 과거를 회고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라(1~3절)
(1)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명령입니다(1절).
“[1]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예식 때 낭송하던 송영구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명령형으로 시작합니다.
107편은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리는 찬송시입니다.
그런데 그 찬양의 이유는 바로 여호와께서 선하시다는 것, 그리고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렘 33:11에 근거하면 본 송영구는 포로로부터 귀환한 자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감나게 본 절을 재번역하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왜냐하면 그분은 참으로 선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참으로 영원히 인자하시기 때문이다”입니다.
본 시편과 106편은 동일하게 본 송영으로 시작하고 있지만 107편은 106편보다 훨씬 더 넓은 범주로 인자하심의 주제에 접근합니다.
-광야에서 구원받은 자들(3~9절),
-흑암으로부터 구원받은 자들(10~16절),
-미련함에서 구원받은 자들(17~22절),
-바다에서 풍랑으로 고통 받던 자들(23~32절) 등 여러 범주의 사람들을 예로 들면서, 일반적 의미의 인간 인생 전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2)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2~3절).
“[2]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3]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여호와로부터 포로생활에서 속량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사44:22~24, 51:11, 렘31:11) 마땅히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속하셨고,
흩어진 동서남북 각지로부터 가나안 땅으로 모으셨기 때문입니다.
2) 광야에서의 구원을 감사(4~9절)
(1)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습니다(4~5절).
“[4]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5]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스라엘이 포로기간 중 때로는 광야사막 길에서 방황하여 길을 찾지 못하고,
거주할 성읍도 찾지 못하고,
또 그들이 주리고 목이 말라 피곤하였다는 것입니다.
“피곤하였다” 여기서는 재앙, 고통, 슬픔 따위로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음식과 음료의 고갈로 인해서도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는 이런 경험이 있었을 것이고,
또 상징적으로는 그들의 영적방황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의 주어 “그들”이 누구인가입니다.
“그들”을 해석하는 견해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① “그들”을 2절의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를 예루살렘 함락 후 갈대아인을 피하여 광야로 도망친 유대인으로 보고 있습니다(렘 43장).
뿐만 아니라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하던 중 사막에서 어려움을 겪은 유대인으로 보기도 하고 포로지 자체에서 어려움을 겪은 유대인으로 보기도 합니다.
② “그들”'을 2절의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와의 무관성을 강조하는 해석입니다.
본 시편이 다양한 인생사를 묘사하고 있으며 포로 귀환 후의 감격적 상황을 노래한 것으로 추측하기는 하지만,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인간에게 닥치는 위험들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인간을 구하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를 경험한 모든 자들이,
그것을 감사함으로 인정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들”를 역사 속의 특정한 무리에 굳이 고정시켜 이해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2)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6~7절)
“[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부르짖으매 - 궁핍 상태를 절실하게 느낄 때일수록 인간은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기도는 의인의 자원일 뿐 아니라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자의 자원이입니다.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알지 못하는 끄고 비밀한 일을 보입니다.
부르짖을 때 고통에서 건저 주십니다.
또 바른 길로, 안전한 길로, 지름길로 인도하십니다.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십니다.
(3)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8,9절)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여호와는 그의 백성의 모든 필요를 완벽하게 공급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사모하는'은 5절의 '목마름'에 상응하는 용어입니다.(사 29:8).
하나님은 방황하는 자에게 거할 성을 주시고,
목마른 자에게 풍족한 물을 주시며,
주신 자에게 배부르게 좋은 식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해야 할 것입니다(8절).
2. 죄의 사슬을 풀어주시는 하나님(10~16절)
1)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이 하나님 앞에 범죄 했기 때문입니다(10~11절).
“[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들이 포로생활의 흑암과 사망에 임박한 가운데 그 그늘 아래 앉아 곤고한 생활을 한 것은 그들이 지극히 존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 뜻을 멸시하여 범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2)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습니다(12절)
“[12]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징계로 포로생활 중에 근로하는 고통을 주셨고, 그들은 그 고통에서 마음이 겸손해졌습니다.
그들의 마음 - 그들의 자만심, 자기 만족성 등을 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도 모든 일을 잘 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상적인 경험이나 자원들을 의존하며 스스로 만족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이 헛됨을 보이시기 위해 그들을 비참케 만드셨습니다.
3)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짓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해 주셨습니(13절).
“[13]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본 시편은 크게 네 부분(1-9절; 10-22절; 23-32절; 33-43절)으로 구분되는데 본절과 같은 내용이 6, 13, 19, 28절에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 시편이 인간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섭리뿐 아니라,
인간들의 탄원 및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강조하는 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다 (14절)
“[14]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포로의 결박에서 푸시고, 흑암과 사망의 그늘 같은 포로 생활에서 그들을 구출하여 내신 것입니다.
5)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습니다(16절).
“[16]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성경에서 '놋'은 강함과 견고함(렘 1:18; 15:20), 목이 곧고 패역함(사 48:4), 로마 제국(단 2:32, 39), 바벧론 제국(렘 15:12) 등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놋문'이 깨뜨려졌다는 말은 바벧론이 멸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벧론이 멸망했으므로 그 나라에 포로되었던 민족이 해방을 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바사 왕 고레스에게 본문과 유사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바벧론 멸망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선포하신 바 있습니다.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사 45:2).
이는 고레스를 사용하여 바벧론의 세력을 멸망시킬 것을 예언한 내용입니다. 아마 본 시편 기자는 그 내용에 익숙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한편,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바벧론 성벽에는 실제로 청동으로 만들어진 문이 무려 100개 가량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환난과 곤고로부터 새로이 구출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는 일은 너무도 마땅하고 중요한 일임을 강조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15절)-8절, 15절, 21절
3. 병을 고쳐주시는 하나님(17~22절)
1)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습니다(17절).
“[17]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미련한 자(에월림)-육신적인 탐욕에만 몰두하는 자를 흔히 이렇게 부릅니다. 그는 경고에 귀가 멀고 훈계를 멸시하는 세상적이고, 육욕적이며, 이기적인 마음을 소유한 자입니다(잠 1:7; 12:15).
또한 “미련한 자”는 죄인의 별명이며, 그가 받는 고난은 병으로 취급됩니다.
(욥33:17~22, 왕하5:27).
고난을 받아(이트아누) - 원문을 직역하면 '그들이 스스로 그들에게 고난을 가져오고 있다'입니다.
미련한 자가 징벌을 받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그에게 책임이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표현법입니다.
2)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18절).
“[18]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그들은 그 병 때문에 식욕을 잃고 각종 식물을 싫어하며(시102:4, 욥33:20), 거의 죽게 된 것입니다(시9:13).
그러므로 시인은 시편9:13절에서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라고 하십니다.
3) 부르짖으매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셨습니다(19~20절)
“[19]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20]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 도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고치사 - 마치 병중에 있던 히스기야 왕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기쁨의 소식, 즉 '완쾌된다'는 말씀을 들려주신 것처럼(왕하 20:4; 사 38:4), 간접적으로 말씀을 전하여 낫게 하시거나, 직접 말씀하사 낫게도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하신 권능을 지니기 때문에 말씀하신 그대로 성취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적 치유에서 보다 확연히 드러납니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나오는 곳으로는 105:19; 147:15, 18 그리고 사 9:8; 55:11 등이 있는데,
이 구절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말씀을 그리스도 곧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교리(요 1:1)의 구약적 암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병으로 고난 당한 자가 부르 짖을 때에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해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라고 하십니다.(21절)
“[2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를 찬송할지로다 (요두) - 거의 죽음의 경계에까지 갔던 자가 회복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목의 글이므로 감정을 넣어 '오! 그분을 찬송하라'로 번역하는 학자도 있습니다(Barnes).
이 같은 번역은 생명을 위협하던 질병으로부터 회복된 뒤 부른 히스기야의 찬양의 일부를 연상시킵니다.
사38:20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
결론입니다. 22절입니다.
“[22]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감사제(제바흐) - 교제 혹은 나눔의 제사를 뜻합니다.
본 제사의 특징은 제물의 일부분, 예를 들면 기름 덩어리만 번제단 위에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돌린 몫을 제외 하고는 예배에 참석한 대중이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희생 제물은 암수 관계없이 소, 양 혹은 염소 등에서 취했습니다.
문맥상 본 제사가 기록된 핵심은 '나눔'에 있습니다.
죽음의 지경에까지 갔었으나 회복된 자는 개인적으로만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릴 것이 아니라 예배 공동체와 함께 고기를 나누며 자신이 경험한바 하나님의 구원을 전해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그가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듯 나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대가를 지불하고 나를 사셨기에 나는 하나님의 소유요, 종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다스림을 받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6절). 나를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성에 거하게 하시며 내 영혼을 만족하게 하십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말씀을 거역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채찍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은 자를 미련하게 하사 죄로 곤란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들은 사망의 문(질병)에 이르러 음식도 싫어하고 사람도 싫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말씀을 보내사 나의 위기를 벗어나게 하십니다(20절). 근심거리가 있을수록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동서남북 모든 지역에서 대적에게 속박된 백성을 속량(贖良)하십니다(1~3절).
고경에 처한 사람을 소량할 의무는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근친(近親)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가장 능력 있는 분이 구속자가 되시니 어떤 대적이라도 놓아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늘 결박하고 있는 이 땅의 힘과 권세는 무엇입니까?
나에 대한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선언하고 주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립시다.
2) 기업을 잃고 나그네 된 백성의 구속자이십니다(4~9절).
땅과 거처를 잃고 광야를 방황하는 굶주린 백성을 거주할 성읍으로 인도하시고 그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십니다.
사람이 먹고 마실 것과 거주할 집이 없으면, 육체만 고달픈 것이 아니라 영혼마저 곤핍합니다.
주님은 그들의 주린 육신뿐 아니라 주린 영혼까지 만족하게 하십니다.
나의 피곤한 육신과 영혼도 채워주시길 기도합시다.
3) 죄의 세렉에 속박되고, 고난의 쇠사슬에 결박된 사람들을 해방하십니다(10~16절).
그들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스스로 독립을 선언했지만, 즉시 흑암과 사망에게 붙들렸습니다.
그 결과 마음은 어두워지고, 일상은 고통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들을 흑암에서 건져 모든 결박을 풀어주십니다.
모든 고통이 죄에 대한 형벌은 아니지만, 어떤 고통은 죄의 대가이며 잘못 산 삶의 결과입니다.
마음이 어두워 견딜 수 없고, 고통 때문에 밤새 잠 못 이룰 때가 있습니까?
겸손히 나늘 돌아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봅시다.
4) 심각한 질병을 앓는 병자를 사망의 문턱에서 구출하십니다(17~22절).
그의 병은 죄의 길을 따르고 악을 행했던 지나온 날의 잘못된 삶의 결과였습니다.
미련한 자는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절제 없이 쾌락을 탐닉하고 욕망을 분출하다 결국 사망의 문턱까지 가고 맙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도 들어주셔서 그들을 고치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십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이토록 크니 감히 측략할 길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