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0일
한국 알트루사 서른여섯 번째 생일에
언제부터인가 이런 큰 모임마다 끝맺는 말을 제게 맡겨졌습니다. 그때마다 예외 없이 바로 전날이 되어서야 당일치기 시험 준비하듯 씁니다. 그런데 무얼 이야기할까 생각은 벌써 한참 전부터 합니다. 학생 때 시험 시간표가 발표되었을 때도 미리 준비할 생각이야 했겠지요. “시험 공부해야 하는데, 해야지!”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무슨 말을 하나 생각하려고 하긴 하는데 정작 무슨 말을 할지 통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어제 한문순에게 “무슨 말을 할까?” 물었습니다. 물론 대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대답할 수 없었겠지요.
“또 껌을 씹겠지!” 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껌을 씹고 있습니다.)
도대체 껌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오느냐고 어리둥절하실 겁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기억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처음 오신 분들 궁금증을 풀어드리기 위해 간단히 다시 알려드리지요. 담배를 피워 물어야 글이 나온다는 작가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껌을 씹으며 글을 씁니다. 어린 시절 제 아버지가 껌 씹는 것을 싫어 하셨습니다. 6.25 전쟁 전 돈암동에 살 때 뒷집이 껌 만드는 집이였어요. 요즘 같이 문어발로 싹쓸이하는 대기업이 없었던 시절이었지요. 그 집 할머니가 포장하지 않은 껌을 한줌씩 주셨어요. 몰래 감춰두고 아버지 보시지 않을 때 씹었지요. 글도 아마 혼자 몰래 쓰나 봐요. 남들 보지 않을 때 혼자 쓰니 껌 씹는 것과 같은 마음인가 봅니다.
알트루사를 삼성동 김 정옥 선생님 댁에서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여기 최 현숙 선생이랑 제가 있었습니다. 이 긴 세월을 지나면서 함께한 모람들과의 삶이 같이 자라고 바뀌는 것을 느낍니다. 저 같은 늙은이들이 잘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옛날이 어제 같다” “마음은 아직 청춘이다” 합니다. 거짓말입니다. 속으로 그러기를 바라는 것일 수는 있습니다. 이제보다 옛날이 더 좋아 보여서 아마도 자라고 바뀌고 싶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는 늘 젊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서른여섯 해 전 알트루사를 시작할 때 아름다운 경험이었지만 그때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한 대학원생 최 현숙도 아름다웠지만, 흰 머리 성성하고, 잔 주름지고 기미낀 최 현숙 교수가 좋습니다. (아, 기미 끼지 않았다구요?)
더 기막히게 좋은 건 그동안 만난 많은 니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가 있고, 긴 시간, 새털같이 많은 날들을 함께한 모람들과 함께한 우리의 역사가 있어 소중합니다. 모두가 멈추어 있지 않고 자라며 바뀐 것이 아름답습니다. 몇 사람 보기를 들겠습니다.
남들 앞에서 울지 못하고 뒷간에 가서 혼자 울던 문순의 자람과 바뀜을 어찌 첫 순간에 예측했을까요?
병아리 같은 노랑 원피스를 입고 남편을 마마 보이라고 고발하던 제선이 제정신 차려 사는 오늘을 누가 미리 알았겠어요?
대리석 같이 단단하던 선희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철부지 같이 순수한 남편과 잘 살아내는 것을 감히 누가 예견했을까요?
종이 장도 무겁다던 인미는 어쩌구요?
백소영님의 책에 줄을 그으며 읽고는 이혼을 선언하려 했던 양미의 바뀜은 가히 부활입니다.
다섯 자매의 맏이로 똘똘이 윤미는 허술해도 된다는 것에 아마도 놀라며 재미있어 하겠지요.
떨어져 나갔다 돌아와 열심을 내는 윤정,
나만 아프다하던 미형이 아이들을 알아주고,
혼자 세상을 떠메고 살듯 하던 미리는 이제 어깨 가벼히 웃으며 삶을 즐기게 되었지요.
할아버지 무릎을 독차지 하는 여유로움이 지속되지 않아도 안심하고 여러 사람의 품을 느끼게 된 지연,
아버지와 남편이 대신 생각하게 놔두던 지혜는 자신의 지혜에 눈 뜨고,
엄마 대신 계산하던 경란도 엄마 몫을 알게 되고,
아직도 헤매고 있지만 남의 힘을 빌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은선,
아버지 틀을 벗어나 가족과 이웃을 각기 달리 알아보게 된 혜경,
남편의 권유로 찾아와 일방통행하지 않고 남편과 협력하는 것을 익히고 있는 재오,
어찌 다 이르겠습니까? 알트루사 덕에 좋은 엄마가 되었다고 아들의 중언을 들은 선주,
아무리 오래 걸려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찾으려 애쓰는 주영,
제대로 목 놓아 울지도 못하던 항심이 마음의 혈색을 찾아가는 것이 고맙고,
어린 시절 동생 돌봤듯이 여기서도 궂은 일 마다하지 않는 지영은 너무나 가냘퍼 마음 저리게 하는 몸매라 딱 붙은 바지를 입지 못합니다.
이름을 이루 다 올릴 수 없습니다. 자기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고 서운해 할 모람들이 아님을 압니다. 그만큼들 감격스럽게 다들 마음이 여유롭고 튼튼해졌습니다. 이 작은 모임 바깥으로 나서 보면 평생을 딱딱하게 굳어버려 좁은 마음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래서 여기를 찾아오는 여러분 니들은 처음부터 훌륭합니다. 그리고 같이 지내면서 더 튼튼해졌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함께 활동하면서 자기 틀에서 벗어나 이웃들과 함께 사는 뜻을 향해 살아가는 버릇이 자라납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은 바뀌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만 정답입니다. 여든 해를 산 제가 오늘 여기에서는 제일 오래 산 늙은이지만 아직도 저는 자라고 바뀌려 합니다. 치매 걸릴 지라도, 죽는 날까지 바뀌려 합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온 여려 분 앞으로도 함께 자라고 바뀌자 권하려 합니다. 그럴 거지요?
어른들만 자라고 바뀔까요? 이곳에서 태어나서부터 자란 아이들, 재미있는 학교 입학한 여자 어린이 세 명과 한 남자 어린이부터 여기서 함께 자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아이들, 어른들보다 더 튼튼한 품을 키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남다른 삶을 개척해나갈 것입니다.
여기 이제 함께 한 여러분 한 분 한 분 감사하며 또 한해 잘 해 봅시다.
ㅁㅇ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