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김후 지음『불멸의 여인들』
불멸의 여인들
불멸은 기억이고 기록이다. 역사 속에 남아있는 여인들의 기록을 더듬어 남녀의 균형을 잡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 아닐가 싶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선정기준은 저자의 주관적 판단이 크지만, 이 여인들을 통해 역사 속에 여성의 역할이 어떠했고, 사회 속에 여성의 존재가 어떠한지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총 다섯 장으로 나뉜다. 팜므파탈형으로 클레오파트라7세/달기/포사/조비연/서시/왕소군/초선/양귀비/테오도라/퐁파두르부인/심프슨부인이 소개된다. 전사와 혁명가로 부디카/라니/마틸다/로자룩셈부르크/샤를로트 코르데가, 황제와 자식사이에서 어머니의 존재감을 보여준 황후들인 올림피아스/엘레노오르/여태후/측천무후/서태후, 남성들을 주도하고 시대를 앞서 간 히파티아/상관완아/마르그리트/조르주 상드/루 살로메/이사도라 던컨, 마지막으로 구원자들로서 메리 1세/엘리자베스 1세/이사벨라여왕/예카테리나 1세/옐리자베타/예카테리나 대제/에바 페론이 나온다. 독자의 입장에서 관심 있는 여인들을 소개한 장을 먼저 읽고, 다른 깊이 있는 책을 찾아 보는 것도 괜찮겠다. 다만 우리나라 여인들이 소개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 이는 저자의 말대로 자료의 부족 때문이다. 열성적인 연구자에 의해 소개되기를 기대해 본다. 책에 나오는 여인들 중에 인상적인 세 분에 대해 언급해 볼까 한다.
왕소군
중국의 사대미인은 서시(춘추전국시대), 왕소군(전한시대), 초선(삼국시대), 양귀비(당나라)를 말한다. 침어낙안폐월수화(侵魚落雁閉月羞花)라 하는 이들에 조비연등 빛나는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이 들어가지 않고 초선같은 소설 인물이 들어갔을까? 저자는 ‘말의 운율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기’때문이라 해석한다.
어찌됐든 그 중 한 사람인 왕소군은 전한 9대 황제 선제때 인물이다. 그 녀는 후궁으로 있다가 북방 훈족의 군주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황제가 나름 아깝지 않은 인물로 선정한다고 했는데 이가 절세가인이었다. 그는 왕소군을 박하게 그려 받친 화공 모연수를 참형하는 것으로 분을 달랜다. 왕소군은 북방으로 가는 길에 비파를 꺼내 연주를 하며 자작 노래를 불렀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훈의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겠구나) 이 노래를 듣고 넋을 잃은 기러기가 땅에 떨어졌다 하여 그 녀의 별명이 낙안이 되었단다. 문제는 그 이후 그 녀가 불행한 삶을 살았을까? 중국역사와 시와 문학은 그렇게 노래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훈족의 실제적인 통치자로 살았고 60년 이상을 살다 정성스럽게 장례가 치러졌다. 그 녀의 무덤은 청총(푸른무덤)이라 하였다. 그 녀는 훈족에 초등교육시스템과 길쌈등 진보된 기술을 도입했다. 훈족 민중은 그 녀를 존경했고 사랑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나 귀로 들은 상식과 격언들을 맥락 없이 받아들이면 안된다. 그 이후의 역사도 봐야 함을 알게 된다. 춘래불사춘이 아니라 춘래즉춘(봄이 오니 봄이로구나)인 것이다.
샤를로트 코르테와 로자 룩셈부르크
혁명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다만 혁명도 인간의 탐욕과 폭력이 개입되어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여 변질된 혁명에 대한 일침도 하나의 혁명이며 그 것이 순수성의 발로였다면 그 역사는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의 과정에 공포정치 시대가 있었다. 1793년 1월 루이16세의 목을 자른 것이 그 정점이었다. 그 중심에 로베스피에르와 장 폴 마라가 있었다. 언론인인 마라의 손에는 살생부가 있었고 대중을 선동하여 폭력 소요를 조장했다. 1793년 7월에 노르망디 시골에서 올라온 스물다섯의 처녀가 그를 살해했다. 그 녀는 혁명을 지지했으나 폭력적인 방법과 수 많은 죽음은 반대했다. 그를 죽이면서 더 큰 죽음들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라의 죽음을 다비드와 보드리가 그렸다. 전자에서는 마라를 부각하고 후자는 코르테를 강조했다.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코르테의 머리는 훼손되어 돌아다녔고, 사지는 부검되어 처녀임을 입증해야 했다. 감옥에서 단두대의 죽음을 앞두고 그 녀는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코르테의 초상화를 찬찬히 들여다 보며 그 녀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인간의 삶은 무엇인지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혁명의 폭력성에 반기를 든 점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도 한 몫한다. 저자는 20세기 사회주의 혁명가 중 진정한 혁명가는 그 녀 혼자 뿐이라고 말한다. 왜일까? 반동들에 대한 투쟁에 물러남이 없었지만, 레닌등 실전 사회주의 투쟁에서 보여주는 반민주적인 중앙집권과 ‘공포와 폭력을 통한 혁명의 완수’는 반대했다. 그 녀는 1919년 독일 베를린에서 독일 군인들에게 잡혀 맞아 죽었다. 그 녀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저자는 그 녀가 우리에게 이러한 단순한 질문을 던지고 갔다고 말한다. ‘정의와 질서가 충돌할 때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불의에 기초한 질서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희생과 혼란을 각오하고 정의에 기초한 저항을 선택할 것인가.’ 로자의 이 질문은 현재도 유효할 것이다.
책 익는 마을 원 진호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