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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 마누라 내기
옛날 옛적 황해도 해주 땅에 김씨 성을 가진 이방이 있었습니다.
그는 늦은 나이에 결혼하였는데 색시는 그 고을에서 손꼽히는 미색인데다가 지혜가 출중하여 누구나 김 이방의 처를 함부로 하지 못했죠.
그 둘은 서로를 아끼고 공경하며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한편 그 무렵과 고을에 신관 사또가 부임했는데 소문에는 천하의 호색가로 알려졌죠.
그러던 중 김 이방의 아내가 미색이라는 평판을 들은 신관 사또는 마음속으로 한 번 사귀어 보았으면 하는 흑심을 품었습니다.
신관 사또는 소문대로 색욕이 많고 무분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가진 욕심을 채우려고 어느 날부터인가 김 이방의 거동을 감시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사소한 일로 관리의 직무를 태만히 하였다하여 김 이방을 잡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김 이방은 원래 성품이 좋기로 이름난 사람이었기에 사소한 직무 태만으로는 벌을 내릴 이유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잡아들인 김 이방을 그냥 풀어주자니 사또의 체면이 서지 않아서 못된 꾀를 내었습니다.
사또는 조용히 김 이방을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내 너를 부른 것은 다름 아니라 내기를 하자고 부른 것이다. 내기에서 내가 이기면 돈 천 냥을 줄 것이다.“
아니 이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인가요.
벌이 아니라 내기를 하자니요.
김 이방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 사또의 얼굴만 바라보았습니다.
”내기라니요.“
”내가 문제를 낼 테니 맞춰보아라. 만약 내가 이기면 벌 대신 네 아내를 내게 주고 내가 지면 돈 천 냥을 네게 줄 것이다. 그러면 어찌한들 벌은 면할 수 있지 않겠느냐?“
이방의 신분으로 어찌 사또의 제의를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사또가 하자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죠.
사또는 잠깐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문제를 내었습니다.
”저 뜰에 있는 연못의 물이 몇 잔이나 되겠느냐?”
수수께끼 같은 사또의 질문에 김 이방은 그저 머리가 어리둥절할 뿐이었습니다.
자칫 잘못 대답하면 아내를 빼앗기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방은 겁이 나서 얼른 대답할 수가 없어 시간이라도 벌 요량으로 사또에게 말했죠.
“소인은 오늘 머리가 아파서 생각이 나지 않사오니 내일 아침에 아뢰겠나이다.”
“내일 아침이라 그래 좋다. 그리하거라. 내일 아침까지 풀지 못한다면 약속한 대로 네 아내를 내가 차지할 것임을 잊지 말거라.”
제 놈이 무슨 수로 내일 아침이래도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다.
사또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대답을 이튿날 아침까지 연기해 주었습니다.
김 이방은 집에 돌아와서 저녁도 먹지 않고 근심에 쌓여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머리에 수건을 싸매고 궁리해 보았으나 관아 안에 연못물이 몇 잔이나 되는지 알 길이 있나요.
아내는 수심이 가득한 남편이 걱정되었습니다.
저녁상을 가져와 남편에게 먹으라고 권했죠.
그러나 사또에게 아내를 뺏길 판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나요.
이방은 한숨을 길게 쉬고 나서 부인에게 사또와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보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당신과 나는 연분이 없는지 내일이면 생이별하게 되었구려!”
이방의 이 같은 말에 부인은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당신은 내일이면 사또의 마누라가 될게요”
아내는 남편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는데 이별이라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해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오늘 관가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나요? 속 시원히 말씀 좀 해주세요.”
아내는 울음 절반 의심 절반으로 이방에게 말하기를 재촉했습니다.
이방은 다시 긴 한숨을 쉬고 나서 내키지 않는 입을 열어 자초지종을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이야기를 듣더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깔깔 웃어댔습니다.
그러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습니다.
“여보 그런 일이라면 걱정할 것 없어요. 사람의 일이란 앞일을 알 수 없는 것이니 될 대로 되겠지요.”
이방은 이렇게 태연한 아내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좀 언짢았습니다.
자신은 아내와 이별할 생각에 밥도 안 넘어가는데 부인은 박장대소의 될 대로 될 것이라니요.
그래 아내가 원망스러워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죠.
“당신은 사또의 아내가 되고 싶은가 보오.”
이튿날 아침 아내를 빼앗길 걱정에 밤새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한 이방과 달리 아내는 아무 일도 없는 듯 밝은 얼굴로 아침밥을 먹고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깨끗한 옷을 차려입고 나섰습니다.
이방은 이 같은 아내의 외출이 매우 언짢았으나 하도 어이가 없어 꾸지람할 마음조차 내키지 않았습니다.
이방은 자리 속에 몸을 파묻은 채로 바깥으로 나가는 아내를 흘겨보면서 물었습니다.
“당신 어디로 가오?”
말속에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사또에게 갑니다.”
아내는 태연하게 대답하고 나갔습니다.
김 이방의 아내가 관가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사또는 아침을 먹고 뜰에 나와 연못가에 있는 정자에 앉아 있다가 웬 여인이 자기를 찾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고을 기생은 내 다 본 줄 알았는데 저 여인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여인이네?“
사또는 호기심이 가득하여 여인을 불렀죠.
”어인 여인 인고?“
”저는 이 고을 김 이방의 아내이옵니다.”
김 이방의 아내라는 대답에 사또는 뚫어져라 여인을 바라보다 그 미모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죠.
해주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던고?
정말 여태껏 보지 못한 양귀비와 같구나!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위엄을 뛰었습니다.
김 이방의 부인이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갑자기 병을 얻었는데 말을 하지 못해 제가 대신 왔습니다.”
“음 그러면 네가 남편을 대신해서 내기하겠다는 말이냐?“
”예!“
”그렇다면 어떤 내기인지는 알고 있으렷다.“
”예 잘 아옵니다 지든 이기든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김 이방 부인의 대답에 사또는 내심 기뻤습니다.
”좋다. 그렇다면 내기를 해서 네가 지면 너는 내 아내가 되겠다는 말이지.“
사또는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서 물었습니다.
”그래 저 연못에 물이 몇 잔이나 되겠느냐?“
”예, 연못만한 큰 잔으로 한 잔이 되겠습니다.“
김 이방의 아내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연못만한 잔으로 한 잔 담을 수 있을 것은 뻔한 일이 아닌가요?
사또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결국 내기에 지고 돈천 양을 이방에 처에게 주었죠.
그리고 이방의 죄를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또는 내기에는 졌으나 자기가 품어온 색정이 사라지지 않아 집요하게 또 내기하자고 했습니다.
결국 사또가 이기면 김 이방의 아내는 사또의 첩이 되고 사또가 지면 돈 삼천 냥을 김 이방 아내에게 주기로 정했습니다.
사또는 잠깐 문제를 생각하다가 무심히 하늘을 쳐다보다가 물었죠.
”저 태양이 하루에 몇 리나 갈까?“
궁색해도 일이 궁색할까요. 그것은 사또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라면 천지신명이나 귀신도 모르리라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이방의 아내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뭘 그리 쉬운 문제를 가지고 그러십니까 하루 70리씩 갑니다.”
사또 자신도 모르는 문제인데 저리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하니 어이가 없던 사또가 되물었습니다.
“어째서 하루에 70리를 간단 말이냐?”
“저희 집에서 시댁까지 칠십 리 길인데 아침에 떠나면 저녁에 닿습니다. 그러니 칠십 리를 가지요.”
김 이방 부인이 이렇게 대답하자 사또는 자신도 답을 모르니 더 할 말이 없어 쓴맛을 다시며 돈 삼천 냥을 내주었습니다.
사또는 두 번이나 무참히 지고 나니 맥이 풀렸지만, 한편으로는 분한 마음이 끌어올랐죠.
그래서 다시 오기가 발동한 것인지 오천 냥을 걸고 내기를 시작했습니다.
사또는 문제를 만드느라 점심도 거르고 연못가를 계속 거닐었습니다.
머리를 짜내어 이것저것 문제로 삼아보았으나 마땅치 않았던 것이죠.
사또는 너무 깊이 생각하다가 머리가 아파서 정자 기둥에 기대어 멍하니 앞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머릿속에 무엇인가가 번뜩 스치고 지나갔죠.
사또는 손으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이 문제라면...
“저 앞산에 빽빽이 선 저 소나무가 몇 그루나 되겠느냐?”
제아무리 귀신같이 영리한 계집이라도 이번만은 대답을 못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백마흔아홉 그루입니다.“
이방의 아내는 이번에도 단숨에 대답했죠.
사또는 속으로 또 놀라며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어째서 이백마흔아홉 뿐이겠느냐”
“위로 보면 소나무가 빽빽이 섰으니 이백 그루요 또 아래로 보면 침침 섰으니까 77에 49와 합하면 이백마흔아홉 그루입니다.”
이방의 아내가 사또의 얼굴을 바라보니 사또는 쓴 것을 씹은 듯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돈 5천 냥을 내놓았습니다.
세 번이나 진사 또는 이후로 자기의 재산 전부를 걸고 내기하자고 했습니다.
김 이방의 아내는 이번에도 흔쾌히 좋다 했죠.
사또는 전 재산을 거는 큰 내기인 만큼 이번에 이기면 두말할 것 없이 예쁜 저 여인과 함께 살고 내기에서 잃은 돈도 되찾을 수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지게 되면 사또는 파산하고 거지로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될 테니 이 궁리 저 궁리로 낮부터 서산에 해가 걸릴 때까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조급해지고 도무지 묘한 생각은 나지 않았습니다. 해는 벌써 오시가 지난 지 오래고 바야흐로 석양이 찾아왔죠
사또는 고민을 얼마나 했는지 머릿속이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습니다.
그러더니 뭔가 생각난 듯 최후로 발악했습니다.
“네 이년! 좋다 이번에는 정말 맞추기 힘들 것이다. 내 머리를 저울에 달면 몇 근이나 나가겠느냐?”
사또는 악에 받쳐 문제를 낸 것이었지요.
제까짓 게 아무리 똑똑하여도 나도 모르는 내 머리 무게를 어찌 맞추겠냐는 생각이었지요.
그리고 문제를 내고 보니 사또 스스로도 잘 낸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이방의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또 거침없이 대답했습니다.
“아홉 근 반이올시다.”
“어째서 아홉 근 반이냐?”
사또는 어처구니가 없어 물었습니다.
“제 말이 틀리는가 시험을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방의 부인은 사또의 머리를 잘라서 저울에 달아보자는 것이었죠.
사또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이 여인을 얻으려 목숨을 바치는 것이 옳은 일이냐 그렇지 않으면 전 재산을 잃고 거지가 되어 거리로 방황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 도저히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사또는 재산을 모두 잃은 거면 몰라도 생명까지는 바칠 엄두가 나지 않았죠.
결국 이방의 아내는 사또의 재산 문서 전부를 가지고 집에 돌아와 김 이방과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될 것 같은 옛날이야기지만 그렇게 절제하지 못하고 남의 것을 탐하다 패가망신한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잊지 않겠습니까?
바다는 메워도 사람 욕심은 못 채운다는 말처럼 채워지지 않는 것을 채우려니 늘 부족하게만 느껴지나 봅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dxOlw2fSU7c&t=33s
첫댓글 아유!~~~아주 쌤통입니다요!!
석경 선생님 잼있게 잘읽었습니다. 사또가 쌤통이지만 여인도 잔머리대왕 명쾌하네요.
저는 경인생인데..경조사에도 열심히 참여하시고 왕성한 활동에 경의를 표합니다.
연말 마무리를 잘하시고 2023 계묘년에도 더욱더 강건하시길 빕니다.
저는 己丑... ^^
@석경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참 명석한 두뇌를 기진 이방부인이네요 얼굴도 이쁜부인이 머리도 좋은것을보니 이방은 복을 많이 받았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