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마다 손님 10~30여명···일부선 '눈치' 보며 포장해 가
"야만적 문화 창피"···동대구역서 식용금지법 촉구 집회
초복인 11일 낮 12시, 전국에서 유일한 대구 북구 칠성 개시장. 10여 곳이 문을 연 채 손님을 맞고 있었다. 개고기를 삶는 찜통에서는 뿌연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한 가게 입구에서는 주인으로 보이는 남성 1명이 골목을 등지고 앉은 채, 개의 뼈에서 살을 발라내는 작업 중이었다. 짙은 갈색빛의 개고기가 수북이 쌓인 가게 앞을 지나자, 비릿하고 매캐한 냄새가 코 끝에 훅하고 들어왔다.
칠성 개시장 폐쇄 등을 촉구하기 위한 동물보호단체의 집회가 11일 대구에서 열린 가운데, 한 참가자의 반려견 목에 ‘개·고양이 도살금지’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칠성 개시장 골목 곳곳에는 보신탕과 건강원, 개소주 판매점 등 14곳이 자리잡고 있었다. 점심 시간을 맞아 일부 가게 직원들은 골목 한가운데 서서 개시장을 지나는 이들에게 “한 그릇 하고 가라”고 권했다. 쭈뼛거리며 망설이던 70대 남성 3명이 종업원을 따라 골목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개고기 판매 업소마다 적게는 10여명에서 많게는 30여명까지 손님이 앉아 있었다. 플라스틱 통을 가져와 포장을 해가는 손님도 적지 않았다. 다만 개고기를 먹으러 온 이들 대부분은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이었다.
대구 북구 칠성 개시장 골목을 11일 사람들이 지나고 있다.
이날 자전거를 타고 개고기를 사러 온 한 60대 남성은 “요즘 개고기를 먹으면 죄인 취급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가게 안에서 먹기가 눈치 보여 집에서 먹으려 (개고기를) 포장하러 왔다”고 말했다. 한 업주는 “최근 2~3년 새에 (개고기 식용에 대한) 비난 여론이 심해져서 가게를 꾸려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복날이면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나 기자들이 몰려오는데 달갑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서 “오늘은 복날이어서 그나마 장사가 좀 되는 것 같은데, 얼마 못 가서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라그나로크 오리진 1주년”
대구 북구 칠성 개시장 골목을 11일 사람들이 지나고 있다.
대구 북구 칠성 개시장에 있는 한 업소의 출입문이 11일 폐업된 채 굳게 닫혀 있다.
같은 날, 개와 고양이 식용을 반대하는 동물보호단체는 대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동물자유연대 등 전국 동물권 50여개 단체와 시민 활동가 협의체가 연대한 ‘동물을 위한 전진’은 동대구역 광장에서 칠성 개시장 철폐를 촉구하는 내용의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개·고양이 식용금지법 제정 등도 요구했다.
칠성 개시장 폐쇄 등을 촉구하기 위한 동물보호단체의 집회가 11일 대구 동대구역 앞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이날 집회는 올 들어 대구에서 처음으로 폭염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3시간 가량 이어졌다. 서울과 부산, 전남, 경남 등지에서 대구를 찾은 동물보호단체 관계자 200여명은 “개도살장을 철거하라”, “권영진 대구시장은 칠성시장 폐쇄 약속을 지켜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오위숙 대구동물보호연대 대표는 “아직까지 대구에 개시장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창피한 일”이라면서 “시민에게 개시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철폐를 요구하기 위해 집회를 열었다. 대구시에서 적극 나서서 칠성 개시장을 폐쇄해야 한다”고 말했다.
칠성 개시장 폐쇄 등을 촉구하기 위한 동물보호단체의 집회가 11일 대구에서 열리고 있다.
집회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동대구역에서 손님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던 택시기사 이모씨(66)는 “나는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개고기 판매 업소의 문을 무작정 닫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나 고양이를 식구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그 분(개고기 판매업자)들의 밥줄을 끊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지원금을 주는 등 충분한 대책을 마련한 후에 개고기 업소를 없애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회 장면을 한참 바라보며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던 김모씨(60·서울 거주)는 “개고기는 특히 결핵을 방지하는 데 효과가 있는 등 기운이 없을 때 먹으면 힘이 난다. 나도 가끔 먹는다”며 “식용견과 애완견은 엄연히 용도가 다른 만큼, 개고기를 먹는 행위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집회가) 탐탁치 않다”고 말했다.
칠성 개시장 폐쇄 등을 촉구하기 위한 동물보호단체의 집회가 11일 대구에서 열리고 있다.
반면 한모씨(여·28)는 “어떤 개는 식용으로 분류돼 죽임을 당하고, 어떤 개는 가족처럼 기를 수 있다는 논리가 맞지 않는다고 본다”면서 “아직까지 대구에만 야만적인 개시장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시대도 바뀐 만큼 식용 문화가 사라지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칠성 개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시장으로 꼽히던 경기 성남 모란시장은 2018년, 부산 구포가축시장은 2019년 폐쇄됐다. 칠성 개시장은 현재 국내 유일의 개시장으로 남아 있다.
대구동물보호연대 회원들은 지난달 28일부터 대구시청 현관 앞에서 칠성 개시장 폐쇄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동물행동권 카라, 대구동물보호연대, 대구환경운동연합 등 10여개 단체도 지난달 15일 대구시청 앞에서 ‘개시장 폐쇄를 위한 연대’를 결성하고 단체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대구시가 개시장 철폐 민관협의체 구성, 권영진 시장의 폐장 약속 이행, 상인들의 업종전환 지원 등을 촉구하고 있다.
칠성 개시장 폐쇄 등을 촉구하기 위한 동물보호단체의 집회가 11일 대구 동대구역 앞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칠성 개시장 폐쇄 등을 촉구하기 위한 동물보호단체의 집회가 11일 대구 동대구역 앞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는 다음 달 제주, 9월 정읍, 10월 천안에서 집회를 열고 개·고양이 식용금지법 제정 등을 요구하기로 했다. 임미연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이사는 “그간 칠성 개시장에 있는 가게 14곳을 모두 찾아가 설득 작업을 벌였다. 현재 이들 업체 관계자들은 보상금 지급을 전제로 업종 전환이나 폐쇄에 동의한 상태”라면서 “하지만 대구시는 예산을 들여 개시장 대책을 마련하는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구시가 칠성 개시장 폐쇄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앞으로 정치권을 통한 압박 등에도 나서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