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동어미 화전가 /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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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삼월 좋은 시절의 화전놀이 와서들랑
꽃빛일랑 곱게 보고 새소리는 좋게 듣고
밝은 달은 예사로 보며 맑은 바람 시원하다.
좋은 동무 좋은 놀이에 서로 웃고 놀아 보소.
사람의 눈 이상하여 제대로 보면 상관없고
고운 꽃도 섞어보면 눈이 캄캄 안 보이네.
귀도 또한 별일이지 그대로 들으면 괜찮은 걸
새소리도 고쳐 듣고 슬픈 마음 절로 나니
마음 심 자 제일이라 단단하게 맘 잡으면
꽃은 절로 피는 게요, 새는 예사로 우는 게요.
달은 밝은 게요, 늘 바람은 부는 게라.
마음만 예사로 태평하면 예사로 보고 예사로 듣지
보고 듣고 예사로 하면 고생될 일 별로 없소.
앉아 울던 청춘과부 환하게 모두 깨달아서
덴동어미 말 들으니 말씀마다 모두 옳아
이내 수심 풀어내어 이리저리 부쳐 보세.
이팔청춘 이내 마음 봄춘자로 부쳐두고
꽃같은 이내 얼굴 꽃화자로 부쳐두고
술술 나는 긴 한숨은 가랑비 봄바람에 부쳐두고
밤낮으로 숱한 한심 우는 새나 가져가게.
일촌간장 쌓인 근심 흐르는 물로 씻어볼까.
천만첩 쌓인 시름 웃음 끝에 하나 없네.
깊은 마음 속 깊은 시름 그 말끝에 실실 풀어
삼동설한 쌓인 눈이 봄춘자 만나 실실 녹네.
자네 말은 봄춘자요 내 생각은 꽃화자라
봄춘자 만나 꽃화자요 꽃화자 만나 봄춘자라
얼씨구나 좋을시고 좋을시고 봄춘자
화전놀이 봄춘자 봄춘자 노래 들어보소
가련하다 이팔청춘 내게 당한 봄춘자
늙어 다시 고향 봄이니 덴동어미 봄춘자
장생화발 만연춘 우리 부모님 봄춘자
계수나뭇잎 일가춘 우리 자손의 봄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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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중왕의 목단화는 꽃중에도 어른이요
기장지천 옥매화는 꽃화자 중에 미인이요
화계상의 함박꽃은 꽃화자 중에 공경하다.
허다하게 많은 꽃화자가 좋고 좋은 꽃화자나
화전하는 꽃화자는 참꽃화자가 제일이라
다른 꽃화자는 그만 두고 참꽃화자 화전하세
쌍저협내 향만 구하니 일연 꽃화자 복중전을
향기로운 꽃화자전을 우리만 먹어 되겠는가
꽃화자 전을 부쳐 꽃가지 꺾어 많이 싸다가
장생화 같은 우리 부모 꽃화자로 봉친하세
꽃다울사 우리 아들 꽃화자로 먹여보세
꽃과 같은 우리 아기 꽃화자로 달래 보세
꽃화자타령 잘도 하니 노래 속에 향기 난다
나비 펄펄 날아들어 꽃화자를 찾아오고
꽃화자타령 들으려고 난봉공작이 날아오고
뻐꾸기 꾀꼬리 날아와서 꽃화자 노래에 화답하고
꽃바람은 실실 불어 쇄옥성을 가져가고
청산유수 물소리는 꽃노래를 어우르고
붉은 노을이 일어나며 꽃노래를 어리려고
오색구름이 일어나며 머리 위에 둥둥 뜨니
천상 선관이 내려와서 꽃노래를 듣나 보다
여러 부인이 칭찬하니 꽃노래도 잘도 하네.
덴동어미 노래하니 우리 마음이 더욱 좋다.
화전놀이 이 자리에 꽃노래가 좋을시고
꽃노래도 많이 하니 우리 다시 할 것 없네 .
궂은 맘이 없어지고 착한 맘이 돌아오고
걱정 근심 없어지고 흥취 있게 놀았으니
신선놀이를 누가 봤나 신선놀이 한 듯하니
신선놀이 다르겠는가, 신선놀이 이와 같지
화전홍이 미진하여 해가 벌써 석양일세.
사월 해가 길다더니 오늘 해가 짧구나.
하느님이 감동하셔서 사흘 해만 더해 주소.
사흘 해를 더하여도 하루 해는 마찬가지니
해도 해도 길고 보면 실컷 놀고 가지마는
해도 해도 짧을시고, 이내 그만 해가 가네.
산그늘은 물 건너고 까막까치 희미하다.
각기 귀가 하리로다, 언제 다시 놀아볼꼬.
꽃 없이는 재미없어 내년 삼월에 놀아보세.
[작자 미상] 조선 후기 가사.
4월입니다. 4월이면 생각나는 고전 가사네요. 기분 좋은 리듬감! 운율이 아주 좋습니다. 봄인가 싶더니 삽시간에 벚꽃이 흐드러지네요. 머지않아 온 산엔 진달래가 만발하겠고요. 추위가 물러가고 꽃놀이 즐기는 이 계절에, 애달픈 가사 한 편을 읽습니다.
* <덴동어미 화전가>는 장편가사입니다. 불에 덴 아들의 어미라는 의미의 '덴동어미'는, 경상도 순흥의 아전 임이방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중인 신분으로 네 번이나 결혼하였지만, 남편이 모두 죽고 마는 박복하고 기구한 운명이었습니다.
네 번째 결혼으로 아들을 얻어 잠시 행복하였지만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남편은 죽고 아들은 불에 화상을 입습니다. 40여 년 유랑생활 끝에 ‘불에 덴 아들’을 업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노년의 덴동어미는 화전놀이에 엿 한 고리를 이고 가 놀이를 주도합니다. 평생 한으로 점철된 기구한 삶을 놀이를 통해 풀며, 청춘과부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슬퍼하자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며 위로하는 이야기입니다.
가난과 고통의 연속에서도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희망을 모색하였던 것이지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인간적인 연대가 필요한 이유를 ‘덴동어미’를 통해 배웁니다. 진달래가 필 즈음이면 생각나는 이야기입니다.
첫댓글 이름 없는 여인지만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화전가는 처음 봅니다
가사이면 오래 되지도 않았습니다
가사문학관이 생각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