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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미향의 몸종
이 홍사
새벽 다섯 시가 넘었지만, 창밖은 칠흑 같은 어둠의 장벽이다.
계절이 바뀌었는지 날은 더디게 새고 있었다.
홍랑은 일찌감치 사무실에 내려와 싸구려 인스턴트커피를 마신다.
생각은 어쩔 수 없이 문미향에게 쏠리고 있다. 문미향에게 적개심이 일어 머릿속이 분답고 명상을 해도 좋은 새벽의 고요한 분위기를 망치고 있다.
문미향은 홍랑과 초등학교, 중학교 동기다.
홍랑이 기억하는 문미향은 키가 자그마하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고 공부는 꽤 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미향의 기억은 이미 빛이 바랜 사진처럼 누렇게 변해서 얼굴에 대한 기억은 도무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어쩌다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서로가 몰라보고 지나칠 게 뻔하다. 눈이 좀 작고 얼굴이 납작한 편이었던 것만 실루엣처럼 기억이 난다. 신평면에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으니 중학도 같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신평면에는 중학도 역시 하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으로 올라가서 달라진 게 있다면 남녀가 학급이 다르게 구분되었다는 정도이지 전부가 아는 얼굴이었다. 중학교에서 세 학급은 남학생이었고 세 학급은 여학생 반이었으니 면 단위치고는 상당히 큰 면에 속했지만, 당시에는 인문계 고등학교가 없었고 규모가 작은 상업계 고등학교가 하나 있었던 게 고작이다.
문미향은 남녀공학인 그 상고로 진학했는지 모르지만, 홍랑은 가깝고 만만한 도시의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는 바람에 중학을 졸업한 후로는 문미향을 본 기억이 없다. 중학을 졸업한 게 언제인가? 강산이 몇 번 변한 세월이니 문미향의 이름을 듣더라도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문미향에 관해 얘기를 들은 것은 지난주의 동기들 계 모임에서였다.
그 계 모임은 초등학교와 중학 동기들끼리 하는 모임인데, 학창시절에 별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이 도시에 사는 동기생들의 계인데 서른 명이 넘는다.
공단이 생기고 이 도시가 확장되면서 고향인 신평면이 도시의 변두리로 편입되었으니, 이 도시에 사는 자체가 고향을 지키는 것이나 진배없다. 비록 공단에 다니지만, 고향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가깝고 만만한 까닭에 이 도시에 뿌리를 깊숙하게 박은 놈이 많았기에 특별한 사유로 빠진 이가 더러 있어도 서른 명이 넘는다. 물론 공단에 다니면서 소일거리로 고향의 농사를 짓는 놈도 몇이 있고 고향에 살면서 공단으로 출퇴근하는 놈들도 있다.
계 모임이라고 가면 수가 많아서인지 오합지졸의 모임이다. 대가리 수가 많아서 그런지 다 모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 싶다. 정기회라고 하면 그래도 평균 스무 명 정도는 모인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놈도 있고 꼴 보기 싫고 얄미운 놈도 있게 마련이다. 그 모임에 가면 옛날이야기가 나오고 어느 동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고, 누가 회사를 명퇴하고 어디에 식당을 개업했다는 둥, 동기생들의 정보를 들을 수가 있다.
지난주, 문미향의 이야기가 나온 것은 그 모임에서 술이 무르익을 무렵이었다.
그녀가 주옥순을 하인처럼 부리고 있다는 말이 술안주로 돌았다. 하인이 아니라 문미향의 발톱까지 다듬어주는 몸종 노릇을 주옥순은 하고 있다고도 했다. 믿기 어려웠다.
설마?
한 다리 건너가면 불어나는 게 소문인데 그렇게 불어난 것이겠지.
그런데, 주옥순? 주옥순이 누구더라?
친구들은 산양리에 살았던 동기생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홍랑의 기억에는 빠져있었다. 이름마저도 생소하거니와 모습도 전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들이 동기생이라고 했으니 동기생이야 틀림이 없겠지만, 홍랑의 기억에서 오롯이 사라진 인물이었다. 홍랑이 기억조차 못 하는 것을 보니 말수가 적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표시가 나지 않는 그런 아이였던 모양이다.
“그 여편네들이 지금 어디에서 늙어가고 있는고?”
홍랑은 문미향에 대해서 입에 거품을 무는 천수에게 물었다.
천수는 여편네라고 부르면 안 된다면서 손을 내저었다. 문미향은 독신녀이니 아직 처녀라는 것이었고, 주옥순은 결혼은 했으나 일찍 남편이 죽고 문미향과 둘이 살고 있는데 바로 봉곡동에서 살고 있다면서, 여편네라고 하는 걸 문미향이 들으면 난리가 난다고 사족을 달았다.
처녀? 오십이 넘었는데?
좀 뜨악했다. 봉곡동이라면 이 도시를 말하는 것이고 홍랑의 사무실과 집이 있는 곳이 바로 봉곡동이다. 봉곡동에는 신축 아파트가 엄청 들어섰다. 거기에 어디에 살고 있을 것으로 홍랑은 짐작했다. 더구나 문미향은 정의 근로문화 센터라는 시민단체의 간사를 맡고 있으며 가끔 지방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나오는 인물이라며 홍랑이 몰라서 그렇지 한두 번은 공짜로 들어오는 지방신문에서 보았을 거라는 게 천수는 얘기였다.
정의 근로문화 센터?
홍랑은 그 말을 듣자 술기운에 고조된 기분이 거꾸로 툭 떨어졌다.
시민단체 중에서 정의가 들어가는 단체는 다 좌파고 정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을 한다는 게 경험을 바탕으로 한 홍랑의 지론이었다. 면밀하게 따지고 들면 대충 그렇다. 그런 단체가 형성되면 그 이름에서 막강한 권력이 나온다. 그 권력에 취해서 아무 곳에나 간섭한다. 환경이고, 경제고, 노인 문제까지 간섭하지 않는 곳이 없다. 홍랑은 그런 시민단체의 이름만 들어도 반감이 들고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위선, 그런 시민단체를 보면 알맹이가 빠진 위선으로 점철된 단체라는 선입견이 앞선다.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단체라고 천수가 말했지만 이름만 들어도 거부반응이 일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특히나 무슨 환경신문의 기자라는 작자들은 혀가 내둘린다. 건설업을 하는 홍랑은 그런 환경신문 기자들에게 당하고 뜯긴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동네 놈팡이나 건달들은 다 환경신문 기자증을 가지고 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시민단체와 환경신문은 왜 그렇게 많은지. 무슨 시민단체라는 이름만 들어도 알레르기성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홍랑이다.
그 시민단체의 이름만 들었는데 문미향과는 일단 거리감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그 말수가 적은 아이가 이상하게 변했네?”
천수에게 그 말을 했지만, 좌중의 화제는 이미 다른 곳으로 넘어가 정치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으니, 천수도 거기에 끼어 홍랑의 물음에는 대답이 없었다.
요즘, 계 모임에서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파장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좌중은 두 부류로 선명하게 갈라진다. 희한한 일이다.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의견이 달라 한바탕 언성이 높아지면 총무는 곗돈을 거두기 시작한다. 곗돈을 거두면 공식적인 계 모임은 끝이 난다는 걸 의미한다. 그다음에는 바쁜 놈이나 할 일이 남은 작자는 돌아가고, 술을 좋아하는 인간들은 한쪽에서 작은 술상을 차리고 둘러앉는다.
그 모임에는 화투를 좋아하는 놈들이 몇이 있다. 그 녀석들은 분명히 방 귀퉁이에 둘러앉아 담요를 깔 것이다. 계 모임이 아니라 노름꾼을 찾아서 온 놈들이다. 대여섯 놈이 되는데 계 모임이고 상갓집이고, 모였다 하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 관심을 가진 놈들이다.
홍랑은 술도 적당히 마셨고 화투는 더구나 좋아하지도 않는다.
돌아오는 일 밖에는 남지 않았다.
문미향! 잊고 있었던 이름이었다.
주옥순은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지 모르겠다. 돌아오는 내내 문미향에 대해서 생각했지만, 얼굴에 대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홍랑은 계 모임이나 술자리가 있으면 차를 잘 가져가지 않는다. 주차문제도 그렇고 대리운전자를 한 번 부르면 그다음부터 날아오는 문자 메시지가 감당이 안 된다. 계 모임이나 술자리에서 차는 상당히 거추장스러운 물건에 속한다.
그날도 그랬다.
얼큰한 기분으로 택시를 타고 돌아오며 문미향을 헤아렸다. 그런데 형곡동 입구에서 앞차가 멈칫멈칫하며 멈추어 섰다. 뒤에 따라오던 차량도 일제히 멈추는 바람에 교통이 순식간에 엉켜버렸다. 사고인가 생각했지만, 사고가 아니었다.
어떤 미친 여자가 발가벗은 나체로 도로를 점령하고 누운 바람에 차가 일제히 멈춰 서고 맞은편의 도로의 차들은 또 그걸 구경하느라고 멈춰 섰던 모양이다.
“얼레? 뭐 하는 미친 여자야?”
늙수그레한 택시운전사의 그 말에 뒷좌석에 앉은 홍랑도 고개를 빼고 앞쪽을 넘어다보았다. 삼십 대로 보이는 여자였다. 완전히 발가벗은 나체였다.
미쳤나?
차가 막혔지만, 누구도 여자에 대해서 고함을 치거나 욕설을 하지 않았다. 어느 차도 경음기를 울리지 않았다.
전부가 구경만 했다.
자동차 불빛과 가로등에 비친 여자는 몸매가 매끈한 삼십 대로 보였고 목덜미까지 오는 파마머리였는데 머리카락이 얼굴을 조금 가려 얼굴은 정확히 볼 수가 없었다.
조금 있으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찰들이 와서 황급히 여자를 도로 밖으로 끌어내고 윗도리, 점퍼를 벗어 그 나체의 여자, 주요부위를 가리고 순찰차에 태우고 길이 열렸다. 나체의 여자는 경찰 두 명에게 팔짱이 잡혀가면서도 허공을 향해 뭐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는데 들리지 않았다.
뭐 하는 여자일까? 젊은 여자인데?
정말 미쳤나? 홧김에 벗어버렸다면 무슨 불만이 그리도 많아 나체로 도로에 드러누운 것일까? 요즘은 일인시위를 저렇게 깜찍스럽게 하는가?
“멀쩡하게 생긴 여잔데? 저거 신문에 나올 일인데요?”
늙은 택시운전자의 말이었다.
“특종감이긴 한데, 무슨 욕구불만이 있어 저런 짓을 할까요?”
그 바람에 문미향의 생각은 홍랑의 뇌리에서 순식간에 날아갔다. 집으로 오는 내내, 가로등 불빛과 차량의 불빛에 본 여자의 늘씬한 나체가 눈에 어른거렸고 그렇게 나체로 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사정을 유추해 보았다.
남편이 바람이 났을까?
아니면 도리어 바람을 피웠다고 남편에게 학대를 받아서 정신이 살짝 갔을까?
길거리에서 여자가 옷을 벗은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적어도 형제간의 상속문제라든가 다른 사회적 문제에 대한 욕구의 표출이라면 옷을 벗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부부간의 불화나 성에 관한 문제일 거라고 단정했다. 혹시 변태가 아닐까? 여자는 벗는 본성이 있다던데, 그렇게 벗어 버리는 것으로 야릇한 만족을 느끼는 변태? 그렇다면 경찰에게 끌려가면서 고함을 지른 것은 무엇일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택시로 집에 도착하는 내내 홍랑은 그 여자를 생각했다.
홍랑은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하고 야릇한 광경이라 그 모습이 뇌리에 상당히 오래 박혀 있었다. 그게 벌써 지난주의 일인데 아직 그 모습이 선명하고, 왜 그런 모습으로 도로에 드러누웠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그날은 문미향을 잊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것이었다, 문미향이 주옥순을 하인으로 부린다고 동기들 입에서 말이 나왔으니 어떤 관계이길래 소문이 그 정도로 험악하게 번졌을까? 문미향이 봉곡동 어디에 살까? 같은 봉곡동에 산다고 했으니 어쩌면 홍랑과 어디, 마트나, 체육공원, 아파트 단지의 골목에 열리는 새벽시장에서 마주쳤는데 몰라보고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봉곡동이 워낙 작은 구릉지에 구획정리를 한 동네니까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바로 엊그제 일어났다. 옛날에는 지나다니다가 만났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엊그제는 분명히 만났다. 문미향을 만난 것이 아니라 주옥순과 조우가 된 것이다.
엊그제 점심은 앞 골목의 뼈다귀해장국을 먹으러 갔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사무실로 찾아온 지입회사의 류 사장과 세금계산서를 정리하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홍랑은 일식집으로 가서 초밥을 먹자고 했지만 유명한 뼈다귀해장국이 봉곡동에 있다면서 류 사장이 그 집으로 안내했다. 뼈다귀해장국은 의외로 맛이 있었다. 가까이 있는데 이런 집이 있다는 걸 홍랑은 몰랐었다. 앞치마를 두른 주옥순을 만난 곳이 거기였다.
“혹시 홍랑이 아니냐?”
해장국을 정신없이 먹던 류 사장이 주방 쪽으로 대고, 깍두기를 좀 더 주세요, 고함을 지르고 나서 깍두기 접시를 들고 온 중년 아줌마가 홍랑을 이리저리 훑어보고는 물었다. 어투로 보아 확실하게 안다는 빛이 역력했다.
숟가락질을 멈추고 홍랑이 쳐다보았지만, 누군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야 나! 주옥순, 산양리에 살았던 주옥순!”
그 말을 듣고 보니 아주 낯선 인상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주옥순?”
며칠 전에 들었기에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홍랑은 속으로 잘 만났다 싶었다.
“그래? 다시 보니, 맞네! 주옥순!”
정확하게 기억은 없지만 그렇게 아는 척, 맞장구를 쳤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식당은 한산했다. 홍랑은 주옥순이라고 자신을 밝힌 여자에게 옆에 있는 의자를 빼주며 좀 앉으라고 했다. 주옥순은, 손님이 계시는데, 하면서 앉기가 거북했던 모양이다.
“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냐?”
“아니야. 시간제로 일하고 있어. 점심시간만. 열한 시부터 두 시까지만.”
“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주옥순의 말이었다.
“나? 잘 늙어가고 있지. 너도 변하지 않았네.”
홍랑도 얼굴 기억은 없지만 그렇게 둘러댔다.
이 동네에 살고 있느냐고 주옥순이 물었고 홍랑은 해장국 건더기를 우물거리며 바로 길 건너가 사무실이라고 했다.
“자주 와! 고향 까마귀 얼굴이라도 좀 보게.”
그렇게 청하는 주옥순의 목소리는 구김살이 없고 밝았다. 그때 저쪽 구석 테이블에 홀로 앉은 중년 사내가 해장국을 다 먹었는지 계산대 앞에 섰다. 그걸 본 주옥순은 자주 들르라는 말을 흘리고는 후딱 계산대로 갔다. 해장국 뚝배기에 코를 박고도 홍랑의 눈은 주옥순의 동선을 따라다녔다. 계산을 마치고 주옥순은 사내가 앉았던 자리의 빈 그릇을 걷어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말인가 더 하고 싶었는데 앞에 류 사장이 있었고, 주방으로 들어간 주옥순은 설거지에 매달렸는지 나오지 않았다. 해장국을 다 먹고 계산을 할 적에는 주인으로 보이는, 터빈을 쓴 젊은 여자가 나왔다.
주방을 힐끔거렸지만, 주옥순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은 주옥순을 맛보기로 보고 인사도 하지 못하고 나왔다. 해장국집 앞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류 사장과 헤어지고 다시 들어가려다가 그녀가 일하는 시간임을 생각하고 그냥 사무실로 돌아왔다.
문미향의 하인이라니?
바로 길 건너인데 사무실이라도 가르쳐 주고 한번 들르라고 할걸!
무언지 딱히 이름은 짓지 못하겠지만 홍랑은 주옥순을 통해서 뭘 캐내고 싶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궁금한 게 많았다.
다음날, 그러니까 어제는 아내가 친구인 여편네들과 제주도로 수다를 목적으로 하는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점심을 해결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생각난 것이 뼈다귀해장국이었다. 전날 너무 맛있게 먹었기에 그게 또 생각이 난 것이다. 아니다. 맛보다는 주옥순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혼자 먹어야 하나? 사무실에서 장부를 정리하는 여동생에게 같이 가자고 했더니 금세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왔다고 했다, 같이 먹어줄 상대가 없었다. 그때 타이어 대리점 북파라는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육군 말단보병 출신인 주제에 북파공작원이라고 너스레를 떨어서 북파라고 불리는 홍랑의 군의 동기다.
녀석은 거두절미하고 칼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칼국수?
그 말에 홍랑은 점심은 선약이 있다고 둘러댔다. 칼국수나 뼈다귀해장국보다는 주옥순을 만나는 게 급했다. 친구들의 말이 사실인지 그것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문미향은 하인을 거느리고 산다. 그게 주옥순이다? 당장 가려고 생각하다가 그때는 한참 손님이 복잡할 거라는 생각에 좀 늦은 시간에 가야지 조용할 거라는 생각에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늦은 점심을 먹으러 길을 건너갔다.
홍랑이 식당에 도착했을 때 예상대로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늘은 혼자 왔냐?”
앞치마를 걸친 주옥순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점심보다는 너를 보러 왔어.”
홍랑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를 왜? 뼈다귀해장국 먹을래?”
“뼈다귀해장국으로 주고 나하고 얘기 좀 하자.”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손님 좌석에 앉을 수가 없는 시간이야. 이따가 퇴근하고 밖에서 보자.”
“그래? 그게 좋겠네. 몇 시에 퇴근이냐?”
한 시간만 더 있으면 끝이 난다고 해서 홍랑은 뼈다귀해장국을 후딱 먹고 계산을 하며 주옥순에게 사무실 위치를 알려주고 끝나면 사무실로 좀 오라고 했다. 바로 옆에 커피전문점도 있지만, 사무실이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주옥순은 무슨 심각한 얘기냐면서, 마지못해 그러겠다고 했다. 대답하는 투가 시큰둥해서 과연 올 것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사무실에 먼저 와서 아침에 훑어본 신문을 뒤적거리며 기다리니 한 시간쯤 후에 주옥순이 왔다. 앞치마를 벗어서 그런지 식당에서 본 것보다 입성이 남루하게 여겨졌다.
“사무실이 아담하네. 집사람이냐?”
주옥순이 사무실로 들어와서 분위기를 훑어보며 경리부장인 여동생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홍랑은 말없이 웃었고, 여동생이 직접 친동생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홍랑은 동생보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기이니 선배가 된다면서 인사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홍랑은 주옥순에게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가자고 했다.
“사장님은 역시 틀리는구나. 사장실은 더 화려하네.”
“너 내가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해야 한다?”
소파에 앉자마자 홍랑은 에둘러 묻지 않고 단칼에 푹 쑤셨다. 그렇게 포획하는 방법이 맞지 싶었다. 슬슬 구슬리면 발뺌을 할 게 뻔히 보였다.
“무슨 말인지 겁부터 나네? 내가 너한테 죄지은 게 있냐?”
단순히 안부를 묻고, 지나간 날의 회포나 풀려고 보자고 한 게 아니라는 걸 감을 잡은 눈치다. 그때 여동생이 묻지도 않고 커피를 내왔다. 동생이 탁자에 커피를 내려놓은 순간 둘은 말이 중단되었고 날카로운 눈빛만 교차 되었으며 동생이 커피를 놓고 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 말이 없이 서먹한 순간이 지속했다.
“너 문미향과 어떤 관계냐?”
“관계? 친구 사이지. 무슨 관계?”
주옥순은 역시 발뺌을 하고 있다. 이건 일종의 수치심에서 오는 현상이다.
“다 알고 있어. 솔직히 말해! 너? 문미향의 하인이라며?”
“하인은 무슨 하인? 미향이가 좀 바쁘니까, 좀 도와주는 거지.”
주옥순은 문미향의 얘기가 나오자 풀이 죽은 표정인데 과장을 하는 티가 한눈에 보였다. 그러면서도 구세주는 아니더라도 신세를 한탄할 대상을 만난 다행스러운 표정이 어딘가 모르게 스며있다는 걸 홍랑은 단박에 감을 잡았다. 잘하면 전모를 파악할 수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솔직히 말하라고 했잖아? 너 문미향과 한집에 살고 있지?”
한집에 살고 있다고 했다. 다만 편의상이라고 덧붙였다.
“편의상? 문미향의 편의를 위한 것이지, 네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잖아?”
홍랑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이게 남의 일이 아니다. 주제가 넘는 일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 압도했으며 제대로 파악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주옥순은 갑자기 죄인이 된 것처럼 머리를 떨구었다. 주옥순의 단발머리, 생머리 가르마 부분에 희끗희끗하게 흰머리가 보여 이름 모를 연민을 느끼게 했다. 보기가 민망할, 고달픈 삶의 흔적이었다.
“언제부터 한집에 살았어?”
이십 년이 넘는다고 했다. 홍랑은 기가 막혔다. 그 세월 동안 문미향의 하인 노릇을 한 게 틀림이 없었다.
“왜 그렇게 되었어? 처음부터 얘기해봐!”
홍랑은 재차 다그치듯 물었다.
그 옛날에 돈 칠백만 원 빌린 게 화근이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주옥순은 기어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홍랑은 탁상용 휴지를 가져와 주옥순에게 밀어주고 뒷말을 기다렸다.
신혼 초에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 뺑소니 사고였는데. 도로를 무단 횡단하다가 차에 들이받혀서 사람이 날아가서 인도 뒤의 개울에 처박혔는데 다음날 새벽 운동을 나온 사람에 의해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남편은 숨만 붙어 있는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신혼살림을 단칸방에 월세를 살던 시절이었는데 어느 차가 그랬는지 몰라 종합보험도 안 되고 경찰들의 도움으로 보험회사에서 책임보험으로 배상을 받았는데 뭉텅뭉텅 올라가는 병원비로는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보름 정도를 버티다가 남편이 죽었다고 했다. 갚을 건 생각하지도 않고 급한 김에 모자라는 병원비와 장례비 칠백 만원을 문미향에게 빌렸다고 했다.
“그래서 아무리 갚아도 자꾸 빚은 늘어나지?”
홍랑이 한 발짝 훌쩍 뛰어 넘겨짚었다. 그런데 어라? 맞는 말이란다. 예상했던 바가 아닌데 그렇다는 것이었다. 의외였다. 주옥순은 휴지로 눈물을 훔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얘가 원래부터 1% 모자라는 아이였던가?
모르겠다.
하는 짓이나 말을 들어보니 조리도 없고 1%가 아니라 2%가 모자라는 아이가 분명하고 문미향은 그 점을 악용한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문미향에게 근거 없는 적의를 느끼며 이건 바로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홍랑의 가슴에 꿈틀거렸다.
“지금 진 빚이 얼마야?”
“정확히 몰라! 일억이 넘을 거야. 미향이가 적어 두었어.”
“일억?”
홍랑은 또 목청이 높아졌고 핏대가 거꾸로 서는 기분이 들었다. 당시에 칠백 만원 말고 중간에 더 빌려 쓴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칠백만 원을 빌렸는데 갚아도 갚아도 자꾸 불어난다? 무슨 계산법인지 모르겠다.
“너? 월급 타면 문미향에게 갖다 바치고 용돈을 타서 쓰지?”
홍랑은 또 넘겨짚었다.
그렇다고 했다.
취직을 문미향이 시켜주었으니 그게 당연한 게 아니냐는 투였다.
홍랑은 앞에 앉은, 2%가 부족한 여편네를 한 대 쥐어 박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상황이 그 정도이고 한집에 산다면 보나 마나 문미향의 하인 노릇을 하는 게 뻔하다. 밥을 해서 먹이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거기다가 앵벌이를 해서 문미향에게 갖다 바치고. 그런데 이 멍청한 여편네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주옥순은 가만히 보니 냄비 속의 개구리다. 이 여편네는 변온동물인 게 분명하다. 찬물에 들어갔는데 지금은 물이 슬슬 끓고 있는 마당인데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분명한 개구리다.
“너? 문미향의 발톱까지 깎아준다며?”
“미향이가 좋은 일을 하느라고 바쁘니까 내가 도와주는 거지.”
부정하지 않았다.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하인이 아니라 이건 몸종이다.
정의 근로문화 센터에서 간사 노릇을 하며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을 위해 일을 한다는 문미향이가 제 친구인 주옥순의 인권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건 분명히 인권 유린이다. 주옥순이 외국인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가?
알 건 다 알았다. 말문이 막혀 더 물을 수도 없었다.
홍랑은 잠시 생각했다.
여기까지 들은 이상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주옥순을 그냥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너 오늘부터 집에 들어가지 마. 내가 원룸을 구해 줄게. 문미향이 돈 안 갚아도 돼. 너 혼자서 살아! 나머지는 내가 책임질게.”
홍랑은 뒷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고함을 쳤다.
“너? 큰일 난다. 미향이 경찰들하고 되게 친하다.”
말문이 또 막혔다. 듣고 보니 2%가 부족한 게 아니라 3%가 부족한 아이다. 문미향이가 이 아이의 모자라는 점을 교묘히 악용한 것이다. 그 세월 동안 이 대명천지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생각하니 이가 갈린다. 친구들은 이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텐데 왜 가만히 두었을까? 친구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다소 번거롭겠지만 모르는 척하고 그냥 넘어가면 죄를 짓는 일이며 범죄은닉에 해당한다. 그런 죄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천벌을 먼저 받을 것이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홍랑,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마음을 굳혔다.
홍랑은 밖에서 사무를 보는 여동생을 불러들였다.
무슨 일인가 하고 들어온 여동생에게 자초지종을 한참 동안 얘기했다. 동생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동안 주옥순은 고개를 숙이고 울고만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동생은, 세상에, 세상에를 연발했다.
홍랑은 동생에게 부동산에 연락해서 어디 가까운 데 원룸을 알아보라고 했다. 가구가 다 완비된 원룸이 있을 거다. 그런 집을 알아보라고 했더니, 여동생은 당장 그러면 안 된다면서, 자신의 집에 빈방이 있으니 거기서 당분간 기거하면서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은 후에 원룸으로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그동안 돌보아 주겠노라고 했다.
홍랑이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다.
여동생의 집에는 질녀가 서울의 대학에 들어가고부터 빈방이 생겼다. 주옥순은 자신의 의지나 견해는 없었다. 다만 구세주를 올려다보는 눈빛이었다. 주옥순은 그렇게 하면 되는데 문미향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당장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홍랑은 마주 앉아 훌쩍이는 주옥순에게 문미향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출근해서 사무실에 있지 싶다고 했다. 정의 근로문화 센터? 주옥순은 그렇다고 했다. 다음으로 문미향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주옥순은 문미향의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자주 거는 전화번호는 외우지 못하는 법이다. 주옥순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찾는데 홍랑이 핸드폰을 낚아챘다. 그리고 여동생을 가리키며 말했다. 말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전화는 내가 보관할 터이니까 얘랑 지금 집에 가서 옷가지를 챙겨서 얘를 따라가!”
여동생에겐, 하던 일은 내일 하고 주옥순을 데리고 바로 퇴근을 하라고 했다.
주옥순은 여동생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며 말했다.
“그 전화는 미향이 이름으로, 미향이가 만들어 준 것인데.”
“걱정하지 마. 내가 처리할게. 그리고 앞으로는 문미향은 네가 있는 곳 백 미터 안에는 못 온다. 나도 아는 경찰이 많아. 무서워하지 마.”
마치, 어린아이 달래듯 유치한 소리를로 달래서 동생네 집으로 보낸 것이 바로 어제였다.
지난밤에는 잠을 좀 설쳤다. 그리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사무실로 내려와 생각에 잠겼다.
지난밤에 문미향의 전화를 두 번이나 받았다.
두 번 다 주옥순의 전화기로 받았다.
첫 번째 전화는 주옥순인 줄 알고 전화를 했었다.
의외로 홍랑이 받아서 누구라는 걸 밝히자 상당히 놀라는 투였다. 홍랑은 이제는 주옥순의 미래를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별말 없이 끊었다. 두 번째 전화는 대략 삼사십 분 있다가 다시 했는데 홍랑인 줄 알고 전화를 해서 남의 일에 왜 참견이냐고 따졌다.
“왜? 몸종이 사라져서 답답하냐?”
홍랑은 비아냥거리는 투로 물었다.
“그 앤 내 도움 없이 혼자서는 못 사는 애야.”
“그건 네 생각이고, 외국 근로자 인권은 중요하고 주옥순의 인권은 중요하지 않냐? 돈 칠백만 원 빌렸는데, 그렇게 벌어서 갚았는데 지금 빚이 일억이 넘는다며? 장부에 그렇게 적어두었다며? 무슨 계산법이 그러냐? ”
독이 올랐는지 문미향은 고소할 거라며 경찰서를 들먹였다.
경찰서?
홍랑의 탱탱하게 부푼, 심술보 같은 분노의 주머니에 칼집을 놓은 것이다.
“이 계집애가 미쳤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네가 고소하기 전에 내일 내가 먼저 고발할 거다. 그리 알고 경찰서에서 보자.”
이야기도 다 듣지 않고 홍랑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홍랑은 가끔 술을 같이 하는 김명철 변호사에게 전화했다. 주옥순의 모든 얘기를 털어놓고 상의했더니 인권 차원에서 무료로 변론을 해주겠다고 하며 일단 내일 경찰서에 고발부터 하라고 했다. 나머지는 자신이 책임을 지겠노라고 했다.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셈이다. 그다음은 경찰서 강력계 조 형사에게도 전화해서 모든 사실을 다 털어놓았다. 조 형사는 정의 근로문화 센터의 간사라면 대충 알지 싶다고 하며 내일 바로 고발을 해달라고 했다.
홍랑은 지금 새벽 커피를 마시며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다. 잠이 모자라 눈이 좀 따갑기는 하지만 잠이 더 오지 않을 것 같다.
사실의 전모가 밝혀지면 지방신문의 기자 나부랭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 그러면 문미향은 그 허울 좋은 간사 자리까지 위선의 이름으로 파헤치겠지.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들에 가면 새지 않을까? 정의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근로문화 센터도 온통 비리투성이겠지?
그런데, 그런데 커피가 왜 이리 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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