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지으신 자연 가운데
우리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것은
나무이다.
그 모양이 우리를 꼭 닮았다.
참나무는 튼튼한 어른들과 같고
앵두나무의 키와 그 빨간 뺨은
소년들과 같다.
우리가 저물녁에 들어 나아가 종소리를
들으며 긴 그림자를 늘이면
나무들도 우리 옆에 서서 그 긴 그림자를
늘인다.
우리가 때때로 멀고 팍팍한 길을
걸어가면
나무들도 그 먼 길을 말없이 따라오지만,
우리와 같이 위으로 위으로
머리를 두르는 것은
나무들도 언제부터인가 푸른 하늘을
사랑하기 때문일까?
가을이 되어 내가 팔을 벌려
나의 지난날을 기도로 뉘우치면,
나무들도 저들의 빈 손과 팔을 벌려
치운 바람만 찬 서리를 받는다, 받는다.
- 김현승,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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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일 우리 교회는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하늘의 은총과 농부의 땀이 빚어낸 아름다운 결실들을 보며 그 어떤 것도 제 스스로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무언가를 이루려는 우리의 정성에 더해 누군가의 고마운 손길이 보태진 결과들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력으로는 이번 주일이 마지막이고 다음주부터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시작으로 다시 새로운 교회력이 시작됩니다. 추수감사절을 교회력의 마지막에 지키는 이유는 한 해 동안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그 안에 깃든 하늘의 은총을 헤아려보고, 내 곁을 지키며 힘이 되어주었던 곁님들에 대한 고마움을 가져보라는 의미겠다 싶습니다. 늘 마지막 자리에 서면 두 가지 마음이 갈마들지요. 바로 감사와 후회입니다. 고마움을 느끼고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감사가 없는 인생을 상상해 보십시오. 좋다 여겼던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나쁘다 여겼던 것들에 대해서는 불평 불만을 쏟아내겠지요. 그런 인생엔 사랑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사랑으로 빚어진 인간이기에 사랑이 없다면 핏기 없는 메마른 송장과 다를 바 없겠지요. 감사는 생을 풍요롭게 하며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후회의 감정은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내디딜 수 있는 디딤돌과 같습니다. 후회가 단순히 자신의 삶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짜증으로 끝을 맺는다면야 감사 없는 생과 다를 바 없겠지만, 후회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성찰할 수 있다면, 그리고 보완하고 고쳐 나갈 수 있다면 더욱 성숙한 생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요.
이 감사의 계절에 김현승 시인의 <나무>를 묵상해봅니다. 우리를 닮은 나무... 나무는 ‘푸른 하늘’을 사랑하기에 가지를 위로 위로 뻗으며 하늘을 향해 자라납니다. 감사하는 이의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을이 되어 팔을 벌려 지난 날을 기도로 뉘우치는 시인의 눈에 나무도 ‘빈 손과 팔을 벌려 치운 바람만 찬 서리를 받는다’ 고 느낍니다. 이 모습이 저에게는 지난 날을 후회하고 성찰하는 모습으로 비춰졌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비로소 나무는 나이테 하나를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고 보면 감사와 후회(성찰)를 할 줄 아는 것이 인간이고 나무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떨까요? <2022.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