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일본 일본 불교의 역사는 6세기에 시작한다. 538년 흠명왕(欽明王)의 조정에 백제의 성왕(聖王)이 사신을 통해 불상과 경전을 보내온 것이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시초이다. 그로부터 일본은 1,400년이 넘는 불교 역사를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 긴 역사 속에서 일본 불교는 세 가지에 초점을 두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7, 8세기의 불교이다. 이 시기는 법륭사(法隆寺)의 건립(607)에서부터 동대사(東大寺) 건립(752)에 이르는 시대이다. 당시 아시아는 전체가 예사롭지 않은 고도의 문화적 흐름을 타고 있었다. 서방 문명이 깊은 암흑 속에 묻혀 있던 바로 이때 동방의 문명은 괄목할 만큼 활발하고 웅대한 움직임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과 서역 그리고 인도와 남태평양의 국가들에서도 지적이고 종교적이며 예술적인 활동이 강력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불교는 그와 같은 움직임과 서로 맞닿아서 광대한 휴머니즘의 물결을 이루어 동방 세계를 휩쓸고 있었다. 그리고 법륭사와 동대사의 건립과, 이것을 둘러싼 다채로운 종교적, 예술적 활동 등과 같은 이 무렵에 일어난 새로운 일본문화의 움직임은 모두 저 광막한 아시아 전역에 걸친 문화의 물결을 동쪽 끝에서 흡수하는 포용력을 보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미개한 사회에서 살아온 일본인은 바야흐로 거대한 문화의 물결에 몸을 담갔다. 문명의 꽃은 아주 갑자기 피었다. 이것은 당시에 일본인이 맞은 큰 행운이었고 이 행운을 베푼 것은 다름 아닌 불교였다. 따라서 그 시대의 사원은 국제적인 문화인 중심지였고, 승려는 새로운 지식의 지도자였으며, 경전은 훌륭한 사상의 수레였다. 이 속에는 하나의 종교라기보다 훨씬 광범위한 문화 그 자체가 들어 있었다. 일본에 처음 전래 되던 시절의 불교의 모습은 이와 같았다. 9세기에 들어오면서 최징(最澄, 767~822), 공해(空海, 774~835)라고 하는 위대한 두 불교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이른바 일본 불교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헤이안(平安)불교’ 라고 불리는 두 개의 계파를 창설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칫 귀족들의 소일거리로 흐를 뻔한 불교를, 수행을 중요시하는 본래의 입장으로 이끌었고, 도시 중심이었던 종래의 불교를 산(하이산, 고야산)속으로 끌어들여서 그곳에 수행인 근본 도량을 확립하였다. 그 후 가무쿠라 시대까지 3백년 동안 이 두 사람의 계파인 천태종과 진언종이 주로 조정이나 귀족을 중심으로 하여 번영하게 된다. 두 번째로는 12, 13세기의 불교를 들 수 있다. 이 시절에는 법연(法然, 1133~1212), 친란(親鸞, 1173~1262), 도원(道元, 1200~1253), 일련(日蓮, 1222~1282) 등 일본이 낳은 훌륭한 승려들이 있었다. 오늘날에 일본 불교를 말할 때 이들을 빼고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째서 이 시기에만 이와 같이 훌륭한 과제 하나가 그들 앞에 있었을까? 그것은 커다란 공통의 과제 하나가 그들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공통의 과제란 바로 불교의 일본적 수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는 “불교는 이미 훨씬 이전에 전래 되지 않았던가”라며 물을 지도 모른다. 역사적 사실은 그렇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충분히 소화하고 변용하여 완전히 자기 것으로 수용하기까지에는 수 백 년의 노력이 필요하였다. 결국 7, 8세기에 시작된 불교수용의 노력이 이제야 간신히 봄을 맞이하여 백화가 만발 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12, 13세기에 등장한 승려들의 공적이었다. 그 후 일본 불교는 그 탁월한 승려들이 닦은 기반 위에서 옛 영광을 유지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즉 그때 일군(一群)의 훌륭한 불교인 을 배출한 이후 일본 불교의 역사에서는 더 이상 눈부신 태양이 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 일본 불교의 역사에도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현대의 불교학이 이룬 원시불교에 대한 연구성과이다. 일본의 불교는 처음 전해질 때부터 오늘날까지 중국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거의 다 대승불교였다. 특히 12, 13세기의 훌륭한 불교 인들이 배출된 이후는 종조(宗祖)들을 중심으로 하는 대승의 가르침이 그 주류를 이룬 채 오늘에 이른다. 그와 같은 일본 불교의 역사 속에서 원시불교의 연구가 일어나게 된 것은 대략 명치(明治) 중엽에 속한다. 그로써 종조(宗祖) 말고도 교조(敎祖)가 있음을 잊고 사람들 앞에 고타마 붓다의 모습이 선명하게 재현되고 따라서 대승의 가르침밖에 몰랐던 사람들 앞에 정연한 불타의 교법이 본래 모습을 환히 드러내게 되었다. 비록 이것이 학문의 영역에 머물러 새로운 종교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할지라도 적어도 일본이 갖는 불교 지식은 크게 변화해가고 있다. 이것이 세 번째 초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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