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72) - 좋은 씨앗, 충실한 열매
지난 주말(1월 26~27일)에 고향의 선영을 찾은 후 광주에 들러 지인과 교우들을 만나 정겨운 시간을 가졌다. 설이 가까운 주말인데도 오가는 길이 붐비지 않고 날씨도 쾌청하여 즐거운 나들이가 되었다. 양지바른 구릉지에 있는 선영은 항상 푸근함이 감도는 안식처, 한겨울에도 따사로운 햇볕이 서기를 뿜는다. 묘역의 웃자란 나무들을 손질 한 후 선고(先考)를 기리는 예배가 은혜롭고 200명 넘는 가솔들이 세상의 좋은 씨앗, 충실한 열매되기를 다짐하는 기원이 뿌듯하다.
성묘 후 들른 법성포항, 어물가게에 즐비한 조기와 보리굴비가 설이 코앞인 것을 일깬다
청주생활 50여일, 도서관이 가까이 있어서 유익한 글과 다양한 책을 수시로 접할 수 있어 좋다. 매일 4~5개의 신문을 섭렵하고 다방면의 독서로 삶의 지평을 넓힌다. 그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30여권, 며칠전 그중 ‘소설 문익점’(정정대 지음)을 흥미롭게 읽었다. 역사 속의 문익점을 삶의 현장에서 부딪힌 것은 두 차례, 첫 번째는 8년 전 조선통신사 걷기행사로 경상북도 의성을 지날 때 문익점면작기념비를 접한 것이요 두 번째는 2년 전 이순신백의종군길 걷기로 경상남도 산청을 지나면서 문익점유허비를 살핀 것이다. 그때의 기록은 이렇다.
‘2011년 4월 13일, 오전 9시에 의성군청을 출발하여 한 시간쯤 걸으니 고개 마루에 이른다. 잠시 쉬었다가 고개를 내려가니 의성읍과 금성면의 경계가 나오고 다시 또 다른 고개 길에 오르니 여러 개의 능이 있는 조문국사적지와 문익점면작기념비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잠시 쉬며 문익점 면작에 관한 기록들을 살폈다. 면작기념비에는 고려 때 문익점이 중국에서 목화씨를 가져와 손자(문래)가 의성현감으로 재직하면서 이를 의성에서 본격적으로 재배하게 되었다고 적혀 있다.’(인생은 아름다워 2권)
‘2017년 9월 5일, 오전 11시 반경 하동군 수곡면을 지나 산청군 단성면에 들어선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라는 예닮촌에서 점심을 들고 단성 쪽으로 향하였다. 오후 4시경에 이른 곳은 단성면 사월리에 있는 문익점면화시배지, 고려조 문익점이 중국에서 면화씨를 가져와 처음 재배한 곳에 문익점유허비가 크게 세워져 있다.’(인생은 아름다워 8권)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 세워진 문익점유허비
두 번이나 문익점 면화재배지를 지나면서도 자세한 사연을 모르다가 마침 ‘소설 문익점’이 눈에 띠자 이 기회에 그의 행적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알 수 없는 일, 이를 완독하고 인터넷에서 관련 기록을 살피니 문익점이 충신으로, 효자로(그가 살던 마을을 침범한 왜구들도 효자마을이라고 해를 끼치지 않은 사연도), 학자로 올곧은 삶을 살았을 뿐 아니라 민생에 긴요한 의류혁명을 가져온 실용적 인물이었음을 새삼 깨치게 되었다.
픽션의 소설 대신 역사적 사실을 담은 저자의 후기를 통하여 문익점(1331~1400)의 면모를 살펴본다.
‘문익점이 졸했을 때 조선조 2대 정종은 후한 예장과 제전(祭田)을 베풀고 3대 태종은 충선의 시호를 내렸다. 4대 세종은 영의정으로 추증하는 등 정조 때까지 여러 왕이 내린 전교가 14회에 이른다. 조선조의 김시습, 이황, 송시열 등 유명 학자와 문인들이 기려 쓴 시문이나 비문이 지금도 전한다. 문익점은 충신이었고 효자였으며 학자였다. 옛 선비들은 청렴과 결백을 목숨처럼 귀하게 여겼다. 따라서 문익점이 귀환도중 목화씨앗을 붓대롱 속에 숨겨왔다는 사실은 필자의 상식에 크게 빗나간 것으로 여겨졌다. 소설에서는 그가 중국의 남쪽으로 귀양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 곳에 널리 퍼진 목화씨를 자연스럽게 가져온 것으로 설정하였다.’
문익점이 가져온 목화씨 중 장인 정천익이 심은 것 하나가 싹이 터 그 후 널리 재배에 성공하였다. 그가 붓대롱에 담아온 한 톨의 목화씨앗이 뿌리 내려 수많은 열매 맺은 것처럼 우리도 충실한 열매 맺는 좋은 씨앗이어라.
* 인터넷의 관련 자료를 검색하니 문익점과 같은 산청 출신으로 베트남에서 영웅으로 떠오른 축구감독 박항서 씨를 지목한 글이 눈길을 끈다. 그가 베트남에 아름다운 씨를 뿌리는 문익점의 후예임을 강조함인 듯. ‘지금은 심우당(문익점의 호) 선생 곁에 박항서가 있답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축구를 먼 베트남에 가져가서 그들에게 씨앗을 뿌려 대한민국의 국위를 선양하고 있습니다. 심우당 선생께서 기뻐하시리라 여깁니다. 편히 쉬시옵소서.’
베트남의 명장으로 떠오른 산청 출신의 박항서 감독
첫댓글 어릴적, 갓피어난 목화꽃 봉우리를 따서 꼭꼭 씹어먹던 기억이 납니다. ㅋ계속 씹으면 껌이 된다고요.^^;;광주에 다녀가셨다구요?홍길동 같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