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역 하차 예정이었으나 깜빡 정신 팔다가 안국역에서 하차했습니다. 덕분에 안국역 앞에 있는 운현궁을 둘러 보기로 합니다.
서울의 5대 궁궐은 몇번 다녀왔으나 운현궁은 초행입니다. 아주 옛날 읽었던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흥선군 이하응이 어떤 인물인지 똑바로 알았었죠.
운현궁은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이 왕이 되기전 살았던 잠저로 흥선대원군의 집입니다. 물론 그때는 이렇게 커다란 대저택의 모습은 아니었고, 아들이 왕이 된후 궁궐의 건축물처럼 크게 증축했습니다.
1864년에 건립한 노안당입니다. 운현궁의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의 주요 거쳐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이곳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10년간 섭정을 했으나, 최익현의 상소로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을 하게됩니다. 그후 흥선대원군이 노안당에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졸했다고 전해지는데, 아들인 고종은 부친과의 갈등으로 문상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충효가 이념인 유교국가 조선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문화재 해설사님의 운현궁의 약사를 탐방객들이 듣고 있습니다. 머리에 쏙쏙 학습이 됩니다. 애즈산도 졸졸 따라 다니며 30여분 다니며 정독하였습죠.
앞에 보이는 건물은 복원된 수직사입니다. 절은 아니구요. 운현궁을 지키는 수하들이 사용하였습니다. 파락호시절부터 따르던 대원군의 심복들인 천.하.장.안이 생각나네요.
운현궁의 안채로서 운현궁의 중심이 되는 노락당입니다. 뒤에 보이는 서양식 건물은 1910년 지어진 운현궁의 별관인 양관입니다. 해방후 덕성여대에 매각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둘째아들 명복인 고종과 후일 1년 연상인 명성왕후로 추존된 민자영이 이곳에서 왕비수업을 받고, 노락당에서 가례를 올렸습니다. 고종부부는 운현궁을 방문할때 이곳을 거처로 사용했습니다.
이로당입니다. 노락당을 가끔 고종부부가 이용하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새로운 안채를 지은 것이 바로 이로당입니다. 두 이 글자가 위에 치솟아 씌어있는데, 해설사님이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을 상징하며 그 권위를 표현했다고 하네요.
운현궁은 무료개방되오니 시간날때 한번 들러 보시지요.. 그동안 청와대 주변은 얼마나 변했을까요? 이후 북악산 탐방을 위하여 고!
관광객들이 넘치는 북촌마을과 오랜 전통의 정독도서관을 지나..
역대 대통령들이 가끔 들렀다는 삼청동 수제비집..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으나 긴줄이 보이시나요. 오늘은 포기..
딱 작년 이맘때 들렀던 삼청동 수제비집의 수제비..쫄깃쫄깃하고 양도 푸짐했었죠. 며칠전 이곳에서 대통령과 참모들이 수제비를 먹었다합니다.
용산에서 청와대로 대통령실이 다시 이전한 후.. 북악산 탐방로가 있었던 춘추관코스가 아쉽게도 완전히 폐쇄되었습니다. 이곳으로 몇번 올랐었는데 이제 전설이 되었네요.
인적이 뜸한 청와대 앞길입니다.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앞에는 그동안 개방되었던 청와대가 그리웠던지 그곳을 바라보며 탐방객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애즈산은 마지막으로 작년 여름에 청와대 탐방을 3번째 다녀와 여한이 없습니다.
탐방이 종료되기 직전 작년 6월 청와대 앞의 모습..하루에 탐방인원 4,000명이 몰려 대단했었죠.
효자동 로터리에서 바라 본 영빈관..이제는 대통령이 애즈산을 초대하지 않는 한 절대 갈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과거 중앙정보부 안가가 있었던 무궁화동산입니다. 이곳에서 1979.10.26 박정희 대통령이 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총을 맞고 운명했습니다.
청와대가 길 건너인 바로 이 장소에서 1968.1.21 김신조부대의 청와대 침투를 저지하다가,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이 사망했습니다.
칠궁이 보입니다. 북악산 칠궁코스가 살아 있을까요? 아쉽게도 폐쇄되었습니다. 이곳으로도 몇번 오르고 내린 기억이..
북악산을 가기위해 창의문까지 걸어서 올라왔습니다. 작년 하반기까지 탐방로 공사로 출입이 금지되었었는데..오늘 다행히 오를수 있네요.
요즘 미세먼지가 많아 외출을 자제했는데..오늘은 그래도 약간 양호합니다. 인왕산.
북한산 방향은 시계가 좋지 않습니다.
가볍게 오른 북악산 정상 백악산 정상석.
이후 청운대를 지나서..
곡장까지 고고씽합니다. 곡장에서 바라 본 북악산과 우측 인왕산..
한양도성 북문인 숙정문을 지나 성북동으로 내려 섭니다.
소녀상이 아닙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님입니다. 누군가가 따뜻한 겨울을 보내시라고 모자와 목도리를 해주셨네요.
만해가 거주했던 심우장 본채.
우측의 향나무는 만해가 직접 심었다 전해집니다.
만해의 초상화. 일제의 회유와 탄압에 조선의 지식인이 대부분 협력하고 변절했으나 만해 한용운은 끝내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민족의 스승이지요.
심우장에서 내려오면 수연산방을 만납니다. 지금은 찻집으로 운영되며, 지난번 방문했을때는 닫았었는데, 오늘은 오픈되었네요.
수연산방은 해방정국에서 월북한 소설가 이태준(1904~1978)이 살았던 집입니다. '달밤' '황진이' '왕자 호동' 등 여러 작품이 있으나, 학창시절 금서라 애즈산은 이태준의 이름만 들었지 읽어 본적은 없습니다.
선잠단지입니다. 선잠단은 누에를 처음 치기 시작한 서릉씨를 선잠의 신으로 모시고,
조선초기부터 국가의례 선잠재를 지낸 곳입니다. 한국사1급의 고득점 애즈산도 후에 알았습니다.
역사문화마을 성북동을 지나서 종착지 한성대역으로 갑니다. 다음에는 반드시 구포국수를 먹어 봐야죠.
첫댓글 서울 궁궐, 다녀오셨네요.
저두 내일 경복궁과 북촌마을 들리고.인사동으로 산책갑니다.
설날 복 많이 받으셔요.
애즈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