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적인 세계가 짙게 만발하는 꽃밭이기를
제9회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시 부문은 총 175명의 작품 880편이 응모되었고 예심을 거쳐 올라온 11명의 작품을 심사숙고한 끝에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짙고 깊은 시선으로 참신한 개성을 보여준 두 분의 작품을 각각 대상과 우수작으로 선정하였다.
먼저 임수민의 시는 ‘아름다운 세상’ 따위는 없다고 단언하는 듯하다. 표제작 「칼날 위에 선」 등을 위시한 그의 시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 속에 무수한 ‘날銳’들이 숨겨져 있음을 제시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불행의 양상으로 드러나든 몇 겹의 가면 뒤에 숨은 사회구조로부터의 그것이든 그 ‘날’ 혹은 ‘각’을 향해 깊게 시선을 던진다. 가령 “그 집은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수 있고/이층 벽돌집일 수도 있습니다…//선택은 당신의 몫으로 떠넘길 수 있는데/가끔은 넘기는 게 좋아서 넘기곤 했습니다.” 같은 구절에서 ‘칼날 위에서 태어’난 우리들의 운명을 개인의 몫으로 넘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장면은 이 시선이 어디까지 닿는지 잘 보여준다. “유독 사람이 많은/이곳에서 문이 열렸기 때문에/내렸습니다/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주인공은 이 역 화장실의 네 번째 칸에서 ‘벌벌 떨고 있다’ 지극히 일상적인 시간이지만 그 한켠에 숨은 ‘칼날’을 귀로 ‘듣기’ 때문이다. ‘물을 내리며 /이곳은 조용한 사람이 없어/손을 씻으며/시끄러운 사람이 되기로 했는데’의 여백에는 시퍼런 긴장이 깔려 있다.
「이름없는 구경꾼」도 같은 맥락이다. ‘병실’과 ‘무대’가 혼용된 우리 삶의 ‘현장’을 이색적으로 치환한 작품이다. 그러한 그의 면모는 그가 다음 문장처럼 “이름없는 전시장/나는 구경꾼을 번역하는 구경꾼”임을 자처하는 뛰어난 ‘번역자’라고 생각한다.
신현숙의 시에서 ‘시간’은 짙은 밀도를 가졌다. 「스웨터」의 물성物性에 기대어 한 가족사의 편린을 제시한다. ‘보풀’에서 ‘문’을 발견하고 기억 공간에서 먹던 겨울날의 ‘귤’을 떠올린다. ‘빨간 스웨터’를 한 번의 겨울만 입은 ‘언니’가 등장하고 그가 남긴 스웨터를 풀어 ‘장갑’을 만든 ‘엄마’가 있다. 그 장갑을 끼지 않으려고 겨울 내내 도망치는 화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훗날 이 시를 쓴 것인지 모른다. 그 모두가 “사라진 자리에 새집을 짓는 손/폐허에서 돌멩이를 줍는 손을 보았다”라고 고백할 때 먼 시간에서부터 더듬어 나오는 손은 아름답다.
두 분의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그 개성적인 세계가 짙게 만발하는 꽃밭이기를 기원한다.
섬세한 시각과 위트,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
이번 『시와산문』 신인상 수필 부문에는 예년에 비해 많은 예비 작가가 참가했다. 본심에 11분의 응모자 작품들이 올라왔다. 본심에 올라온 응모작들을 읽으면서 예년 투고작에 비해 그 수준이 높아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간 우리 『시와산문』의 신인상을 통해 많은 좋은 시인들이 발굴된 성과가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 아닌가 자랑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동안 투고된 작품들 상당수가 감상적인 신변잡기로 시작해서 상투적인 교훈으로 끝내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수필을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필은 자유로운 만큼 까다롭고 어려운 글쓰기이다. 글로 담아야 할 주제에 있어서나 글의 형식에 있어서나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기에 이 내용이나 표현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 상투적인 글이 되어 버린다. 이 상투성을 얼마나 극복했나 하는 점이 수필 심사의 가장 큰 기준이라 할 수 있다.
본심으로 넘어온 작품 중 윤주연의 「단순하게」, 김은희의 「곰신과 꽃신」, 우주연의 「무꽃」 그리고 조성태의 「이발소 그림 풍경에는」이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끌었다. 모두 다 당선작으로 선정해도 무리가 없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지금 당장 수필 전문 문예지에 실려도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었다. 그중 김은희의 작품은 탄탄한 글쓰기 실력을 보여주긴 하지만 소재가 조금 진부해서 수상작에서 제외되었다.
영예의 대상작으로 우주연의 「무꽃」을 뽑기로 합의했다. 우주연의 작품은 탄탄한 글쓰기 실력과 언어구사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물을 보는 섬세한 시각이 큰 장점이다. 작가는 이런 예민한 감각으로 사물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의미 있는 삶의 깨달음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훌륭한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준다. 윤주연의 작품은 위트가 돋보인다. 이 위트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감상적이지 않은 어조로 잘 전달하고 있다. 조성태의 작품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여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수필 문학의 묘미를 잘 보여준 수작이다.
대상으로 선정된 우주연 그리고 우수상으로 선정된 윤주연, 조성주 세 분의 수상을 축하드린다. 앞으로 훌륭한 에세이스트로서 활발한 활동 기대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