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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3일, 그야말로 찬란한 아침이었다. 며칠 동안 계속 흐린 날씨로 빛을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었는데, 역시 하늘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몽고빠오 주위에는 닭과 칠면조가 이른 아침부터 모이를 찾아 들판을 헤매고 있었고, 햇빛을 받은 사과가 붉은 빛을 뽐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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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경내의 마당>
<호수 남쪽에서 동쪽을 바라본다. >
호수 너머로는 흰 눈으로 덮인 거대한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북쪽을 바라보니 분명히 호수의 맞은 편이 잘 보였다. 오른쪽으로는 동쪽의 바다, 그러니까 약 100키로의 동쪽 호수변이 희미하게 보였다. 망원 카메라로 호수 맞은편을 당겨 확대해 보니, 앞쪽의 호숫물은 검푸르렀고 다음에 설산이 얌전하게 놓여 있고 그 위에 파란 색 하늘을 배경으로 옅은 구름이 이리 뭉실 저리 뭉실 거렸다. 염분이 있다고 알려진 이 호수에 정말로 염분이 있는지 손으로 물을 찍어보니, 감각이 무딘 나는 소금기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의 염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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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본다.>
<호수 북쪽을 카메라로 확대하여 촬영하였다.>
<호수 남쪽에 있는 들과 산>
방향을 틀어 호수의 반대쪽 즉 멀리 남쪽 산이 보이는 들판으로 나왔다. 먼 설산 위로는 태양이 비치기 시작했고, 나와 설산 중간에 있는 들판에도 아침 햇살이 슬그머니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망원 렌즈에 나타난 설산에는 거대한 분화구처럼 보이는 백설 분지가 있었고, 능선을 따라 아침해가 비쳐, 명암을 확실히 구분지으며 산을 휘감아 돌아 나갔다. 해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주변의 색은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온천지가 성대한 백색의 향연을 즐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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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몇 사람이 설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다행히도 들에는 말 한 마리가 있어서, 자칫하면 밋밋했을 사진 구도를 살려주었다. 바로 옆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외롭게 서 있었는데, 단풍잎으로 아름답게 단장하고 태양이라는 손님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아침의 태양이 얼마나 강한지 그 태양 빛은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또 다른 방사선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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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어디서 힝힝힝 소리를 내면서 새끼 말 한 마리가 고삐에 매여있는 어미 말 곁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새끼 말을 본 어미 말은, 고삐가 허락하는 범위까지 달려가 새끼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미와 새끼는 만나자 서로 어깨와 목을 비벼대고 서로를 핥아주기 시작했다. 마치 생이별한 어머니와 자식이 만나는 듯 이상한 소리를 내며 한 동안 애틋한 피부접촉을 했다. 마침내 새끼 말은 부드럽고 따뜻한 엄마 젖무덤을 찾아 자신의 머리를 묻고 어머니의 사랑을 빨아 자신의 목으로 넘기고 있었다. 그때 설산을 배경으로 검은 새떼가 이리 한 바퀴 돌고 저리 한 바퀴 돌며 대자연에서 펼치는 이산가족 상봉을 축하해주는 듯 했다. 이른 아침에 대 자연에서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연주되는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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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옷을 입은 여자 승마원>
다른 쪽에서는 서로 사냥물을 차지하려는 젊은이들의 사냥놀이가 공연되고 있었다. 전체 참여 승마자들이 들판을 몇 번 이리 훨, 저리 훨 돌더니, 두 팀으로 나누어 사냥감을 차지려고 격투를 벌이는 게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흰 치마의 처녀가 말을 타고 마치 전쟁을 선포하는 장군처럼 나타나 들판을 한 바퀴 돌았다. "나를 차지 하려는 자는, 저 사냥감을 잡아 나에게 가져오라"라고 말하는 듯 하였다. 두팀으로 나뉜 젊은이들은 목숨을 건 듯이 들판을 휘저으며 달려 경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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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몸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헉헉 거리는 숨소리가 설산에 부딪쳤다가 다시 오는 듯 들려왔다. 위통을 벗어던진 이들은 용가리보다 더 세찬 불 입김을 하늘에 뿜어대며 진정한 용가리 뼈는 여기있다는 자세와 표정으로 죽기 살기로 숨막히는 결투를 감행하였다. 연속극이 실제 인생 살이보다 더 실감이 나듯, 이날 이들의 연기(演技)는 버트 랜커스터, 커크 더글라스 주연의 "오케이 목장의 결투"보다도 더욱 생동감과 박진감이 넘치는 지상 최대의 "액션, 스릴, 서스펜스"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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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대목에서 개팔자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말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동네 개들이 모여들어, 엉금엉금 걸어다니기도 하고, 말과 함께 달리기도 하고, 이 급박한 상황에 누워서 장난을 치는 등 한 마디로 개판을 치며 즐기고 있었다. 개죽음이니, 개고생이니, 개 뼉다귀니, 개 차반이니, 개지랄이니 별 말이 다 많지만, 그래도 팔자 중에서 최고는 역시 개 팔자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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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귀에 박힌 가시 덤불을 떼어 내주고 있다.>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보며 비쉬케크로 돌아온다. 멀리 펼쳐져 있는 설산을 바라보며 버스를 타고 간다는 것은 압박과 설음에서 일제에서 해방되는 것만큼이나 벅찬 일이었다. 왼쪽으로는 햇빛을 받은 설산이 눈이 부시도록 펼쳐져 있었으며, 오른쪽으로는 들판이 나오다가 얕은 산이 나왔다. 길옆으로 나 있는 철로를 따라 기차가 지나기도 하고, 강과 길이 교차하며 미지의 세계로 빠져드는 듯 어지럽기도 하였다. 폭이 넓지 않은 강이 바로 카자흐스탄과의 국경을 대신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바로 길옆에 철조망을 둘둘 말아서 국경을 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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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비슈케크 Futuro 호텔에 도착하였다. 방에 들어와 보니 TV가 켜져 있었다. 미리 투숙객의 이름을 알고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TV 화면에 표시해 두었다. 나는 내 이름이 TV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 감개무량하였다. 왜냐하면 내 이름이 TV 화면에 나온 것은 내 인생 처음있는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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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양말 위의 빛을 찍었다.>
<식당 앞에 놓여있는 주전자상>
<식당 앞의 낙타상>
그날 밤 우리는 지난 번에 우리를 안내해 식당에 같이 갔던 "강릉"을 다시 만났다. 지난번 식당 안내에 실패했으므로 다시는 그래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강릉"으로부터 단단히 받아두었던 것이다.
"강릉"이 예약한 식당 앞에 도착하니 거대한 꽃무늬 주전자와 낙타의 형상이 식당 앞에 떡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식당의 이름이 놀랍게도 한국 사람의 이름 중에 흔히 있는 "순득, 순덕(Sunduk)"이었다! "최순득?"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주위를 좀더 살펴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마 그 옆에 있는 식당이름은 순실(Sunsil)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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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이름 "순득 or 순덕"?>
역시 어디를 가나 그렇듯이 그날 나온 음식 중 으뜸은 양꼬치였다. 잘 생긴 종업원은 몇 개의 양꼬치를 가져오더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 손으로 양꼬치 위에 접시를 놓고 누르더니, 다른 손으로 막대기를 쓱쓱 빼내는 묘기를 보여주어 보는 사람으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같이 식사를 하던 "강릉"은 어디론가 사라져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한참만에야 맥주 한 다발을 사들고 헐떡거리며 돌아왔다.
술이 몇 배 돌자, 모두들 서서히 제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나 둘 앞에 있는 플로어(floor)에 나가 낯선 음악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오랜만에 지루박을 땡겨보았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아 개지루박이 되고 말았다. 역시 "개"자를 부치니 선명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그때 "강릉"이, 출입문 옆에서 안내방송을 하던 종업원의 마이크를 빼앗아 들고,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우리를 힐끔힐끔 바라면서 희죽거리는 것으로 보아, 그의 말은 다음과 같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았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본인의 부덕의 소치로 지난번 이분들을 제대로 안내를 못 했습니다만, 오늘은 제대로 손님을 모셔왔습니다. 저 멀리 한국에서 온 여행객이 저기서 식사를 하고 계십니다. 저분들 오늘 술 많이 드셨습니다. 저도 약간 술이 올라왔습니다만, 여러분도 모든 잔을 비우시고 이집의 매상고 좀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더군다나 이 집의 이름이 "순득"이 아닙니까? 앞으로 한국의 언론에 크게 소개되어 한국 손님이 구름처럼 모여들 것은 물으나 마나일 것입니다. 돈을 모아 그 돈으로 스포츠 재단을 만들어 문화 융성 사업을 한다면 이런 식당 수십개 아니 수백개 개업하는 것은 단지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 오늘 아주 감격스럽고, 영광스럽습니다. 여러분 다 같이 차차차, 아니, 부라보!" |
<맨 오른쪽이 "강릉"이라는 별명의 키르키스스탄 젊은이>
<10월 4일 트레킹 코스>
다음날 비슈케크에서 약 20키로 떨어진 알라 아르차 계곡으로 트레킹을 떠났다. 시내를 벗어나면 어디에나 설산이 있듯이 여기도 초입을 제외하고는 높은 산들이 눈으로 덮여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트레킹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우리는 폭포가 있다는 왼쪽 길을 택하여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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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엉성한 "깨어진 심장" 바위"
도저히 폭포까지 가기는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는 그곳에 폭포가 있다 한들 마른 폭포임이 분명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찢어진 바위"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바위에 멈추어 빵조가리로 점심을 대신했다. 뚜벅뚜벅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몇 사람의 등산객 이외에는 이토록 거대한 산에 사람이라고는 우리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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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하늘에는 장관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수 없이 많은 까마귀 떼가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고 있었다. 이들은 무슨 이유인지 다시 올라갔다가 또 내려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참을 지켜보던 나는 이 새떼들이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의 모습이 전혀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올라갈 때는 바람을 이용하여 서서히 회오리 돌면서 마치 깔때기와 같은 형태로 돌아 하늘로 비상하였다. 겉보기에 거의 힘을 들이지 않고 날개를 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하늘로 올라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은 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나 내려올 때는 마치 폭탄이 떨어지듯, 아니 사냥하는 매가 지상의 들쥐를 발견하고 내리 꽂는 듯, 마치 밤하늘에 별똥이 떨어지듯, 직선으로 곤두박질 쳐 내려왔다. 혹시 저들이 나를 공격할 마음만 있다면 떼거리로 달려들어 꼼짝없이 당할 것같은 두려움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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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떼의 비상(飛上)과 비하(飛下)의 모습)
<찢어진 심장 바위에서 외국인들이 까마귀떼를 바라보고 있다.>
<근처 개울에서 공사를 하는 트럭>
<신부 웨딩 촬영인듯>
<다람쥐인지 청솔모인지? 어쩌면 홍설모!>
<비슈켁 시내>
<저녁 식사 식당: 호반>
다시 비쉬케크로 와서 시내를 잠깐 들러 여기저기 걸었다. 이 도시에서 마지막 날이었으므로 한국 음식점에 갔다. 춘천에서 살다가 이곳에 와서 산다는 식당 주인은, 비슈케크가 장사해먹기에 아주 편한 곳이어서 정말 아무런 걱정 없이 잘 산다고 말했다. 자식이나 손자들이 한국어, 영어, 키르키어, 러시아 등 기본 4개국어를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곳에 이런 식당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르지만, 특별히 한국에서 할 일이 없는 사람은, 물가가 싼 이곳에 와서 장사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실제로 개업을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손님이 이곳을 찾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또 다른 암초가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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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곳은 모든 것이 값이 저렴하므로, 한국에서 돈을 가져와 쓰기에는 좋은 나라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오늘과 내일의 생활이 별 차이 없이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생각해 볼 만하다 -- "세상에는 지금 내가 한 달 사는 비용으로 왕처럼 살 수 있는 곳도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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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고 출근 합니다~
저도 이곳에 갈때를 기다리며...
예, 꼭 가보심이 좋을 듯하네요.
테마기행 키르탄 편을 곽선생님 설명으로 다시 보는것 같습니다.
이시쿨 호수에서의 설산
이날의 설산과 호수의 절묘한 풍광은 압권이었네요..
2-3일 흐렸던 날을 완전히 보상해 주었네요...어떨결에 본 키리키스스탄 전통 경기도 아주 좋았구요...!!!
좋은 곳만 찾아 다니니 좋을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