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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회(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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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 낭송시 스크랩 월간 `우리시詩` 1월호의 시 - 1
홍해리洪海里 추천 0 조회 271 19.01.06 03: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 이가림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모래알 같은 이름 하나 불러 본다

기어이 끊어낼 수 없는 죄의 탯줄을

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의

막막한 벌판 끝에 열리는 밤

내가 일천 번도 더 입맞춘 별이 있음을

이 지상의 사람들은 모르리라

날마다 잃었다가 되찾는 눈동자

먼 부재의 저편에서 오는 빛이기에

끝내 아무도 볼 수 없으리라

어디서 이 투명한 이슬은 오는가

얼굴을 가리우는 차가운 입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물방울 같은 이름 하나 불러본다

   

 

 

추억 - 김석규

 

고향에서 내가 다닌 학교는 함양농업고등학교

지금은 교명 변경으로 함양제일고등학교

부릴 멋대가리라고는 쥐뿔도 없으면서

모자를 빼뚜름하게 얹고 다녔다.

그 넓은 실습용 논밭에 나가 매일같이 일을 하거나

목총을 메고 학도호국단 훈련을 받기도 했다.

전교 조례 때면 빠지지 않고 불렀던 교가 한 구절

대지를 개척하는 대지를 개척하는 함양농업고등학교

너 나 없이 교가를 개사해서 부르기도 했는데

돼지를 데피로* 가는 돼지를 데피로 가는 함양농업고등학교

아닌게 아니라 형과 나는 때때로

돼지 흘레붙이러 종돈장으로 가기도 했었다.

 

---

*데피로 : ‘교미 시키려의 사투리.

   

 

 

독서시간 - 정성수

 

사람 하나 읽는데

한평생

   

 

 

백사白蛇 이야기 - 정옥임

 

들뫼 뒷산엔

도마뱀이 산다

아재들이 도마뱀 알을

주워 먹으러 능선으로 올라갔다

투둑투둑 터져

결딴난 목숨

 

태동하는 봄 산

지렁이 개미애벌레

백사도 갓 태어난 땅을

느릿느릿 기어간다

백사도 아재입으로 들어간다

아재의 장 속에서 비틀려

결딴난 목숨

 

독야청청

천년만년 살아야 했는데

아재 다리가 썩어갔다

다리를 잘라낸 뒤

내내 목발을 짚고 다니다

마침내 목발도 던져버렸다

백사는 다리가 없는데

아재도 다리가 하나도 없다

뱀이 다닌 길을 기어다닌다

결딴난 아재의 살이.

   

 

 

한밤의 산책 - 유진

 

는 왜 그늘이어야 감동일까

화두에 꺾인 잠이 검색창을 배회한다

 

기쁨 뒤엔 아쉬움, 슬픔 뒤엔 회한, 그리움 뒤엔 아픔, 찬란 뒤엔 허전함, 비움 뒤엔 소멸

 

어둔 시대일수록 속속들이 스며드는 그늘

존재만으로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그늘

그늘이란 그늘은 죄다 도사리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그늘의 심곡이다

 

한치 앞을 모를 생의 절창들은

그늘의 극복일까 진화일까

피를 철철 쏟는 절정의 단풍처럼

이듬 생을 위한 이듬*일까

 

숙면 뒤의 아침처럼 커피를 마시는 동안

달빛은 헝클어진 존엄을 쓰다듬는다

 

곳곳이 넘실대는 거품세상, 눈을 현혹시키는

가볍고 달콤하고 현란한 아프로디테

한때의 사치와 호사인 거품에게 굴종(屈從)하지 않으려

스스로 그늘이 된 애틋한 인생에게

악수를 청하는 한밤의 산책

희붐한 허공에 꽃이 되고 숲이 된다

 

---

* 이듬 : 논밭을 두 번째 매거나 가는 일. 이듬매기.

   

 

 

빛을 가두다 - 강동수

 

빛을 가두어 준 적이 있다

몇 천 분의 일초를 순간 포착 하여

어두운 감옥에 가두었다

내 카메라는 그때부터 몸살을 앓았다

벼랑 위 한그루 소나무와

수면 위 배 두 척

아직 풀려나지 못한 계곡속의

바위들이 탈출을 꿈꾸며 갇혀있는 곳

카메라 뚜껑을 열면 해방이지만

그것은 오래된 사진사의 금기사항

순간의 실수로 감옥 문이 열리면

자신의 명예를 내다버려야 하는 것 또한

독약같이 자명한 일

 

죽은 나무와 바위들이

하얀 여백을 채우는 인화지에서

다시 살아나는 시간

벼랑 끝에 매달린 나무는 그대로인데

종이위에 새겨진 키가 자라지 않은 나무는 복제품

바람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나무가 아니듯

일기예보에 무심한 배는 배가 아니다

 

비가 내리는 날은 내가 가두어둔

한줌 빛을 꺼내어 말리고 싶다

그때 붙들린 찰나의 순간

지구에서 사라진 몇 천 분의 일초

그 순간에 사라진 사람들과 나무와

다시 만나는 시간

누구에게는 다시 돌아가고픈

누구에게는 다시 지우고 싶은

불멸의 시간

   

 

 

몰래 카메라 - 이규흥

 

미안하다

새야, 벌 나비야

초소형 카메라를 숨겨 두고

너를 부르는 것은

천진난만한 네 몸짓도

다 하느님의 작품이라는 것

모였다 흩어지는 바람 속에도

그분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걸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날마다 속삭이듯 말을 건다

사랑하게 되면

아주 작은 숨소리조차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말씀이 된다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

 

미안하다 바람아,

떠가는 구름아

   

 

 

도로명 - 정유광

   -전주시 쪽구름길

 

하늘시 쪽구름길 마을엔 누가 살까 안

개꽃 다발다발 집집이 꽃밭이고

저물녘 개밥바라기 지친 몸이 눴겠지

 

미리내 골목골목 온종일 돌다 보면

꽈릿빛 꽃 멀미에 집배원 비틀대고

물컹한 길 우듬지에 애기똥풀 만발이다

 

누른 꽃 우표 붙여 무작정 보내볼까?

싸라기별 와르르 답장을 해 줄지도

쪽구름길 끄트머리 무지개 달이 떴다

 

                                             * 월간우리시1월호(통권 367)에서

                                                 * 사진 : 요즘 한창인 흰 애기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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