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 놉시다, 아 쫌.
제
남자친구는 발이 한 자는 될 거예요. (빅풋, 괴물, 설인 그런 거 아님) 마당발이라는 얘깁니다. 만난 지 3분 만에
30년짜리 호연지기를 쌓으며 호형호제를 서슴지 않는 스타일이죠. 그런 남친몬 주위에는 당연히 아는 형, 아는 누나, 아는 동생,
아는 분 등 밑도 끝도 없이 아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그래서 불만 있냐고? 아뇨, 전혀. 오빠는 나보다 친구가 더 좋아? 요
따위 꼬꼬마스러운 생트집으로 입꼬리 씰룩거리는 여자 아니에요. 저는 아무리 연인이라고 해도 침범해서는 안 될 각자의 영역이
있고,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주는 것이야말로 으른의 연애라고 생각하는 타입이거든요. 그러니까 제 불만은요. 내 친구 모임에도
따라가고 싶어하는 남친몬, 내 친구를 제 친구처럼 만들고 싶어하는 남친몬의 미친 친화력이란 말입니다.
마을
이장님처럼 이 사람 저 사람 들이대고 친하게 지내는 남자친구의 친화력, 다 좋다 이거예요. 하지만 저도 친구들 만나서 나누고
싶은 속 얘기가 있고, 가끔은 남친몬과의 은밀한 연애사건도 소상히 일러바치며 깨알 같은 우정을 다지고 싶단 말이죠. 남자친구의
성격이 여기저기 분탕질하고 다니는 성격은 아니라서 어디 내놓기 부끄럽거나 그런 거 아니에요. 둥글둥글한 남자친구의 성격과는
무관한 일이죠. 문제는 제 친구들이 조금 예민하고 낯가림이 있는데다…… 게다가 솔로라는 거. 제가 누구만 만나러 간다 하면 같이
가겠다고 나서는 남자친구 때문에 점점 친구들 눈치가 보여요. 친구들이야 괜찮다고 말해주지만 속으론 ‘또 달고 나왔어?’ 할 것
같은데, 내색도 못하고 불편해하고 있을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남자친구 없는 애들 앉혀놓고, 우리 둘 연애질 관람시키기도
좀 민망하고. 넌 좀 빠져! 돌직구를 날리자니 남자친구가 상처받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구렁이 담 타듯 유연하게, 남자친구를
자제시킬 수 있을까요?
"내가 어디든 같이 갈게!"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몽둥이로
때려야만 고통인가, 귀엽다고 살짝 꼬집어도 아프다면 고통이죠. 남자친구가 바람 피우고 틈만 나면 잠수 타고 심심하면 이별
통보해서, 사람 눈물샘 마를 날 없게 만드는 것만 연애 고민이 아니라는 거. 좋아해서 하는 행동, 좋으라고 하는 행동도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연애 고민이 된다는 거. 그래서 모두들 입이 닳도록,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 부르짖는 거겠죠. 대화하지 않으면
상대의 속 마음에 대해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까.
위
사례 속 커플은 단언컨대, 대화가 부족합니다. 친구 좋아하며 위 아 더 월드 외치는 남자와의 연애, 분명 단둘의 데이트보다
모임 자리에서의 데이트가, 친구 섞인 데이트가 더 많았을 거예요. 때문에 커뮤니티 구성원으로서의 상대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알지만, 그 사람 고유의 성격, 가치관, 정서, 감정 변화에 대해서는 흐린 기억 속의 먼 그대인 거죠. 그 동안 남자친구의
모임에 말 없이 따라다니고 특별한 트러블이 없었던 것으로 짐작하면, 남자친구는 사연녀 역시 다 함께 차차차를 즐기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사연녀의 사교모임에도 거침없이 따라 나서려고 하는 것. 이 커플, “그녀는 이런 거 싫어해”와
“그녀는 이런 거 좋아해”가 미처 정리되지 않은 사이인 것 같으니, 대화가 시급합니다. 물론 단 둘이서.
Girl Talk
사연녀처럼
친구들 앞에 남자친구를 데리고 나가 본 적 있으며, 사연녀의 친구들처럼 친구의 남자친구가 동석한 자리에 앉아있어 본 경험이
있다면 모두 알 거예요. 아무리 친구와의 약속이 먼저였고 친구들과의 친목이 목적인 자리라고 해도, 그 자리에 커플이 끼어있다면
화제의 중심은 당연히 커플이 된다는 사실. 니 입술에 바른 컬러가 어디서 나온 몇 호인지를 물어도 결국 두 사람의 연애 일화로
이야기가 귀결되는 공식. 솔로인 것도 서러운데 내 얘기 한마디 자유롭게 할 수 없는 분위기. (+그리하여 솔로는 집으로 돌아와
양푼을 부여잡고 눈물의 밤참을 비비게 되더라는 진실!)
카페에
똬리 틀고 앉아 서너 시간 너끈히 수다 떠는 여자들, 도대체 무슨 얘길 그렇게 할까요? 어디서 나온 울트라슈퍼리치아쿠아
수분크림이 제대로 수분폭탄이더라, 며칠까지 어디로 친구 데리고 가면 보톡스가 삼십 퍼센트 할인이더라, 학교 다닐 때 옆 반 일등
하던 걔 이번에 사법고시 붙었다더라, 아니 걔네 반 공주병 걸렸던 걔가 더 대박, 의사 남편 만났다더라, 역시 얼굴은 예쁘고
봐야 되나, 너 네일 어디에서 했니, 그라데이션 죽인다, 요즘 남자친구가 딴 여자를 만나는 거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소개팅 썸남이 카톡 읽어놓고 대답을 바로 안 하는데 나도 그렇게 해야 되나, 요즘 드라마 뭐가 재밌어, 거기 나오는 여배우
누구는 얼굴을 얼마나 깎았는지 표정이 변하질 않아, 그치? 맞지? 맞아.
"우리끼리 할 얘기 많다구요!"
이런
(남자들에겐 쓸모 없지만 여자들에겐 쓸모 있는) 이야기 속에서 인생 철학, 대자연의 섭리까지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며 물개박수칠
줄 아는 남자친구라면 데리고 나가도 좋아요. 하지만 사연녀의 남자친구가 그 자리에 동석해 있다면 위에 열거한 이야기는 8할을
꺼내놓지 못하겠죠. 그러니 위와 같은 걸토크의 깨알 같은 즐거움 위해서 남자친구에게 진실을 말해야 할 때. “내 친구 영숙이가,
오늘 좀 진지하게 할 말이 있나 봐. 모르겠어, 심각해 보여. 중요한 얘기겠지. 자기는 다음에 같이 만나자.” 라고. 이게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거짓말 아닌 거 알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