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열한 승부욕을 가진 피 끓는 청춘들이, 가슴에 칼을 품고 산속에 모여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탁구대 두대가 놓여 있었다.
과연 무슨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예전에 청주쪽인가 정법학사라는 사법고시 기숙학원이 국내 최초로 생겼고, 신림동 고시촌에서 한 200 여명쯤 고시생들이 몰려 내려갔다. 거의 산속이었다.
그곳에는 체육관이 있었는데, 강의실로 사용되었다. 서울에서 이름있는 강사들이 그곳 청주에 내려와 고시강의를 해주었다.
우리 가슴에 뜨거운 불을 품은 2,30대 청춘들을 이해해주자.
하라는 고시공부는 안하고 매주 다채로운 스포츠리그가 열렸으니까...
축구리그, 야구리그, 농구리그, 족구리그...그외에 요가, 선 등 여러 운동모임들...
그리고 그중에 가장 뜨거웠던 탁구리그.
학원측에서는 고시생들 운동하라고 그곳 체육관에다 탁구대 두대를 설치해주었다.
한번은 연이은 치열한 탁구리그를 잠시 식히려고, 어떤 형님이 색다른 제안을 한다.
" 우리 탁구라켓 대신 배드민턴 채를 이용해보자!"
바로 탁구대 위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것인데, 의외로 랠리가 되며 흥미진진하다.
삼삼오오 모여, 탁구대위에서 배드민턴채를 들고 셔틀콕을 가지고 꽤 심각하게 시합을 하는 도중에...
지나가는 여자 고시생들이 지들끼리 수근거린다. '드디어, 외진 산속에서 고시생들이 미쳐가는구나...'
학사실장은 비싼 탁구대를 누가 자꾸 기스 내냐며, 걸리면 변상할 줄 알라고 아침조회때 으르렁 거린다.
고시생들은 대부분 승부욕이 강하다.
예전에 탁구좀 친다는 사람들이 30여명 탁구대 앞으로 모여들었다.
가슴에 불을 품은 피끓는 청춘들이 탁구대 위에서 뜨거운 피를 토해낼수 밖에...
한달이 지난후 이제 사람들은 탁구대위에서 점점 진지해지고, 이제 탁구시합는 탁구 이상의 것이 되어간다.
탁구부수같은 개념은 아예없으니까...고립된 섬에 치열한 먹이사슬이 얽히고 섥혔으니, 그곳은 아예 정글이었다.
탁구정글...이라는 말이 참으로 적당하다.
왜냐하면 그당시 고시생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열한 승부욕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니까...
한달동안 피를 흘린 뒤...
top 10 이 어느정도 가려졌다.
주위에서는 그 상위권 열명을 풀리그로 해서 진정한 탁구강자를 가리자고 부추긴다.
고립된 어떤 영역이 있다고 하자. 그곳에 청춘들이 있다...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를 들자면, 마치 웜홀을 통과하는 것처럼, 편집적 승부욕의 세계로 내던져지는 것은 아닐까?
그들만의 우주... 깊어가는 가을의 산속...
서로 숨죽이며 눈치만 보던 top 10은, 드디어 칼을 뽑아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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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top 10 이 칼춤을 춘다.
탁구화의 밑창이 생고무라면, 과연 사람의 피부만 할까.
의외로 괜찮다. 맨발로 탁구를 친다는것.
당시 나는 탁구화라는 개념조차 없었고, 운동화가 너무 미끄러워서 급기야 신발을 벗는다.
치열하게 게임을 하고 나면 내 발바닥은 새까매진다.
당시 나는 맨발로 한명 한명을 꺾어 나갔다.
대학연합 탁구대회에서 8강까지 간 찬호형님 (아마 유일하게 탁구동호회 활동을 한 사람..)과 결승을 붙었다.
그 형님은 서비스가 특히 어려웠는데, 서비스 토스할때 탁구공을 손가락으로 핑그르르 돌린다.
그리고 그 회전의 결대로 서브를 넣는다.
그때는 그것이 반칙인지도 모르고 속으로 감탄만 했다. 회전량이 엄청났다.
' 아... 저 서비스만 아니라면...'
무지막지한 서비스에 이은 스매싱 강타.
결국 내가 2등...
그리고 천부적인 운동감각을 타고난 홍렬형님이 3등...
나머지 7명은 고만고만 하다.
우리 셋은 얼마후 의기투합하여 술자리에서 메이저리그 3인을 공표한다.
나머지 7명은 마이너리그.
메이저리그 3인이 경기를 하는 날이면, 체육관에 고시생수십명이 몰려들어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때 와이프가 뒷바라지 하며 근근히 고시생활을 이어나가던 어느 노장고시생이 돈을 걸자고 한다.
고시생들은 승부욕이 강해 대부분 내기를 좋아한다.
디데이는 강의가 없는 날인 토요일로 잡았다.
칠판에다 메이저리그 3인의 이름이 적힌다.
1. 김찬호 2. 김장호 3.. 박홍렬
만약 당신이 경주마에 올라탄 기수라면 어떤 기분일것 같은가?
일단 고독감이 엄습할것이다.
내 이름밑에 근 50만원 가까운 돈이 걸려있다.
내가 한포인트 실수 할때마다 내게 돈을 건 형님들의 질타와 욕설이 튀어나왔다.
아마 탁구치면서 그때처럼 긴장한적이 또 있을까. 내가 탁구대회 결승에 유독 강한 이유도 여기에서 연유되는것이리라.
마롱, 판젠동, 쉬신... 그 고시생들의 우주속에서 우리 셋의 권위는 그들에 못지 않는다.
얼마후 마이너리그 7인중 가장 실력이 강한 전라도 형님이 술좌석에서 울분을 토한다.
자기도 메이저리그에 넣어달라고.
우리 셋은 차갑게 내뱉는다.
'어림도 없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메이저리그는 함부로 넘볼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백서비스가 유난히 강하고, 백쇼트시 약간의 커트가 섞여 까다로웠던 그 잘생긴 형님은...
다른분들을 부추겨서 자기가 메이리리그 3인에게 도전하겠다고 공론화 하며 정치공세를 편다.
마침내 메이저리그 입성경기가 결정되었다.
난 혹시 질지도 몰라 비겁하지만 잔머리를 굴렸다 .
메이저리그 3인중 한명인, 당시 한참 민법 스터디에 매진하던 홍렬이 형님을 떠밀어 경기에 임하게 했던 것이다.
차라리 내가 임할것을.... 홍렬이형님이 그 전라도 형님의 이상한 스톱성 백쇼트에 고전하며 져버렸다.
홍렬이형님은 그 게임에 진후,
'나, 경기안하려고 했는데...너 때문에 괜한 경기를 하게 됐다' 며
나에게 버럭 화를 내고는 지우개를 던지며 의절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 형님하고는 2개월간 서로 말을 안했다.
PS. 서울대 법대의 위력을 실감한 순간이 있다. 당시 정법학사라는 소우주안에서, 탁구에 미쳐있던 15명 남짓한 고시생 중에서 그 형님만이 유일하게 1차에 붙었으니까... ( 그 형님이 2차에 떨어진것 뉴스보고 알았다. 핸드폰배터리 폭발한 시민 인터뷰에서 그 형님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자막에 직장이 어느 중소기업이었다.)
첫댓글 꿀잼입니다.
오래기다린 2부....잘봤습니다...^^
와... 실화같습니다..
무사님 필력이 좋으셔서 굉장히 몰입하게 되네요~^^ 실화를 기반으로 한건지 궁금하네요~~!
무사님은 시방 뭐하셔요?^^
되게 궁금하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글빨이 장난이 아니시군요~~^
아 이글을 보고나니 정모후기 3탄을 재정비해야 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