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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합격률의 허구성
1. 들어가는 말
변호사 시험의 합격자는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로스쿨제도가 우리나라 사법제도에 종사하는 핵심인력을 양성하는 제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문자격을 부여하는 국가시험의 선발기준이라면 마땅히 그것을 부여하는데 합당한 객관적인 자격기준이 무엇인가가 먼저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이점에 관하여 법무부는 모두가 수긍할 만한 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합격자 결정방법에 대한 논의는 몇 명을 뽑을 것인가 하는 논의로 변질되어 각계각층이 어느 정도의 합격자를 배출하는 것이 합리적인가에 대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내놓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이제 그 논의는 크게 두 가지로 수렴하면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 하나는 대한변호사협회가 제안하는 안으로서 변호사의 수급상황을 고려하여 변호사합격률을 입학정원대비 50%선에 고정시켜야 한다는 안이다. 다른 하나는 로스쿨 협의회측이 제안하는 것으로 로스쿨제도의 취지를 살리고, 교육을 통한 변호사의 양성이라는 애초의 목표에 맞게 응시자 대비 70%~80%, 입학정원대비 80% 이상의 합격률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근거로 얼마만한 인원을 선발할 것인가는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따라서 그 결정은 매우 신중하게 주요 현안에 대한 치밀하고도 타당성 있는 조사와 분석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타당성 있는 현실 분석과 검토 대신에 법무부는 ‘누적합격률’이라는 고뇌에 찬 개념을 내 놓았다. 그에 따르면 입학정원 대비 합격률을 50%, 즉 한해 당 1000명에 고정시켜도 5년간의 반복 응시를 통해 ‘누적적으로’ 기수 당 합격률은 80%에 육박하게 된다는 것이다. 얼핏 양측의 팽팽한 주장을 절충할 수 있는 묘안처럼 들리기도 하여 귀가 솔깃해진다. 누적합격률. 이게 무슨 소리일까?
2. 누적합격률과 입학정원대비합격률
2012년 첫 변호사시험을 치르게 될 로스쿨 1기생들을 기준으로 한해에 1000명, 즉 입학정원 대비 50%만 합격시켜도 그 학생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다섯 번의 기회를 다 사용할 경우 5년간에 걸친 기수 당 합격률이 80%에 근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누적합격률이라는 개념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개념이 사용하고 있는 전제, 즉 첫해에는 1000명만 합격하여도 그 이후 4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추가 합격자가 발생한다는 사정은 2기생 이후의 합격률에는 사실상 그 반대의 조건으로 작용하게 된다. 즉, 전 기수에서 추가합격한 숫자만큼 당해년도 합격정원이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5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 기수 당 누적합격률은 50%에 수렴하게 되고 그 언저리에서 정상화 된다. 그러니까 1기 2기의 경우 각 83%, 71%라는 누적합격률은 초기의 경우 경계효과로 나타나는 예외적인 현상일 뿐이다. 따라서 누적합격률을 이야기 하면서 1기의 경우를 예시로 드는 것은 실제합격률(50%)보다 종국적으로는 더 많은 학생이 합격할 수 있다는 식으로 사실을 오도할 우려가 있게 된다. 아래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경계효과가 나타나는 1, 2, 3기를 제외하고는 누적합격률과 입학정원대비합격률은 합격 인원수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고, 다만 누적합격률의 경우 입학정원대비합격률 50%를 5년에 걸쳐 분산하는 효과만을 가진다.
3. 5년 후 누적합격률의 현실
초기효과가 사라지고 합격률이 정상화 되는 5년 이후의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식으로 포장을 하던 결론은 응시인원대비 합격률은 13% 정도에 수렴하고, 당해 연도 졸업생 대비 초시 합격자의 비율 또한 13%가 된다. 이것을 인원수로 표현해보면 매년 7700여명이 시험을 치르고 그 중 1000명만이 합격하며, 초시합격자 수를 포함 매년 기수별로는 150명 내지 260명씩만 합격하게 된다. 이것을 수험기간이라는 시간 개념으로 환산해보면, 로스쿨 과정을 마친 후 학생들은 1년에서 4년, 즉 평균 2.5년간의 수험기간(로스쿨 수학기간을 포함하면 3년에서 7년, 즉, 평균 5년)을 사실상 강제당하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이는, 예외적으로 5년까지의 응시기회를 부여한다는 재시험응시 허용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150여명이 졸업 후 4년간 학원에서 수험생활을 하고 1000명은 4년의 수험생활 후 시험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시나리오이다.
4. 누적합격률의 실질적 의미
그렇다면 누적합격률은 실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적합격률이 입학정원대비합격률보다 크다는 것은 초기 3~4년까지의 예외적인 상황일 뿐이고 합격률이 정상화되는 시점에서 누적합격률과 정원대비합격률은 합격 인원수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차이는 단 하나 기수별 관점에서 보았을 때 누적합격률의 경우 정원대비합격률 1000명을 5년에 걸쳐 분산하는 효과만을 가진다는 점이다. 로스쿨 6기 입학생의 경우를 예로 들면 졸업 후 첫해부터 5회차 시험에 걸쳐 합격자 수는 300명-239명-198명-167명-144명의 분포를 보이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이는 수험생들에게 부여된 5회 재시험 허용이라는 기회의 이익이 역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원래 수험생에게 5회의 응시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3년간 로스쿨과정에 투여된 기회비용을 합리적인 선에서 보전해주고, 또 1회의 시험만으로 자격을 부여하는 제한적인 선발방식이 가지게 될 오류를 시정할 기회를 준다는데 있고, 1차적으로 이는 수험생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입학정원대비합격인원이 1000명으로 고정된 조건에서는 5회의 기회이익은 인위적인 배출인원의 통제를 통해 합격자체를 차후 연도로 유예시키는 역기능 만을 담당하게 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로스쿨이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에 관계없이 ‘구조적으로’ 2000명 입학정원 중 1700명(6기생 기준)의 학생들은 졸업 후 1~4년간 추가로 학원교육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중 1000명은 7년에 걸친 교육 끝에, ‘변호사로서의 자질과 실력을 갖추었는지의 여부에 상관없이’ 탈락한다. 이것이 법무부가 원하는 ‘질’ 이고 ‘로스쿨의 교육’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5. 기타 문제점
(1) 전제의 타당성
위 누적합격률 표가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점의 하나는 그것이 ①초시생, 재수생, 3수생 등의 합격률이 모두 동일하고 ② 모든 졸업생은 5회 시험 응시 후 탈락할 때까지 계속 응시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일반적으로 시험을 잘 보는 학생이 먼저 합격한다. 재수생이 수험경험에서 유리할 수도 있지만 3수 이상 수험생의 합격률은 초시생보다 상대적으로 낮을 수도 있다. 또 5수까지 하는 졸업생의 수는 위 표보다 적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모든 졸업생이 주어진 5회의 응시 기회를 모두 사용한다는 가정도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예컨대 1기 로스쿨 입학생의 경우 2000명이 입학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5~10% 인원이 감소하였다. 이것을 보면 재응시 기회마다 응시인원의 자연감소가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러한 사실은 자연감소가 합격률의 증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의 여부에 상관없이 누적합격률표가 전제하고 있는 가정들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 따라서 거기서 도출되는 주장이나 각종 지표들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예를 들어 2013년 시행 변호사시험의 경우 왜 1기 졸업생은 333명이 합격하고 2기는 667명이 합격하는가. 누적합격률 표는 이 숫자들의 타당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의미가 없는 숫자를 중요한 국가정책을 입안하는 근거로 사용할 수가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전제 ①과 ②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함축하는 것은 초기 누적합격률 예상이 실제보다 높은 수치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1기 83%, 2기 71%의 누적합격률은 실제보다 과장된 수치인 것이다. 전제 ①이나 ②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실증자료는 어디에도 없다. 법무부는 입학정원대비 합격률 80%안을 수용할 수 없는 근거로 누적합격률을 제시하고 있다. 입학정원대비 합격률 80%안에 따를 경우 1기의 누적합격률은 99.3%가 되어 거의 100%에 가까이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위의 ①과 ②의 전제가 모두 타당하다고 가정할 경우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①과 ②의 전제는 분명 틀린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하여 복잡한 현실을 의미있게 반영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2) 기수별 초시 합격률이 하락하는 문제
누적합격률 표에 따르면 기수별 초시합격률은 1기 1000명에서 시작하여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3기 때에는 500명 6기가 되면 300명, 8기가 되면 270명까지 줄어든다. 이 수치는 각 기수별 수험생 사이에 그에 상응하는 실력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당화되기 어려운 것이다. 1기 졸업생은 3년 수학 후 1000명 정도가 변호사가 될 자격을 갖추었는데 8기 졸업생은 272명만 자격을 갖춘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제도는 변호사의 수급조절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게 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결론은 합격률을 입학정원대비 일정 합격률로 고정할 때에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문제이다.
6. 맺음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누적합격률’ 개념은 ‘입학정원대비합격률’과 합격인원의 측면에서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고, 오직 1000명이라는 정해진 인원이 5년에 걸쳐서 나누어 배출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실질적 의미는 응시인원대비 13%의 합격률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무부는 왜 굳이 ‘누적합격률’이라는 지표를 사용하고자 하는 것일까. ‘누적합격률’ 과 ‘입학정원대비합격률’이 사실상 차이가 나는 것은 1기~4기에 이르는 초기 수험생의 경우뿐이므로 해답은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생각건대 법무부는 입학정원대비 합격률을 동원할 경우 기수별로 편차가 생기므로 대략 4기 정도까지는 입학정원대비 합격률을 더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 같다. 둘째로, 당장의 관심사인 1기 졸업생의 경우 합격생이 5년간 누적하면 궁극적으로 합격률은 80%를 상회할 것이기 때문에 대한변협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입학정원대비 50% 합격률을 도입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전자라면, 법무부의 안은 결국 응시자대비 13%의 합격률로 가자는 것이 된다. 매년 7700명이 시험보고 그 중 1000명이 합격하고, 매해 입학하는 로스쿨생 중 1000명은 7년동안 법을 공부하고 탈락하는 것.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되고 변호사법 시행령을 위임한 모법의 위임취지에도 반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이는 초기 응시자의 프리미엄을 미끼로 1, 2기 수험생의 반발을 무마하여 응시자대비 13%합격률 안을 일단 관철시키고 보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결국 4년만 지나면 누적합격률은 정상화되고 입학정원대비 50% 수준에 수렴할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앞서 지적한 것처럼 1기와 2기의 합격률이 각 83%와 71%에 이른다는 예측도 잘못된 전제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은 입학정원대비합격률이 ‘50%’로 고정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만은 아니다. 주4)에서 밝혔듯이 입학정원대비 합격률이 80%(이 경우 응시자대비 합격률은 28%에 수렴한다)가 되어도 근본적인 문제점은 치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정원제 선발이라는 개념이 가지는 구조적인 것이다.
누적합격률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확인시켜주는 것은 ‘합격률’이 응시자대비 합격률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과, 변호사시험은 자격시험으로 운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공허한 숫자놀이를 멈추고 변호사 선발제도가 단순한 변호사수급조절용이 되지 않도록 변호사 선발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자격기준이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지를 내실 있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출처 : CLJ 제4권
주1) 로스쿨협의회의 입장은 원칙적으로 로스쿨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은 특별한 준비 없이도 누구나 합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2) 매년 선발하는 1000명, 즉 입학정원대비 50%의 합격률을 입학정원대비합격률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주3) 6기를 기준하여 보면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게 되는 총 1048명 중, 초시합격자 300명을 제외하고, 239명은 졸업후 1년,
198명은 2년, 167명은 3년, 144명은 4년간의 수험기간을 추가로 갖게 된다.
주4) 입학정원대비합격률이 80%라 해도 시행 후 5~6년이 지나면 매년 5600명이 응시하고 1600명이 합격하여 응시인원대비
합격률은 28%까지 줄어들게 된다.
주5) 동일한 전제를 사시제도에 적용해 본다면 응시횟수에 제한이 없는 사시의 경우, 합격률이 5%라고 가정하도 누적합격률은
종국에는 100%에 가까워지게 된다는 궤변이 성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