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연기실습 2회차 수업일지
배우의 희곡 분석
이번 수업은 배우가 희곡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와 분석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연기의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희곡의 정확한 분석”이라고 강조하시며, 배우의 희곡 분석은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하셨다.
1. 스타니슬랍스키의 ‘내면의 진실’과 ‘서브텍스트’
① 내면의진실
‘내면의 진실’을 드러내려면 감정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실제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정서를 찾아야 한다.
② 서브텍스트(Subtext)
대사의 표면적 의미 아래에 숨겨진 인물의 진짜 의도, 숨은 생각, 감정, 전략이다.
즉, 인물이 입 밖으로 내뱉는 ‘말(text)’ 이면에 존재하는 ‘속 마음(속 뜻)’이다.
예시) “밥 먹었니?” 라는 대사는 같은 문장이지만
‘걱정, 분노, 안도, 사랑, 원망‘ 처럼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연기는 대사를 외워서 낭송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의 속뜻을 통해 찾아낸 정서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다.
2. 처음 희곡을 읽을 때, 배우의 자세
많은 배우들이 처음부터 자신의 역할만 보면서 캐릭터 분석을 시작하는 실수를 한다.
첫 번째 읽기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
“희곡을 처음 읽는 시간은 배우가 희곡 전체를 관객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일 수 있다.”
1) 공연을 처음 보는 관객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말고 한 번에 읽는다.
중간에
* 분석하지 말고
* 캐릭터를 연구하지 말고
*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고
그냥 공연을 본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는다.
모르는 장면이 있어도 공연장에서 멈출 수 없는 것처럼 희곡도 끝까지 읽어야 한다.
2) 첫 인상 기록하기
몇 번 읽은 후, 희곡이 하나의 공연 형태로 다가올 때 첫인상을 기록한다.
예시)
* 어디에서 마음이 아팠는가
* 어디에서 긴장했는가
* 어디에서 웃었는가
* 어떤 장면이 기억에 남는가
* 작품을 다 읽고 어떤 인상이 남는가
이 첫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나중에 관객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3) 처음 읽을 때는 희곡을 ‘거시적’으로 봐라.
“거시적인 것에서 미시적인 것으로 들어가라.”
처음부터 ‘내 역할’, ‘내 대사’, ‘내 감정’만 보면 작품 전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먼저 작품 전체->사건->줄거리->인물->대사의 순서로 다가가야 한다.
4) 줄거리 찾기
많은 배우들이 줄거리와 주제를 혼동한다.
-줄거리: 작품 안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조합
예시)
* 독고 교수가 자살했다.
* 가족들이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 그의 과거 행적을 다시 본다.
-주제: 그 사건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예시)
* 독고 교수가 갈구하는 자유란 무엇인가?
* 가정은 왜 파괴됐는가?
* 인간은 왜 고립되는가?
처음에는 주제를 찾으려 하지 말고 먼저 사건 자체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5) 희곡 분석은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처럼!
배우는 작품을 읽을 때 평론가처럼 읽는 것이 아니라 형사처럼 읽어야 한다.
예시) “독고가 자살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질문한다.
* 왜 죽었는가?
* 무엇 때문에?
* 언제부터?
* 어떤 사건이 있었는가?
* 누구 때문에?
* 어떤 자유를 원했던 것인가?
이 질문을 계속 따라가야 작품이 보이기 시작한다.
6) 지문은 연기디렉션이 아니다
초보 배우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지문에 “책상을 내리치며” 라고 쓰여 있으면 대부분 배우는 무조건 책상을 친다.
하지만 이것은 연기 지시가 아니라 말의 의미와 정서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한 보충정보이다.
7) 각 행동의 목표(Objective)
모든 행동에는 목적이 있다. 스타니슬랍스키가 말하는 Objective(일반적으로 ‘목표’라고 번역한다. ‘목적’이라는 말 보다는 좀 더 큰 의미로)는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에너지이다.
예시)
“앉는다.” 왜? 쉬기 위해서.
“화낸다.” 왜? 상대를 움직이기 위해서.
행동에는 반드시 목적(목표)가 있다.
9) 초목표(Super Objective)와 장면의 목표(Objective)
작품 전체에 걸쳐 인물이 갖는 목표를 ‘초목표(Super Objective)’ 라고 한다.
예를 들어 햄릿이라면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것.
이 작품에서는 독고의 초목표는 ‘가정이라는 새장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각 장면마다 초목표와 연관된 ‘목표(Objective)’가 존재한다.
모든 장면에서의 목표는 결국 초목표를 향해 연결된다.
10) 배우의 분석 vs 연출의 분석
연출:
* 작품 전체의 초목표(작품 전체가 보여주는 것)
* 장면의 목표와 기능
* 구성
*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배우:
* 내가 맡은 인물의 초목표
* 장면마다의 목표
* 각각의 행동은 왜 하는가
배우는 자신의 인물을 통해 작품 전체가 완성되도록해야 한다.
[좋은 배우: 분석을 잘하는 배우다]
연기는 감정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연기의 절반 이상은 “분석”이라고 말씀하셨다.
분석이 정확하면 오히려 연기는 자연스럽게 나온다.
반대로 분석이 부족하면 감정을 아무리 만들어도 관객은 이해하지 못한다.
3. 전사란 무엇인가
: 현재 장면이 시작되기 이전까지 있었던 모든 사건과 경험을 말한다.
① The Story Before:
지금 이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인물이 살아온 삶.
예시)
*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 어떤 상처가 있었는지
*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는지
② The Situation Before:
현재 장면 직전에 놓여 있는 상황.
예시)
* 오늘 아침에 누구와 싸웠는지
* 방금 어떤 말을 들었는지
* 어떤 감정을 안고 이 공간에 들어왔는지
③ The Moment Before:
행동하기 직전의 순간.
배우가 첫 대사를 하기 바로 전,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느꼈는가.
그로 인해 어떤 충동(Impulse)이 일어나는가--->목표가 만들어진다.
<당신, 안녕>에서의 중요한 전사
① 고부갈등
독고의 어머니와 아내의 심한 갈등. 이 갈등은 단순한 다툼이 아니라 어머니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정도의 큰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독고뿐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② 집이라는 공간
독고에게 집은 편안한 공간이 아니라 도망치고 싶은 공간이다. 집 안에는 늘 긴장과 침묵, 갈등이 존재한다. 그래서 독고는 집 안에서도 자유를 느끼지 못한다.
③ 소영과의 만남
객관적으로 보면 외도이지만, 독고에게 소영은 처음으로 숨 쉴 수 있었던 공간이다. 독고 역시 처음에는 갈등했고, 쉽게 관계를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고 설명하셨다. 그 고민의 흔적은 대사 곳곳에 숨어 있다.
④ 이 여사의 선택
이 여사는 남편과 소영의 관계를 알고 있었지만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모른 척하며 살아간다. 이 작품이 199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다는 시대적 배경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여성의 현실을 함께 고려해야 인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⑤ 명예퇴직
독고는 정년퇴직이 아니라 명예퇴직을 선택한다. 사회적 역할을 내려놓고 삶의 중심을 잃은 상태에서 소영을 만나게 된다. 이 또한 자살에 이르는 중요한 배경이다.
⓺ 시간순으로 사건을 정리해 보기
교수님은 독고의 삶을 연대기처럼 정리해 보라고 하셨다.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 독고의 감정 변화가 훨씬 잘 보인다.
4. 연기는 첫 대사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입시나 오디션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
배우들이 첫 대사를 하기 전에 억지로 감정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연기는 첫 대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첫 대사를 하게 만든 ‘직전의 자극’에서 시작된다.
예시) ‘유리동물원ㅡ
어머니가 계속 잔소리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더 이상 못되게 굴지 말고 내 말을 들어! 정 그러면, 나도 못 참는다!””라고 말한 순간, 아들 톰은 충동이 일어나고, 그 충동이 목표를 만들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행동(말과 움직임)한다.
즉, 감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극을 받아 충동을 느껴야만 한다.
5. Impulse Cue (충동이 일어나는 순간)
배우는 상대 배우의 행동에 반응해야 한다.
상대가 하는 말, 표정, 침묵,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 충동을 준다.
많은 배우들이 자기 대사만 형광펜으로 칠하지만, 사실 ‘내 대사는 상대의 행동(말과 움직임)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6. 듣는 연기
많은 배우들은 상대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상대 대사의 마지막 단어만 기억했다가 “이제 내 차례다.” 하고 말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대사의 리듬이 끊어지고, 장면은 늘어진다.
좋은 배우는 상대의 말을 들으며 그 순간 일어난 충동에 의해 생긴 ‘목표’를 가지고 말한다. 감정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에게 반응하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말하는 것 만큼이나 듣는 것이 중요하다’이다.
”반응이 연기를 만든다“
상대로부터 ‘충동’을 느끼지 못하면 연기는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
7. 장면 연기의 핵심
장면 연기는 긴 독백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말하고, 상대의 반응 때문에 다시 변하고,
그 변화가 또 새로운 행동을 만든다. 장면은 이렇게 계속 살아 움직인다.
#이번 수업 핵심정리
-배우는 처음부터 캐릭터를 연기하려 하지 않는다. 먼저 관객이 되어 작품 전체를 만나고, 사건을 이해한 뒤, 인물의 목적과 행동을 분석하며 천천히 그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연기는 감정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가’를 끝까지 탐구하는 과정이다.
-배우는 대사를 외우는 사람이 아니라 ‘사건의 원인을 몸으로 살아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장면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인물의 전사(The Story Before)
*이전 상황(The Situation Before)
*이전 순간(The Moment Before)
을 이해해야 한다.
-무대 위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과 행동을 진심으로 듣고 반응해야 한다.
-좋은 연기란 잘 말하는 연기가 아니라, 잘 듣고 진심으로 반응하는 연기이며, 그 반응은 인물이 살아온 모든 시간과 경험 위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다.
[지극히 사적인 수업일기]
나는 대본을 받으면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동굴 안으로 혼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무엇을 봐야 하는지 몰랐다. 그러니 빨리 답을 찾으려 했고, 빨리 잘해야 한다는 조급함만 커졌다. 그래서 정작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인물을 천천히 이해하려는 마음, 그 사람의 삶을 오래 들여다보는 시간,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태도. 필요한 게 참 많은데 빨리 도착하려는 강박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의 작은 의미를 너무 소홀히 했던 것이다.
한 사람의 행동은 결코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상처, 관계와 선택들이 모두 쌓여 지금의 한마디가 된다. 그러니 배우 역시 그 시간을 함께 살아봐야 한다. 그것이 전사를 만드는 일이고, 인물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제는 첫 대본을 받아도 예전처럼 겁부터 나지는 않을 것 같다. 아직도 동굴은 어둡겠지만, 적어도 어디를 향해 걸어가야 하는지는 알게 되었다. (일단 머리로는;;)
연출님이 알려주신 이정표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길을 잃지는 않을 것 같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보다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빨리 도착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끝까지 따라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