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국 미용실은 미스코리아를 얼마나 배출 했느냐에 따라 그 위상이 달라졌다
마샤 개선 1992년 궁선영까지 미스코리아 진 15명이 나왔다 미스코리아 산실이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다른 것보다 만 원 넘게 비싼 가격에도 2ㅇ대3ㅇ대 비 여성들이 줄을 섰다
사자 머리는 미용 트렌드를 바꿔놨다
어떻게 개발했나 당시 한국은 한복을 많이 입어서 올림머리를 많이 했는데
미스월드 같은 국제대회가 보니 서양 여성들은 머리를 풀어 한껏 불렀더라 머리에 영감을 주고 왕괸을 쓰니 얼굴이 작아 보이고 여왕처럼 우아 해 보였다
그 스타일을 한국에 처음 들어 왔더니 모든 미용실이 따라했다 나도 한 번도 사자머리라고 말한 적 없는데 얼른 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덕분에 유명해졌지만 아리따움 한테 사자 라니 미스 코리아를 어떻게 길러낼 갈까 영업이 끝나면
미용실에서 워킹 교육을 하고 피부 관리를 해 주고 치과의사가 와서 치아 교정도 했다
심사위원 앞에서 좀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스피치교육 됐다
이 과정에 1년에서 2년 걸렸다 걷는 자세만 봐도 진이 될지가 보였다
요즘으로 치면 아이돌그룹을 키우는 연예기획사와 비슷한 일을 한 셈이다
미스코리아 당선자가 늘면서 고객이 급증 했을 것 같다
예비신부들이 새벽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매장 계단에 1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들어왔다
한창때는 고객의 무려 명동 본점에 디자이너가 40명이 넘었다 한 종수는 미스코리아 대회 큰손으로 떠오르면서 각종 미인대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이 과정에서 몇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1993년에는 미스코리아 선발 과정에서 일부 지망생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 되기도 했다
당시 미스코리아 권력으로 불렸던 선발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욕도 받았는데
항소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쪽이 답답해진다 2023년 1월 14일 참사랑으로 이 글을 2023년 1월 14일 조선일보 토요일에 실린 글에서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1월 14일 참사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