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위에 선
임수민
우리는 저마다의 칼날 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느 집을 내려다봅니다
그 집은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수 있고
이층 벽돌집일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당신의 몫으로 떠넘길 수 있는데
가끔은 떠넘기는 게 좋아서 넘기곤 했습니다
밤마다 칼 가는 소리가 들리고
텔레비전 볼륨 소리가 높아집니다
우리는 어느 병동 앞에 서 있습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나의 운명을 정해줄지도 모릅니다
너는 어느 역 화장실 네 번째 칸
벌벌 떨고 있다
물을 내리며
이곳은 조용한 사람이 없어
손을 씻으며
시끄러운 사람이 되기로 했는데
그 순간 스크린 도어가 열린다
유독 사람이 많은
이곳에서 문이 열렸기 때문에
내렸습니다
내렸습니다
칼날은 무뎌지고
발이 아픈 아이들은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이름없는 구경꾼
뱃가죽을 닫으면 이곳은 전시장
나를 해석하는 밤이 시작됩니다
팸플릿을 펼쳐 들고 오늘의 순서를 살펴보는 저녁
환자의 이름이 걸려 있지만
해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대 위에는 침대가 놓여 있습니다
나는 그곳에 누워 초대된 관객을 바라봅니다
이것은 하나의 행위예술일지도 모릅니다
실밥이 풀리며 안전줄을 만들고
탯줄이 유리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발자국은 또 어떻고요
발가벗겨져도 상관없습니다
모두 나에게서 나왔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모두 나의 나체를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머리카락이 마르기도 전에
눈을 깜빡거리는 법을 찾기도 전에
예약 창은 오류를 범했습니다
이름 없는 전시장
나는 구경꾼을 번역하는 구경꾼
걷다
방울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걷고 있다
방울을 손에 쥔 채
모자를 떨궜다
줍지 않으면 허리를 굽힌 채
식사를 해야하는 밤이 오고
어디서 개가 울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울지 않았다고
대답하며 걷고 있다
울지 않으려고
나는 수저를 드는 사람
개밥을 맛있게 먹고
눈을 뜨면
겨울 햇살이 비추는
산신각 앞이었다
놀이터일지도 몰라
생각한 순간
미끄럼틀을 타고 있는
아이가 보이고
가마에 탔다
방울 소리를 따라 가마가
이동하는 동안
잃어버린 책가방에서
방울이 그려진 그림 카드가 나왔다
가마에서 내리며
신발을 잃어버렸다
시의 말을 대신 전해주는 사람
어느 순간 시는 왔습니다. 시가 문을 두드리며 먼저 찾아왔습니다. 문을 닫고 외면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서운 눈보라에 떨고 있는 시를 슬픔에 가득 찬 그 눈동자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저는 살며시 손을 맞잡아 주었습니다.
손을 맞잡은 그 순간 시가 제게 마음 한켠을 내주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여린 마음을 움켜쥐고 꿋꿋하게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시는 저에게 제 안에 있는 슬픔을 밖으로 꺼내 주었고 문장을 내어주었습니다. 저는 시의 응답에 답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가 내어준 슬픔과 기쁨이 문장이 되어 세상에 나왔듯이 제 시가 누군가에게 긴말하지 않아도 살며시 손을 맞잡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이 고민할 것이고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은 나날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제 시가 한 편의 위로가 되어줄 수 있으면 합니다.
시인은 시의 말을 대신 전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마음을 나누겠습니다.
시의 슬픔을 알게 해주신 정현우 시인님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시인님의 시집을 읽으며 시의 마음을 더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앞으로도 저의 최애 시인이십니다.
끝으로 시 쓰기를 포기해야 하나 생각한 순간에 쓰는 용기를 주신 계간 『시와산문』에 감사 인사드립니다.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 슬프면서 서늘하고 환상적인 시를 묵묵히 써내려 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뽑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시작부터 좋은 일이 많은 한해였습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합격부터 등단까지 저에게 과분한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기회를 주신 만큼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함께 청춘과 문학을 이야기하는 친구 성호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감사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