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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의 주인의 평지 설교
참고말씀: 마5:1-7:27; 롬12:2
읽을말씀: 눅6:1-49
주제말씀: 눅6: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 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첫째, 안식일의 주인임을 밝히시고 열두 제자를 사도로 부르시다(1-16절)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눅6:12)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한 일을 운운하자, 누구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이를 반박하셨습니까? 다윗이 성소에 들어가 진설병을 먹은 사실입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여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1-4절)
그러면서 자신을 그들에게 누구로 천명하셨습니까?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즉 안식일을 친히 만드신 분으로써, 안식일을 그 본래의 취지로써 가르치신다는 점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5절)
또 다른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누구를 고치셨습니까? 오른손 마른 사람입니다. 이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를 엿보는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무엇을 물으셨습니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은가 입니다.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 가사 가르치실 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 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무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6-10절)
왜 이 같은 질문을 하신 것입니까? 안식일은 무조건 안 하는 날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에 힘써야 하는 날임을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원컨대 우리도 물론 주일에 예배하고 말씀 배우는 일에 열심 해야겠지만,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에도 열심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편, 예수님은 열두 사도를 택하실 때 무엇부터 하셨습니까? 밤샘기도입니다. 즉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셔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12절)
왜 그리 하신 것입니까? 무슨 일이든지 기도보다 앞서지 말아야 하고, 또한 충분히 기도한 후에 진행해야 한다는 점을 몸소 본을 보이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원컨대 우리도 무슨 일이든지 충분히 기도한 연후에 실행에 옮길 수 있기를 원합니다.
둘째, 평지에 서서 귀한 말씀들을 베푸시다(17-49절).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 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눅6:17)
17절 이하는 마태복음의 산상수훈(마5:1-7:27)과 비교하여 소위 무엇이라고 일컫기도 합니까? 평지설교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은 말 그대로 산 위에서 가르쳐주신 말씀이라면, 본문은 평지에 서서 전해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 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17절)
산상수훈이 팔복(마5:3-12)을 말씀한다면, 여기서는 무엇과 무엇을 동시에 말씀하고 있습니까? 복과 화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지금 가난한 자, 지금 주린 자, 지금 우는 자, 지금 핍박을 받는 자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20-23절)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까? 지금 부요한 자, 지금 배부른 자, 지금 웃는 자, 지금 칭찬 받는 자입니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24-26절)
지금 우리의 경우는 어느 쪽에 속해 있습니까? 원컨대 지금 가난하고, 지금 주리며, 지금 울며, 지금 주를 위해 핍박을 받는 쪽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20절 하) 하늘에서의 상급이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23절 상)
또한 누구를 사랑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까? 우리의 원수, 즉 우리를 미워하고 저주하며 모욕하는 모든 사람입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27,28절)
어째서입니까? 그래야만 우리의 상급이 크고 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35절 상)
물론 우리는 무엇에 따라서 항상 그리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심 같이 우리도 인자한 자, 자비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느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35,36절)
한편,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없으므로,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39절) 우리는 먼저 무엇부터 힘써야 합니까? 우리 눈 속에 있는 들보입니다. 즉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려고 하기보다, 먼저 우리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빼려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41-42절)
사람은 무엇으로써 알 수 있다고 했습니까? 그의 열매, 즉 그의 행실입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질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43,44절)
아울러 사람은 어디에서 그 선이나 악을 냅니까? 마음에 쌓은 것입니다. 즉 선인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인은 마음에 쌓은 악에서 악을 내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45절)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마음부터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12:2 상)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까?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무엇과 같아서 능히 요동하지 않게 됩니까?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집입니다.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47,48절)
그러나 만일 듣고 행하지 않으면 어찌 됩니까? 흙 위에 주추를 놓은 자와 같아서 쉽게 무너지고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4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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