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3116] 2022년 7월 15일 금요일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것은 이런 좋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샬롬! 어젯밤도 혹시 밤잠 이루지 못하고 고생하신 건 아닌지요? 아무쪼록 오늘 하루 내내 평안하시길 빕니다. 아시다시피, 수많은 별들이 모여서 은하(銀河)를 이루는데, 하나의 은하에는 최소 100만개에서 최대 100조개의 별들이 모여 있답니다. 그런데, 이 우주에는 은하의 숫자가 2조개에 이른답니다. 그러니까, 태양은 그 무한대에 가까운 별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주를 알면 알수록 겸손해지게 마련입니다.(출처; C닷컴, 만물상)
저는 60평생을 제법 남부끄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1급 장애인이지만, 결혼도 했고 자녀들도 셋이나 낳아 길렀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누군가에게 신세지지 않고, 작가와 지식인으로서, 또는 강사로서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과연 누구 덕분일까요?
일단,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이 큰 사람일수록 큰 소명을 갖고 이 땅에 왔음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저에게는, 장애가 오히려 자산이 되고 있으며, 축복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장애로 인한 고통을 매일 스스로 감내하고 있긴 합니다.
저에게는 좋은 부모가 있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셨고, 저의 장애를 보완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해서 박사가 될 수 있도록 교육하셨고, 늘 제 편에서 응원했습니다. 또한, 저에게는 소중한 가족도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제가 장애인이라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고 자란 동생들, 그리고 저의 아내와 자녀들, 모두 저를 사랑하면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늘의 제가 있도록 만들어준 가장 큰 공로자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저의 친구들입니다. 장애를 가진 제가 학교에 다니고 사회생활을 무난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친구들은 지금도 저의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겪은 수많은 일은 추억을 넘어 저의 글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例)가 가방을 들어주는 일입니다. 학교에서 집까지 목발을 짚고 다닌 저에게는 늘 가방을 들어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 가방을 들어준 종순이와 기영이, 고1때 문석우와 조탁곤, 우리 집에 자주 와서 대화를 나눴던 김철용, 대학교 때 업어주던 노영진. 이런 친구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제가 있습니다. 그들 모두,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친구들입니다. 제가 이 나이까지 아직 건강하고 밝게 사는 것은 이런 좋은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출처; 빛과 소금, 고정욱 / 아동문학가)
글쓴이는 오늘의 자신이 있게 된 것은 친구들 덕분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건강하고 밝게 살아감으로써 그 친구들에게 보답’하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 친구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를 친구로 삼아주신 주님께 보답하는 길’은 ‘어려운 이웃의 친구가 되어 도와주면서 사는 것’이고, 나아가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도 행복하게 사시길 축원합니다.(물맷돌)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나는 친구가 됩니다. 주의 법도를 지키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나는 친구가 됩니다.(시119:63,표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령하는 것을 너희가 실천하면, 너희는 바로 내 친구이다.(요15:13-14,현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