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방식 그대로…의전·의상·의미 담아 메시지 발신
영국 왕실, 외교 언어 대신 색·제스처로 캐나다 주권 뒷받침
찰스 국왕이 캐나다를 향해 잇따른 상징적 메시지를 내보이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도발에 침묵 대신 행동으로 응수하고 있다.
최근 마크 카니 총리와의 공식 회동을 시작으로 붉은 넥타이 착용, 단풍나무 식수, 군 의전도(검) 수여 등 왕실 고유의 방식으로 캐나다와의 유대를 강조하고 있다.
런던 버킹엄궁에서 열린 카니 총리 접견 당시, 국왕은 캐나다 국기 색과 동일한 진홍색 넥타이를 착용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외교적 긴장 속에서 이처럼 명확한 색상을 선택하는 것은 왕실 내부에서 의도된 메시지로 간주된다.
이어 캐나다 상원 블랙로드 의전관인 그레그 피터스에게는 새로운 의전용 검이 전달됐다. 이 검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서 찰스 국왕으로 왕위가 승계된 것을 기념해 제작된 것으로, 캐나다 주권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사용된다. 행사에는 레이몬드 가녜 상원의장도 함께 참석했다.
찰스 국왕은 또 왕실 정원에서 단풍나무를 직접 심었다. 이 나무는 캐나다 국기 중앙의 상징물로, 국왕이 직접 식수를 진행한 것은 캐나다에 대한 존중과 지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행위다. 식수는 '퀸스 커먼웰스 캐노피' 사업의 일환이자, 엘리자베스 여왕의 유산을 잇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국왕은 최근 왕립 해군 함정 방문에서도 캐나다 군 훈장을 착용하며 영국 군주로서 동시에 캐나다 군 최고사령관임을 상기시켰다. 이는 외형적인 의전이 아닌, 캐나다와의 법적·상징적 관계를 강조한 신호로 해석된다.
왕실의 행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거듭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병합하겠다고 언급한 것에 대한 간접적 대응으로 풀이된다. 왕실은 정치에 개입할 수 없는 헌정 체제 속에서, 의상·의전·선물 등 상징 수단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과거 미국과 긴장이 고조됐던 시기, 캐나다 총독에게 받은 브로치를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회담 자리에서 착용하며 비슷한 방식을 사용한 바 있다.
찰스 국왕의 행보는 쥐스탱 트뤼도 전 총리와의 마지막 회담 이후부터 더욱 강화됐다. 당시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의 ‘독립된 미래’와 ‘국가 정체성’에 대해 국왕과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 고등판무관 랠프 구데일 역시 공공연히 왕실의 상징 정치에 감사를 표한 바 있다.
왕실 공식 방문은 캐나다 총선을 앞두고 일정을 잡기 어렵다는 점에서 당장 성사되진 않겠지만, 왕실은 다양한 방식으로 캐나다에 연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외교 압박 속에서 캐나다와 연방 관계를 유지하려는 신호로 해석된다.
최근에는 찰스 국왕의 애플뮤직 플레이리스트에도 캐나다 가수 마이클 부블레의 대표곡이 포함되며 눈길을 끌었다. 음악까지 포함한 이러한 ‘소프트 메시지’는 군주제의 상징성을 더욱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찰스 국왕은 “음악은 기쁨을 주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했다. 국왕의 메시지는 직접적인 정치 발언 없이도 왕실의 입장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에도 캐나다를 향한 다양한 상징 메시지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