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바람꽃 순례(2) – 청계산(국사봉,이수봉,석기봉,매봉,옥녀봉)
1. 변산바람꽃
(…)
지루한 겨울이 언 강을 녹이며 떠나는 것은
꽃들의 가슴에 따뜻한 시련을 수놓기 위함인가.
하찮은 풀꽃이 눈을 비비고
게으른 별꽃이 기지개 켜는 길목에서
외롭게 바람 타는 변산바람꽃,
오늘, 환한 웃음이 유쾌하게 들리는 것은
새롭게 열리는 봄,
아득한 네 향기의 덕이려니
―― 김종영, 「변산바람꽃」
▶ 산행일시 : 2024년 3월 4일(월), 맑음, 미세먼지 나쁨
▶ 산행코스 : 금토마을,두레이골,국사봉,이수봉,석기봉,혈읍재,매봉,옥녀봉,굴바위산,개나리골,서원마을,
청계산 입구역
▶ 산행거리 : 도상 14.4km
▶ 산행시간 : 5시간 45분
▶ 갈 때 : 세곡사거리에서 231번 버스 타고, 종점인 금토동삼거리에 내려 금토마을까지 걸어감(종점 한 정류장
전에 내려야 했는데 잘못 내렸다)
▶ 올 때 : 개나리골 서원마을로 내려 청계산 입구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10 : 55 – 금토(金土)마을 능안골 등산로 입구, 산행시작
11 : 18 – 청계산 유격장 교장, 두레이골
11 : 31 – 변산바람꽃 탐화( ~ 13 : 01)
13 : 22 – 국사봉 능선 안부
13 : 31 - 국사봉(國思峰, 542.0m)
14 : 00 - 이수봉(二壽峰, 545m)
14 : 23 - 석기봉(石基峰, 583m)
14 : 43 - 혈읍재(血泣-)
14 : 54 – 매봉(582.5m)
15 : 34 – 옥녀봉(玉女峰, 375m)
16 : 40 – 청계산 입구역
2.1. 산행지도
2.2. 산행 그래프
작년 이맘때도 그랬지만 금토마을 두레이골을 찾아가기가 어렵다. 네이버 ‘길찾기’에서 안내하는 대로 세곡사거리
에서 231번 금토동삼거리 종점 가는 버스를 탔다. 종점 한 정류장 전에 내리면 그나마 나았을 것을 종점에서 내리니
금토마을이 훨씬 멀어졌다. 2km도 더 된다. 금토동은 판교테크노밸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공사차량들이 오고
가서 온 동네가 먼지투성이이고 미로다. 오룩스맵 켜고 들여다보며 간다. 공사 중인 빌딩 숲을 돌고 돌아 금토천을
거슬러 오른다.
금토마을 표지석이 있는 산행들머리다. 커다란 ‘청계산 등산로 종합안내도’에는 현 위치가 청계산 국사봉을 오르는
능안골 등산로 입구다. 외길이다. 산불감시초소 지나고 등산로 방향표시 따라 오른다. 변산바람꽃이 자생하는 두레
이골로 가기는 의외로 싑다. 산불감시초소에서 100m쯤 갔을까 군 보안시설 경고판이 안내한다. 경고판이 이정표
다. ‘경고’라는 큰 글씨 아래 ‘이 지역은 보안시설이므로 무단 출입 및 사진촬영을 금합니다.’라고 백산연구소장 명의
로 세웠다.
그 경고판 옆을 오간 인적 뚜렷하다. 인적이 헷갈릴만하면 경고판이 또 나타나고 연속해서 나타난다. 번번이 철조망
을 치고 막기도 했지만 지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도록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서 납작해졌고, 튼튼한 철조망은
바로 그 옆으로 돌아간다. 산등성이 두 차례 넘고 구레이골 계류 건너 임도에 오른다. 임도는 청계산 유격장 가는 길
이다. 금토마을에서 20분 정도 가면 청계 유격장 갈림길이 나오고 아래쪽 임도를 좀 더 가면 유격장 교장이 나온다.
교장 끄트머리에서 임도는 끝나고 왼쪽 계류 건너로 인적 뚜렷한 등로가 이어진다. 계류는 산골짝이 울리는 봄의 교
향악을 연주한다. 등로 옆에서 작년에 변산바람꽃을 본 장소가 아닌 데서 그 꽃을 본다. 반갑다. 금토마을에서 여기
까지 1.76km를 35분 걸렸다. 내가 늦게 왔는지 시들었다. 굳이 변산바람꽃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땅바닥이
유난히 반질반질한 데는 의심해야 한다. 그 주변에 반드시 변산바람꽃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하니 저 위쪽은 얼마나 만발했을까 궁금하여 발걸음이 조급해진다. 계류 건너고 언덕배기 오르고 지계곡 건너
고 산자락을 돈다. 아, 그 자리 작년에 화려했던 자리가 황량하다. 굵은 나뭇가지를 둘러 사람들이 조심해서 접근하
도록 했는데 겨우 한 송이만이 외롭게 고개 들고 있을 뿐 맨땅이다. 내가 작년의 그 자리를 몰라보는 것은 아닌지 더
위쪽을 더듬어보지만 변산바람꽃은 없다. 다시 정밀하게 찾아보자 하고 방금 전에 처음 꽃을 본 장소까지 내려간다.
걸음걸음 허리 굽혀 자세히 살핀다. 그러나 없다. 이대로 끝나고 마는가 아쉬움을 달래려고 산이나 가자 하고 마음
을 고쳐 잡는데 국사봉 쪽에서 두레이골로 내려오는 등산객 한 분을 만난다. 혹시 오시는 도중에 변산바람꽃을 보셨
는지 물었다. 벌써 변산바람꽃이 나왔나요 하고 되묻는다. 이 아래 쪽에서는 이미 시들기 시작합니다 하고 이곳
상황을 알렸다. 그 등산객은 청계산을 철따라 하도 자주 다녀 골골의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다.
3. 금토마을 두레이골
4. 변산바람꽃
그렇다면 골 건너편 쪽 상당히 너른 자리에 해마다 많은 변산바람꽃이 피는데 거기는 어떨지 모르겠다고 한다. 내가
모르는 장소다. 거기를 제발 알려달라고 사정했다. 우선 점심 먹고 함께 가자고 한다. 계류 옆 암반에 자리 잡고 각
자 싸온 도시락을 편다. 그 사람도 나도 탁주는 가져오지 않았다. 밥 먹는 중에 그 사람으로부터 청계산의 식물분포
를 배운다. 개복숭아, 꿩의바람꽃, 노루귀 등이 어디에서 자라는지.
그 사람이 앞장서고 계곡 왼쪽 돌길을 간다. 곳곳에 잔설이 있다. 눈밭에는 선답의 발자국이 드문드문 눈에 띈다.
지계곡 근처다. 변산바람꽃이 우후죽순마냥 여기저기 이제 막 긴 잠에서 눈 비비며 깨어나고 있다. 납작 엎드려 눈
맞춤 한다. 팔꿈치와 무릎이 얼얼하도록 눈 맞춘다. 새삼 내가 인복이 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엊그제는 변산
청림마을에서 그 동네 근처에 사는 분을 만난 덕분에 그곳 변산바람꽃을 볼 수 있었고, 오늘은 이 사람을 만난 덕분
에 나로서는 청계산의 새로운 변산바람꽃 자생지에서 그 꽃을 본다.
서로 갈 길을 간다. 그 사람은 하산하고 나는 등산한다. 골짜기 낙엽 수북한 등로를 한참 오르다 지계곡 지나 가파른
사면을 오른다. 일단의 등산객들과 마주친다. 변산바람꽃의 소식을 묻는다. 그 장소는 내가 알려주어도 찾지 못할
것 같다. 이제 막 올라오더라고만 대답했다. 국사봉 능선에 올라선다. 463m 고지다. 여기도 보안시설 경고판과
철조망이 있다. 여기서 국사봉까지 0.4km다. 들른다. 북릉이라 눈길이거나 빙판이다. 청계산 눈길도 미끄럽다.
국사봉을 네 피치로 오른다. 아이젠은 준비하지 않았다. 밧줄 핸드레일 붙잡고 오른다. 한바탕 거친 숨에 국사봉
정상이다. 박성태의 『신 산경표』(2004, 조선일보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한에 국사봉은 77개가 있다(국토정보플
랫폼의 지명사전에 등재된 국사봉은 80개다). 대개 한자로는 ‘國師峰’ 또는 ‘國士峰’ 등으로 표기하는 데 ‘國思峰’은
이곳과 전북 장수의 ‘國思峰(559m)’ 두 곳이다.
이곳의 국사봉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자 청계산에 은거하던 조윤(趙胤, 나중에 조견 趙狷으로 개명했
다)이 멸망한 나라를 생각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전북 장수의 국사봉은 “약 500년 전에 나라의
충신들이 피난하여 이 산봉에서 나라의 일을 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려가 망하기 전에 형인 조준(趙浚)이 조윤으로 하여금 영남안찰사(嶺南按察使)를 맡게 했다. 이때 조윤이 지은 시
다. 조선 건국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였다.
삼년 동안 두 번 영남루를 지나니
은은한 매화 향기 나를 머물라 권하는구나
술 마시며 근심 씻고 노년을 보낼 만하니
평생에 이 밖에 또 무엇을 구하리
三年再過嶺南樓
細細梅香勸少留
擧酒消憂堪送老
平生此外求不須
이수봉을 향한다. 쭉쭉 미끄러지며 쾌속으로 내렸다가 그 반동으로 오른다. 봉봉 오르고 내린다. 이수봉 오른쪽에
이동통신중계기 시설이 자리 잡은 목배등 544m봉은 들르지 않는다. 작년에 조망이 트일까 하여 거기에 갔으나
정상 주변은 높은 철조망을 둘러서 접근할 수가 없었다. 이수봉도 한적하다. 곧장 석기봉을 간다. 이곳 소나무들도
지난 폭설로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수많은 나뭇가지들이 그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꺾였다.
헬기장 지나고 석기봉을 들른다. 청계산에서 최고의 경점은 석기봉이 아닐까 한다. 청계산 주봉인 망경대는 철조망
두른 군부대 안쪽에서는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그 바깥에서는 조망이 잡목에 가린다. 선답의 흔적 쫓아 암릉을 오른
다. 한 차례 밧줄 잡고 오르기도 한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매우 심하다. 근경은 흐릿하고 원경은 가물가물하다. 석기
봉에서 망경대를 넘어간 몇몇 발자국이 나더러도 따라오라 유혹한다. 애써 참는다.
뒤돌아서 이정표가 안내하는 등로 따른다. 망경대 군부대를 크게 오른쪽으로 돌아 넘는다. 예외 없이 북쪽 사면은
눈길이다. 데크계단을 오르고 내린다. 그러다 한 피치 내린 안부는 혈읍재다. 이정표에 ‘매봉 0.7km, 12분’이다.
잰걸음으로 재보았다. 11분 걸렸다. 매봉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올랐다. 청계산 정상 노릇을 하는 매봉이다. 정상
표지석 뒷면에 유치환의 「행복2」라는 시의 제1편을 새겼다.
내 아무것도 가진 것 없건마는
머리위에 항시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이렇듯 마음 행복되노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치환의 또 다른 「행복」이란 시다. 아마 이영도 시인을 두고 썼으리라.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이 1967년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이영도 시인은 다음의 「탑3」라는 시로 그를 추모했다.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愛慕는
舍利로 맺쳐
푸른 돌로 굳어라.
매봉 아래 매바위에서도 조망은 캄캄하다. 매바위 아래 돌문바위는 청계산 정기(精氣)를 받고자 한 바퀴 돈다. 헬기
장 지나고 옥녀봉을 향한다. 긴 계단 내리막이다. 계단 길이 오를 때는 적당했는데 내릴 때는 그 간격이 어정쩡하여
종종걸음 한다. 원터골 ┣자 갈림길 안부에서 바닥 치고 완만하게 오른다. 한적한 오솔길이다. 옥녀봉을 오르는 뜻
은 거기서 관악산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관악산이 실루엣이라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랬다. 관악산을 잘 볼 수 있도록 키 큰 나무들을 베어내서 전망이 훤히 트인다. 관악산이 좌우 균형 잡힌 모습이
다. 전망대 난간에 턱 괴고 오래도록 바라본다. 이로써 오늘 산행의 목적인 변산바람꽃과 조망은 달성했다. 하산한다.
그런데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이제 시작된다. 옥녀봉에서 방금 온 길을 뒤돌아 0.4km 가서 왼쪽의 진달래능선
을 타고 원터골로 간다는 것을 착각했다. 옥녀봉 북쪽 능선을 진달래능선으로 알았다. 작년에 원터골에서 진달래능
선으로 옥녀봉을 오를 때는 안개가 워낙 짙어 등로 주변의 사정을 알 수 없기도 했다.
개나리골 입구 가는 옥녀봉 북쪽 능선을 진달래능선으로 알고 쭉쭉 내린다. 과천 추사박물관 가는 갈림길을 지나고
다시 산을 오른다. 막판이라 첨봉으로 보이는 굴바위산(193.7m)을 오른쪽으로 길게 돌아 넘으니 양재물류센터가
저 아래다. 잘못 내렸다. 비로소 회복불능인 줄을 깨닫는다. 뒤돌아 개나리골 입구 갈림길로 가서 그쪽 지능선을 잡
는다. 인적이 흐릿해지고 서울추모공원이 가까운 왼쪽 사면 아래다. 오른쪽 등로 잡는다. 농로 지나고 경부고속도로
굴다리 지나 서원마을이다. 청계산 입구역이 멀다. 산길이면 몰라도 도로를 터벅터벅 걷기란 퍽 따분하고 힘들다.
31. 청계산 망경대(618m)
32. 석기봉에서 조망, 멀리는 광덕산과 백운산
33. 멀리 가운데는 모락산
34. 멀리 가운데 오른쪽은 모락산
35. 멀리 가운데 오른쪽은 안양 수리산, 앞 오른쪽은 매봉(368m)
36. 옥녀봉에서 바라본 관악산
첫댓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또 새로운 변산아씨 집을 알아내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아래쪽은 시들고, 위쪽은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청계산도 산행과 아울러 꽃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야생화 사랑이 대단하십니다. 언제 보아도 예쁜 곳이네요...아네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