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넷째 주 그룹큐티나눔
공동체를 위한 중보기도
예레미야애가 3:55-66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기도하는 이 시간(찬송 361장, 구 480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선지자는 유다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파괴된 예루살렘과 포로가 되거나 피폐해진 유다 백성을 자신과 하나로 여깁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1인칭 시점으로 유다 공동체의 슬픔을 노래하고, 유다 공동체의 간구를 읊습니다. 선지자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듯 보이는 것도 사실은 유다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 앞에 섰으니, 선지자의 탄식은 유다 전체의 탄식이며 선지자의 간구는 유다 전체의 간구입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선지자는 자신의 탄식과 부르짖음을 주께서 들어주시길 간구합니다(55-57절).
1) 선지자는 어디에서 주의 이름을 부릅니까(55절)?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예레미야가 예언 사역을 할 때 유다 백성은 그를 반역자로 몰아 구덩이에 던져 죽이려 한 적이 있었다(렘 38:1). 이때 구스인 에벳멜렉이 왕께 요청하여 선지자를 구해냈다(렘 38:8-13). 겉으로만 보면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구출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역사하신 것이다. 선지자는 과거 이런 하나님의 돌보심을 통해 죽음의 구덩이에서 구원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님께 다시 구원을 요청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선지자 한 개인의 구원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원을 요청한 것이다. 선지자는 자신을 공동체와 하나로 연합시켜서 행동하고 있다. 즉 선지자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부른 것은, 마치 유다 공동체가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 선지자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십니까(56, 57절)?
그에게 가까이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다.
선지자가 구덩이에서 탄식하며 구원을 간구할 때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외면하지 않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신다. 시편 30:2; 40:2-4; 103:4에서도 시인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서 위로하고 고쳐주시는 내용이 나온다. 선지자는 공동체와 자기를 일원화해서 공동체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런 선지자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유다 공동체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신다. 즉 유다 공동체가 현재 포로 상황 가운데 있지만, 장차 다시 회복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절망의 구덩이에 빠져 있을 때조차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신다.
나눔 1 선지자는 깊은 구덩이에서 자신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우리 가정이나 사회, 신앙 공동체에 있는 깊은 구덩이 같은 현실은 무엇인지 이야기해봅시다.
2. 선지자가 주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간구합니다(58-66절).
1) 선지자가 주께서 기억하시길 바라는 일은 무엇입니까(58절)?
주께서 선지자의 원통함을 풀어주시고 그의 생명을 속량하신 일이다.
선지자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를 구원해주셨는지를 상기시킨다. 원수들이 이유 없이 선지자를 치며 죽이려 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참조. 애 3:52; 렘 39:15-18). 이처럼 하나님께서 과거에 선지자의 변호인이 되어주며 위로하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유다 공동체를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선지자는 자기 생명을 속량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공동체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구원을 간구한다.
2) 선지자가 주께 간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59-62절)?
주께서 선지자가 겪는 억울함을 보고 계시니 예전처럼 그의 원통함을 풀어주시는 일이다.
선지자는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선지자와 연합된 유다 공동체가 매우 억울한 상황에 직면했음을 하소연한다. 그래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유다 공동체의 원통함을 풀어주시길 간구한다. 선지자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하신 걸 바탕으로 현재 억울함을 풀어주시길 간구한다. 대적이 하나님의 백성을 모해하고 조롱하며 비방한 것을 하나님께서 다 들으셨다고 선지자는 말한다. 즉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현재도(그의 백성이 포로가 된 상황) 백성의 고통 소리를 다 듣고 계신다는 것이다.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사로잡혀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기도하거든 그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간구했다(참조. 왕상 48-49). 예레미야는 이 기도의 전통에 따라 자신의 백성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고 있다.
3) 선지자는 자신을 조롱하는 원수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해주시길 간구합니까(63-66절)?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보응하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셔서 멸하여 달라고 간구한다.
원수를 향한 저주 기도는 이미 첫 번째 애가 결론부에 나타난 바 있다(참조. 애 1:21-22). 선지자는 다시 한 번 대적을 저주하는 기도를 한다(65-66절). 이는 단지 개인적 보복을 요구하는 간구가 아니다. 이것은 공동체가 대적으로부터 받은 불의한 대우에 대해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해주시길 바라는 기도다. 유다 백성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께 징계 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교만하게 선을 넘고 하나님 노릇하면서 유다를 핍박한 바벨론의 범죄 역시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하나님께 단지 개인의 원통함을 풀어달라고 간구한 게 아니라 공동체가 원수에게 당한 억울함을 하나님께서 풀어주시길 간구하고 있다. 공동체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성도들은 파편화된 개인 탄식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공동체가 하나 되어 한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럴 때 개인도 공동체와 더불어 구원받을 수 있다.
나눔 2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죄를 지을 때 징계하시지만, 그들의 원통함을 방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참조. 눅 18:1-8). 억울한 일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해주신 경험을 나눠봅시다.
나눔 3 대적의 심판을 간청하는 선지자의 기도는 사적인 보복기도가 아니라 공동체가 당한 억울한 일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는 중보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의지하며 공동체를 위해 드려야 할 중보기도는 무엇입니까?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깊은 구덩이에 빠져 소망을 갖기 어려울 때, 더욱 주께 부르짖는 믿음을 주소서.
공동체 _ 우리의 억울한 상황을 외면하지 마시고 악한 권세로부터 지켜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