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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절기에 관한 법
출 23:14-19
14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7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18 너는 네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제물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지니라
19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출 23:14-19 / [3대 명절] 너희는 해마다 세 차례 내 앞에서 명절을 지켜라. 15)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는 무교절을 지켜라. 내가 너희에게 이미 명령한대로 아빕월 가운데 지정한 시기에 이레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어야 한다. 그 달에 너희가 애굽에서 나온 까닭이다. 너희가 내 앞에 나아올 때에는 누구든지 빈손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16) 너희가 밭에 씨뿌리고 애써 가꾸어 농사 지은 것 가운데에서 첫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ㄱ) 맥추절을 지켜라. 또한 너희가 한해 동안 애써 농사 지은 것을 연말에 거두어들이는 ㄴ) 추수절을 지켜라. (ㄱ. 히. 하그 하카치르. 오순절이라고 한다(레23:16) ㄴ. 히. 하그 하아시프. 초막절, 장막절이라고도 한다.(레23:34,신16-13) 17) 이렇게 남자들은 한해에 세 차례씩 주님이신 여호와 앞에 나아와야 한다. 18) 너희는 희생제물의 피를 내게 바칠 때 누룩을 넣은 떡과 같이 바쳐서는 안 된다. 또 명절 때 나에게 바치는 희생제물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도 안 된다. 19) 너희 토지에서 생산해 낸 농작물 가운데에서 처음 익은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너희의 하나님 나 여호와의 집에 바쳐라. 너희는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아라.
본문은 농경사회를 바탕으로 하는 세 절기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할 3대 절기인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입니다.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14-16) 속죄절, 유월절 등도 이스라엘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농사와 연관되어 있는 절기는 아닙니다. 반면에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은 농사와 관련이 있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들로 인해서 이제 농경사회를 바탕으로 출범하게 될 국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주권과 축복을 인정하고 기념하는 계기를 삼을 것입니다. 먼저 무교절은 유월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절기로서 보리를 수확할 때 시작됩니다. 무교절은 유월절 밤부터 시작하여 7일 동안 지속하여 그 달 21일에 끝납니다. 이 기간에는 누룩이 들어있는 빵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유월절의 양고기가 남아 있어서도 안 됩니다. 무교병을 먹으며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해야 합니다. 두 번째 절기인 맥추절은 수확의 첫 열매 중 제일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날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날이기도 합니다. 맥추절을 칠칠절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이후에 오순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유월절에서 50일째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무교절이 보리 수확을 알리는 절기였다면 맥추절은 밀 수확의 완성을 알리는 절기였습니다. 끝으로 수장절은 농사력이 끝나는 가을에 지키던 절기로서, 농사 지어 수확한 것을 저장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수확이 다 끝난 후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기억하여 7일 동안 초막을 짓고 거하며 절기를 기념한다고 해서 초막절이라고도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 등으로 초막을 세우고 이 안에 거하는데, 처음에는 추수 때에 비로부터 추수할 작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시작되었으나, 후에 광야 시절을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준수해야 할 네 가지 원칙(18-19) 첫째는 유월절 행사를 지킬 때 누룩을 넣은 유교병을 지니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누룩은 부패하기 쉽고 유월절 때에 하나님이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월절 양에서 채취한 기름은 해 뜨기 전 모두 태우고, 남은 고기도 모두 태워야 합니다. 둘째 맥추절에는 모든 수확물의 처음 거둔 가장 좋은 열매를 선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아서는 안됩니다. 이런 행위는 잔인할 뿐 아니라 가나안 사람들의 식생활과 종교의식을 좇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사람들은 최고의 맛을 내고 일종의 주술적 의미까지도 포함하여 어미의 젖으로 새끼 염소를 삶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의 종교 행위를 모방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적용: 절기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이정표와 같은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일체감과 정체성을 되새기는 중요한 예배의 순간이었습니다. 당신에게도 이런 예배의 날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시간은 구원 받은 모든 자들이 함께 모여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들을 기억하는 시간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다시 한 번 나의 신앙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설 교 >
세 절기에 관한 규례
출애굽기 23:14-19 / 손재호 목사
한국의 대부분의 개신교회는 절기예배를 행합니다. 절기를 지키는 것은 성경에서 명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모든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날과 달을 지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절기예배를 드리는 것은 잿밥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15절 끝부분을 보면 “빈손으로 내 앞에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많은 목사들이 절기를 지키라고 하면서 이 부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는데 어떻게 빈손으로 오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전통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절기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깁니다. 저희 교회는 절기예배를 행하지 않는데 그래서 많은 분들이 왜 추수감사예배를 안 드리느냐, 성탄예배를 안 드리느냐고 하며 마치 이상한 교회처럼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날과 달과 절기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39절을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경이란 구약을 말합니다. 구약 전체가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요한복음 5:40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고 했습니다. 구약의 모든 성경이 다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이 다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이며, 오늘 살펴볼 절기도 다 예수님을 증거 하는 그림자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2:16-17절을 보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은 모두 장래 일의 그림자입니다.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실체가 나타난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하는데 아직도 그림자를 붙들고 있는 것이 바로 절기를 지키는 모습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골로새서 2:19절을 보면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합니다.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 사이에 다른 것을 끼워 넣으면 몸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이런 것을 가지고 힐문하지 못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년 지켜야 할 세 절기에 관한 규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을 지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여야 합니다(17).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세 절기들의 의미가 무엇이며, 이스라엘로 이 절기들을 지키게 하신 의미가 무엇인지 배우고자 합니다.
먼저 18-19절을 보면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희생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찌니라.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찌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찌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출애굽기만이 아니라 레위기와 신명기의 3대 절기에 따라 나오는 세부적인 지침들 입니다. 제물의 피를 누룩 넣은 떡과 함께 드리지 못하게 하고 절기의 기름을 아침까지 두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유월절의 고기를 아침까지 두지 못하게 하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토지의 처음 익은 열매를 너희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토지소산의 맏물이여호와의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맏물이 드려짐으로 나머지가 거룩하게 된다는 것을 지난 시간에 봤습니다. 그리고 염소 새끼를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왜 이렇게 명하시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풍요와 다산을 비는 가나안의 종교 풍습의 하나로 보기에 금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율법의 말씀을 유대인들이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지키는가 하면 고기와 우유를 함께 먹지 않는 것입니다. 고기와 아이스크림도 함께 먹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위에 들어가서 함께 섞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기를 먹고 적어도 몇 시간이 지나서 우유를 먹게 합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율법을 지켜온 유대인들이 율법의 완성 자이신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이것은 율법이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기능을 충실히 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키라고 하신 세 절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무교절입니다. 14-15절을 보면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무교절을 지키라고 합니다. 무교절이란 누룩 없는 떡을 일주일간 먹는 절기입니다. 이 무교절은 유월절 바로 다음날부터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교절이라고도 하고 유월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왜 이 절기에 누룩 없는 떡을 먹어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 급히 나오느라고 발효되지 않은 반죽으로 떡을 구워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교절을 지킨다는 것은 유월절을 기억하는 장치가 되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살아남은 자들이 이스라엘이기에 이 날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나타내줍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을 잊어버리면 이스라엘이 자기 정체성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유월절과 무교절은 가장 중요한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유월절과 무교절을 어떻게 지킨 것입니까? 신명기 16:1-8절을 보면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 예식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우양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되 유교병을 그것과 아울러 먹지 말고 칠일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아울러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속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너의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그 칠일 동안에는 네 사경 내에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할 것이요, 또 네가 첫날 해 질 때에 제사 드린 고기를 밤을 지내어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며, 유월절 제사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드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 고기를 구워먹고 아침에 네 장막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너는 육일 동안은 무교병을 먹고 제 칠일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라”고 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며 무교병을 먹으라고 하는 이유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떡을 먹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는 안식일의 규례와 같이 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유월절과 무교절이 무엇을 증거 합니까?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어떻게 증거 합니까? 요한복음 1:29절에 보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유월절 밤에 잡히시고 무교절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7-8절을 보면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음행이 있다는 것을 책망하면서 주신 말씀입니다. 묵은 누룩이란 음행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다 이루심을 믿지 않는 행위들을 말합니다.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고 하는 것은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것이 참된 명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둘째, 맥추절입니다. 16a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고 했습니다. 맥추절은 보리를 수확하는 시기입니다. 이것은 무교절로부터 49일을 헤아려 50일째 되는 날이 맥추절 입니다. 그래서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신명기 16:9-12절을 보면 “칠 주를 계수할찌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 할찌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칠칠절을 지키되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땅이 없는 레위인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가난한 자들이 참여함으로 복의 혜택을 받는 것이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절기를 지키는 이유가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 오순절이 신약에서 어떤 날이 됩니까?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유월절 밤에 잡히시고 무교절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40일을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부활하심을 증거 하신 후에 승천하십니다. 승천하신 후에 10일 만에 성령이 임합니다. 성령이 임한 이 날이 바로 오순절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자 유월절과 오순절과 수장절을 지키던 자들이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믿으라고 증거 한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들도 절기를 지킵니다만 나중에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베드로와 요한도 이방인이 복음을 받는 것을 보고서는 사도행전 15장에서 중요한 결의를 합니다. 사도행전 15:7-11절을 보면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방인들도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도 능히 메지 못한 율법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면 안 된다고 하면서 우리나 이방인이나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여기에 야고보도 동의하여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오순절 성령이 임한 자들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이 단지 맥추감사절을 지키라고 하여 보리 농사짓고 나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백성의 추수의 시작이 이방인에게 까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셋째, 수장절입니다. 16b절을 보면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수장절은 가을추수를 거두어 저장하는 절기입니다. 이것도 유월절이 없으면 있을 수 없는 절기입니다. 출애굽 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야 추수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절기에는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레위기 23:33-4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일 동안 지킬 것이라. 첫날에는 성회가 있을찌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 칠일 동안에 너희는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요, 제 팔일에도 너희에게 성회가 될 것이며,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찌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라.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삼고 번제와 소제와 희생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여호와께 화제로 드릴찌니.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 예물 외에, 너희의 모든 낙헌 예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에 칠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찌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찌니라. 너희는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찌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모세가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한해의 마지막 토지소산을 거두어들인 후에 초막절을 지키라고 합니다. 일주일 동안 초막에 거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레위기 23:43절을 다시 보면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맥추감사절을 잘 지키고, 추수 감사절을 잘 지켜서 더욱 감사가 넘치는 부자가 되어 창고가 넘치게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절기들이 다 그림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셨고 누룩 없는 떡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명절을 지키는 것은 순전하고 진실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맥추절과 수장절도 절기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절기를 완성하시고 추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4:34-38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가 다 추수기간 입니다.
마태복음 13:24-30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해석이 마태복음 13:36-43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했습니다.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는 것이 세상 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끝이란 이미 예수님이 초림하심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않지만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요 3:18). 그러므로 지금이 세상의 끝입니다. 추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단들은 추수 때라고 추수꾼을 열심히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단이 아니라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들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교회가 주님의 이 추수에 참예하길 원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성경의 모든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세 절기를 지킬 것을 명령하시는 참된 의미를 바로 알고 오직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며, 이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소망하며, 이 땅에서 초막에서 사는 자의 심정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참된 안식에 참예하며, 그 안식을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첫 결실을 좋아하시는 하나님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가나안 성도 여러분 위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왜 지킵니까? 성경에서 지키라고 하였기 때문에 지킵니다. 성경 어디에 나와 있습니까? 출애급기 23 장 16 절 상반절에 나와 있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오늘 성경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새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들도 이 맥추절을 지켜야 하겠는데 맥추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지킬 것 아닙니까? 이 시간 맥추절에 대한 집중분석을 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성도들은 “맥추절이란 일년 중에 한번 있는데 그때 맥추감사주일 헌금을 바치는 날이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추수감사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데 맥추감사절에 대해서는 선명하게 알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 맥추감사절에 대해서 다섯 가지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면서 맥추감사절의 의미와 뜻을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오늘 본문 23 장 14 절에 보면 “너는 매년 삼 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3 대 절기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의 3 대 절기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설날, 추석, 광복절입니다. 설날과 추석은 그저 가족을 만나서 노는 날로 인식하고 광복절은 역사적인 의미는 이제 퇴색하여 그저 쉬는 날로 보낼 때가 많습니다만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습니다. 철저히 그 절기가 지닌 뜻을 오늘에 되살려 자녀들을 철저히 교육시키는 날로 삼습니다. 이스라엘의 최대의 절기는 유월절입니다. 우리의 8.15 광복절과 그 의미가 같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면서 지킨 절기입니다.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은 칠일간 누룩 없는 빵을 먹과 쓴나물을 먹으면서 지냅니다.
오늘 본문 23 장 15 절에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고 합니다만 바로 그것이 누룩 없는 빵을 먹는 유월절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오래 전 영국에 있었을 때 이스라엘 친구가 주어서 무교병을 먹어보았는데 맛이 없어서 그 친구한테 별로 맛이 없다고 했더니 원래 무교병은 맛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였습니다. 유월절의 축제에 왜 그런 맛이 없는 것을 먹었을까요? 과거에 자신들의 조상이 출애급할 때 언제 발효시킬 여유가 없이 급히 이것을 먹고 나온 것이어서 매년 한차례씩 그것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6.25기념일이 되면 반공단체에서 주관하여 6.25 당시에 먹었던 “주먹밥 먹기운동”을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상기하자 6.25” 즉 그 당시를 상기하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누룩없는 빵과 쓴나물을 먹되 급히 먹으면서 자녀들에게 가르칩니다. “자녀들아, 우리 조상들이 이런 빵을 먹으면서 애굽의 억압에서 벗어났단다.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가르치면서 절기를 지킵니다. 두 번째는 초막절입니다. 이는 수장절, 장막절이라고 합니다. 이 절기 역시 1 주일 동안 지키는데 가족들과 함께 나가서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지냅니다. 그런데 그저 텐트를 치고 노는 것이 아니라 그 텐트 안에서 자녀들을 가르칩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광야에서 40 년 동안 텐트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지냈단다고 하면서 현장실물교육이면서 생생한 현장교육인 셈입니다. 첫째 아이가 미국에서 윌라드중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어느 날 아이는 실제 어린아이 크기의 인형을 가져왔습니다. 그 아이인형은 특수장치가 되어 있어서 만일 1 시간마다 우유를 주지 않으면 무척 서럽게 그리고 시끄럽게 울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유통과 같이 생긴 것을 물려주면 그제야 멈춥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안아주지 않으면 아이가 또 시끄럽게 울게 되어 있습니다.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수시로 큰 소리로 웁니다. 바로 그 전자장치가 되어 있는 아이를 일주일 동안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학교에서 성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인데 만일 청소년이 원치 않은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게 되면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는 아이를 니가 책임지고 보아야 한다는 어떤 간접실물교육인 셈입니다. 아이는 일주일 동안 전자인형 애기를 보면서 아이고! 일순간의 쾌락이 평생 고통으로 가겠구나!하는 어떤 뼈저린 경험을 하면서 책임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교육적인 의도입니다. 이스라엘의 교육도 현장실물교육입니다. 광야에는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는데 그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도 없었는데, 그리고 외적이 쳐들어와서 어찌할 줄을 몰랐는데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움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셨는지를 하나하나 가르쳐 줍니다.
먹을 것이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주셨단다 하면서 그 날은 메추라기를 잡아서 탕을 해먹고 마실 것이 없었을 때는 하나님께서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꾸셨단다 하면서 생수를 자녀들에게 주는 방식으로 교육시킵니다. 초막절은 우리로 말하면 감사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어떻게 풍성하게 은혜를 나리어 주셨는가를 알게 하고 감사케 하는 감사절기인 셈입니다. 객관적인 상황 속에서는 전혀 추수할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은혜로 만나를 추수하게 해주시고 메추라기를 추수하게 해주신 추수감사절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의 세 번째 절기가 바로 맥추감사절입니다. 맥추감사절은 첫 보리를 수확하여 얻은 결실을 하나님께 바치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이 바로 감사절이듯이 이 맥추절도 일종의 감사절입니다. 이 시간에는 맥추절에 대하여 좀더 집중 분석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둘째, 그런데 오늘 본문엣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는 때가 조금 이상합니다. 오늘 본문은 출애급기인데 어떻게 광야에서 맥추감사절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키라!, 초막절을 지키라!는 것은 이해가 되겠는데 맥추절을 지키라는 것은 시기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성경본문은 출애급기입니다. 출애급기는 이스라엘이 억압을 받던 애급에서 빠져나와 광야에서 텐트생활을 하고 있을 때인데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인도하는데로 이리저리 이동하고 다니는데 언제 한가롭게 씨를 뿌려 언제 기다려 보리를 수확하여 하나님께 보리추수 감사를 드리겠습니까? 그리고 물도 없는 광야에서 보리씨앗을 뿌린 들 보리가 자라나겠습니까? 그에 대한 해결의 열쇠가 바로 뒤에 나옵니다. 오늘 본문 23 장 20 절에 봅시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신데 여기서 내가 예비한 곳이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풀립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곧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르게 하리니 거기서 너희가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게 되면 그 결실을 허락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그 첫 열매를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로 바치라는 그 뜻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애굽에 있을 때는 그저 종으로서 노예와 같이 일을 하면 애급의 주인들이 주는 것을 먹으면서 살아왔고 광야로 나왔을 때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여 식물을 얻었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면 물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 토지도 무척 비옥할 것인즉 바로 거기에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게 되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라 그것을 바로 맥추감사절이라고 한 것입니다.
셋째, 맥추절에는 여러 다른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들의 유래는 무엇입니까? 맥추감사절은 여러 이름으로도 불리어 집니다. 그러나 그 이름들은 성경에는 언급되지만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는 “맥추감사절”로 통일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맥추절을 初實節이라고도 합니다. 초실이란 처음 初 자에 열매 實 자 해서 처음 익은 열매를 감사하여 드리는 절기라 그 말입니다. 오늘 본문 16 절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또 19 절에서 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그리고 맥추절을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오늘이 우연히도 칠월 칠일입니다만 칠칠절이란 이는 보리를 수확하여 첫 단을 하나님께 드리는 첫 날부터 칠주간 즉 칠칠 사십구일 동안의 시기에 해당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첫 열매가 맺혀지는 때가 어느 밭이나 일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밭은 상당히 일찍 열매가 맺혀지고 어떤 밭은 상당히 나중에 결실이 맺혀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열매가 맺혀지는 기간 칠 곱하기 칠은 49 일입니다. 이 기간 중에 자유롭게 자원하여 첫 열매가 맺혀지면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바치라 그 말입니다.
또한 무교절이 끝난 뒤로부터 칠칠 사십구일이 지난 후인 50 일째 되는 날에 지키는 절기라고 하여 칠칠절이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습니다. 넷째, 맥추절은 초실절이라는 이름을 지녔습니다만 왜 처음 익은 열매를 바치라 하였을까요?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는 처음 것을 애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유난히도 유독히도 처음 난 것을 좋아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처음 난 것을 좋아하실까요? 이것은 인간의 경우에 비추어 보아도 맞는 말씀 같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려고 하는데 큼직한 무화과 한 개가 접시에 담겨 있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우리 교회 무화과나무에 열린 첫 열매라고 하여 목사님께 드린다고 가져온 것입니다. 어렸을 때 원주에 살 때 형광등이 있었는데 어느 부분을 만지면 전기가 통하여 깜짝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손을 그 부분에 가져다 대면 온 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한번 시껍한 경험을 했으면 그만 만져봐야 하는데 조금 있다가 또 만져보고 온 몸 전체가 부르르 떨리는 경험을 했는데 그 떨리는 경험이 좋아 그 이후에도 몇 번 더해 보았습니다. 새벽기도를 인도하려고 하는데 무화과 한 개가 접시에 담겨 있고 그것이 첫 번째 맺어지는 열매이고 바로 그것을 부족한 목사도 주의 종이라고 가져다 놓았을 때 어렸을 때 형광등의 전기를 만졌을 때보다도 더 강하게 제 가슴을 부르르 떨리게 했습니다. 감동의 파도가 몰려 온 것이죠!
저는 그것을 바로 먹을 수 없어서 매일 새벽제단에 반주하러 멀리서 나오신 이정자 권사님께 드렸습니다만 극구 사양하면서 목사님이 드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것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인가 떠올랐습니다. 그렇지! 첫 열매이니까 우리 주님께 드려야지!! 해서 무화과가 담긴 접시를 제단 한 가운데 놓아두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하나님께서 복내려 주신 이 교회 가나안 동산 가운데 열린 무화과 첫 결실이 맺었었습니다. 이 시간 주께 바치오니 주께서 흠향하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였고 주일 예배시간이 다가 왔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중 성가대는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라는 찬양을 하나님께 드렸고 제 마음 속에 깊은 감격의 파도가 몰려 왔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그 찬양을 통해 영광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하나님께서 열납하셨을 첫 결실을 하나님께 감동을 드린 찬양대에 지휘자인 김채수 집사님께 드린 것입니다.
제가 무화과 나무의 첫 결실을 받았을 때 감동이 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첫 결실을 받으셨을 때 분명 그 맘속에 감동의 전류가 파동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첫 번 째 것을 무척 좋아하십니다. 사람들 중에서도 장자를 좋아하시고 장자축복권을 주시고 짐승도 첫 번째 낳은 것을 기쁘게 받으시며 시간도 아침에 첫 부분을 성별하여 드리는 새벽제단에서 드리는 기도를 기뻐 받으십니다. 곡식도 그렇습니다. 곡식 중에서도 첫 번째 결실한 것을 즐겨하시고 받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직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급하여 광야에 있을 때 가나안 땅에 들어가 씨를 뿌려 거두게 도리 것을 미리 상정하여 첫 열매를 나에게 달라고 하신 것이니 그 얼마나 첫 번째 것을 좋아하시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맥추감사는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나라에는 예전에 농사를 짓는 이들이 함께 부르는 “농가월령가”가 있습니다. 한 해 동안 힘써야 할 농사일과 철마다 알아두어야 할 풍속 및 예의 범절 등을 월령체로 기록한 작품입니다.
그 중에서 보리베기를 하고 난 다음에 6 월 중에 부르는 노래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5월이라 중하(仲夏)되니(여기서 오월은 음력 오월입니다) / 망종(芒種) 하지(夏至) 절기로다/ 남풍은 때맞추어/ 맥추(麥秋)를 재촉하니/ 보리밭 누른 빛이/ 밤 사이 나겠구나/ 문 앞에 터를 닦고/ 타맥장(打麥場) 하오리다/ 드는 낫 베어다가/ 단단히 헤쳐놓고/ 도리깨 마주서서/ 짓내어 두드리니/ 불고 쓴 듯 하던 집안/ 졸연히 흥성하다/ 담석(石)에 남은 곡식/ 하마 거의 진(盡)하리니/ 중간에 이 곡식이/ 신구생계(新舊生計)하겠구나/ 이 곡식 아니러면/ 여름농사 어찌할꼬/ 천심을 생각하니/ 은혜도 망극하다 ('농가월령가의 5월조에서). 이 월령가 마지막 부분에 보면 보리농사를 거둔 것을 다른 무엇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천심 즉 하늘의 마음에서 찾으면서 은혜도 망극하다고 하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맥추감사의 노래입니다. 성도들에 따라 맥추감사절을 지내는 이들의 마음가짐이 각각 다릅니다. 어떤 이는 추수감사절 한번 헌금내면 되었지 또 무슨 맥추감사절이란 것이 있어서 또 헌금을 내야한다는 말인가! 맥추감사절이나 추수감사절이나 그것이 그것인데 둘을 통합하여 한번에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맥추감사절의 의미는 모른 채 그저 관례적으로 감사헌금 봉투에 헌금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내가 육이오 때 보리밥 먹은 것이 신물이 나서 보리쌀 석은 밥은 아예 먹지를 않는데 그리고 내가 무슨 보리를 추수한 것도 아니고 도시에 있다보니 보리가 어떻게 자라는지 보지도 못했는데 맥추감사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맥추감사주일이 칠월 첫째주일에 있음을 기억하면서 일년을 반으로 쪼개어 지나온 절반 육개월 동안 쏟아지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 앞으로 남은 육개월 동안 쏟아지게 베풀어주실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로 삼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자기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맥추감사주일이 초실절이라 듣고는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맺게 하신 첫 결실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는 자신의 아들이 취직을 하여 첫 월급을 받아온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그동안 자식을 은혜로 사랑으로 키워주신 것을 생각하며 그 월급봉투채로 제단에 바친 어머니도 있습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을 똑같이 여기실까요? 성경의 대답은 “오! 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베풀어준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들을 감사하는 사람들과 결코 똑같이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도 그저 물에 새기어 금방 잊어버리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시편 50 편 22 절과 23 절을 봅시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린다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마저도 잊어버리고 사는 자를 하나님께서 괘씸하게 여기십니다. 괘씸하게 여기셔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찢어버리십니다. 은혜만 낼름낼름 받아먹고 그 은혜에 감사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은 그 가정을 찢으시고 그 사업을 찢으시고 그 마음과 영혼을 찢으시고 그 인생과 그 미래를 찢어버리십니다. 하나님이 찢으시는데 누가 말길 사람이 있겠습니까? 오늘 성경에는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단 한 순간에 돌 하나에 돌 하나가 남기지 않을 만큼 찢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23 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즉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떻습니까?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하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이 똑같이 취급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여 첫 열매를 바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그 인생을 가만 두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첫 결실을 바치는 자를 “응, 쟤가 첫 열매를 바치는 갑다“ 단지 그렇게만 여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소산을 감사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자를 무심코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그럼 어떻게 하십니까? 성경을 봅시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언 3 장 8 절에서 9 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실을 맺어주심을 감사하면서 첫 결실이 맺어지자 마자 하나님께 바치는 자를 하나님은 그 사람의 창고를 하늘의 은총으로 가득히 채워주시고 그 인생의 잔을 포도즙으로 넘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맥추절, 초실절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내려주시는가가 출애급기 34 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급기 34 장 22 절에 보면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엔 수장절을 지키라“ 명령하고 그렇게 지키는 사람이 받을 복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 그 다음 다음절인 24 절상반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어떤 복입니까?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내가 넓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넓혀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지키는 이에게 인생의 대적들을 쫓아내고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인생의 지경을 넓혀주시겠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확장케 해주시고 부흥케 하시고 발전케 하시고 창대케 하시고 흥왕케 해주시겠다는 은혜로운 약속입니다.
맥추감사는 하나님께서 내 지경을 넓혀주시고 내 창고가 가득 넘치고 포도즙으로 가득 넘치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맥추감사절을 지키라고 하셨기 때문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지키는 것 뿐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조용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과연 그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첫 결실이 무엇인지 조용히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을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바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명하신대로 오늘 맥추감사절기로 지켰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나리어 주신 것을 어찌 저희가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이 시간 저희에게 거두게 하신 첫 결실을 감사드리며 주님께 예물을 바치옵니다. 저희의 인생이 감사드리는 삶이 되게 하시고 저희의 삶이 하나님께 기쁨으로 바쳐지는 봉헌제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혜도 풍성하게 내리시옵고 감사도 풍성하게 드리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여름에 먹는 열매
출 23:!4-17 / 이윤재 목사
여러분은 축제를 좋아합니까? 축제는 즐기는 것입니다. 일을 쉬면서 사람들과 함께 노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축제의 나라입니다. 일년 내내 축제가 계속됩니다. 2월에 부림절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옛날 페르시야 나라의 지배를 받을 때 하만 때문에 죽을 뻔 했을 때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 기도해서 민족이 살아났습니다. 그것을 기념한 절기입니다. 이 때 모든 백성은 가면을 쓰며 거리에서 가장행렬을 합니다. 그리고 술을 먹습니다. 이때는 모든 백성이 술을 마시기로 공인된 날입니다. 4월이 되면 유월절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된 날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무교병을 먹으며 8일간 유월절 잔치를 합니다. 학교도 쉽니다. 집집마다 모여 앉아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5-6월에는 맥추절 축제가 있고, 10-11월에 초막절 축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에는 하누카라는 축제가 있습니다. 이때 모든 백성이 등을 들고 거리를 행진합니다.
이스라엘은 한 해를 축제로 시작해서 축제로 마칩니다. 축제는 노래로 시작하여 환호성으로 마칩니다. 마음의 기쁨과 여유가 축제의 마음입니다. 지난 주에 저는 모든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니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한 주간도 염려없이 살았습니까?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가난한 남자가 랍비에게 찾아와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랍비님, 유월절을 앞두고 준비할 일이 많아 근심이 태산 같습니다.” 랍비가 물었습니다. “무슨 근심이 그렇게 많은 가요?” 빵 살 돈이 없어요. 아이들 장남감 사줄 돈도 없고요, 아내에게 옷 사줄 돈도 없어요. 심지어 포도주 살 돈도 없어요. 이래저래 근심입니다.”
랍비가 물었습니다. “빵은 얼마인가요?” “백 세겔이요.” “아이들 장남감은 얼마인가요?” “모두 오백 세겔이요.” “아내 옷은 얼마인가요?” “삼백 세겔이요.” “포도주는 얼마인가요?” “백 세겔이요.” 랍비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한 가지만 달라고 기도하면 되겠습니다. 돈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주여, 돈주세요”. 가짓수는 많아도 내용은 한 가지입니다. 돈만 있으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한번에 한 가지만 걱정하면 된다. 행복의 비결은 한 번에 한가지만 걱정하는 것입니다. 너무 영리하고 너무 똑똑하면 모든 염려를 한꺼번에 다 합니다. 조금 모자라고 조금 부족해야 걱정을 안하고 삽니다. 맹구가 취직하기 위해 영어를 배웠답니다. 한 달 후 취직시험을 보는 데 문제가 나왔습니다. “I am sorry가 무엇입니까?” 맹구가 답을 썻습니다. “나는 소리입니다”. “May l help you가 무엇입니까?” 맹구가 답을 썻습니다. “5월 달에 나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마지막 문제입니다. “Yes I can이 무엇입니까?” 맹구가 답을 썻습니다. “예, 나는 깡통입니다”. 조금 모자라고 조금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쉬기도 하고 즐거워 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난 보리를 수확하여 하나님께 드린 절기입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축제였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축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겠습니까? 조급함, 답답함, 초조함, 두려움, 다 떨쳐버리고 오직 하나님이 주신 은혜만 받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맥추절은 첫 번째 곡식인 보리를 하나님께 드린 절기입니다.
오늘 말씀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라고 한 세 가지 절기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4절입니다. 출23:14, “너는 매번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이스라엘이 지킬 3대 절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입니다. 수장절은 장막절입니다. 유월절은 3-4월에, 맥추절은 5월에, 그리고 장막절은 11월에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16절은 맥추절에 대해 말씀합니다. 출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여기 “첫 열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년에 거둬 들이는 첫 번째 곡식은 보리였습니다(그림1. 보리). 이스라엘의 보리는 매년 겨울에 뿌리면 보리는 겨울을 지나 봄을 거쳐 여름에 수확합니다. 밀과 보리를 비교하면 보리는 먹기에 거칠고, 소화가 조금 덜 되지만 대신 아무 데나 심기고 또 잘 자랍니다. 밀은 보리보다 부드러운 곡식이지만 수분과 토양이 더 필요하고 주로 좋은 땅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밀과 보리중에서 생활력이 강한 보리가 먼저 익습니다. 보리는 보통 5월 경에 수확하고 밀은 그보다 조금 늦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겨울과 여름 사이를 춘궁기라고 합니다. 겨울에 모아 놓은 곡식을 다 먹고 다음 추수를 기다리는 데 너무 기간이 깁니다. 그래서 모든 곡식과 과일중에서 오직 보리만 나기 때문에 백성들은 보리를 몹씨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백성이 배고프지만 그 보리를 사람이 먼저 먹지 말고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보리가 첫 곡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과정을 통하여 보리를 하나님께 드릴까요?
먼저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날 보리밭에 나가서 가장 먼저 익은 보리를 골라서 단으로 묶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만찬이 끝나면 나가 그 보릿단을 추수하여 안식일이 되기 전날 미리 바구니에 담아 성전 마당으로 가지고 와서 두드리고 껍질을 날려 알곡을 모읍니다. 그런 다음 그 곡식을 볶습니다. 보리를 볶기 위해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는 클라욧이라고 부르는 프라이팬을 사용합니다. 그 후라이 팬에 보리를 넣고 볶습니다. 그리고 볶은 후에 부드럽게 빵궈 가루로 만듭니다. 가루로 만드는 단계는 모두 13단계를 거칩니다. 그러면 오랜 시간 후 보리는 고운 가루로 바뀝니다. 그런 다음에 거기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더해 소제를 만듭니다. 그리고 소제를 좌우앞뒤로 흔들어 하나님께 드립니다(그림2. 제사장). 이 부분을 기록한 말씀을 보겠습니다. 레23:10-11,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한 알의 보리가 꺠어져 떡이 되고 제사장의 손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시간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과 희생이 필요하겠습니까? 첫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보리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난 온갖 과일도 첫 번째 거둔 것은 다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7대 소산은 보리, 밀, 포도, 무화과, 올리브, 석류, 종려열매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하나님께 드릴 때 아무 데서 난 열매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그 열매가 열매맺은 지역에서 난 것만 드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종려나무 열매는 광야 지역에서 난 것만 드릴 수 있었습니다. 계곡이나 물가에서 난 종려나무는 안됩니다. 종려나무는 본래 광야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다른 열매는 산지에서 난 것이어야 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그가 자라고 열매맺는 곳에서 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을 하나님께 가져올 때는 동네마다 모여 같이 예루살렘으로 올라 왔습니다. 황소를 앞 세우고 피리를 불며 예루살렘에 올라와 성전으로 올라가 바쳤습니다. 이들이 성전에 도착하면 레위인들은 시30편을 찬양하며 열매를 성전 마당에 내려놓은 흐 모두 함께 신26:3절을 낭송했습니다. 신26:3, “그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아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아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첫 열매를 드리는 성경의 과정을 보면서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이 첫 열매를 정성을 다해 드렸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대충 드린 것이 아닙니다. 아무 것이나 아무 데서 난 것이 드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 하나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드렸습니다.
첫열매가 익은 것은 여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알 것은 첫열매가 익은 것은 여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여름으로 들어갔습니다만, 이스라엘은 여름이 길고 덥습니다. 이스라엘은 네 계절 중 여름과 겨울, 단 두 계절밖에 없는데 그 중에서도 여름이 유난히도 길고 무덥습니다. 매년 3월 말 경, 보리와 밀을 자라게 하는 늦은 비가 내리면 여름은 드디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해 10월 말, 11월 초, 단단해진 땅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이른 비가 내리면 그때서야 무려 9개월동안 계속된 여름은 끝납니다.
저는 이스라엘에서 여러번 여름을 나면서 이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에 이렇게도 긴 여름을 주시는가? 여름은 덥고 지루한데 하나님은 왜 그 백성에게 그렇게도 긴 고통의 여름을 주시는가?” 그렇게 몇 번의 여름을 나면서 여름의 의미를 몇 가지로 깨달았습니다.
(1) 심판의 여름
“여름”을 히브리어로 “카이쯔”라 부릅니다만 이 말에 변화를 주면 “케쯔”가 되어 “종말”이라는 뜻이 됩니다. 여름은 곧 종말이고 종말은 곧 여름입니다. “카이쯔”, 여름이 동사로 바뀌면 “카바쯔”가 되는데 이 말은 “벌벌 떨다. 시들다. 죽다”의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른 아침부터 햇빛이 쏟아부어 사람들을 공포와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3,4월부터 여름이 시작되면 5월경에는 이미 모든 풀들이 죽습니다. 성경 이사야40:6-7절입니다.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마6:30절에는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질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여기서 “아궁이에 던질 들풀”이란 말이 나옵니다. 엊그제 하늘에서 비가 올 때만 해도 그렇게 생기 발랄하던 풀들이 뜨거운 여름 햇빛에 누렇게 죽어갑니다. 그러면 농부들이 그것을 거두어 아궁이에 넣고 태웁니다. 어떻습니까? 이번 여름도 대단히 더울 조짐입니다. 너무 더울 때 여름을 통해 배우십시오. “아, 이렇게 날씨가 더워도 힘드는데 하나님의 심판의 불속에 빠지면 얼마나 더울까?” 여름을 통해 앞으로 오게 될 하나님의 심판을 배워야 합니다.
(2) 그늘의 여름
이스라엘의 여름은 더웁지만 한 가지 좋은 것은 그늘로만 들어가면 시원하다는 것입니다. 시편121:5-6입니다. ”여호아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아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에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리라“. 이스라엘의 그늘은 우리의 그늘과는 다릅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더울 때 그늘 밑으로 가나 그늘밖에 있으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푹푹 찌는 더위는 그늘이라도 해서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다릅니다. 그늘만 들어가면 시원합니다. 이번 여름, 더울 때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아, 인생은 덥지만 하나님께로만 가면 시원하다.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시다“. ”피난처 있으니 환란을 당한 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아멘
(3) 세 번째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열매의 여름입니다.
우리 말 “여름”의 뜻을 아십니까? “여름”은 “열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입니다. 여름은 곧 “열음”입니다. 왜 그래요? 여름은 열매가 맺히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바치라고 말씀한 첫 열매는 모두 여름의 뙤약볕을 받고 자란 식물들이라는 것입니다. 자, 보리를 보십시오. 보리는 1-2월, 비가 오는 겨울에 파종되었다가 여름이 시작되는 사오월에 익습니다. 포도는 어떻습니까? 유월과 팔월 사이에 그 단 맛이 절정에 이릅니다. 포도는 여름의 한복판인 구월까지 수확됩니다. 여름의 한복판입니다. 이스라엘 포도가 맛있는 것은 그 뜨거운 햇빛 때문입니다. 햇빛이 뜨겁기 때문에 잘 익고 답니다. 포도보다는 약간 높은 지역에서 자라는 감람열매는 포도보다는 약간 늦은 9월 경에 수확됩니다. 무화과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른 무화과는 유월, 늦은 무화과는 팔,구월에 수확됩니다. 종려나무도 여름에 수확됩니다. 석류나 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모두 땅에 뿌리를 박고 뜨거운 여름의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익어 갑니다. 제가 살았던 곳은 예루살렘 에인케렘입니다. 이곳은 세례 요한이 태어난 곳으로서 세례요한 탄생교회가 있습니다. 가깝기 때문에 저희 가족이 가끔 돗자리가자고 야유회를 갔습니다(사진, 기족). 큰 나무밑에 자리를 깔고 누우면 모든 나무, 모든 열매가 다 보입니다. 무화과, 감귤, 포도, 석류, 여름은 뜨거운 햇빛으로 모든 열매를 익히고 있었습니다. 여름의 “에인케렘”은 온갖 나무와 꽃, 그리고 열매로 생기를 발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역사에나 성경이나 위대한 사람들은 다 인생의 여름에 익고 열매맺고 성숙한 것을 아십니까? 시원한 겨울에 익은 열매는 아무도 없습니다. 통계가 있습니다. 프랑크린 루스벨트, 헬렌 켈러, 윈스턴 처칠, 알버트 슈바이쳐, 마하타마 간디, 알버트 아인쉬타인 등 삼백 명의 성공적인 세계적인 인물 가운데 4분의 1은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 소아마비 등의 장애인입니다. 그리고 장애가 없는 4분의 3은 가난했거나 깨어졌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불행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불행한 환경속에서 인물이 많이 나옵니까? 여름에 열매맺기 때문입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스은 기차에서 신문 파는 소년이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나중에 부자가 된 카네기는 한 달에 4달러씩 받고, 록펠러는 주당 6달러씩을 받고 일한 것을 아십니까? 고대의 가장 위대한 연설가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는 말을 더듬었고 쥴리어스 시저는 간질병 환자였으며 베토벤은 말년에 듣지를 못했고 찰스 디킨슨과 헨델은 다리를 절었고 호머는 장님이었고 플라톤은 곱추였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름에 열매가 맺히듯이 인생의 멸매도 여름에 맺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온 인물 중에 여름을 거치지 않고 열매맺은 사람이 있나요? 아브라함은 아들 낳기 위해 25년을 기다리지 않았나요? 이삭이 농사하여 부자되기 전에 7번이나 방해받지 않았습니까? 야곱은 하란에서 20년이나 중노동하지 않았습니까? 모세는 호렙산에서 40년, 광야에서 400, 80년을 광야에 살지 않았나요? 성경에 나오는 누가 그냥 열매맺고 아무런 고생없이 큰 나무, 큰 인물이 되었나요? 다윗은 20년 이상 사울에게 쫓겨다닌 후 왕이 되었잖습니까? 요셉도 억울하게 감옥에 갔지 않습니까? 유명한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도 고등학교때 농구를 못한다고 농구부에서 쫓겨났습니다. 세계적인 과학자 아인쉬타인도 1905년 베를린대학에서 힘들게 쓴 논문이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누가 여름없이 열매맺나요? 계절의 열매도 그렇지만 인생의 열매도 여름을 통해 맺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이 여름이라고 느끼십니까? 지금 내가 너무 힘든 여름을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은 지금 뜨거운 인생의 더위에 익고 있는 중입니다. 인생의 햇빛은 따겁지만 먼 훗날, “아, 그때 내가 익었구나”를 알 것입니다.
한 농부가 밭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잡초를 뽑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너무 힘들어서 투덜대며 말했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잡초가 왜 있을까? 하나님은 왜 이런 필요없는 잡초를 만드셨을까?” 그때 뽑혀진 잡초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를 필요 없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나는 매우 유익한 존재입니다. 나는 흙속에 뿌리를 내려서 흙을 갈아주고 있습니다. 또 비가 오면 물을 품어 필요할 때 공급해 줍니다. 건조할 때는 먼지가 날리지 못하도록 막아줍니다. 그리고 비가 오면 흙이 휩쓸려가지 않도록 붙잡아 줍니다”. 농부는 잡초의 말을 듣고 그 후부터 잡초를 소홀히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 이유가 있습니다. 잡초가 불필요한 것이 아니듯이 여름도 불필요하지 않습니다. 제 인생을 돌이켜 봐도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은 여름입니다. 혹독한 여름이 저애게 믿음의 성숙과 영혼의 열매를 가져 왔습니다. 그래서 계절의 여름이나 인생의 여름이 있는 것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아멘.
우리는 하나님께 첫열매를 드려야 합니다.
맥추절은 보리와 과일의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꼭 눈에 보이는 열매만 열매는 아닙니다. 성경이 첫 열매라고 할 때 그 열매는 우리 자신의 열매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경이 “첫 열매, 처음 열매, 처음 것”이라고 할 때 이것은 시간적으로 먼저 낫다는 뜻만이 아니라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무엇을 의미합니다. “처음것”은 내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무엇입니다. 하나님이 받기 원하시는 것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무엇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릴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기록합니다. 가장 먼저 일어난 사건이 노아 홍수입니다. 성경 창8:4절은 사람들이 첫 열매를 드리는 그때에 노아의 방주가 아랏산에 머물럿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것도 첫 열매 거두는 시기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도착한 곳도 첫 열매 거두는 때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도 첫 열매거두는 때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말합니다.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이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의 부활은 첫 열매 거두는 때에 일어났고 예수님 자신이 부활의 첫 열매였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첫 열매와 기적을 연결시킨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릴 때 능력을 나타낸다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아브라함을 아십니까? 아브라함은 25년이나 기다려 아들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이 그 아들을 바치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처음 아들이기 때문에 첫 열매요 가장 소중했기 때문에 첫 열매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바치라고 하니 얼마나 아깝고 속상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쳤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22:12,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그러면서 하늘의 별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실제 아브라함이 그런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한 세계의 종교가 셋입니다. 첫째 유대교, 전 세계에 1500만 정도 됩니다. 둘째 기독교, 전 세계적으로 20억쯤 됩니다. 셋째 이슬람교, 전 세계적으로 10억쯤 됩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자손이 30억이 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녀를 둔 것입니다.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이 맥추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신 것은 보리가 아닙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교회생할하면서 맥추절이 올 때마다 당황했습니다. “아니 우리가 보리를 재배하지도 않는 데 보리를 드리는 절기를 지키는 이유가 무엇인가? 보리는 농사짓는 사람에게나 있지 않은가?” 그 후에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첫 열매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이 받으시는 첫 열매는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첫째로 치는 소중한 무엇입니다. 우리가 “이것만은 내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무엇입니다. 교회는 이 소중한 것은 부지런히 하나님앞에 내 놓아야 합니다. 지난 주 국민일보를 읽고 감동받았습니다. 경기도 부천에 두 교회가 나란히 있었습니다. 한 교회는 큰 교회고 다른 교회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작은 교회가 무리하게 교회를 짓다 많은 빚을 지었습니다. 교인은 늘지 않고 빚은 늘어가는 데 교회를 매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큰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저희 교회를 사주세요”. 교단도 다르고 평소에 만난 적도 없는 목사님의 요청을 받은 윤 목사님은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나와 기도할 때마다 작은 교회의 아픔이 가슴에 묻어 왔습니다.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요청할까?“ 그래서 공동의회를 열고 교인들의 동의를 얻어 부채 70억에 해당되는 이자를 갚아주기 시작했습니다. 뿐 아니라 교회 목사를 뉴욕에 유학보내고 6년간 생활비와 학비를 지원했습니다. 막상 교회를 맡고 보니 손 댈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 수리하고 빚을 갚다 보니 70억이 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그 교회에 사람을 보내 교인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6년이 지나자 그 교회는 200여명에서 500여명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자 큰 교회는 미국으로 유학 간 목사님을 항공료와 함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제 당신 교회가 자립을 했으니 돌아와 목회를 하세요”. 지난 13일, 반환 합의서를 작성하고 교회를 넘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10억을 빌려주고 그 돈은 출석교인이 1000명이 되면 갚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조건이 없었습니다. 70억을 갚아주고 유학까지 시키고 교회를 부흥시켜 돌려준 교회, 하나님에게는 공짜가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교회는 부흥되어 8000여명이 넘었습니다. 공짜는 없었습니다.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자 나님이 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교회 뿐입니까? 우리의 신앙생활, 우리의 직장생활, 우리의 가정생활, 그 무엇이든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데 안 되는 것이 있겠습니까? 지난 주에는 한 성도가 저에게 왔습니다. “목사님, 그동안 계를 넣는 것이 있었는 데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선교헌금으로 드립니다”. 제가 그 헌금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 헌금은 가난한 과부의 옆전 두닢이요 마리아의 향유입니다. 이 여종을 축복하옵소서”. 여러분, 하나님께 가장 좋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헌금하고, 마음과 뜻을 다해 섬깁니까? 여러분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까? “주께 드리네 주께 드리네 사랑하는 구주앞에 모두 드리네”. 미국의 어느 선교사가 인디언마을에 들어가 오랫동안 선교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들에게 믿음이 생기자 선교사는 인디언들을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원합니다. 이제 우리 각자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한가지씩 드립시다”. 한참 침묵이 지난 후 한 사람이 뚜벅 뚜벅 걸어나와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20년동안 저와 함께 고락을 같이 한 말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조금 후에 또 한 사람이 나왔습니다. “선교사님, 저의 사랑하는 말 안장을 드립니다”. 또 한 사람이 나왔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활을 드립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얼마후 한 사람이 걸어나왔습니다. “선교사님, 제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립니다. 제 몸입니다. 제 몸을 받아주옵소서”. 그날 밤 인디언들을 자기의 가장 소중한 몸을 드렸습니다. 인디언 선교의 역사는 그때부터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땅에서 처음 익은 보리와 과일로 드렸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보리와 과일이 아닌 더 소중한 것을 받기 원하십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까? 그것을 드리기로 마음 먹었습니까? 그때부터 하나님의 축복은 임합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출애굽기 23장 14~17절 / 정필도 목사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사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을 아주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가를 알면 그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 육안으로는 이 세상의 것들만 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것들은 잊어버리지 않지만, 하나님을 잊어버리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이 세상일에 골몰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잊고 살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다 보면 하나님을 잊기가 너무나 쉬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항상 잊지 않고 살기 위해서 말씀을 상고하라, 묵상하라, 청종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 “오늘도 함께 해주세요. 지금 하는 일도 잘되게 해주세요. 지금 만나는 사람과도 이야기가 되어서 성공하게 해주세요. 밥을 먹게 하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라는 것은 그렇게 하다보면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살면 하나님을 잊지 않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면 하나님을 잊지 않게 됩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귀한 양식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것 먹고 건강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게 해 주세요.”라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항상 감사하면 하나님을 기억하고 잊지 않고 살게 됩니다.
이렇게 살면,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4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출23:14)」 여기에서 하나님께 세 번 나아와서 감사 절기를 지키라고 했는데, 무교절(유월절), 맥추절(초실절, 칠칠절, 오순절), 수장절(초막절) 이 세 절기를 지킴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고 하시면서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출 23:15)」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무교병의 절기는 유월절을 말합니다.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그 은혜를 잊지 않고 항상 감사하면서 살기 위해서 지키라는 것입니다.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하나님께서 저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셔서 열 가지 재앙을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이것을 잊지 않고 항상 감사하면서 살기 위해서 이 절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원수 마귀의 종노릇을 하면서 얼마나 죄짓고, 매 맞고 고통 중에 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끄집어내셔서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애굽과 같은 이 지옥 생활, 하나님을 저버리고 살던 생활에서 구원받게 해주신 것을 항상 잊지 않고 감사해야 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자기가 예수 믿어 구원받게 된 것을 항상 감사하면서 삽니다. 예수 믿은 것 자체를 감사합니다. 거듭난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을 받은 것과 구속함을 받은 것을 항상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많이 받았지만, 무엇보다 예수 믿게 된 것,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게 된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잊지 않고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미국에 라이언 화이트라는 소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열세 살 때에 혈우병을 앓았는데, 수술을 받다가 의사의 잘못으로 수혈이 잘 못되어 에이즈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심지어는 그 의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밝은 웃음을 보였고,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오히려 염려하는 부모를 위로하며 날마다 밝게 지냈습니다. 이런 사실이 방송을 통해서 전 미국에 전해지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이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유명 인사들도 앞을 다투어서 이 소년을 방문했는데, 레이건 대통령, 마이클잭슨도 찾아와서 위로했습니다. 결국 소년은 5년을 더 살다가 18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신문에 실려서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아버지는 죽어가는 아들에게 “아들아, 미안하다. 나는 아무것도 너에게 해줄 것이 없구나. 이 아빠를 용서해다오!”라고 말하자 아들은 “아니에요. 나는 받은 것이 너무 많아요. 아빠는 내게 천국열쇠를 주었잖아요. 예수님을 소개해주었고, 교회에 나가서 예수님을 믿게 해 주었고, 말씀을 통해서 영생을 얻도록 해주었잖아요.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어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소년은 죽어가면서도 영생을 얻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죽음을 극복한 감사입니다.
세상의 걱정거리가 많고, 시험이 많아도 예수 믿어 구원 얻은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기쁘고 감사가 나온다면, 그 사람은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이고 참 거듭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15절 끝에는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말로 하여도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 앞에 가장 귀한 것을 드리면서 감사를 표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또한, 맥추절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에는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맥추절은 농사를 지어서 첫 열매를 거두고 수확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이달의 수입을 감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출 23:19)」라고 하였습니다. 맥추절은 첫 수확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맥추절에 감사하는 방법입니다. 또한, 출애굽기에는 더욱 자세하게 말씀합니다.
「9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10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신 16:9~10)」라고 하였습니다. 많이 주시면 많이 주신대로, 적게 주시면 적게 주신대로 하나님 앞에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믿음에 따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첫 열매 중에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고 축복의 문을 활짝 엽니다. 그래서 「9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 3:9~10)」 라고 하였습니다. 차고 넘치는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100%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수장절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수장절은 초막절이라고도 합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겨울 동안 먹을 양식을 저장하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수입을 넘치게 하셔서 저축하면서 살게 하신 은혜가 얼마나 감사합니까. 구원 얻은 것에 감사하고, 농사지어 수확이 있게 하신 것에 감사하고, 저장까지 하게 하신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항상 감사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출 23:20)」 라고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주셔서 앞서 가시면서 지켜 보호하시고 악한 자, 불의한 자가 손 못 대게 하시고 하나님이 축복으로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 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첫째,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라고 하셨습니다. 「21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22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23내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출 23:21~23)」 하나님의 목소리를 잘 듣고 행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사자를 보내셔서 우리의 원수를 하나님의 원수 삼아 해결하시고 우리의 대적을 하나님의 대적으로 무찔러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사자를 보내셔서 앞서 행하게 하셔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되 그들을 모두 전멸시켜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23장에는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라고 하면서 제일 먼저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 안식일은 매 주일 지켜야 하는 절기입니다. 엿새 동안은 열심히 일하지만, 일곱째 날에는 꼭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 날은 성회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이렇게 안식일을 잘 지키는 사람은 세 번의 감사절기도 잘 지킬 것입니다. 매 주일 감사 절기를 지키는 사람은 나머지 세 번의 감사 절기도 지키기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경기도 광명시의 한 장로님이 목욕탕을 개업했습니다. 개업예배 때 목사님께서 주일 성수를 잘해야 복을 받는다고 신신당부를 하셔서 믿음 좋은 장로님은 그대로 순종하고 주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목욕탕은 쉬는 날에 사람이 많이 오는데, 주일에 문을 열지 않으니 수입이 너무 적어서 수도세 내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지하수를 파기로 하고, 150m 정도를 파니 물이 터져 올라왔지만, 그 물은 구정물 같고 계란 삶는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 물이었습니다. 장로님은 무척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물은 유황온천이었습니다. 도심지에 유황온천이 터진 것입니다. 소문이 나서 사람이 몰려들어 장로님이 부자가 되어 건축헌금을 가장 많이 드리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일에 장사 하지 않으면 손해인 것을 알면서도 망해도 좋다는 믿음으로 주일을 지키니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축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망해도 좋다는 믿음으로 순종해보기 바랍니다.
두 번째 명령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는 그들의 신을 경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깨뜨리며 그들의 주상을 부수고(출 23:24)」라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명령은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25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26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출 23:25~26)」라고 하였습니다. 물도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물이 좋습니다. 이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만복의 하나님이 복을 내리면 이대로 될 줄 믿습니다. 감사하면 복을 받습니다.
미국의 국립건강관리소에 에머슨 박사는 감사와 건강의 상관관계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세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한 그룹은 기분 나쁜 말과 행동, 원망 불평을 하는 그룹이었고, 또 한 그룹은 감사의 말과 행동을 하는 그룹, 또 한 그룹은 일상적인 말과 행동에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각 그룹의 변화를 분석한 결과 감사의 말과 행동을 한 그룹의 사람들의 건강상태가 가장 양호했고, 행복도도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아주 두드러진 차이가 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감사하면서 살면 면역력도 높아져서 병을 이기고 행복하게 삽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고,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서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미혼모였고, 107kg의 뚱보였고, 마약중독자로 인생을 자포자기하며 살아온 불행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도 버림받았고, 불행하고 기구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는데, 예수를 믿고 새사람이 되어 나타난 아버지는 망가진 딸에게 하나님과 성경책을 소개해주고 자신이 암송하는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어 새로 태어나게 되었고, 진리가 그녀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성경을 읽기 시작하자 지적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독서를 많이 해서 열아홉 살에 TV 방송국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흑인 여성 최초의 앵커로 발탁되었습니다. 그 후 골든타임의 앵커를 맡았지만, 감정을 오버한다는 이유로 가장 인기가 없던 토크쇼의 진행자로 좌천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불행했던 삶에 대한 진솔한 고백을 통해서 그 토크쇼는 최고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대성공하여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된 것은 날마다 감사의 일기를 쓰는 좋은 습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거리 다섯 가지를 매일 기록했습니다. 거창한 내용이 아니라 하루 일상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이런 감사하는 습관이 그에게 복이 되고 그를 성공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감사하면서 살면 이런 복을 받습니다. 날마다 감사하면서 살기를 축원합니다,
첫 열매를 드리라
출애굽기 23:14~19 / 이필재 목사
11월은 교회가 감사의 달로 지키고 또 12월은 성탄의 달로 지키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성경에는 장차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 많은 조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계명도 출애굽기 20장에서 주어졌고 이것을 기초로 많은 신앙 규례서가 출애굽기에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여러 가지 규례들을 받을 당시 그들은 광야에서 고난스럽게 살았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조건들이 하나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 고난스러운 민중을 향해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들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영원히 지켜야 되는 민족 절기 3가지를 명령문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무교절을 지키라.” 성경에 나오는 단어들 중에 중복된 것이 많고 같은 사건을 조금씩 다르게 표현해서 어떤 때는 저 자신도 조금 혼란할 때도 있습니다. 무교절과 유월절은 같은 말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날을 기념하는 날인데 영어로 ‘Passover’라고 하는 것은 ‘넘어갔다’는 뜻으로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그때 누룩 없는 떡을 먹은 것을 기념하는 말로 무교절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3,500년 전 사건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일 년 중에 가장 큰 절기로 일주일씩 지키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맥추절을 지키라고 했는데 추수감사절입니다. 유대 나라는 쌀 수확이 없습니다. 보리농사만 있기 때문에 맥추절을 추수감사절로 지켰습니다. 일 년 농사지은 것 중에서 첫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로 “이 절기는 일 년 중에 반드시 드리도록 하라.” 이렇게 명령하셨고, 그 다음에는 초막절로 40년 동안 광야에서 천막 생활하던 것을 기념해서 장막절이라고도 말합니다. 과거 고난의 때를 잊지 말라는 영적 의미로 ‘이 세 가지 절기는 반드시 드릴지니라.’ 라고 지금 이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추수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고 있는 계절인데 금년에도 우리 대한민국의 들판은 일용할 양식이 황금물결이 출렁거리는 대풍년이 주어졌습니다. 간혹 어려운 소식이 들려오고도 있지만 1차 산업인 농업은 풍년이 와서 정부는 곡식 보관을 고민하게 되었다는 현실을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추수의 계절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먹을 식량이 많아 처치 곤란하다는 것은 성경에 있는 대로 하나님이 창고가 넘치도록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 부어주신 축복을 보지 못하고 안 보이는 것만 불평하는 것은 믿음의 문제가 됩니다. 구약에 나오는 맥추절이나 미국에서 시작된 청교도 추수감사절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고난이 극심할 때 감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다수확의 기쁨이나 풍성한 조건에서는 예수 안 믿는 불신자들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쓰면서 감사해 합니다. 추수감사절이 세계인의 풍요한 절기가 된 것은 바로 고난 중에 드린 감사제였기 때문에 그것이 영적 문화로 번져서 온 세상의 절기로 발전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감사해야 할 이유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이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인생에 되어지는 일을 하나님의 섭리로 볼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없고 우연으로 보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 안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의 주변에 맞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하는 믿음을 가지고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일도 크게 감사할 때가 있고, 어떤 고난스러운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서 감사 생활하는 것이 영적 초능력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반드시 우수하게 되었다든지 표준치가 넘는 수확이 있기 때문에 감사생활 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내 마음에 기준치를 정하고 사는데 그 기준에 도달해 보세요. 또 다른 기준이 생겨 끝없는 욕심을 부리도록 되어있는 것이 인간의 문제점입니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들어오던 예화가 있잖아요? 나라의 땅을 임금님 마음대로 하던 시절에 한 임금이 어떤 한 사람을 놓고 “네가 오늘 이 자리를 출발해서 네가 발로 밟는 땅을 다 너에게 주겠다. 네 마음대로 다녀와라. 그러나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이 자리에 돌아와야 한다.” 그런 조건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신이 납니까? 점심이나 먹으면서 했으면 좋으련만 그 시간에 더 뛰어야 되니까 넓고 넓은 땅을 그냥 막 돌아서 다 내 땅이 된다는 기쁨에 해가 떨어지기 전에 제자리에 돌아왔는데 너무 지쳐서 쓰러져 죽었습니다. 임금님은 그에게 무덤 한 평을 선물해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람은 불쌍하고 미련하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그런 약속이 주어졌을 때 어떤 반응을 나타낼 것인가? 똑같습니다. 이 기준치가 없기 때문에, 끝없는 욕심을 인간들이 가지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감사 생활을 못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되어진 역사를 은혜로 보지 못하고 자기 공로로 평가하기 때문에 감사를 못합니다. “내가 피땀 흘린 결과를 놓고 무슨 하나님의 은혜, 은총이라는 말을 쓰느냐? 당연한 내 수고의 열매이지!” 우리는 내 노력의 찬양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가서 밭 갈고 걸음 주고 땀 흘려 가꾸고 거둬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피 땀 흘려 수고를 많이 했어도 은총적인 선물이 없을 때는 아무 것도 수확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적당하게 햇빛을 내려주시고 적당하게 비를 주시고 싹이 나서 열매가 열리는 기적을 베풀어 주실 때만 내 수고가 보람 있는 열매로 돌아오는 것이지, 그런 하나님의 은총적 개념이 없을 때는 나의 노력도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손에 수확이 들려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개입되었다고 하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이 감사생활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은총 개념에서만 감사가 나올 수 있고 내 공로 찬양만 하면 절대로 감사하지 않게 됩니다.
그 다음에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과 비교해서 내 몫이 적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감사생활을 못합니다. 우리 사람은 누구나 상대적인 행복과 상대적 불행을 갖도록 되어 있습니다. 상대적 행복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사람은 평생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이 능력은 성령 충만입니다. 우월성에서만 감사한 마음을 갖는 사람은 평생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나보다 우월한 사람이 항상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온 세상을 다녀보니까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세계에서 행복한 조건이 너무 많다고 객관성 있게 판단할 수가 있겠습니다. 기후 조건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평생 여름인 곳도 있습니다. 세월이 가는지 마는지 날마다 똑같습니다. 평생 추운 곳도 있습니다. 기후 조건만 해도 사시사철 변화무쌍하니 얼마나 정서적으로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나라 날씨는 싫증 날만 하면 바뀝니다. 교회에 하얀 눈이 쏟아졌다가 여름이면 장마가 지는 변화가 나타나고 단풍이 들었다가 새싹이 나왔다가…. 얼마나 기후적 축복입니까? 저는 성경에 엘리야가 기도했더니 3년 6개월 동안 비가 안 왔다는 말을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3년 6개월 동안 비가 안 오나?’ 제가 세상을 다녀보고 이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 안 오는 곳이 있습니다. 충분히 있습니다. 제가 어디를 갔더니 보슬비가 조금 내리는데 그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모두 웃통을 벗고 보슬비를 맞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 그랬더니 목사님이 오셔서 비가 왔다며, 저는 비를 몰고 간 적도 없는데도 그렇게 말하면서 일 년에 지금 처음 비가 내리는 거라고 조금 내리는 것 가지고 그렇게 난리치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한강물이 저렇게 시퍼렇게 365일 흘러내리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세상 다녀보고 ‘아! 이 대한민국에 넘치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구나.’ 옛날에는 산에 땔감이 없어 나무를 다 베어버려 민둥산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산이 모두 녹색으로 변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들어 휘황찬란하게 변하고 지금은 오히려 민둥산이 구경거리가 되는 좋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저도 대한민국 남자이지만 대한민국 남자들은 세계에서 제일 행복합니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어디를 가나 왕 대우를 하는 문화! 이런 문화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어디를 가도 남자를 부르는 호출이 “사장님” 아니면 “회장님”이더라고요. 하루에도 몇 번씩 사장, 회장 소리를 들으니까 이게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요즘엔 어디를 가도 나이가 이 정도 되니까 저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더군요. 다 내 아들이고 딸입니다. 제가 쓰는 이 핸드폰은 사실 갈보리 교인들도 번호를 모르는데 이 번호를 어떻게 알고 하루에도 두 번 내지 세 번, 네 번 문자가 뜹니다. “오빠, 오늘 나하고 놀아.” 내가 놀지는 않았지만 목사더러 “오빠, 오빠”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는 없습니다. 하여튼 대한민국 남자들은 복에 겨웠습니다. 이런 대우 어디를 가서 받아 보겠습니까? 여자들은 어떻습니까? 지금 세계 어느 나라 여성 문화보다 신나는 문화가 한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미국도, 일본도, 프랑스, 이태리 어림도 없습니다. 온갖 문화생활 자유롭게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시간이 있고 경제력도 생겨지고….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엄마가 뿔났다.’라는 드라마를 보니 그 여자는 막 집을 나가서 살더라고요. 한국 교회 활동이 활발한 것은 시간을 낼 수 있는 여신도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간을 내서 교회 사역에 몸 바치고 사니까 삶이 풍성하고 영적으로 행복하지 않습니까? 이민 간 사람들을 이런 생활 어림도 없습니다. 내 몫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믿음이 충만하고 삶이 풍성해지고 감사가 나오지 내 몫이 항상 적다고 하면 그런 사람은 불평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다른 교회나 다른 목회자들과 절대 나를 비교하지 않습니다. 아예 습관적으로 안합니다. 저는 나에게 주시는 것만 해도 늘 행복하게 생각하는 목회자입니다. 여러분과 생활한지 6년이 넘었지만 제가 찌푸리고 짜증내는 것 보셨습니까? 날마다 행복하게 삽니다. 그러나 나 자신의 과거와 늘 비교합니다. 제가 개척교회를 5개나 했잖아요? 경험이 많잖아요? 첫 번 개척교회 할 때 교인이 한 명도 없습니다. 개척교회 시작한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헌금을 시작했습니다. 헌금을 가르치기 위해서 6개월이 걸렸습니다. 누구도 상관없이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천사 같고 눈물 날 것만큼 고마웠습니다. ‘저 사람이 교회를 나와 주시다니!’ 교인이 50명 되었을 때 제가 얼마나 울면서 하나님 앞에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고 기도했는지 아십니까? 새벽기도 나 혼자 얼마나 많이 했는데요? 겨울이 너무 추우니까 전기방석 하나 갖다 놓고 나 혼자니까 담요 하나 깔아놓고 기도하다가 어떨 때는 잠이 들잖아요? 아무도 안 오면 계속 잤겠는데, 뚜벅뚜벅 한 사람이 옵니다. 그러면 자다 말고 번개같이 일어나서 안 잔 척 하려고 “주여! 주여!” 그렇게 한번 개척교회 일을 해보세요. 그런 교회를 내가 미국과 한국에 다섯 교회를 경험했기 때문에 저는 절대로 누구를 부러워하지 않고 비교도 하지 않고 나에게 주시는 것만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목회도 욕심이 잉태하면 죄가 된다. 선하고 거룩한 일일수록 욕심을 버려야지 사업 번영시키는 것처럼 하면 진정한 목회가 안 된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가 되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이 된다. 목회도 죽는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감사의 조건을 내게 주신 것을 볼 수 있을 때 발견하는 능력! 이것이 없으면 감사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감사하며 살아야 될 이유를 찾는다면 이렇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밭은 하나님이 계신 증거가 됩니다. 감사가 많으면 불평이 없어집니다. 삶이 풍성해지고 영혼이 살찌고 행복감이 커져옵니다. 생활의 습관이라고 하는 것은 제2의 천성을 조성하면 힘이 있음을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사람이 긍정적인 말을 계속하면 나도 모르게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일이 생기도록 되어 있습니다.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히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늪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런 말이 있죠?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아니하면 문제가 안 된다.” 우리 청소년 인격 지도 지침서에 이런 예화가 나오잖아요? 아침에 집을 나갈 때 거울 앞에 서서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말하라는 겁니다. “너는 훌륭한 하나님의 자녀야. 하나님은 너를 사랑해. 너는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어. 나가! 이 사회는 너를 기다려. 행복할 거야.” 자기한테 말하라는 겁니다. 하는 사람은 효과 있다는 겁니다. 나는 불행의 마귀가 악착같이 따라다닌다고 생각하면 마귀는 그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여러분, 성경 보세요. 불평이 많은 사람과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안하셨습니다. 오히려 절망적 저주가 임했습니다. 출애굽기, 신명기, 모세오경 가운데 나오는 가장 많이 나오는 똑같은 단어가 뭔지 아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아우성 친 말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여 가로되” 이 문장으로 시작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최종 결정을 원망하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긍정적인 여호수아, 갈렙만 들어가고 다른 사람은 한 명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너희들이 날마다 원망만 했지, 하나님의 역사에 무슨 동참을 했느냐?” 그래서 광야에서 출생한 그 후손들만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시는 하나님 역사를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고난당한 사람도 감사할 자격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공적인 출세나 풍요로 정착한 사람만 감사할 수 있다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말씀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감사는 모든 인간의 공동성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누구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열심히 얻고자 하는 목표물이 금덩어리라고 합시다. 베드로전서 1장에 뭐라고 그럽니까? “금보다 더 귀한 것이 믿음이라.” 캘리포니아에 이민온 목사님 가족이 이민 목회를 했는데 교회가 잘 안 됩니다. 교인도 늘지 않고 교인들끼리 싸움을 하고 그 책임이 목사한테 오고, 10년을 고생했는데 열매가 없어요. 도저히 안 되니까 어느 날 사모님과 아이들이 아빠인 목사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아빠가 한국에서는 목회를 잘하셨는데 풍토가 다른가 봐요. 이민자들과는 아빠의 목회 스타일이 안 맞는 거예요. 그러면 돌아가시든가 아니면 목회를 접으시고 다른 일을 하셔야 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목사가 양보를 했습니다. 왜? 안되니까요. “좋아. 그렇게 하자. 내가 그만 두겠다. 그러면 뭘 하냐? 생계를 위해서 장사해 보자.” 가장 적은 자본으로 양말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잘되는지 모릅니다. 매일 돈이 들어오는데 교회에서는 돈이 안 들어오다가 장사하니까 돈이 막 들어오니 가게 하나 내고 또 하나 내고 세 개 내고 명품 사 입고 고급 자동차 사고 좋은 주택 사고…. “이야! 신난다!” 가족들이 너무 좋아하고 친구 목사들도 “저 친구 어떻게 저렇게 부자가 된 거야? 벤츠 타고 다니다니….” 어느 날 아침 그 목사가 자기 친구 목사에게 전화를 해서 “친구야! 나는 지금 내 생애 가장 불행한 시간을 살고 있다.” “왜 그래?” “목사가 예배드릴 데가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목회는 그만 두었어도 내가 예배는 드려야 될 거 아니야? 미국 교회 갔더니 아무 소리도 못 알아듣겠고 조그만 한인 교회를 가니까 목사님들이 나를 다 알아보잖아? ‘목사님 여기 왜 오셨어요?’ 날마다 물어보니까 미안해서 갈 수가 없어. 주일날이 제일 고민스러워. 목사가 예배드리러 갈 데가 없으니 나 어떻게 살란 말이야?” 나중에 그 사람은 호텔 경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호텔에서 목회자 세미나를 해서 제가 강사로 갔습니다. 수백 명 놓고 호텔을 빌려서 하는 겁니다. 그 호텔 주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습니다. 저는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끝나고 나서 그 호텔 주인이 나에게 자기를 밝히면서 “목사님! 부탁이 있습니다. 나 목사님 교회의 부목사로 데리고 가면 안 됩니까? 진심입니다. 제발 나를 데려가 주세요. 그리고 제가 목회할 수 있게, 옛날로 돌아갈 수 있도록 목사님, 날 좀 도와주세요.” 와서 마구 눈물 흘리며 사정을 했습니다. 일에 분주한 마르다가 자기를 도와주지 아니하고 예수님 설교만 듣고 앉아있는 얌체 같은 마리아를 보고 불만 섞인 질투를 했습니다. 주님이 뭐라고 하셨죠? “마리아는 좋은 선택을 했다. 너 그거 다 안 해도 괜찮아. 너도 와서 들어라.” 그러셨잖아요? 이것이 주님의 가치관입니다. 우리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적인 무엇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기는 믿음! 그런 사람이 감사 생활도 하는 겁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될 이유는 누구나 다 아직 잃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딜 로빈슨 씨가 다이제스트 잡지에 자신의 간증을 실어서 미국 목사들이 다 읽었습니다. 트럭 운전사로 일했거든요? 사고가 났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장애인이 되어 3개월 동안 병원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살아났거든요? 그래서 간증을 한 겁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잃어버린 3개월 동안 일평생 얻은 것보다 더 귀한 삶의 진리를 얻었다. 감사란 잃어버린 자만이 할 수 있는 보화다. 나는 평생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내 생애를 바치겠다.” 그리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오늘 이렇게 건강하게 교회 나오신 여러분과 저는 얼마나 감사 생활을 열심히 해야 되겠습니까? 감사는 발견하는 보화, 아직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있는, 잃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하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 “맥추절을 지키라. 추수감사절을 지키라. 방법론에 있어서 첫 번째 곡식 수확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 그러면 이 말씀을 우리가 의미적으로 평가해 볼 때 하나님이 물질을 좋아하시는가? 아니면 필요하신가? 둘 다 아닙니다. 왜 드리라고 하는가? 여기에 신학적 해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계약적 관계라고 말을 합니다. 언약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 인간과 하나님이 무슨 계약을 했는가? 하나님은 인간이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모든 물질과 시간을 주셨습니다. 창세기에 보세요.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천지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노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모두 주셨잖아요? “너 가져라.” 그런데 다 주셨으면서도 하나는 찾으십니다. “받은 것 중에 일부는 네가 가져와야 된다.” 우리 시간을 보세요. 일주일동안 우리가 뭐든지 할 수 있잖아요? 여행가지 말라고 하나님이 말리십니까? 친구와 밤새워 논다고 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마음대로 해라. 시간은 마음대로 결정해서 써라.” 마음대로 쓰잖아요? “그러나 안식일은 나한테 와야 돼!” 이것이 계약입니다. 주시고 하나를 요청하십니다. 물질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잖아요? 우리가 다 쓰잖아요? 우리가 열심히 돈 벌어서 집 산다고 하나님이 사지 말라고 하십니까? 우리가 좋은 자동차를 사려고 할 때 하나님이 사지 말라고 하십니까? “네가 마음대로 결정해라. 네가 필요한대로 해라. 그러나 하나는 가져와야 돼. 내가 준 것 중에서 십일조는 내 것이다. 만약 이 계약을 깨뜨릴 때는 도적의 개념이라. 너희는 내가 다 주는데 왜 하나마저 도적질 하느냐? 그러면 나도 네 것을 뺏겠다.” 믿음이 없어서 십일조도 못하고 예수 믿은 지가 벌써 평생인데도 그러며 살 겁니까? 한번 해보세요. 절대 손해 안 납니다. 물질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 11월은 이런 것을 많이 생각하는 추수감사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 “사람들이 수확이 생길 때 마음이 변하기 전에 첫 번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 이렇게 명령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뭐든지 수입이 생기면 먼저 십일조부터 떼는 사람은 그래서 그런 것입니다. ‘첫 번 것을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나서!’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며 사는 겁니다. 그래서 첫 열매를 드리라고 한 겁니다.
어떤 남자가 심장병으로 고생을 해서 병원에 입원을 했어요. 이제는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어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부인은 너무나도 가난하고 돈도 없고 병원비도 없고 먹고 살기도 힘들고 거기다 남편마저 죽으면 어떻게 사나 걱정하는데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로또를 보고 ‘이거 하나 사보자.’ 로또를 샀더니 이게 당첨이 되어서 벼락부자가 되어 수백만 달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사람이 얼마든지 있잖아요? 너무 기뻤는데 문제는 이 소식을 남편에게 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왜냐하면 남편이 쇼크를 받을까봐서 입니다. 남편이 심장병으로 가물가물한테 이 소리를 듣자마자 죽을까봐 입니다. 그렇잖아요? ‘이거 어떻게 하나? 알려주고 싶지만 그러다가 쇼크 받아 죽으면 나 때문에 죽는 것인데….’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사실대로 이야기 했습니다. “목사님, 이것을 알려야 되겠습니까?” 목사님이 막 야단치시는 겁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무슨 돈 때문에 쇼크 받아 죽다니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얘기하십시오. 괜찮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오히려 더 좋아하고 병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슨 고민이라고, 괜찮습니다. 가서 이야기하십시오.” 막 목사님이 야단치셨습니다. “예수 믿는 집사가 무슨 돈 때문에 쇼크 받아 죽는다니 무슨 미친 소리예요? 가서 말씀하세요.” “그러면 목사님이 나와 같이 가주세요.” “좋아요! 같이 가지요.” 그래서 함께 갔습니다. 부인이 망설이는데 목사님이 “빨리 얘기하세요. 괜찮습니다.” 그래서 부인이 조심스럽게 사실대로 이야기했더니 그 남편은 하나도 놀라지 않는 겁니다. “보세요! 뭐가 놀랍니까?” 남편은 편안하게 “그런 적이 있었습니까? 참 다행이네요. 하나님이 축복해주셨네요. 내가 아파서 돈을 못 버니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아주 편안하게 말합니다. “보세요! 무슨 쇼크입니까? 쓸데없는 걱정하고는….” “그러면 이 많은 돈을 어디다 쓰면 좋겠어요?” “그래요? 그러면 결정권을 나한테 주는 거예요?” “그래요. 당신이 결정하는 대로 내가 쓸게요.” “나는 그 돈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나에게 결정권을 준다면 하나님이 주신 거니까 50퍼센트는 당신이 쓰세요. 하나님이 주시면 누리면 되는 겁니다. 마음대로 쓰세요. 50퍼센트는 당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그냥 주신 것이요. 하나님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 50퍼센트는 하나님의 선한 사업에 쓰세요. 그러나 당신의 지혜로 그럴 능력이 없으니 50퍼센트는 목사님께 드리시오. 목사님이 알아서 선한 사업에 잘 쓰실 테니 그렇게 결정합시다.” “아, 그럽시다.” 그러자 그 소리를 옆에서 들은 목사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었답니다.
물질은 관리할 줄 아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소식은 많지만 대한민국은 올해 태풍도 한번 불어오지 않고 황금물결이 되어 일 년 동안 먹을 양식이 넉넉해진, 창고가 넘치도록 쏟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감사의 달을 감사하며 보내야 합니다. 여러분, 물질 문제에 있어서만은 이것이 손해가 나는지 결단해서 한번 해보세요. 하나님의 축복 약속이 들어있습니다. 이 풍만한 가을철에 모두의 가정이 풍요해 지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옛날 왜 하나님은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첫 곡식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는가 그 영적 의미를 잘 깨닫고 물질 문제가 시험이 되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날마다 즐거움이 되고 기다림이 되는 은혜를 내려 주사, 성도들 가정이 다 하나님께 축복받아 이 황금물결이 이는 가을철과 같이 성도들의 가정도 축복이 넘칠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지켜야 할 세 명절
출 23:14-19 / 박덕기 목사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생활의 규범으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삶의 규범으로서 세 가지 명절을 지키도록 하신 명령입니다. 이러한 명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깨우쳐 주시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가를 상고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1. 무교절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14절에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 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고 했습니다. 유월절을 통하여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여 일주일 동안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 절기가 바로 무교절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인 정월 14일부터 21일까지 칠일 동안 지키는 절기로서,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인 무교병만을 먹어야 했습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죄악과 부패로 상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사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시려는 목적은 다른 데에 있지 않고,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신 것처럼 그의 백성들도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을 가르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의 규례를 정하여 주시고, 부패와 죄악을 상징하는 무교병을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가장 먼저 준비할 것은 깨끗한 신앙입니다. 그래서 또 18절에 보면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희생의 피는 유월절에 드리는 어린 양의 피를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유교병은 누룩을 넣은 빵으로 누룩은 죄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바로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과 죄는 함께 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무엇입니까?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의 죄를 씻어 구원의 자리에 이르게 하는 것이 곧 주님의 보혈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죄는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상극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함을 받은 성도의 죄 또한 함께할 수 없는 상극이어야 합니다.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으시지 않으시는 것처럼, 만일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함을 받은 성도의 삶 속에 여전히 죄의 모습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예배하려는 자가 제일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자신에게서 죄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성도들을 보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릴 때 몸을 깨끗이 씻고 깨끗하고 멋있는 옷을 입으며 하나님께 바칠 예물은 준비하면서도, 지금 자기 안에 죄가 있는지 자신의 삶에 죄가 자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돌아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외모를 깨끗하게 단장하고 많은 예물을 드린다고 해도, 우리 안에 여전히 죄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지 않으시며 오히려 가증스럽게 여기심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깨끗한 심령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기에 앞서 자신의 마음이 죄로 더러워져 있지는 않은지 살피고, 우리 안에 죄가 있다면 먼저 애통하고 회개함으로 심령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모든 죄를 회개하여 깨끗해진 심령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진정 받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유월절을 통하여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여 일주일 동안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 절기가 바로 무교절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사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시려는 목적은 다른 데에 있지 않고,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신 것처럼 그의 백성들도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을 가르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의 규례를 정하여 주시고, 부패와 죄악을 상징하는 무교병을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고전 5:7-8에 보면 이와 동일한 명령이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주어졌다는 것을 이미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교절을 일주일 동안 지켰습니다. 일주일은 신자의 일평생을 상징하는 기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 죽임을 당하시고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 주셨으므로, 모든 성도들은 도덕적 의미에서 명절을 지켜야 합니다. 곧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과 같은 생활로서, 일생 동안 성결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교절의 규례가 오늘날 성도들에게 주는 교훈은 한 마디로 거룩한 생활입니다. 정녕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함을 받은 성도는, 자신을 죄로부터 철저하게 구별함으로써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총을 받은 성도의 합당한 삶은 곧 감사와 성결이어야 한다는 것이 무교절의 교훈인 것입니다.
2.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16절에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둔 때를 기념해서, 자신들이 거둬들인 열매의 처음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절기를 지키라고 명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밭에서 거둬들인 열매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인정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가나안 땅은 물이 귀해 건조하고 농사짓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나마 씨를 뿌릴 때와 수확하기 직전에 때를 맞춰서 비가 내려야만 무사히 수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열매를 거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맥추절을 지켜 자신들이 거둔 열매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인정하며 감사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를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은 비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척박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열매를 거두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보십시오. 세상에는 피나는 노력과 땀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열매도 거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수고와 노력의 열매를 거두는 듯하다가 다른 사람에 의해 혹은 천재지변에 의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쭉정이는 거둘 수 있어도 열매는 결코 거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수고와 노력이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거둔 모든 열매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 중에 열매 거둔 것이 자신의 노력과 능력 때문이라고 자랑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하고 감사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로서 하나님께 더 이상 은혜를 입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거둔 열매까지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그런즉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더 큰 감사의 조건이 있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수확한 곡물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바치는 절기인 맥추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섬기며 살아간다는 신앙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에도 맥추절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간다는 것, 하나님을 무엇보다도 가장 귀하게 섬기며 살아가는 신앙의 표현인 것입니다. 처음 것, 첫 마음, 첫 시간, 첫 재물, 첫 기회, 첫사랑 이런 처음 것들은 모두가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무엇이든 가장 귀한 것, 가장 좋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 첫 마음을 드리는 것이 상례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이 곧 맥추절이 가지고 있는 참된 의미인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맥추절을 지키는 올바른 마음의 자세는 이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는 것이 너무나 적은 것 같습니다. 어느 방송국에서 출간하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 청년 1백 명을 대상으로 당신이 앞으로 결혼하여 살아갈 집을 설계하여 보라고 했더니 그 설계 속에는 오디오를 넣어서 음악을 감상하는 방이며, 주방이며 세탁실이며 화장실, 휴게실 등이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백 명 중에 한 사람도 부모를 생각하여 부모님이 계실 방을 설계한 청년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 시대의 당연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일입니다만 자식을 둔 부모로서는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조사 대상자 1백 명 중에 부모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말은 아닐 것이며, 부모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뜻은 더욱 아닐 것입니다. 그들도 자랄 때는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을 것이며, 그들을 길러주신 부모님은 온갖 수고 다하고 모든 것을 그 자식 기르는 일에 쏟아 부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식들이 성장 하여서는 늙은 부모 뒷방 한 칸도 주고 싶은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이 세대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점점 감사가 메말라 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의 회복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3.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수장절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로, 이 감사절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다른 두 절기 곧 무교절과 맥추절과 함께 하나님이 계신 곳, 예루살렘 성전에 꼭 올라가야 했습니다. 신 16:16에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초막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대이동이 전개되는 절기중의 하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추석 명절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것과 비교할만한 민족의 대이동이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 모여 감사의 축제로 지켜야 했습니다. 축제의 첫날은 아무 노동을 하지 않고 성회로 모이고 칠일동안 초막에서 지낸 후, 제 팔일 째도 다시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도록 하였습니다. 이 절기 동안에는 온전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리는 일만 했습니다. 이 감사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가을 곡식을 추수하여 수장한 것에 대한 감사, 그래서 곧 수장절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주신 것, 즉 구속의 역사에 대한 감사 곧 초막절로 지켜왔습니다.
셋째는, 수장절인 칠일 동안은 반드시 초막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이 절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초막에 거하게 된 것은, 그 해의 추수한 곡식을 저장한 후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수장절에다가, 출애굽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감사하고 찬양하는 뜻을 접목시켰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광야 생활 40년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물로 양식도 자급자족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반석을 쳐서 그들에게 물을 먹이셨고, 먹을 양식과 고기가 없을 때에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런 위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을 어떻게 보호해 주셨는가를 회상하면서, 조상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절기가 바로 수장절이요 초막절이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 어느 곳에 있던지 이 절기에 초막을 짓고 초막에서 칠일동안 지낸다고 합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베란다에 초막을 짓고 자녀들과 같이 기거하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신 행적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론을 통한 설명적인 교육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살아있는 체험적 교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삼대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시면서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반드시 하나님께 바칠 예물을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물을 요구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물질이 탐이 나셨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하나님께 무엇이 부족해서일까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부족하지도 탐나지도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예물을 요구하신 것은 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은 누구나 물질을 소중하게 여기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물질도 아낌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진실한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오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은 물질도 화려한 예배도 아닙니다. 진심으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경배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예배를 드리고 엄청난 예물을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예배를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하나님께서 이 땅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을 보실 때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또 저와 여러분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혹시 여러분은 지금 다른 사람의 강요에 못 이겨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면 체면 때문에, 또는 어떤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는 시간 낭비이며 여러분이 드린 물질은 헛된 것일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왕에 드리는 여러분의 예배가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배와 감사를 담으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년 3차 명절을 지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곧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듯 일년에 삼차 가지키도록 하신 절기는 모두 감사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삼대 절기를 지키도록 하신 의미는 분명합니다. 곧 그러한 감사 절기들을 통하여 그의 백성들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가장 긴 밤' 등을 집필한 작가 코넬리어스 라이언은 5년간 암으로 투병하다가 사망했습니다. 그는 투병 중에도 매일 아침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좋은 날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라이언은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한결같은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무엇이 그렇게 감사하냐고 물었습니다. 라이언이 대답했습니다. "새날을 맞는 다섯 가지 기쁨이 있소. 첫째, 사랑하는 당신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오. 둘째, 가족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고. 셋째, 병들어 눕기 전에 작품을 탈고한 것이 감사하지요. 넷째, 병마와 싸울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 그러나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주님이 지금 나와 가까운 곳에 계신다는 사실이오." 여러분도 이렇게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프랑스 파리의 어느 교회에서 선교사를 보내려고 헌금을 하는 중이였습니다. 서양에서는 헌금 접시를 돌릴 때 만약 큰돈을 가졌는데 적게 내고 싶으면 헌금 접시에 큰돈을 놓고 잔돈을 거슬러 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자기 형편대로 또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것이 흉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그 헌금 접시가 어느 눈먼 사람 앞에 멈추었습니다. 그 사람은 1프랑도 헌금할 수 없는 형편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7프랑을 접시에 세어서 놓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옆 사람이 물었습니다. "아니, 당신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헌금합니까?" 눈먼 사람이 웃으며 대답합니다. "저는 눈이 안 보이지요. 그런데 제 친구에게 물어보니 저녁 때 불을 켜는 비용이 일 년에 27프랑이 든다고 하더군요. 나는 불을 켤 필요가 없으니 일 년이면 이만큼의 돈을 저축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모은 거죠. 그래서 예수님을 몰라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참 빛이 비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아름다운 믿음으로 봉헌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감사한 일들이 더욱 넘치도록 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명절을 즐기는 생활
출 23:14-19 / 임덕순 목사
오늘말씀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매년 세 번씩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시는 내용입니다. 절기는 명절입니다. 명절에는 맛있고 영양 있는 명절음식이 있고, 만나는 반가움이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기 힘들고 고통스런 일을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명절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잔치하면서 살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죄와 고통 가운데 눌려서 평안과 즐거움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모습이 딱해서 안식을 주려고 부르신 분입니다.
눅1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오는데 각각 삼위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 때문에 애타다가 찾은 목자는 그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와서 친구들과 잔치를 했습니다.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낸 여인은 자기 친구를 불러 잔치를 했습니다. 잃은 아들이 돌아와 품에 안은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했다고 말씀했습니다. 모두 잔치했다는 말로 끝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잔치하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현장도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칫집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누르고 억압하는 종교가 아니라 밝고 아름답고 즐거운 삶을 살게 하는 종교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시105:3)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너희 필요한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기독교는 즐거운 종교, 잔칫집 같은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스런 명령을 내려서 종교가 짐이 되고 신앙이 짐이 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신앙생활이 즐거운 잔치가 되게 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은 항상 쉼을 누리고, 항상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돈을 모아도 허전하고 명예를 권력을 가져도 외롭고 명예를 얻어도 허망하고 불안하며 힘겹고 의미 없는 삶이 이어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생이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는 잔칫집 같은 즐거움과 생기가 있나요? 아니면 침체되고 외롭고 우울하고 의미 없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나요? 잔치 하는 신앙생활을 본문에서 배워봅시다.
17절에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자주 만나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추석이나 설 명절을 만나면 부모님을 찾아가 뵙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선물을 사지 못할지라도 몸으로라도 찾아뵙는 것이 자식 된 도리입니다. 그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년 최소한 세 번은 명절을 정해서 하나님을 찾아뵈러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오라는 명령입니다.
그들이 가나안땅에서 함께 살 때에는 며칠을 걸어서 예루살렘으로 다 모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리가 멀고 교통도 불편하였지만, 성전도 비좁아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는 예루살렘에 가고 얼마는 자기의 고향에서 기도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살 때에는 예루살렘에 올 수가 없었으므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그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읽고 찬양을 드리는 약식 제사를 남의 땅에서 드렸고, 포로기 이후에는 제물로 제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읽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회당예배가 발전하게 됩니다. 그들은 회당에 모여서 시편을 읊고 기도를 하였는데, 짐승 제사 대신에 기도를 제사로 드렸습니다.
출애굽 여행을 하는 도중에는 회막에 보였습니다. 그때는 사람들이 아무데서나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한 텐트를 지정해 주시고 내가 여기서 너희를 만나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텐트가 하나님을 만나는 회막이 된 것입니다. ‘회막’이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불렸는데, 나중에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는 성전이 회막을 대신하게 되었고,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에는 그리스도가 완전한 성전이며 완전한 제사가 되셨습니다.
사실 구약의 제사용 짐승들은 그것이 인간의 죄를 사하는 효력을 가질 수 없었고,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오셔서 짐승처럼 죽임을 당하실 우리주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겠다.”(요2:19) 하신 것은, 당신 자신이 참 성전이시고, 구약의 성전은 당신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신 우리 성도들이 회막이요, 참 성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참된 접촉점은 예루살렘 성전이나 어느 대형 예배당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께로 가려면 내게로 와야 한다. 내가 구약이 말씀한 그 장소이고, 그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므로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만날 방법이 없다. 그러니 내게로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모일 때에는 빈손으로 오면 절대 안 되고, 하나님께서 힘을 주신 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15, 신16:16 고후 8:3). 그래서 그들은 성전에 올 때마다 손에 예물을 가지고 갔습니다.
우리도 주일마다 주일 헌금을 드립니다. 그 주간이 월급 받는 주간이 아니어서 십일조를 드리지 않을 지라도 주일마다 주일헌금을 드립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모든 것을 주시고 주장하시는 절대자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빈손’이라는 말은 빈 신앙, 빈 마음, 빈 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없는 빈 마음, 하나님을 자기의 생명의 주인으로 고백하지 않는 빈 신앙고백, 마음은 다른데 가 있으면서 빈 몸만 와서 예배하는 빈 몸을 말합니다. 손에 예물을 준비하는 것은 빈 예배를 드리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힘대로” 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물질과 형편을 따라서’ 라는 말입니다. 자기형편에서 최선을 다하는 예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최선을 다하는 헌금을 드립니까? 십일조야 최선을 다하고 말 것이 없지요. 받은 대로 십분의 일을 드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일헌금이나 선교헌금이나 구제헌금은 각자 믿음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대로’ 라는 말씀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커피 한잔도 장소에 따라 5천원 내지 2만원까지 합니다. 서서 주문을 하고 길에서 마시는 스타벅스나 커피빈에서도 사 오천원 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앞에 가서 기도하고 생명의 말씀을 받아먹고 자기의 무거운 문제들을 다 맡기면서 아직도 동전 몇 개나 천 원짜리 한 장으로 주일헌금을 한다면, 절대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너무 값싸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신앙생활을 자판기에서 음료수 빼 마시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너무 잘 아십니다. 너무 가난하면 오백원도 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주일마다 헌금 드리는 것이 아까워서, 수년째 천 원짜리 헌금을 하고 있다면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내가 바로 감사와 헌신이 들어있지 않은 빈 마음, 빈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전능하신 절대자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는 믿음만 말로 고백할 것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인 예물도 주신 힘대로 드려야 합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본문에서 무교절, 오순절, 추장절을 지키라고 하신 이 명령은 시간과 관계가 있습니다.
첫째, 무교절은 구원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절기인데, 이 절기는 과거와 관련이 있습니다. 성도는 항상 자신이 구원받은 사실을 감사해야 하고, 지난 날에 받은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오게 된 것은 그들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크신 능력으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아무 죄도 없고 흠도 없는 어린 양이 희생당한 대가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그날이 유월절 혹은 무교절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양을 잡아서 피를 문에 바르고 그 고기는 불에 구워서 먹되, 누룩을 넣지 않는 빵과 쓴 나물과 함께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누룩은 애굽에서 그들이 지은 죄를 상징했고, 쓴 나물은 지은 죄의 대가로 지금까지 받은 고통들을 의미했으며, 양 고기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는 구원자의 살을 의미했습니다. 일종의 성찬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의미 있는 음식을 먹고 있을 때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내려와 애굽의 피 없는 가정들의 장자를 치셨고, 애굽 왕은 결국 항복하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을 받은 날은 유월절이고, 나중에 그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일주일간 누룩 없는 빵을 먹으면서 과거의 은혜를 감사하던 절기를 무교절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두 절기는 같은 것입니다.
이 절기의 핵심은 어린양의 희생입니다. 아무 죄 없는 양이 자기들 대신 죽어서 자기를 살렸다는 것을 기억하는 명절인데, 그것은 대대손손 죄의 노예로 살면서 구원의 희망이 없었던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오셔서 죽으실 것을 예고한 사건이고,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은혜의 해방절기를 지켰던 것처럼, 우리도 은혜로 받은 구원을 기억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맥추절을 지키라는 명령은, 정착할 땅을 주신 것을 감사하는 것으로, 현재 누리는 은총에 감사하라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성도는 지금 내가 하나님께 받아 누리고 있는 축복에 대하여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없는 것에 대한 불평이 아닌, 주셔서 받은 것에 대한 감사로 살아야 하고, 이것이 내일의 은혜를 준비하는 그릇이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 절기는 이름이 많습니다. 초실절, 맥추절, 77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초실절 혹은 맥추절이라고 하는 이유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거기서 곡식을 거두고는 감사해서 지킨 명절인데, 보리와 밀로 제물을 삼아 드렸기 때문에 초실절 혹은 맥추절이라 하고, 77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하는 것은 어린양이 대신 죽은 유월절부터 계산하여 일곱 주간이 되는 때였기에, 일곱 주간이니까 칠칠절이라 하고, 일곱 주간이면 첫날까지 합해서 50일째니까 오순절 이라고도 부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절기도 주님의 죽으신 뒤에 후속조치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예고하는 절기입니다. 신기한 것은 인류의 어린양 되신 예수님은 그 유월절 날, 즉 어린양 잡는 그날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50일 후,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거둔 곡식을 먹으면서 새 생활을 시작한 것처럼, 어린양 되시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가 새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성령충만 이라는 영적 양식이 필요하고, 그것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구약에서 오순절은 이스라엘이 정착지의 곡식을 먹으며 영토를 가진 국가로서 새 출발을 한 날이고, 신약에서의 오순절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성령이 주시는 새 마음과 능력으로 출범한 날입니다. 따라서 이 맥추절 혹 오순절은, 오늘의 바르고 힘찬 생활을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신 은혜를 감사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날마다 필요한 것으로 채우시고 함께하시며 인도하려고 성령을 보내주신 은혜에 대하여 날마다 감사하며, 성령 충만하여 살라는 명령입니다.
셋째, 수장절은 미래와 관계가 있습니다. 수장절은 이스라엘이 가을걷이를 마치고 지키는 축제로서,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도 인도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과거 애굽에서 살 때는 노예로 살았기 때문에 소유가 없었으니 자기 양식을 쌓아 놓고 편하게 쉴 꿈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광야생활을 하던 40년 동안도 날마다 이삿짐 보따리 싸들고 여행을 해야 했기에 창고를 짓고 추수한 곡식을 쌓아 놓고 여유 있게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에 들여보내 주셔서 정착했습니다.
농사를 지어 곡식을 거두어 창고에 넣었습니다. 이제는 내일 먹을 양식을 염려하지 않고 발을 쭉 뻗고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래가 보장된 이런 삶을 누가 만들어 주셨습니까? 생각해 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컸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내일도 지켜주실 것을 생각하니 감사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키는 절기가 수장절 혹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러니까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확신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절기를 지킬 때는 각자 집안에서 편안히 소파에 앉아서 지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집에서 나가서 밖에 천막을 쳤습니다. “우리는 과거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런 생활을 했지,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안락한 생활을 하게 해 주신거야, 얼마나 감사하니?” 하면서 자녀들에게 과거의 은혜를 들려주고, 하나님께서 앞날도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집 밖에 나가서 초막을 짓고 일주일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풍요와 평안을 내일도 지속하려면, 오늘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더 철저히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자녀에게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장절, 혹은 추수감사절은 미래를 위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를 일부러 잊으려고 하고 감추려고 합니다. 지독한 고생을 한 사람이 조금 살만 해 지면, 옛날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면서 자기 과거를 누가 알까 봐서 아무도 모르는 동네로 가서는,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라도 되는 듯이 행세합니다. 그러면서 옛날에 자기처럼 오늘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짓밟으며 하나님께 등을 돌립니다. 그래서 축복이 대를 잇지 못하고 쉽게 끝나는 것입니다. 그 누구라도 과거의 고난과 은혜를 잊어버리면, 당연히 사치와 방종과 무분별한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에 과거를 묻어두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쉽게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사는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에 새겨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사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고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축복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이런 명절들이 이스라엘이 생각해 내서 지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셨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계속해서 은혜 받는 백성이 되게 하려고, 어리석고 배은망덕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하려고, 후손에게도 복을 계속해서 주시려고, 이런 제도들을 자세히 만들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복된 민족이 된 것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한다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단 마음으로 순종합시다.
이런 명절을 지키며 제사를 드릴 때에 주의할 몇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희생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라.” 희생제물이란, 죄인을 대신해서 비참하게 죽는 짐승을 말하는데,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비참하게 제물로 드려진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제물을 드릴 때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유교병이란 누룩이 들어간 떡, 즉 죄가 제거되지 아니한 삶, 아직도 죄로 범벅이 되어있는 생활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희생제물을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라는 말씀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죄악을 회개하지 않은 채로, 죄로 범벅된 모습 그대로 가지고 와서 예수를 믿는 척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교회에 나오면서 죄도 회개하지 않고 더러운 몸으로 거룩한 주님을 만나는 것은 모독하는 짓이며,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절기 희생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마지못해서 하지 말고 예배드리기를 힘쓰라는 말이며,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고는 뒤로 미루며 질질 끌지 말고 하나님의 일부터 먼저 하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네가 염려하는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등의 문제는 내가 책임져주마”하시는 말씀입니다. 자기에게 돈이 되는 일은 열심히 하면서 헌신해야 하는 하나님의 일은 게을리 미적거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있으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당연히 복음을 전하여 이웃의 영혼을 구하는 일입니다. 전도 먼저 하는 성도가 됩시다.
19절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리라” 이 말씀은 무엇일까요? 열매를 거둘 때마다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고, 이것은 십일조를 드리는 정신과 같은 것입니다.
처음 익은 곡식을 하나님께 바치면 곡식은 ‘소제’ 라는 제사에 사용했는데, 소제는 많은 곡식제물 중에서 한웅큼만 제단에 태워 제물로 삼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어 양식으로 먹게 하셨습니다. 즉 소제라는 것은 자세히 알아보면 그 당시 제사장들의 양식으로 바치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만 아닙니다. 번제나 화목제는 짐승을 바치는 제사였는데 그때도 짐승을 전부 태워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기름과 간과 꺼풀을 태웁니다. 그리고 오른쪽 넓적다리 같은 좋은 고기는 제사장에게, 나머지는 레위인에게 드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양식이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짐승 고기를 잡수시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백성들을 이끄는 당신의 종들이 먹을 것은 챙기십니다. 우리도 명심해야 합니다. 구제 봉사 선교도 중요하지만, 내 교회에서 일하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공급해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백성들이 십일조와 제물 바치기를 게을리 했을 때, 제사장은 먹을 것이 없어서 제사에 전념하지 못하고 남의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야 했고, 그러면 자기 집 일을 하며 품삯 받는 제사장을 존경할 리가 없고,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리 없습니다. 결국 백성들은 하나님을 점점 떠나서 죄악에 빠졌으며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말았습니다. 제사장들의 생활을 책임지는 일은 자신들의 축복을 위한 당연한 일입니다.
“염소 새끼를 그 어미젖으로 삶지 말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요즘 TV는 맛있는 음식 소개하는 코너가 점령했습니다. 얼마나 호들갑스럽게 별미를 소개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염소 새끼 요리를 소개하면서 어미젖으로 삶아서 이렇게 맛있다고 소개하면 대박을 터뜨릴지도 모릅니다. 염소 새끼를 삶아 먹으면서 제 어미의 젖으로 새끼를 삶는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행동입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상식을 벗어나는 비인격적이고 무자비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레 22:28에 보면 “암소나 암양을 무론하고 어미와 새끼를 동일에 잡지 말지니라.”하셨고, 신 22:6에는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성도가 세상을 살면서 물질이나 세상 환경을 남의 물건 대하듯이 하지 말고 내가 세상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행동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남의 수박밭에서 서리하는 사람은 수박 넝쿨이 밟히든지 말든지 수박 한 덩이 훔쳐 먹으면 되지만, 농부는 넝쿨이 상할까봐서 얼마나 조심하는지 모릅니다. 세상의 관리를 맡은 인간이 하늘과 바다와 환경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주인답게 처신하라는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바다의 생선을 잡으면서도 다 자란 것만 잡아서 어장이 고갈되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모든 생활에서 품위 있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며, 불신자에게도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만 잘 드리면 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서 그의 생활이 하나님께 제사가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지난날의 은혜를 잊지 말고, 오늘의 축복을 감사하며, 미래도 하나님께 맡겨 드리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라는 명령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이 귀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면 누구나, 매일, 명절처럼 행복해집니다. 늘 감사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로 날마다 마음속에 잔치의 즐거움이 계속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