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오면 물상들은 모습을 드러낸다...
과연 새벽의 의미는 무엇일까?
새벽의 15세기 고어는 <새박 (원각) >, <새배 (선종영가집언해)>이다.
한국어의 조상어인 르완다어 seke는 새벽 (dawn)의 뜻이며, baga는 껍질을 벗기다 (to remove skin)의 뜻이다.
르완다어 sya는 갈다, 부딪히다 (to grind, crush)의 뜻이며 과거형은 seye이고, cya는 밤이 낮이 되다 (to change from night to day)의 뜻으로서 과거형은 keye이다.
그러므로, 르완다어 새벽인 <seke (dawn)>는 <seye (to have crushed) + keye (to have changed from night to day)>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충돌하여 밤이 낮으로 바뀐 것>을 의미한다.
한국어 <새벽>은 <seye (to have crushed) + baga (to remove skin)>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충돌하여 껍질이 까진 것> 즉, <밤낮이 충돌하여 날이 샌 것>을 의미한다.
또한, <(날이) 새다>는 르완다어 seye (to have crushed)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밤낮이) 엇갈려서 충돌하는 것>을 의미하며, <(잠을) 깨다>는 keye (to have changed from night to day)>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밤의 어둠에서 낮의 광명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새벽>은 <날이 새는 것>을 의미하며, 새는 것 (seye)은 날이 깨지는 것 (to crush)을 의미한다.
그러면 과연 <날>은 무엇일까?
르완다어 rara는 밤을 지내다 (to spend the night)의 뜻이며, rari는 욕정 (lust, strong desire)의 뜻이다.
그러므로, 한국어 <날>은 르완다어 rara (to spend the night) 및 rari (lust)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욕정의 밤>을 의미하는 것이다.
원시인의 <낮>은 사냥이나 채집 등의 일을 하는 시간인 것이고, 해가 진 <밤>은 모든 일과가 끝나고 랄라라 즐거운 남녀간 욕정의 시간인 것인데, 이 즐거운 시간이 바로 <날>의 정체인 것이다.
이러한 즐겁고 달콤한 날이 새면, 생존경쟁의 치열한 일을 하여야 하는 공동작업의 힘든 시간이 도래하는 것이니, 당연히 원시인의 하루의 중심은 밤인 것이고 그것이 <날>인 것이다.
밤의 시간인 <날>이 새면 (깨지면), 원시인들은 <일>을 하여야 한다.
르완다어 ira는 낮을 밤으로 바꾸다 (to change from day to night)의 뜻이므로, 한국어 <일>은 <낮 시간 내내하는 작업>을 의미하며, 따라서 밤일은 일이 아닌 것이다.
르완다어 ira (to change from day to night)의 과거형은 ije이며, 낮의 일이 끝나면 <이제> 밤인 것이다.
한국어 <이제>는 <낮이 지나고 밤이 도래한 저녁>을 의미하며, 새로운 날이 온 것을 의미한다.
즉, <날>의 기준은 <이제>인 저녁부터 다음 날 저녁까지인 것이니, 하루는 오늘 오후 6시~ 다음날 오후 6시인 것이다.
<둘이서 날밤을 새우다>라는 표현 속에서 <날이 자지 않고 지키는 밤>을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르완다어 bamba는 펼치다 (to stretch out to dry, crucify)의 뜻이며, bambura는 거두다 (to remove a hide from the pegs after drying)의 뜻이다.
한국어 <밤>은 르완다어 bamba (to stretch out)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이부자리를 펼치는 것> 즉,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잠을 자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며, <(먹는) 밤>은 bambura (to remove a hid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껍질을 까먹는 견과류 과실인 것이다.
그러므로 <날밤>은 이부자리를 펼치고 자지않고 지새는 것이며, 또한 <(생률인) 날밤>은 껍질을 까지 않은 밤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날>의 진정한 의미는 밤이 아니라, <밤에 자지 않고 맨정신으로 생생하게 밤을 지새며 버티는 것> 즉, <밤에도 살아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밤에도 생생한 <날>은 새벽이 오면 깨지는 것인데, 날이 깨지고 오는 것은 낮이다.
그러면 낮의 의미는 무엇일까?
르완다어 rasa는 해가 뜨다 (to rise od the sun)의 뜻이며, 한국어 <낮>의 어원이다.
그런데 <날빛이 어스레하다>는 표현이 있듯이, 날은 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낮에도 있는 것인데, <날빛>은 햇빛을 받아서 푸르스름하게 물들은 날의 빛인 것이다.
그러면, <날>의 정체는 하루종일 24시간 존재하는 시간인 것이며, 밤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다가 날이 새면 태양 빛의 지배를 받아 푸르고 허옇게 익어 있어서 구실을 못하다가, 다시 저녁이 오면 살아나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날>은 영속하는 지구 또는 이 세상의 흐르는 시간인 것이며, 그것은 태양이 지는 시점을 기준으로 24시간 주기로 반복되는 것이니, 한국어로 <하루>이며 영어로는 <day>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침과 저녁의 의미를 보자.
르완다어 asa는 장작을 패다 (to cut, chop firewood)의 뜻이며, cya는 날이 밝다 (to change from night to day)의 뜻이고, mo는 그곳 (there, in that)의 뜻이다.
한국어 <아침>은 르완다어 <asa + cya + mo>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날이 새는 벽두>를 의미하는 것이다. (mo는 한국어 명사 <~음>의 어원이고, c는 ch (치)발음이다)
일본어 <아사>는 역시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르완다어 <asa + (cya + mo)>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날이 새는 벽두>를 의미하는 것이며, 다만 (cya + mo)가 생략되었을 뿐인데, 이것은 원시 한국어에서 유래한 일본어가 원시게르만에서 유래한 영어의 조어법과 유사한 것을 의미한다.
세소토어 tjamela는 응시하다 (to stare)의 뜻이며, 르완다어 nyuguza는 헹구다 (to rinse)의 뜻이다.
한국어 <저물다>는 세소토어 tjamela (to star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태양이 서산에 걸려서 째려보는 형상>을 의미하며, <녁>은 르완다어 nyuguza (to rins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행구어 주위로 흩어진 것>을 의미한다
한국어 <저녁>은 <세소토어 tjamela (to stare) + 르완다어 nyuguza (to rins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해가 저무는 공간적 또 시간적 구역>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는 새벽부터 아침 낮 저녁 밤을 주기로 이루어 진다.
르완다어 haruro는 마당 (yard, compound)의 뜻이다.
한국어 <하루>는 르완다어 haruro (yard, compound)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한 마당> 즉, <새벽부터 아침 낮 저녁 밤에 이르는 1일의 장>을 의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