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여행 후기

[theo]

 * 로고 이쁘네요. 

 * 여러 예쁜 사진들이 첨부된, 혹은 여행에 도움이 될 정보들이 수록된 여행기 같은건 아닙니다. 언제나 그렇듯, 그냥 잡담일 뿐입니다. 

 * 떠나요. 

 어떤 목적도, 어떤 바램도, 어떤 이유도 없이 그냥 떠나고 싶었습니다. 

 농담처럼 지인들에게 했던 이야기처럼, 지옥이라도 상관 없었다는 마음이였어요. 그냥 여기만 아니면, 어디라도 좋으니 무작정 떠나고 싶었습니다. 시간도, 돈도, 직장 사정도, 집안 사정도, 여러모로 여의치는 않았지만 그냥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어요. 

 그래서 집에서, 직장에서 욕먹고, 없는돈 쥐어짜고, 빼선 안될 시간 빼서 대책없이 떠났습니다. 

 워낙에 난코스들이 많다보니 여행지를 고르고, 시간을 선택하고 남들 다 그렇게 하듯 준비해서 떠나는 여행은 불가능했습니다. 1월 24일에서야 휴가를 억지로 얻어냈고, 집에 허락받은건 25일, 출발은 28일이였습니다. 26일에서야 비행기표를 급하게 알아봤고, 떠나기 전날인 27일에 겨우겨우 숙소를 잡았습니다. 

 * 대만의 인상 

 제게 있어서 대만의 첫 인상은 친절하다 였습니다.

 여행 준비도 전혀 안되어있었고, 중국어 전혀 할줄 모르고, 한자도 무척 못 읽는 제가 뜬금없이 타이페이에 떨어졌으니 처음부터 실수 만발이였습니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던 도중, 잘못된 버스를 탔다는걸 깨닫고 당황하고 있으니, 타이페이 시민분들이 와선 도와주시더군요. 나보다도 더 짧은 영어와 어두운 버스 안에서 흐릿한 제 숙소 지도를 뒤적이면서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모습들이 참 감사했습니다. 

 결국은 어떤 친절하신 분이 직접 자기 차로 저를 숙소까지 태워주면서 제 첫번째 해프닝은 끝이 났고, 그런 호의를 받은 제가 대만 사람들을 "친절하다" 라고 표현하는건 당연한 거겠죠. 

 두번째로 MRT(지하철)을 사용하면서 느낀건데, 대만이란곳이 생각보다 문화수준이 높다는 겁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탈때 보통 바쁜 사람들을 위해서 왼쪽을 비우고 서서 갈 사람은 오른쪽에 섭니다. 근데 그게 한국에서 잘 지켜지나요? 어쩔땐 잘 지켜지고, 어떨땐 전혀 안지켜지고 들쭉날쭉 하죠. 대만에서 아무리 사람이 미어 터지는 상황에서도 그게 안지켜지는 광경은 본적이 없어요. 또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대만 MRT에선 물 한모금도 마셔선 안됩니다. 그걸 모두 다 칼같이 지키고, 그렇다보니 MRT는 정말 깨끗해요. 

 마지막으로 술집이 참 없다는겁니다. 융캉제나 시먼딩 같은 번화가에 가면 한두군데쯤 있을까, 주택가 쪽엔 거의 하나도 없는 것 같고, 야시장에 가니 난전에서 마시는 사람들은 꽤 있었지만, 한국에선 어딜가도 널리고 널린 술집이 없다는건 좀 놀라운 일이더군요. 어디 펍 같은데라도 있으면 가서 맥주라도 한잔 해보고 싶었는데(마닐라 갔었을때 아무생각 없이 들어간 펍이 참 좋았었거든요) 그런게 없어서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 게스트 하우스

 일단 남아있는 대만 호텔이 비쌌고, 혼자 가는 여행에 무슨 호텔씩이나 필요하나..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리고 해외에선 처음이지만 제주도에서 겪어 봤던 게스트 하우스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저로 하여금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안 좋은 점을 이야기하자면, 제가 생각보다 잠자리에 예민 하다는 겁니다. 하루에 8시간씩 걷고 밖에서 14시간씩 돌아다니는 강행군 속에서도, 전 잠을 잘 못자겠더군요. 무척, 피곤했습니다. 

 그 외엔, 좋았습니다. 저녁에 모여서 여행자들끼리 서로 느낀 오늘의 즐거움을 나누고, 정보를 주고 받고, 일정을 공유하는 즐거움이란건, 게스트하우스를 사용해보지 않은 분들은 모를 색다른 즐거움이죠. 일본인들과, 영국인들과, 미국인들과, 또 한국인들과 어울려서 맥주 한잔 하면서 하는 수다는, 제주도에서 느꼈던 게스트 하우스의 정과 다를바 없이 참 즐거웠어요. 

 한편으론, 여러명이서 무리 지어 와서 게스트 하우스 로비의 즐거움을 못누리는 사람들은 좀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무리가 편하다 보니 자기들끼리 몰려다니게 마련인데, 그게 나쁘다거나 잘못되었다거나 범법이라는건 절대 아닙니다만, 그건 게스트 하우스를 100퍼센트 즐기는건 아니죠. 게스트 하우스의 즐거움이란건 대부분, 로비에서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서 나오는 거거든요. 

 그리고 제가 묵은 게스트하우스는 travel talk taipei backpackers hostel 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곳이였습니다. 뭐 다른건 다 그냥 그랬는데, 호스트가 너무 좋았어요. 밝고, 명랑하고, 친절하고, 유머러스 한 호스트를 만나기는 쉬운일이 아니죠. 영어가 짧은 관계상, 많은 이야기를 못나눈게 아쉬운, 정말 친해보고 싶은 사람이였습니다. 

 * 타이페이

 어쩌면 당연한건데, 이번 여행을 하면서 확실하게 깨달은 제 여행 스타일은, 뭐 딴건 다 제쳐두고 사람 적은곳. 입니다. 

 어릴때부터 사람 많은곳은 질색이였어요. 시끄럽고 사람 많고 막 부대끼는곳 가면 체력 소모가 평상시의 3~4배는 심해져서 금새 녹초가 되어 버리곤 했었는데, 그 성격 어디 가겠습니까? 당연히 여행지도 사람 없는곳을 좋아할수 밖에요. 

 그런데 타이페이는, 그냥 도시예요. 서울 정도의 사이즈는 아닐지 몰라도 꽤나 크고 번화하고 잘 발달한 도시입니다. 아무리 배낭여행 하기 좋은 곳이고 여기저기 구경할곳 많은 관광 도시라 할지라도, 도시는 도시예요. 그래서 타이페이 안에서 둘러본 꽤 많은 관광지들은, 뭐 그냥 그랬습니다. 꼭 그곳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타이페이 시내 유명한 곳들은, 당연히 사람이 무척이나 많더라고요. 

 제가 타이페이 안에서 가본곳이 단수이 해변, 101타워, 융캉제거리, 시먼딩, 용산사, 스린야시장 등이였는데, 썩 좋았던곳은 딱히 없었네요. 

 그나마 제일 좋았던 곳은 국립고궁박물원과 중정기념당이였습니다. 고궁박물원은 아침 오픈 1시간전에 가선, 혼자 미친놈 처럼 뛰어다니면서 마구마구 신나하다가, 중국 단체 관람객들이 몰려들자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갔습니다. 중정기념당은 1월 31일날 오픈 안하는줄 모르고 갔더니 한적하고 조용하고 웅장하고 멋있어서 또 혼자 신나서 마구 뛰어다니다가, 2월 1일날 다시 찾았다가 몰려드는 인파에 보는둥 마는둥 하고 튀었습니다. 

 제게 있어서 사람 없으면 좋은 관광지, 사람 많으면 나쁜 관광지란 거죠. 

 그런면에서 타이페이는 제게 잘 어울리는 관광지는 아니였습니다. 

 * 기차 여행

 하지만 대만에는 타이페이란 곳만 있는건 아니죠. 한국에서 기차타고 여행 한번 가고 싶다 가고 싶다, 문득 문득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운전하기 시작하면 참 안가지는게 기차여행이더라고요, 뜬금없이 대만에서 기차여행을 꽤 했습니다. 

 출발하기 전날 대만을 다녀온 적이 있는 후배녀석이 그때 설연휴고 하니 표 없을지 모른다고 기차표를 예매해서 가라 하더군요. 인터넷상으로 예매가 가능하긴한데, 상당히 불친절한 홈페이지라서 좀 난관을 겪긴 했습니다만, 타이페이-루이팡 왕복권, 타이페이-화련 왕복권을 예매하는데 성공은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타이페이 가서 보니 굳이 예매할 필요는 없는거 같더라고요. 제가 계획을 정교하게 짜서 간게 아니고 표를 막 끊다보니 시간이 다 안맞아서 루이팡으로 갈때도, 화련으로 갈때도 모두 시간을 조절하기 위해서 표를 바꿨는데도 자리는 다 있더라고요. 그렇다면 예약을 안해도 표가 있다는 이야기이고 그렇다면 힘들여서 기차표를 끊을 이유는 없었겠죠. 

 루이팡역에서 시작하는 허우통-스펀 등으로 이어지는 핑시선 라인, 지우펀, 진과스 등을 좀 빡빡하게 하루에 돌았는데, 다 좋았어요. 핑시선 라인은 특별히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건 아니지만, 참 한적한 시골마을 같은 느낌이였고, 아무 기대 없이 들렸던 스펀폭포가 의외로 괜찮았고, 지우펀 야경은 참 예쁘더군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번 대만여행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건 타이루거 협곡이였습니다. 보통 택시투어로 많이들 가는 곳인데, 전 그냥 조용히 걷고 싶었어요. 그래서 좀 뒤적뒤적 거려보니 버스도 있길래 전 버스를 이용했습니다. 화련역에서 내려서 타이루거협곡 순환 버스를 타고 꼭대기(?) 까지 올라간 다음. 거기서부턴 걸어서 내려왔습니다. 꼭대기에서 taroka park HQ까지 걸어내려오는데 5~6시간 정도 걸렸고 거기서부턴 셔틀버스 타고 화련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걸어서 내려오는 5~6시간이 제가 대만에서 보낸 5박6일중 최고의 시간이였어요. 타이루거 협곡은 정말 웅장했고, 물은 거짓말처럼 맑았고, 걸어서 내려오는 사람은 정말로 드물었거든요. 

  * 대만의 음식

 특유의 향신료가 있어요. 전 그게 싫어요.. 

 대만가는 비행기에서 먹은 기내식에 괴상한 맛이 나길래, 어 이게 그 말로만 듣던 그 향신료 맛인가.. 싶었는데 그 맛이 대만여행 내내 저를 괴롭혔어요. 대부분의 대만 음식에는 그 향신료가 들어가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다못해 편의점에서 산 과자에서도, 컵라면에서도 그 향신료 맛이 나는 대단한 기술을 보유한탓에, 어떤 음식도 방심할수가 없었어요. 

 취두부의 스멜은, 모 미국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길을 걷고 있는데 누가 갑자기 주먹으로 코를 강하게 후려친듯한 감각입니다. 모 한국여성은 아무생각없이 길을 걷다가 닥쳐온 취두부의 향에 비명을 지르면서 주저앉기도 했고요. 

 다만 사람이 꼭 죽으란 법은 없다고 다행이도 거기서 자유로울수 있는 음식들도 있는데, 만두류들은 대부분 괜찮더군요. 샤오롱바오라던가 그 외에도 제가 먹어본 만두류에는 전부 그 향신료가 없었습니다. 

 대만에서 먹어본 음식중에 제일 맛있었던건, 지우펀에서 먹은 땅콩 아이스크림 이였습니다. 이건 정말 한국에서도 팔면 찾아가서 먹어볼 의향이 있을정도로 괜찮았어요. 그 다음은 샤오롱바오, 한국에도 딘타이펑이 들어와있는걸로 아는데 대구에 딘타이펑이 없다는게 아쉬울만큼 샤오롱바오는 맛있었습니다. 

 조금 애매한건 꽃보다 할배에 나왔던 karen 이라는 철판구이집. 맛있었어요. 근데 1인 600TWD짜리를 먹었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약 24,000원이고 그정도 주면 한국에서도 그 정도 수준의 철판구이는 먹을수 있어요. 게다가 대만에서만 맛볼수 있다는 강점도 없는 종류의 음식이고요. 

 그리고 대만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꼭 한번은 먹어보고 오는, 무척이나 유명한 망고빙수. 딴데는 못가보고 융캉제에 있는 스무시 갔었는데, 맛있긴 맛있는데 뭐 그리 특별하다 할 정도로 맛있진 않더라고요. 

 * 후기

 한번쯤은 가볼만한 곳인 것 같습니다. 두번 세번은 글쎄요.. 제가 5박 6일 있다가 왔는데, 타이페이 주변에 가볼만한곳은 대충 다 둘러본거 같거든요. 좀더 깊게 들어가자면 가볼데야 얼마든지 있겠지만, 너무 좋아서 두번세번 가보고 싶은 그런 곳은 아니였습니다. 

 다만 제게 중요했던건, 제가 이루고자 했던건, 일단 떠나는것 이였고. 그걸 이뤘기 때문에 여행 자체는 만족 스러웠어요. 

 지난주 일요일날 돌아와서, 간만에 깊은 잠을 자고 월요일날 눈뜨자마자, 또 여행가고 싶다..며 중얼거리는 저를 발견하곤 좀 놀랐습니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라 했던가요. 

 다음 후기는, 방콕-라오스 or 후쿠오카 or 홍콩이였으면 좋겠습니다. 

[Melo-Drama]

먹는 즐거움만 빼면 혼자 여행다니는 것도 재밌겠네요. 준비성없는 친구들 가이드 노릇에 좀 지쳐있어서. 여행도 병이라는건 참 공감합니다. 저도 오늘 새벽 귀국하자마자 출근하면서 당분간 안가야지 생각했는데 저녁되니까 또 떠나고 싶은 마음이란.

[NO.1ACE]

상세한 후기 좋네요. 혼자가는 여행~ 가본사람만 알죠

[[Hou]호랭이]

저는 대만 천인명차 본사 한 번 꼭 가보고 싶은데 말이죠.

[번슨이]

항상 재미있게 잘 읽습니다 :)

[AIR CANADA♣]

와 관심있었는데 감사합니다

[테런스섀넌]

저랑 여행코스가 꽤 겹치네요 ㅎㅎ 저도 4년전에 갔다왔어요~
예류는 안갔다오셨나요 계절상 오픈을 안했을 수도 있겠네요
덕분에 대만생각 나고 좋아요 ~ 잘 봤습니다!

[#8스프리웰]

대만은 화렌만가면 다 갔다온거죠.ㅎㅎ

[둠키]

방콕 라오스 후기 기대할께요.^^ 잘 읽었습니다.

[kertesz]

잘 읽었어요!

[Penny Webber]

저도 대만 한번쯤 가보고 싶은데 5월초 연휴를 알아보니 벌써 티켓이 없네요..ㅠㅜ 저도 타이페이보다는 타이중이나 까오슝같은 밑에 도시들을 더 가보고 싶더라구요.

[[Card*하경우*]]

오 잘읽었습니다.

[[Card*하경우*]]

후쿠오카 후기 기대합니당

[Firefly]

저도 1월 26일~29일 일정으로 타이페이 출장이었어요. 28일 오후부터 시간이 나서 여행을 좀 해볼까 했는데, 의사소통때문에 고궁박물관만 다녀왔네요. (전 중국어를 전혀 못하고 대만사람은 영어를 잘 못하고..) 다음 대만 출장시에 하루 이틀 시간내서 제대로 좀 다녀보려고 하는데, 님 후기 잘 참조해야 겠어요~ 글 감사합니다~ 다른 여행기도 많이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