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최루탄 연기와 함께 사라진 신촌의 전성기
인터넷 미디어계 쪽에 종사하시는 선배님이,
신촌상권에 대한 기고를 부탁하셔서 지난 달에 보내드렸는데,
알럽에도 올려 봅니다.
문화적인 변화의 원인에는 다양한 원이들이 있기 때문에,
사실 정답은 없어요. 각자 바라보는 관점들이 존재하는 거죠.
그냥 저랑 비슷한 공간에 계셨던 분들이라면
조금은 같은 생각을 갖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사학 중 한 곳 연세대 학교 앞)
연희동이란 동네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신촌을 우리 집 문지방 넘듯 자연스럽게 오다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신촌은 서울 서북쪽의 교통요지로서 버스와 전철 이용이 용이하고,
연희동은 신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동네라 교통의 사각지대,
서울 어디를 가더라도 일단 신촌을 거쳐서 가야 한다.
80년대, 내가 아직 초등학생일 때구나.
이 때 4월에는 제대로 공부한 기억이 없다.
이 천하의 개만도 못한 백정놈들 때문에...
그 어린 나이에 최루가스 많이 마셔서
당시 흔하다는 회충도 없었던 거 같다.
이렇게 신촌은 서울 서북쪽 네 개의 대학이 만나는 곳이었고,
학교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상당히 강성한 운동권 세력을 자랑한 명지대도 지척에 있었기 때문에,
4.19. 민주화 항쟁을 상기한 대학생들이 4월만 되면
연대 앞으로 밀고나와 전대갈 타도를 외쳤다.
어떤 면에서 연대는 당시 운동권 학생들의 앞마당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이한열 열사... 6.10. 항쟁으로 문어 대가리 전두환이
하야를 결심하게 된 것은,
열사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자세하게 쓰면 육두문자가 튀어 나오며 글이 산으로 가니까 이쯤 해두고.
아무튼 당시의 연세대 앞 신촌 거리는 지금처럼
대통령이 댓글에 힘입어 청와대를 가든 말든
일년 동안 시위 한 번 없는 그런 정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내 기억 속의 신촌은 민주화를 일구기 위한 뜨거운 전장이었고
동시에 또 젊음과 열정이 춤추고 충돌하는 축제의 공간이었다.
격렬한 시위만큼이나 모든 상가들이 활기를 띄었고,
낮이나 밤이나 멋진 누나들과 대학생 형들,
그리고 직장인들을 볼 수 있었다.
가게마다 사람들은 넘쳐 났고,
그야말로 신촌은 밤을 잊은 거리로 내 머릿 속에 남아 있다.
최근 응답하라 1994의 열풍에 힘입어 과거 신촌에 대한 향수가
넷상에 자주 올라오는데,
이건 그만큼 신촌이 예전같지 않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신촌은 더 이상 그 때와 같이
대학의아방가르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최루가스가 신촌바닥에서 사라지면서 신촌의 전성기도 같이 사라졌다.
현대백화점 뒷편에 위치한 패밀리 레스토랑 애쉴리.
예전에 이 자리는 신촌문고라는 대형 서점이 있어 굳이 광화문의 교보문고까지 가지 않아도 다양한 책들을 구할 수 있었다. 이 곳에서 나는 김수정 화백의 둘리와 역사적 만남을 가졌지. 90년대 들어 서점규모가 점점 작아지더니, 어느 날 기어이 사라졌다. 영원히...
최근 폐업결정까지 갔다 홍익문고를 오랫동안 이용했던 소비자들에
의해 간신히 살아남은 홍익문고.
이처럼 신촌의 상징과도 같던 오랜 가게들과 건물들이 그 바래진 추억의 옷들을 자꾸 벗어내고 있다.
신촌이 예전같지 않다는 거다.
신촌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나는 초등-중학교를 다니고 있던 터라
음주가무를 즐기거나
락카페 나이트 등 유흥문화와 접하지는 못했으나,
사회로 나와 당시 선배들에게 귀동냥한 결과,
당시 신촌은 언제든지 술과 통기타를 즐길 수 있었고,
동시에 사회의 부조리와 아픔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었단다.
항상 값싼 안주거리와 물과도 같은 막걸리 소주를 마실 수 있었고,
밤새 친구들과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놔도 부담 없는
다락방 같은 공간이었던 거지.
당연히 신촌은 세련된 것 보다는 익숙한 것이었고,
신촌은 파스텔이 아닌 흑백에 가까운 도배지를 입고 있었나 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전두환-노태우라는 악귀들이 사라지고
그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격렬한 시위도 잦아들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연대 앞에서의 마지막 대규모 시위는
96년에 있었던 범청학련 통일대축전 사태였다. 한총련 소속 학생들이 학교빌딩에서 투신을 하고, 시위 진압을 위해 헬기가 뜨는 등 당시 연희동은 거의 준 전시상황이었다. 나도 등학교 때 마다 경찰들한테 내 고등학교 학생증을 보여줘야만 했다.
97년 찾아온 IMF는 한국사회의 많은 모습을 바꿔 놓았고 경기가 크게 위축되면서 상권들도 몸살을 앓았다. 그런데 이 때 IMF와 함께 한국을 찾아온 게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스타벅스였다.
바야흐로 카페문화가 시작된 거다.
환기도 시키지 않고 빤스와 런닝구가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퀴퀴한 오빠방같은 신촌보다는
화장품과 향수 냄세 가득한 풋풋한 막내 여동생같은 홍대가
새롭게 주목을 받았고,
때마침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 쇼핑몰이 각광을 받으면서
신촌상권과 공생관계에 있던 이대 옷가게들의 매출이 급감,
신촌은 이대 버프를 잃고 만다.
청춘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홍대클럽만한 것은 없었다.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 사장이라는 클럽NB는 한국 클럽문화의 효시였고,
홍대NB를 중심으로 홍대의 클럽문화는 빠르게 성장했다.
반면 신촌은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고 있었다.
오목교에 들어선 현대백화점이 목동과 강서구 영등포쪽 소비자들을 흡수하면서 을지로 롯데와 함께 백화점 매출 탑랭커로 등극하는 것을 신촌 현대백화점은 지켜봐야만 했다. 모든 부분에서 신촌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신촌과 이대 사이를 잇는 명물거리는 세련된 모습으로 단장해 나갔지만
떠오르는 강남의 가로수길이나 홍대가 갖고 있는
스타일리쉬함은 부족했다.
현대백화점 뒤쪽은 과거와 같은 영화를 회복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상가들은 대학가들이 방학에 돌입하면
간판 갈이에 여념이 없었다.
장사가 그만큼 안 된다는 뜻이다.
또 다른 신촌의 커다란 악재는 연대가 송도캠퍼스를 신설하면서 학부 1학년생들을 전부 송도로 보내버린 것이다. 학생 수가 줄어 들면서 원룸이나 하숙 수요도 줄어들고, 학교 인근에 거주하는 학생 수가 줄어드니 상권은 그만큼 타격을 받을 수밖에.
그나마 연-고전 고-연전이 신촌이 신촌 다울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기간이라 하겠다.
악화일로를 걷게 된 신촌상권은 이제 서울의 10대 상권에도 간신히 턱걸이 할만큼 그 위상이 낮아졌다. 그러는 동안 옆 동네 홍대는 본진 포화로 옆에 상수동과 합정까지 상권의 범위를 점점 넓혀가고 있다.
신촌의 초라해진 모습이 여전히 낯설다.
사실 시대적 흐름이 상당히 홍대에게 유리했던 건 사실이다.
미대가 유명한 홍대에는 미적 감각이 발달하고 유행헤 민감한 세련된 여학생들이 많았고 여학생들이 많은 곳에도 남학생들도 많아지게 마련이며,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소비는 이뤄진다.
또 홍대 미대를 지망하는 여고생들과 이들이 공부하는 미대입시 학원이 홍대 주변으로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이들의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카페들이 서울의 그 어느 곳(심지어 강남보다도) 보다도 많은 곳이 바로 홍대거리였다. 거기다 커피 프린스1호점 드라마가 대박을 치면서 이런 기류는 끝 없이 상승했다.
행정적인 문제도 있었다.
마포구는 홍대를 살리기 위해 상가들에 대한 규제들을 풀었고, 불법 가건축물이나 주차문제 해소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반면 서대문구는 이런 준비들이 부족했고 오히려 타이트한 단속과 처벌로 많은 상인들이 가게문을 닫게 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응답하라 1994와 함께 신촌에도 반격의 기회가 온 듯 하다.
2013년 12월 서대문구청은 연대 앞 명물거리를 대중교통전용도로로 바꾸면서 공사를 시작했고 도로 정비에 나섰다. 덕분에 도로는 현재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한층 넓어졌고 다니기 편해졌다. 노점들이 사라지고 보행자들은 훨씬 편하게 신촌거리를 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효과는 생각보다 크게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유동인구는 건강한 상권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고, 편안한 보행 인프라는 많은 유동인구에 필수적이다.
절제하지 못하는 청춘들이 거리에 쏟아내는 추태도 보기 힘들지만,
인적 없는 상권의 황량함도 보기 안쓰럽다.
밤10시가 갓 넘었을 뿐인데,
벌써 유동이 뚝 끊어져 썰렁한 명물거리를 보면서,
참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유학과 인턴생활을 했던 미국과 호주에서는 원래 저녁 6시만 넘어가도 거리가 썰렁하니까,
그래 이게 정상이지. 원래 밤에는 잠을 자는 거야...
그렇지만 한국은 아게 아닌데...
그많던 신촌의 젊은이들은 어디 갔을까?
정녕 신촌의 황금 시대는 최루탄이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진 걸까.
새롭게 단장한 신촌의 명물거리와 함께 신촌에 어떤 새바람이 불지 지켜보고 싶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신촌에서 20대 초중반을 보낸 사람으로서 최근 신촌 상권이 많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습니다. 오랜만에 한국 들어가는데 신촌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어요.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녀보려구요. 저의 20대의 거의 모든 것이 그곳에 담겨 있습니다. 더 사라지기 전에 기억속에 저장시켜야 겠어요.
들어오시면 연락주십쇼 홍대에서 근무중입니다 ㅎㅎ 꼭 한번 뵙고 싶네요
@shooting 감사합니다. 이번 방문은 무척 짧아서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 같아요. 5월에 다시 들어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레이스 백화점을 기억하시는 분들 혹시 있나요?? 6학년 당시에 연세대 시위로 버스들 전부 유턴해서 모래내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남네요
임대료 문제도 있죠. 저는 05학번인데 그때는 이정도로 신촌 상권이 죽진 않았었는데 임대료가 계속 오르면서 괜찮은 카페-상점들이 다 홍대쪽으로 넘어갔고 이제는 홍대도 가격이 많이 올라서 합정으로 밀려나는 분위기더군요.
홍대도 많이 죽었습니다. 요즘은 합정이 대세가 되었죠.
홍대는 그래도 사람이 엄청 많아요.^^ 주말이나 특별한 날에는 홍대입구역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도 힘들 정도니까요. 전 주로 상수나 말씀하신 합정을 주로 갑니다. 뭐 상수나 합정도 넓게 보면 홍대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요.
홍대에는 평일에도 택시가 홍대입구역에서 캠퍼스 앞까지 줄을 서더라구요 아직은
모든 상권이 같은 패턴이죠. 좋은 리테일업종들이 건강한 환경(꾸준한 유동과 적정 수준의 임대료)에서 상호 시너지를 낸다. 사람들이 더 몰린다. 유동이 늘어나면서 상호간에 선의의 경쟁. 사람들이 더 몰린다. 돈이 몰린다. 기업들이 기존 매장들을 권리금으로 매입 후 자사 브랜드 매장들이 들어선다. 임대료가 상승하고 몰개성화 시작, 리테일업종들에게 불건전한 환경 조성(임대료 상승과 흔한 브랜드들이 성업, 사람들이 찾지 않음. 지금 가로수길이 이런 문제에 봉착했다고 보고, 홍대는 죽었다는 표현 보다는 그냥 브랜드 박물관이에요. 이미 메인 자리들은 임대료가 현실성이 없어진지 한 3~4년 되었습니다. 플래그십으로 기업들이
브랜드 홍보용으로 사용하는 거고, 개인들은 진작에 상수나 합정으로 옮겼죠. 그래서 합정이 요즘 핫한 거고, 합정은 가로수길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아직은 굉장히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홍대는 신촌처럼 될 가능성은 낮아요. 생각보다 오피스들이 서교동쪽에 많아서 직장인들의 꾸준한 수요가 있는 곳이라 돈이 잘 도는 동네 중 하나입니다. 여의도나 영등포에서도 가깝고... 신촌은 현재 프랜차이즈나 레귤러 체인쪽에서도 플래그십 매장 장소로 꺼려지고 있을 정도로 지명도가 너무 낮아졌습니다.
확실히 요새는 분위기가 가라앉아있어요. 저 1학년때도 그런 말이 간혹 들리고는 했었는데 요새는 뭐 완연한 하악세네요
상권이 바뀌기 시작한 계기 중엔 좀 오류처럼 보이는게 스타벅스 들어올 시점에 신촌에 카페가 없던건 아니죠. 기존의 커피숍들의 흡연 관련이나 여러 성격을 감안해보면 다르긴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스타벅스 1호점은 이대 앞에 생겼고요. 그리고 위에 contradanza님 말씀처럼 신촌 상권이 05-06년도까진 건재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04년까진 홍대는 역 주변 말고는 꽤나 휑했지요. 신촌은 건물주들은 임대료, 입주자들은 권리금 주장하다가 있어야할 가게들은 떠나고 뜨내기나 술집만 남게 되어 망하게된 케이스가 아닐까 싶네요. 홍대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지만 권역이 넓은 관계로 주변 지역까지 크게 확장하며 버티는 모습입니다만.
이대가 메인라인은 아직도 메리트가 어마어마하죠. 지금 블랙스미스 자리에 스타벅스 1호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정답은 없죠. 상권의 변화라는 게 여러가지 원인들이 맞물리는 거니까요. 말씀하신 권리금과 특정 업종 과다 쏠림 현상 같은 경우는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리테일사업과 상권이 다 겪는 일이죠. 홍대는 상권은 확장되서 매출은 분산되고 있지만 그래도 제 상각에 메인상권으로서의 입지는 앞으로도 탄탄해질 거라고 봐요. 앞으로도 계속 강북을 대표하는 상권은 홍대와 이태원이 될 거라고 전망해 봅니다.
신촌 상권이 무너지는건 당연한거 같아요. 치솟는 임대료와 대학가는 어울리지않아요. 지금도 왜 신촌을 보면 핸드폰가게와 프랜차이즈뿐이에요.
신촌 6개월간 학원 다니며 있었는데 정말 갈곳이 없습니다. 물론 제가 다 아는건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가격도 비싸고 맛도 없고 많이 주지도 않고 제가 아는 대학 주변중 음식 가격이 가장 비싼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할아버지 댁이 연희동이었고,
80년대 초반 대학생 시절에 연세대 어학당을 다닌 적이 있어서,
당시의 추억과 아련함, 그리고 아픔이 한꺼번에 몰려오네요.
7~80년대 신촌은 정말 낭만적인 곳이었습니다.
젊음과 지성과 용기와 다양한 문화, 그리고 세련됨이 공존하던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