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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각황전의 웅장한 내부. |
전남 구례는 흔히 ‘봄 여행 1번지’로 불린다. 대표적인 봄꽃인 산수유꽃의 최대 군락지로, 3월이면 구례의 산과 들 곳곳이 노랗게 물든다. 이어 하순부터는 섬진강변에 봄의 절정을 알리는 하얀 벚꽃이 만발한다. 3, 4월에 산수유꽃 축제, 섬진강 벚꽃 축제가 잇따라 열린다. 매화로 유명한 전남 광양, 경남 하동도 구례를 관통하는 19번 국도를 타고 섬진강변을 달려야 닿게 된다. 따스한 봄기운이 나무에 스며들어야 나오기 시작하는 고로쇠 수액의 최대 산지도 구례를 중심으로 한 지리산 일대다.
# 웅장한 국보, 화엄사 각황전
봄맞이 여행이라고 해도 구례에서 화엄사를 빠뜨릴 수는 없다. 화엄사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명찰로, 웅혼한 지리산과 잘 어울리는 장엄한 분위기의 절집이다.
국보를 4점이나 보유한 이 화엄사에서 요즘 유독 눈길을 끄는 건 바로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이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얼마 전 화마로 잿더미가 되며, 새삼스럽게 관심을 끌었던 전국의 목조문화재 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숙종 때 다시 지었다는 각황전은 현존하는 국내 단일 목조건축물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그 엄청난 규모와 화려함에 놀라게 된다. 가로 30m, 세로 20m, 지붕 높이 20m에 달하는 2층 건물로, 앞면 7칸, 옆면 5칸이다. 각황전의 웅장함은 안쪽에서 더 잘 느낄 수 있다. 위·아래 층이 트인 통층이어서,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높아 보인다. 더구나 6개의 거대한 기둥이 버티고 서 있어 장중한 느낌을 더한다. 전각 안의 기둥은 모두 어른 2명이 맞잡고 팔을 벌려야 겨우 안을 수 있는 굵기다.
단청은 오랜 풍상에 모두 벗겨져 있다. 그래서 각황전은 더 고풍스럽고 정갈하게 보인다. 단청 없이도 우리 절집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각황전 뒤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으로 올라가는 108계단 길도 동백나무, 차나무, 대나무로 뒤덮여 운치가 그만이다. 이 길의 동백은 꽃망울을 막 터뜨리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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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쇠 수액은 나무에 구멍을 뚫어 채취한다. |
# ‘봄기운의 정수’, 고로쇠 수액
지리산의 봄은 고로쇠 수액으로부터 시작된다. 고로쇠 나무에서 수액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밤낮의 기온차가 커지는 봄이 왔다는 말이다. 영하인 밤에는 줄기가 수축돼 물을 흡수하고, 영상인 낮에는 줄기가 팽창하며 물을 밖으로 내보내려 하기 때문이다. 피아골 등 지리산 자락에는 요즘 고로쇠 채취가 한창이다. 지리산의 고로쇠 채취는 보통 2월 초 시작돼 3월 말까지 계속된다. 국립공원인 지리산에서는 고로쇠 채취가 엄격히 관리된다. 지름 10㎝ 이하의 나무에서는 채취하지 못한다. 10㎝ 이상이면 한 곳, 30㎝에 미치지 못 하면 두 곳에만 구멍을 낼 수 있다. 지름이 30㎝를 넘어도 3개까지만 구멍을 뚫을 수 있다.
고로쇠라는 말은 뼈에 이롭다는 뜻의 한자어 ‘골리수(骨利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고로쇠나무 수액은 필수 미네랄 성분이 보통 물의 40배가 넘어 체내 노폐물 제거는 물론이거니와 신경통이나 관절염에도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로쇠 수액은 따뜻한 방이나 사우나에서 한증을 한 후 한번에 다량 섭취하는 것이 좋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한자리에서 많이 마시기 위해 오징어·명태 등 짭짤한 음식을 곁들이기도 한다. 달짝지근한 고로쇠 수액을 마시면 봄의 새 기운도 함께 몸으로 스며드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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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산동마을에 피기 시작한 산수유꽃.◇운조루 주변에 만개한 복수초. |
# 산수유 최대 군락지, 산동마을
복수초, 동백, 매화 뒤를 이어 피어나는 봄꽃이 산수유. 꽃송이 하나하나는 손톱만한 크기에 불과하지만, 한 그루에 수만송이가 피어난다. 그래서 산수유가 무리지어 있는 곳은 화려한 노란색 꽃물결을 이룬다. 구례 산동마을은 국내 최대 산수유 군락지다. 전국 산수유 열매의 60% 이상이 산동면에서 생산된다. 산동마을에서도 상위마을의 산수유가 최고다. 3월 중순에 하위마을에서 상위마을까지 걸어 올라가면 돌담길, 산기슭, 논두렁에 지천으로 산수유꽃이 피어 있다.
늦추위로 예년보다는 조금 개화가 늦지만, 올해도 2월 하순부터 산수유는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올해로 열 번째인 구례 산수유 축제는 3월 20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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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돌’의 한방 소꼬리찜.◇섬진강 참게 매운탕. |
#구례의 풍성한 먹을거리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구례를 ‘삼대삼미(三大三美)’의 땅이라고 했다. 지리산, 섬진강, 들판 세 가지가 크고 수려한 경관, 넘치는 소출, 넉넉한 인심 세 가지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굳이 택리지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구례평야, 지리산, 섬진강을 끼고 있는 구례는 다양한 별미를 자랑한다. 구례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음식은 지리산 자락에서 뜯어 온 각종 나물로 차린 산채정식이다. 화엄사 입구에 자리한 ‘이시돌’(061-782-4015)의 산채정식이 유명하다. 산채정식에 딸려 나오는 된장찌개 맛이 일품이다. 이시돌은 한방 소꼬리찜도 유명하다. 산채 정식은 1만원, 한방 소갈비 꼬리찜은 1만5000원. 섬진강에서 잡은 참게로 만든 매운탕도 별미다. ‘전원식당’(061-782-4733)의 참게 매운탕은 3만∼5만원. 들깨를 뿌려 내놓는 참게 매운탕은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그만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키운 흑염소 구이, 산닭 구이도 먹어볼 만하다. 흑염소 구이는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소고기와 비슷하다. 산동면의 ‘양미 한옥가든’(061-783-7079)이 많이 알려져 있다.
구례=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여행정보
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으로 나와 17번 국도를 타고 남원까지 가서 19번 국도로 갈아 탄다. 4시간 정도 걸린다. 3·8일에 열리는 구례 5일장도 둘러볼 만하다. 섬진강 어족자원의 체계적인 보존과 전시를 위해 195억원을 들여 세운 ‘섬진강 토산어류 생태관’도 3월 중순에 문을 연다. 구례에는 연곡사, 천은사, 사성암 등 이름 있는 절집이 많다.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사성암에 오르면 발아래로 구례평야와 섬진강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조선시대 영조 때 지은 대저택 운조루도 명소다. 한화리조트 지리산(061-782-2171)에서는 피아골 일대에서 주민들이 채취한 고로쇠 수액을 판매한다. 배송비를 포함해 18ℓ가 6만원. 4.3ℓ짜리 4팩은 6만5000원, 2팩은 3만5000원. 구례군청 문화관광과(061-780-2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