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에 '그로브랜드 4인조'란 별명으로 오르내린 남부 플로리다주의 흑인 남성 넷이 있었다. 올랜도에서 서쪽으로 48km 떨어진 그로브랜드에 살던 어니스트 토머스, 사무엘 셰퍼드, 찰스 그린리, 월터 어빈이었다. 악명 높은 짐 크로 법이 통용되던 1949년 백인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범인으로 지목돼 치도곤을 당했다.
짐 크로 법은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법으로, 미국에서 1876년 시작돼 1965년까지 유지됐다. 이 법에 따라 흑인들은 식당, 화장실, 극장, 버스 등 공공시설에서 백인과 분리돼 차별 대우를 강요당했고, 투표권도 제한됐다. 이 법은 로자 파크스 사건으로 버스에서의 흑백 좌석 분리가 사라지면서 효력을 잃기 시작했다.
노르마 패짓 업쇼는 1949년 7월 16일(현지시간) 밤 자동차가 고장 났는데 네 남성이 나타나 자신을 집단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곧바로 체포된 셰퍼드와 그린리, 어빈은 경찰에 고문을 당했고, 둘은 자백했다. 토머스는 간신히 구금을 피해 달아났지만 추적 과정에 사살됐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당시 열일곱 살 기혼녀 노르마 패짓 업쇼가 공연한 거짓말을 늘어놓아 소년들을 궁지에 몰아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짐 크로 법이 통용되던 플로리다주에서 정의가 왜곡된 대표적인 사건이 됐다. 문제의 업쇼가 지난달 12일 조지아주 테일러 카운티에서 92세를 일기로 자연사한 사실을 일간 워싱턴 포스트가 유언집행 법원(probate court) 문서를 입수해 맨 먼저 보도했다고 CNN 방송이 31일 전했다.
처음부터 패짓 업쇼의 증언 신빙성을 둘러싼 의심이 제기됐지만 잔인한 시절이라 배심원단은 어떤 증거도 없이 유죄 평결을 내렸다. 2021년 11월에야 레이크 카운티 순회법원의 하이디 데이비스 판사는 토머스와 셰퍼드를 기소한 것을 사후 취하하고 그린리와 어빈에 내려진 유죄 판결을 무효화하는 주 정부의 조치를 승인했다.
앞서 2019년에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그로브랜드 4인조에 대한 사후 전면적인 사면 명령을 발부했다. 드샌티스 지사는 당시 성명을 통해 “70년이나 이들 네 남성은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들로 자신들의 역사가 쓰였다. 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너무 늦게 올바른 일이 행해졌다”고 애석해 했다.
그린리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셰퍼드와 어빈은 사형 판결을 받았다. 카운티 교도소에서 재심을 위해 이송하던 중에 보안관이 셰퍼드와 어빈에게 총질을 한 뒤 자위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셰퍼드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어빈은 죽은 척 연기해 목숨을 건졌다. 어빈은 나중에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2021년 판사가 4인조의 사면을 판결한 뒤 그린리의 딸 캐롤이 카메라 앞에 서 한 발언은 상당히 감동적이었다. “난 그 시절 우리 아버지가 (사람들을) 돌보고 사랑스러운 남성이며, 누군가를 강간하지 않은 공감 잘하는 사람이었음을 당시 알지 못했던 사람 모두를 미워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사랑하고 안아줄 것이다. 난 여기 서서 감사하다는 말을 드린다.”
어빈과 그린리는 어떤 여생을 보냈을까? 어빈은 1968년 가석방으로 풀려나 이듬해 레이크 카운티를 찾았다가 자동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연사했다고 밝혔다.
그린리는 1962년 가석방으로 풀려난 뒤 테네시주 내슈빌로 아내, 딸 개롤과 함께 이사했다. 1965년 두 사람은 아들 토머스를 낳았다. 그린빌은 2012년 4월 18일 세상을 등졌는데 같은 해 길버트 킹의 사건 관련 책 출간을 보지 못한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