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종교를 뜻하는 ‘Religion’은 라틴어로 ‘다시 묶다’, ‘다시 연결하다’는 의미라고 한다. 신과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들의 열망이 인간과 인간을 갈라놓아 고통을 가중시킨다면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은 어디나 유대인과 무슬림과 크리스천 간의 불화로 인한 아픔의 역사가 배어있다. 특히 2000년 전 로마 지배 당시 세계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이후 아랍인들이 정착해 살던 땅에 1948년 이스라엘 국가를 설립하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과 폭력이 되풀이되고 있다.
베들레헴이나 나사렛 예루살렘 성벽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주요 기독교 성지 대부분이 무슬림인 아랍인들이 사는 곳이다. 기독교 성지 여러 곳에서 총을 들고 아랍인들을 감시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베들레헴에서는 라헬의 무덤을 둘러싼 거대한 분단 장벽이 한반도 비무장지대 철책보다 높게 서 있다. 라헬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아내로 요셉과 베냐민을 낳은 인물이다.
라헬의 무덤은 고대부터 헤브론과 예루살렘의 길목에 위치해 순례자들의 기도처이자 쉼터였다. 특히 유대인은 물론 아랍인들에게도 임신이나 출산을 위한 기도처로 유명했다. 라헬의 무덤은 베들레헴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과 이스라엘 지역 경계에서 팔레스타인 지역 안쪽에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 성지를 차지하고 주위에 높은 방호벽을 쌓았다.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도 무슬림이 다수 거주하는 아랍인 도시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예수의 고향을 복음화하기 위한 서구의 선교사역이 집중되어 학교와 병원, 다양한 복지기관에 세워졌고, 유능한 학생들을 선발해 유럽에 데려가 유학을 시켰다. 1960년대엔 마을의 70%까지 기독교인이 늘었으나 부유한 아랍계 기독교인들이 하이파 등 대도시로 떠나 지금은 35% 남짓만 기독교인으로, 기독교세가 약화돼 기독교인들과 아랍 무슬림들 간의 충돌이 잦다.
예루살렘은 종교 갈등의 핵이다. 특히 황금돔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세 종교가 모두 성지로 삼는 곳이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거처로 지은 성전은 유대인들에겐 꿈에도 잊지 못하는 성소다. 황금돔이 있는 성전산은 구약의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다윗의 무덤이 있는 성전산을 유대인들은 시온산이라고 하여 유대 시온주의의 구심체로 삼았다. 기독교의 경우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고, 오순절 성령 강림을 체험해 초기 기독교공동체의 중심인 마가의 다락방이 그곳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638년 무슬림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후 무슬림들은 이곳을 무하마드가 승천한 곳이라고 믿어 성전 터에 무슬림사원을 세웠다. 유대인들은 이곳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고, 세상이 창조될 때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지만, 그곳엔 이슬람 사원이 들어서 있다. 이스라엘 내에선 유대인들이 치안의 전권을 쥐고 있지만, 전세계 아랍권의 반격이 두려워 이 이슬람 성지만은 어쩌지 못하고 있다.
아랍인들이 사는 곳마다 이슬람 사원이 있지만, 안식일이 되면 예루살렘의 무슬림들은 성전산으로 모여든다. 이처럼 세 종교가 한 지붕을 성지로 삼으면서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의 혈전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살육됐고, 지금도 언제든 일촉즉발의 충돌 가능성을 안고 있는 곳이 바로 성전산이다.
2004년 예루살렘시가 하수도 파이프 공사를 하던 중 큰 돌덩이를 발견해 공사를 중단한 뒤 실로암 연못을 발굴했다. 예루살렘의 발원지인 기흔샘의 물이 히스기야 터널을 통해 흘러들어 고이는 이 실로암 연못에서 유대인들은 몸을 정결하게 씻은 뒤 성전산을 올랐다고 전해진다. 실로암 연못은 예수님이 땅에 침을 뱉어 흙을 개어 맹인의 눈에 바른 다음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고 한 기적의 성지이기도 하다.
실로암 연못은 통곡의 벽과 연결된다. 유대인들은 1453년 오스만튀르크가 점령한 이후부터 정해진 단 하루만 방문이 허용되자 그날이면 이곳에 찾아 한이 맺힌 통곡을 터트리면서 ‘통곡의 벽’으로 불리게 됐다. 통곡의 벽 좁은 틈새엔 작은 종이들이 꽂혀 있다. 1년 중 정해진 날 하루만 방문하면서 날이 어두워져 떠나야 할 때쯤 유대인들은 내년을 기약하자며 기도를 적은 작은 쪽지를 슬쩍 벽 틈에 넣곤 하는 전통이 생겼다.
통곡의 벽에 기대어 열심히 토라를 외는 랍비도, 예수무덤교회에 머리를 숙인 크리스천도, 성전산 이슬람 사원을 향해 오르던 무슬림도 그토록 신심이 깊은데, 왜 이들은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종교가 상황을 개선하기는커녕 불화를 심화하고 갈등과 폭력을 야기한다면, 인간에게 종교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