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의 여름밤..
먹물을 뿌려 놓은것 같은 바탕에
보석처럼 박힌 별들을 헤아리다가 스르르... 잠이 들기도 했던 곳..
별을 보며 미래를 꿈꾸던 유년시절.
그때의 꿈은 지금쯤 어느 하늘을 헤매고 있을런지...
설렁설렁 부는 고향 바람이
제 옷을 하나하나 풀어 헤칩니다.
드디어 9월이 왔습니다.
열기가 식고 세상풍경이 잘 보이는 계절..
달리기 좋은 이 계절 가을..
온 나라가 달리기 축제인듯 여기저기서 마라톤 축제를 합니다.
천마산마라톤클럽(이하 천클)회원들은 단체로 횡성대회에 참가하시고
저는 혼자서 고향품으로 파고듭니다..
남양주에서 일찍 여유롭게 출발합니다.
고향이 가까워 질수록 그리운 향기는 더욱 짙어만 갑니다.
김포대교를 건너 제방도로를 타고 흐름을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가다보면
저 멀리 강화대교 건너 푸른섬이 눈에 들어옵니다.
자동차의 진전되는 속도에 맞춰
다리가 연결하는 강같은 바다를 힐끔 곁눈질 하면
자동차는 어느새 고향으로 들어섭니다..
읍내를 지나 서문쪽으로 향하다보니
20여년전 내가 다니던 그리운 모교가 눈에 들어옵니다.
600m나 되는 이길이 아마도 '사임당로'였었지?
친구들과 재잘대며,
때론 단어장을 손에들고 중얼거리며,
때론 바로옆에 있는 남고학생들을 의식(?)하며
옷매무새를 다듬던 내 지난날이 생각나
그리운 마음 곁눈질로 대신하며 고인돌광장을 향해 엑셀을 밟습니다.
이번 대회에 초등 동창들과 동반주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하프)
지난 여름 모교에서 동창회를 개최했었는데
알고보니 의외로 달리기를 취미로 하는 친구들이 몇명 되길래
고향에서 개최하는 대회에 함께 달리자는 의견이 나와
이런 즐거운 이벤트를 하게 된것입니다.
고향에서 터를 잡고 있는 동창 녀석들이
프랭카드를 들고 나오겠다며 장난을 치던데
장난인줄 알면서도 어느새 이리저리
두리번대며 찾아보는 내가 우습습니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고향바람 냄새만 맡고 있어도 행복합니다.
'고향'..
이 단어만 만나면 나는 가슴이 먹먹해옵니다.
올봄..
강화역사박물관에서 초지진까지 연결되는
해안도로를 왕복하는 하프대회가 개최될 예정이었는데
고려산 진달래축제랑 맞물려 있어서 취소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땐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릅니다.
덕분에 진달래가 흐드러진 고려산에 다녀오긴 했지만..
올3월..
서울마라톤 풀코스를 끝으로 운동을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집안의 복잡한 일들로 인해
운동에만 열중할 수 없는 그런 상황들 이어서
참 많이도 힘들어 했습니다.
정말 오랫만에 마라톤 대회에 임해봅니다.
열대야보다 더 뜨거운 여름날을 보내고
이곳에서 난 9월 고향의 하늘과 마주쳤습니다.
고향에서 달리기는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작년 4회때
제가 속해있는 남양주
'천마산마라톤클럽' 식구들을 모시고 참가했었습니다.
고향을 떠난지 20여년이나 지나 고향 들녘을 달려본다는 설렘으로
그 전날 잠을 설쳤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참고로 작년엔 32.195 코스를 달렸습니다)
지금까지 풀코스를 일곱번 뛰어봤는데
내년엔 고향대회에서 풀코스를 뛰어보는 의미를 가져야겠습니다.
내 유년의 하늘..
어릴적 보았던 하늘이 생각납니다.
비온뒤,뭉실뭉실 피어 오르는 뭉게구름과
파란 하늘에 하얀 실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비행기들,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는 마루에 걸터앉아
희미해져 가는 실선을 한없이 바라보며 보냈던
철없던 어린날의 무료한 어느 오후처럼
그날의 파란하늘과 너무 닮은 내 고향 '강화'의 하늘..
오늘은 고향의 바람속에서 달콤함이 느껴지는 날..
바로 나를 위한날..
달콤함도 쌉싸름도 오래오래
거리가 온통 진한 마라톤 향기 입니다..
넉넉한 시간에 도착해 충분한 스트래칭으로 몸을 풀고
헤어밴드도 교환하고..
동창들과 접선도 해보고..
그렇게 그렇게 여유를 부려봅니다.
아주 예쁘게 생긴,,처음뵙는 분인데 인사를 합니다..
답례로 나도 덩달아 예쁜미소(?)를 지어봅니다..
"저~ 어디에서 운동하세요? 저는 화목달의 하마 입니다"
그때서야 정신이 퍼뜩들며 아하~ 내가 런클 복장을 입어서 였구나..
가입만 해놓고 지역클럽에서만 활동하고 있다며
또 천마산(천리마)님을 팔아본다.. 헤헤~
풀코스주자 먼저 출발하고 하프대기하고 있는데
앞줄에 런클분들이 떼거리로 서있다.
한번도 뵌적이 없는 분들이지만 모른척 할수가 없어 그냥 가볍게
"안녕하세요"
인사만 드렸더니 박한열이라는 분이 이것저것 물어오신다.
나도 한 입담하는 처지라.. 거기서 줄줄 얘기를 풀어 나간다.
천마산(천리마)님과 아주 가까운 사이라며 안부전해달라는 말도 함께...
축제의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어느덧 시간은 흘러 10시에 풀코스 출발..
10분 간격으로 32킬로 출발하고 드뎌 내가속한 하프 출발할 시간..
오랫만에 대회에 임해서 그런지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원래는 동창들과 설렁설렁 동반주하기로 했었는데
마음을 바꿔 내 실력대로 뛰고 들어와서 만나기로 한것이다.
다음주에 뛸 하이서울 풀코스 대비 훈련이라 생각하고...
출발 총성이 울리자 총알같이 달려들 나가신다.
나도 그들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출발하기전에 충분히 워밍업을 해서 그런가
총알같이 달려나가시는 폼들이 장난이 아니다..
지난해 32.195Km코스를 달려봤기 때문에 대충 코스는 인지하고 있는터..
초반 5킬로 전에 만나는 새말고개를 넘기전까진 오버하지않기로 했다.
가을햇살은 축복처럼 쏟아부었고,그 축복앞에서 난 황홀해했다.
드뎌 새말고개초입.. 오르막이다..
배운대로 보폭을 좁게하고 상체를 악간 숙이고 최선을 다해본다.
올라도 올라도 끝은 보이지 않지만
올 여름 천마산임도를 천클인들과 달리던 그 뜨거움을 생각하며 오르다보니
어느덧 고개정상이다..
이제부터 정상적인 레이스를 펼치리라..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내여름날은
서울마라톤 완주후기 당선으로 받은 예쁜 런닝화와 늘 함께였다.
매주 30킬로이상 장거리 훈련으로 한강에서 살다시피했고
주중엔 숨이 턱까지 차 오르는 인터벌훈련도 감수해 낸 내가 아니던가..
트랙에서 하던 2킬로짜리 인터벌 4개만 한다고 생각하라던
천클의 구심점이신 섭-3주자 '천리마'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풀,32킬로에 이어 20분 늦게 출발한 하프..
어느정도 가니 주로는 그들의 후미주자와 뒤엉켜 있었다.
이리저리..
요리조리..
빈 공간을 삐집고 헤쳐나와 앞만보며 내달린다.
몸이 슬슬 풀리면서 달릴만하다고 생각하니 어느덧 반환점이다.
반환점을 돌아오니 초등친구들이 떠나갈 듯한 목소리로 힘차게 응원을 한다.
떼제베님은 "허브누님,2등예요..2등.." 하시고
단지 노란 유니폼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런클분들의 힘도 받는다..
2등이라는 말에 슬슬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속도로 이 거리로 피니쉬까지 가리라..'
일케 야무진(?)생각을 품고 앞으로만 전진이다..
근데...
한 19킬로쯤 갔을때였다.
종아리가 땡기기 시작했다.
속도를 좀 늦추면 괜찮겠지 싶었는데
웬걸..속도를 늦춰도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다..
헐~
하필 이럴때...
인라인 패트롤 분들에게 내 두 종아리를 맡겨도 본다.
대충 맛사지를 받고 얼마남지않은 거릴 상상하며 다시 힘차게 출발하는데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혹시 3등주자에게 추월당하는건 아닌지 불안했지만
결코 뒤돌아보지는 않는다.
후반에 내가 추월하면 했지 추월 당하지는 않았으니까..
후다닥..
조그맣고 단단한 여성주자가 순식간에 나를 앞선다.
정신이 번쩍들며 종아리 통증을 잠시 잊는다.
1804
원래 그 여성주자가 5킬로까진 2등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5킬로지나서 내가 추월한 것이다.
이제 다시 내가 추월당한셈..
이를 악물고 쫓아 갔지만
40초의 거리를 메꿀수는 없었다.
내눈앞에서 그녀가 먼저 테이프를 뚫고 나간 것이다..
결승선응원로에서 응원나온 또다른 동창녀석들이
초등학교 운동회때 했던 단체응원처럼 목청높여
내이름 석자를 부르고 있었다.
장.영.미.화.이.팅~~!!!
찍어보니 1:42:57
솔직히 만족스럽지못한 기록이다.
하지만 초등동창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내고향땅에서
여성 하프 3등이라는
아줌마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 내가 대견(?)스럽다.
가을에는 여러곳에서 대회가 열리다보니
여성 고수들이 상금많은 곳에 출전하느라
어쩌다 눈먼 등수가 내차지까지 왔나보다.
고향달리기 축제에서 동창들과 함께 어우러져
고향의 하늘을,
바람을,
향기를,
추억을
모두모두 공유한, 보석보다 빛나는
너무나 아름다운 추억만들기였다.
제가 원래 해군(?)을 엄청 좋아하다보니
뒷풀이로 끌려간곳..
집나간 며느리가 전어 굽는 냄새맡고 돌아온다죠?
그 전어구이,전어회,전어회무침,대하소금구이
그리고..
촉촉하도록 젖어본 밤이슬(?)
그리고 돌아오는길..
차 트렁크엔 순무 두다발이
얌전하게 누워(?)있었고
어느새 내가 주부임을 잊지 않았다는걸
말해주고 있었다.
첫댓글고향~ 을 느끼려면 얼마나 더 살아야 할까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고향이란 단어가 어떤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걸까요? 아파트숲으로 변해버린 곳에서.. 국민학교운동장에 서 있으면 고향을 느낄수 있을까요? 어린시절이 아직도 살아숨쉬는 그곳이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하겠지요 !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네요.막판에 종아리가 말썽 피우지 않았어도 1시간30분대 기록도 가능했을텐데 조금 아쉽습니다.그동안 집에서 말없이 지원해준 짝지님과 아이들이 제일 반가워 했을것 같네요.이제 얼마 남지않은 춘마때까지 컨디션 조절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시기 바랍니다.허브님 힘!!
첫댓글 고향~ 을 느끼려면 얼마나 더 살아야 할까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고향이란 단어가 어떤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걸까요? 아파트숲으로 변해버린 곳에서.. 국민학교운동장에 서 있으면 고향을 느낄수 있을까요? 어린시절이 아직도 살아숨쉬는 그곳이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하겠지요 !
찾아갈 고향이 있다는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에요..꽃님,춘마전선엔 이상없죠?
와~~~축하해요....언니....근데...정말 예쁘다. 마흔다섯살 맞아요? 나이 속인것 아녀요? 점점 멋있어져가는 언니를 보며 또한번 다짐합니다. 운동열심히 하자고....
미숙C 간만예요..근데 글케 할머니(?) 가꾸 놀리면 좋아?얼마남지않은 시간 잘 활용해서 우리 멋지게 장식하자구요.. 몬말인지는 알져?
이~~~~~~~~쁘다...
사업도 욜씨미.. 운동도 욜씨미...야수님 만쉐이~~!!
헐~ 1시간 35분대라뇨??글케 과대평가해주시다니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저 그정도 못되는거 잘아시면서리..암튼 하이서울때 싸부님 뒤만 졸졸 따라가겠습니당~!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네요.막판에 종아리가 말썽 피우지 않았어도 1시간30분대 기록도 가능했을텐데 조금 아쉽습니다.그동안 집에서 말없이 지원해준 짝지님과 아이들이 제일 반가워 했을것 같네요.이제 얼마 남지않은 춘마때까지 컨디션 조절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시기 바랍니다.허브님 힘!!
맞아요.. 짝지와 아이들에게 정말 고마워요..여러가지 맘에 안드는점이 많았을텐데 내색하지않고 묵묵히 참아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또 고맙구.. 그러네요..
멋지네요.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 없을 듯... 애 많이 쓰셨습니다. 피로 빨리 회복하시기고 하이 서울에서도 선전하시기 바랍니다. 허브님~~ 힘~~
욕심이긴 합니다만 '조금더 기록을 단축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회였습니다..
멋지네요.허 브 님
잔차에 올라 앉아 세상 바람을 가르는 산수유님의 모습이 더 멋지세요..요즘도 차 욜씨미 타시죠?
상장/트로피/부상으로 김일봉이까정... 히야 부럽다. 고향땅에서 죽마지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의 입상이라 더욱 값진 듯..... 축하해요! 언제 한턱 쏩니까요? 내겐 작년 강화대회 32.195K 참가해 디지게 혼줄이 났던 악몽이...
한턱요? 히히.. 고향친구들이 회사고 지는 2차 쐈시요..로제님 내년엔 지랑 같이 풀 참가하셔서 반대로 로제님이 강화대회를 혼줄내주셔얍지요~
공식천클아줌마~~!!! 멋져요~~~!!!! 하이서울, 춘마에서의 멋진모습 또 기대할께...힘~~!!!!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와 함께 남양주 여기저기서 알토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울려퍼지네..풍성한 가을 공연 준비로 바쁠텐데.. 글타고 설마 달리기훈련 게을리 하진 않겠지?
제주에서 언니 기록듣고 도데체 웰케 헤맸을까^^ 했는뎅~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는거 같음:다리아픈줄 몰랐음) 하이서울에서 그냥 썹쓰리 해버려..허브언니 힘!!!! 우쒸~ 천클 최고 얼짱이넹 *^^*
강화기록들이 다들 그렇더구만..여자 하프 1등한 양반도 평소엔 30분초반에 뛰는 분이라는데 그날은 40분에 들어온걸 보면..글고 이냥반아 썹-3는 아무나 하나? 말이 좋아 썹쓰리지.. 오른쪽발목윗부분이 많이 아파서 당장 하이서울 뛸일이 걱정이구만...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