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대보름날.
아침에 보름밥 잘 먹고
삼일절에 온다던 흙차가 오늘 와서
남편은 기울어진 농원 출입구를 이른 아침부터
농사용 포크레인으로 평탄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도 완전 무장을 하고 마당으로 나와
출입구 가에 아무래도 막 자란 주목가지를
트리형이나 둥근모양으로 자르면 더 멋질 것 같아서
한그루는 길쭉한 삼각형으로 잘라놓고
나머지 한그루는 타원형으로 자르기로 하고
나무주위를 빙빙 돌면서 수형을 가늠 해보았다.
수십년 자란 제법 키가 큰 나무여서
아무래도 상단부는 사다리가 필요할 것 같아
기존의 5단짜리 사다리를 제껴두고
우리집 사다리 중에 제일 높은 7단짜리를 낑낑거리며 가져왔다.
땅이 기울어져 있어서 낮은 쪽에 사다리의 두 다리를 두고
고우는 한 다리는 높은 평지 쪽에 앉혀서 몇번 무게를 실어보았더니
꼼짝도 안하길래 의심없이 한계단씩 올라갔다.
아랫쪽 부터 곡선을 살려서 윗부분으로 라인을 살리며 톱과 가위로 잘라갔는데
때마침 포켓안 전화벨이 연거푸 울려대서 (이때 내려왔어야 하는뎅 ...)
나중에 받으려다 사다리에 몸을 기대고 장갑을 벗고 막 폰을 꺼내려는 순간,
아~! 이게 왠일!
고아 둔 사다리 한쪽이 미끌어지며 사다리가 그만 일자로 뻗어버렸네 !
그러자 내 몸도 또한 그 높은 곳에서 수직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마치 슬로우비디오처럼 느껴지는 짧은 순간의 그 위험을 감지한 순간!
내 오른 쪽 발이 폭탄을 맞은 듯 견디기 힘든 통증으로
그대로 차가운 땅바닥에 뒹굴며 신음과 함께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토해내었다.
그 울음 소리는 내가 들어도 울음이 아니라 비명들 이었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던지 !
지옥 같았던 최초의 강렬한 통증의 시간이 지나니
지난 밤 비에 젖어 살짝 언 땅바닥의 냉기가 온몸을 떨게 만들었다.
60Kg의 뚱댕이 몸을 이리저리 뒤척여 보아도
도무지 발을 딛고 일어설 수 없어
엉금엉금 기어서 온몸에 흙을 묻힌 채 가까스로 현관에 진입.
그 사이 놀라서 달려온 남편도 속수무책인 채
사고친 나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욕으로 느낌표를 찍어댔다.
성가시고 귀찮아진 현실에 저도 모르게 나오는 무의식의 반응이었다.
내 아이가 넘어지거나 갑자기 다쳤을 때 못마땅했던 심경의 발로와 똑 같은
그 알 수 없는 불편한 욕지거리 였다.
어쨌던 지금의 상황은 아주 심기가 불편하고 껄끄러운 상황임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넘어야 할 파고이기도 하니
아픈 상황 중에도 내 머릿 속은 재빨리 정리가 되어갔다.
이 시간은 병원으로 달려가봤자 점심 시간에 걸려
병원 복도에서 길고 긴 지루함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니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가까이 사는 조카네를 불러 점심 부터 같이 해결하고
남편은 택배를 위해 남아서 한주의 마지막 금요택배를 발송하게 하고
조카네와 함께 가장 가까운 정형외과를 검색하여 찾아갔다.
MRI 촬영결과 오른 쪽 발목에 반정도 금이 간 상황.
다행히도 부러지지 않은 것을 행운으로 알라는 의사쌤의 말씀.
정말 다행일까?
지금 겨우내 미뤄둔 산더미 같은 일감이 산적해 있는 건 어쩌라고 ..
무엇보다 옆지기에게 미안하고 송구스러웠다.
안그래도 정신없이 바쁜 그에게 커다란 혹이 되어 발목 잡게 생겼으니
이래 저래 몸과 마음이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삼월이 됐붓다.
병원에 입원해서 한주, 퇴원해서 3주를
개구리가 동면하듯 그렇게 지내야 하는데
이 뽈뽈이가 눈 앞에 걸리적 거리는 일들을
과연 적당히 눈 감아버릴 수가 있을지?
둘째가 그런다.
" 엄마, 병원엔 얼마든지 입원해 있어도 괜찮으니
이 참에 푹 쉬시오."
무슨 소리? 급하면 손주들도 봐주러 가야 되고
삼시 세끼는 물론
과수원 주변의 쓸데없는 관목들도 제거해야 하는데 이걸 우짜꼬이?
병원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니 들끓는 마음보가 편치가 않네.
무능해진 마음이 끓다가, 들끓다가 이제는
오직 시간만이 최고의 해결사.
"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