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1월 4일
성녀 엘리사벳 앤 시튼
St. e.ann seton
St. Elisabeth Ann Seton
28 August 1774, New York City, New York, USA as Elizabeth Ann Bayley
- 4 January 1821
Beatified:17 March 1963 by Pope John XXIII
Canonized:14 September 1975 by Pope Paul VI
창설자 뉴욕 1821년
엘리사벳은 뉴욕에서 태어났고, 1794년에 윌리암 시튼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1803년에 과부가 되었는데, 그 후부터 신앙생활에 눈을 뜨고 1805년에 가톨릭 교회로 들어왔다.
그녀는 1809년에 수도서원을 발하였고, 메릴랜드의 에미츠버그에서 선종하였다.
마더 시튼은 미국 까리따스회 세웠고, 또 아메리카 태생으로 1963년 첫번째 시복되신 분이다.(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1774년 뉴욕에서 출생한 성녀는 1794?부유한 사업가인 윌리엄 시튼과 결혼하였다.
병으로 남편이 죽자 30세의 젊은 나이로 돈 한푼 없이 다섯자녀를 양육하게 된 성녀는 어려운 생활 중에도 가톨릭 신앙을 삶으로 증거했다.
1809년 수도서원을 발하였고 미국 최초의 수도공동체인 사랑의 시튼 수녀회를 창설하는 등 많은 업적으로 미국에 가톨릭 교회의 초석을 이룩하였다.
1821년 선종하였고, 1963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미국 최초의 복자로 시복되었다.(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성녀 엘리사벳 씨튼 명상록" 에서
오, 성모 마리아의 덕은 복되신 삼위일체의 끊임없는 기쁨입니다.
그분만이 모든 하늘이 드리는 영광보다 더 많은 영광을 드리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오, 마리아의 순수함! 마리아의 겸허와 인내와 사랑.
가장 낮은 자리에서 멀리서나마 그 분을 닮아가리라.
사랑의 씨튼 수녀회 소개 www.seton.or.kr
미국 최초의 방인 수녀회인 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성녀 엘리사벳 앤 씨튼이 1809년 에미츠버그에서 창설하였다.
빈첸시오 성인이 실천했던 가난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육화의 영성과 그 전통을 이어받아, 당시 미국 사회의 필요에 응답하는 활동 수도회로 성장하였다.
그 후 수녀회가 확장됨에 따라 1870년 펜실바니아주 그린스버그시에 모원을 두는 수도회로 독립하였다.
그 당시의 필요에 따라 유치원 교육부터 장애자들을 위한 특수교육과 일반대학 교육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교육사업을 펼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현대에 와서는 다양한 계층에서 소외받는 이들의 요청에 응답하고자, 사회사업과 특수사목 등에도 종사하고 있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영혼의 유일한 소망이
하느님의 뜻을 찾고 이루는 것일 때
우리에게 실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녀 엘리사벳 씨튼-
성녀 엘리사벳 앤 씨튼은 1774년 미국 뉴욕 시에서 의사의 딸로 태어나 20세에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고 어머니와 아내로서 살았으나,
29세에 남편과 사별한 후 성체께 대한 열렬한 신심으로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개종 후에는 당시의 필요에 따라 미국에서 최초로 교구 가톨릭 학교를 시작하셨으며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모든 이들에게 깊은 관심으로 봉사하였다.
수도회 창설자로서의 성녀의 삶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느님 자녀들에게 헌신하는 생활했으며
부드럽고 쾌활한 성품으로 수도회원들을 격려하여 기쁨에 찬 봉사의 삶을 살다가 1821년 47세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성녀는
"교회의 딸들이 되십시오"라는 마지막 임종의 말씀을 통하여
수도회의 모든 회원들이 하느님 안에서 교회의 필요함에 항상 응답하도록 가르쳤다.
창설자의 정신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을 모시고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박고 그 터 위에 굳건히 서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더욱 견고히하여 넘치는 감사를 하느님께 드리십시오.(골로사이서 2,6-7)
성녀 엘리사벳 앤 씨튼의 영적 딸로서의 우리의 유산은 하느님께 대한 지극한 사랑과 세상을 위한 구원 계획에의 헌신에 기초를 둔 것이다.
우리의 창설자는 모든 수도생활의 바탕이 되는 바로 이 사랑과 헌신에 자신의 성덕의 기초를 두었으며
우리 역시 같은 정신과 이상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성녀 엘리사벳의 "생활의 핵심"은 "매일 성체를 모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다.
성체안에 계신 그리스?현존?대한 신앙에 끌려 가톨릭 교회에 들어 온 성녀 엘리사벳은 성체성사에서 일생동안 끊임없는 위로를 발견하였다.
"나는 천사들의 빵을 먹음으로써 원기를 찾고 격려를 받으며 위로와 만족을 얻고 내 존재 전체가 새롭게 되는 것을 체험합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나는 하느님 안에 쉬고 있습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하느님의 뜻에 언제나 복종하였고 어떤 희생이 요구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영혼의 유일한 소망이 하느님의 뜻을 찾고 이루는 것일 때 우리에게 실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따라서 "복된 영원"에 대한 비젼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고 다른 수녀들에게도 이와 같이 권고하였다. :
"나는 영원에 대한 갈망이 모든 슬픔을 치유해 주는 것을 체험합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물면서 "하느님이 내 모든 것"이라고 계속 되새겼던 것이다.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나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고 그 속에서 주님의 섭리를 보았다.
"내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할 때
가난속에서도 풍요로울 수 있으며
깊은 고뇌 속에서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기도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성녀 엘리사벳은 "주께서 많은 일을 제게 맡기셨으니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그분의 뜻을 언제나 택하려고 합니다." 라고 썼다.
그는 젊은 부인으로서, 어머니로서, 항상 다른 이들의 필요함을 보았으며 피곤함을 이기고 남을 위해 일했다.
수녀로서 늘 기력과 시간에 쫓기면서도 "모든 주인들 중에서도 가장 사랑스러우시고 너그러우신 분 앞에서" 기쁘게 일했다.
성녀 엘리사벳은 자기 생애의 선교사명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다.
"영신적인 불안과 고뇌 속에 있는 사람들이
어이 그리 많은지!
남을 사랑하는
영혼들의 기도와 노력이 얼마나 커야 하겠는가!"
성녀 엘리사벳에게 있어서 이러한 노력의 형태와 방향은 하느님의 뜻이 알려지는 대로 구체화 되었다.
성녀 엘리사벳은 초창기 미국 교회의 필요를 보고 그것에 응답하는 가운데 하느님 뜻을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당시의 교회가 젊은이들의 교육 등을 위시하여 성녀 엘리사벳의 봉사를 얼마나 필요로 하였는지 알고 있고
우리 역시 변천해 가는 교회의 필요함에 성녀 엘리사벳과 같은 응답을 수도공동체로서 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
성녀 엘리사벳은 씨튼 수녀들에게 공동생활을 위한 특별한 은사를 전했다.
"수도 생활속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기쁨과 조화입니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라고 성녀 엘리사벳은 기록하였다.
이 기초 위에 성녀 엘리사벳은 초창기의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영속적인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
성녀 엘리사벳은 너그럽고 적극적인 성격이면서도 영성에 기초를 둔 이상을 보여주므로써 우리에게 수도생활의 모범이 되고 있다.
"내 일상생활의 목표는
모든 사건을 온유하고 조용히 받아 드리는 것이며
모든 알력을
부드러움과 쾌활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봉사의 사명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사명은 주께로부터 받은 소명에 영웅적으로 응답한 성녀 엘리사벳 씨튼에게서 기원한다.
곧 우리의 전통은 두려움없이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고 그분의 사랑과 섭리에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두며
항상 "영원"을 바라보면서 어머니의 사랑으로 온 인류를 포옹하고자 했던 성녀 엘리사벳의 견고한 정신의 표지를 지니고 있다.
마더씨튼 영성
겸양· 소박· 사랑
그리고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라
"겸양·소박·사랑 그리고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사랑의 씨튼 수녀회 영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사랑의 씨튼 수녀들은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깊이 있는 기도생활을 통해 부드럽고 쾌활한 가정적 공동체를 이루는 가운데,
겸양·소박·사랑으로 활동하면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모셔다 드리는 생활을 하고자 한다.
특히 창설자 성녀 엘리사벳 앤 씨튼이 성 빈첸시오의 정신?19세기 미국 교회에 토착화하였듯이,
본 회원들 역시 성녀의 영성을 한국 땅에 토착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오늘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민감히 듣고 분별하여 융통성을 가지고 현대 교회의 필요에 응답하고자 하며,
여러 면에서 소외된 이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봉사하고 있다.
사랑으로 깊이 결속된 사랑의 씨튼 수녀들은 오늘도 기도와 활동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하느님과 그 나라를 증거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수녀회 역사
<짧은 내용>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와 성녀 루이즈드 마리약의 전통을 이어받아,
1809년 성녀 엘리사벳 씨튼께서 창설하신 미국최초의 방인 수녀회로서,수녀원 확장으로 인해 1870년 독립된 활동수녀회입니다.
모원은 미국 펜실바니아주 그린스버그시 씨튼힐 대학 내에 있으며
현재 400여명의 수녀들이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는 일반교육 및 몬테소리와 장애자들을 위한 특수교육과
소외받은 이들을 위한 사회사업 및 특수 사목에도 종사해 오고 있다.
본 수녀회는 1960년 당시 광주대교구의 故(고) 현 헤롤드 대주교님의 초청을 받아 한국에 진출하여
전남 지역에서 성 요셉 여자중·고등학교를 시작하였다.
1974년에는 수녀들 교육을 위한 서울 분원을 열었고, 광주시 근교로 수련소를 옮겼다가
1986년 광주시 북구 본촌동에 한국 본원 및 수련소를 마련함으로써 엘리사벳 씨튼의 정신을 토착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재촉하도다!
<긴 내용>
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1809년 성녀 엘리사벳 앤 씨튼에 의하여 미국 메어리랜드 주 에미츠버그에서 창설된 수도회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발티모아의 교구장 존 캐롤 대주교와 슐피시안 사제들의 지도를 받으며 엘리사벳 베일리 씨튼은
성 빈첸시오의 애덕회 회원을 당시 미국의 사도적 활동에 가장 적합하다고 인정하여수정을 가한 후 수도회의 회헌을 채택하였다.
새로운 회헌은 1811년 9월 캐롤 대주교에 의해 인준되었고 1812년 7월 19일 최초로 서원을 발했다.
성 빈첸시오의 회헌 자체가 지닌 융통성은 초창기인 미국 교회의 필요에 잘 적용할 수 있게 하여 수도회의 특징을 이루게 된 가동성과 다양성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는 17세기 프랑스에서 애덕회를 세우므로써
여자 수도자들도 봉쇄의 규칙에 매이지 않고 활동적 사도직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개념을 교회안에 복귀시켰다.
그 당시의 종교적, 사회적 필요에 응답한 몇 資?젊은 여성들은
하느님의 사랑에 불타서 이빈자와 병든자를 위한 봉사에 뛰어 들었고 가난한 아동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에 성 빈첸시오는 이 젊은 여성들을 지도하여 안정된 수도공동체를 형성토록 하므로써
봉쇄의 제약이 없이 도시의 빈민가나 가난한 시골에서 민중들 사이에 살며 일할 수 있게 하였다.
성 빈첸시오는 봉사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리스도를 뵐 수 있도록 그들을 인도하였고 깊은 기도의 정신을 발전시키면서 서원을 통하여 공동체안에 사는 법을 가르쳤다.
마더 씨튼의 현명하고 성인다운 보살핌으로 에미츠버그에서 시작한 성 요셉수녀원은 번창하였고,
곧 발티모아, 필라델피아, 뉴욕, 세인트 루이지, 신시나티 등 미국 각처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수녀들은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고, 고아들을 보살폈으며, 아동들에게 교리교육을 하였다.
미국 국토가 확장되면서 수도회의 선교 활동도 더 많아지고 모원에서의 거리도 멀어지게 되자,
지방분권화의 경향이 나타나서 수녀들이 교구에 따라 독립된 수도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처음 1846년 뉴욕에 수도회가 세워지고 그 후 1852년에는 신시나티에 독립된 모원이 세워졌다.
그 전해인 1851년에는 에미츠버그의 수도회가 프랑스의 애덕회와 합하여 애덕회의 한 관구가 되었다.
1855년 뉴욕의 수도회는 캐나다 노바스코시아의 할리홱스에 수녀들을 파견하여 이곳도 한 수도회로 독립하게 되었고,
1859년에는 뉴욕과 신시나티 모원의 협력으로 마더 씨튼의 조카인 제임스 로즈벨트 베玖?주교가 뉴저지주 뉴워크에 또 하나의 수도회를 세웠다.
1869년 피츠버그 교구의 마이클 도미니크 주교는 신시나티 모원에 수녀들을 보내 줄 것을 청하여 1870년 8월 20일 알로이시아 로우수녀와
다른 세 수녀들이 당시 피츠버그교구에 속하던 알투나에 도착하여 9월부터 성 요한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870년 11월에는 신시나티 모원에서 두 명의 수녀가 더 파견되었다.
그 중 한 명은 후에 알로시아 총장의 보조자가 된 안나 레지나 에니즈수녀로서 그 분은 알로시아 총장과 더불어 새 수도회가 독립된 수에도 계속 남아 있었다.
1882년에는 씨튼 힐에 있는 모원의 땅을 구입했고 1889년 모원 건축이 완성되었다.
씨튼 힐에 모원들 둔 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그 후 계속 사도적 활동이 확대되어 미국 여러 교구에 분원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1960년에는 한국에 선교활동을 펴서 학교를 세우고 마더씨튼의 전통을 따라 성 요셉이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 1972년에는 교회법에 따라 한국에 수련원이 세워졌다.
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원래 교구소속 수도회였으나,
1957년 5월 3일 로마 교황청의 수도성성으로부터 새 회헌을 인준 받고 교황청직속 수도회로 승격하였다.
19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수도생활 쇄신적응에 관한 교령에서는 수도공동체들이
"그리스도의 삶의 근원으로 돌아가고 각 수도회 본래적 영감에 돌아감과 동시에 우리 시대의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여" 수도생활을 쇄신시키도록 지시하였다.
교황 바오로 6세의 규정은 각 수도회가 특별총회를 열고 수차의 실험기간과 총회를 가진후, 수도회헌 전체의 평가를 종합하여 회헌을 수정하도록 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맞추어 수정된 새 회헌은 1981년 2월에 총회의 의결을 거쳐 로마 교황청에 제출되었다.
몇 부분의 수정을 거친 후 수도성성에서는 성녀 엘리사벳 씨튼 축일인 1985년 1월 4일에 새 회헌을 공식적으로 인준하였다.
본 회의 수녀들은 교육, 전교, 종교교육, 다양한 의료 및 사회사업에 종사한다.
사랑의 씨튼 수녀회의 역사를 보면 이 안에서 강한 신앙과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에서 오는 용기에 찬 정신이 반영되고 있다.
같은 정신으로 고무된 본 수도회는 그리스도와 그의 선교사업에 대한 새로운 헌신과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본다.(사랑의 씨튼수녀회홈에서www.seto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