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江華) 향토탐구(鄕土探究)
역사(歷史)의 고도(古都) 강화(江華)<5>
2. 강화의 국방유적(國防遺蹟)
<진(鎭), 보(堡), 돈대(墩臺)와 둔(屯)에 관하여>
고려 이후 잦은 외세의 침입을 겪으면서 강화도에는 수많은 국방 요새(要塞)들이 들어서게 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진(鎭)과 보(堡)와 돈대(墩臺)이다.
외세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하는 것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성(城)인데 그보다 조금 작은 규모로 지금의 대대(大隊)병력이 주둔하도록 설치된 것이 진(鎭)이고, 그보다 더 작은 규모가 보(堡)인데 지금의 중대(中隊)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며 돈대(墩臺)는 그보다 더 작은 규모로 소대(小隊)급 병력이 주둔하던 곳으로 진과 보의 관할 하에 있었다고 한다.
진(鎭)과 보(堡)는 상하 관계가 아니고 각각 별개의 군부대로 독자 운영되었다고 하는데 그 규모도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중요도에 따라 첨사(僉使), 만호(萬戶), 별장(別將)을 파견하여 지휘 관장하게 하였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 강화에 5개의 진(鎭)과 7개의 보(堡), 53개의 돈대(墩臺)를 설치하였다고 하는데
5개의 진(鎭)을 살펴보면
①월곶진(강화읍 월곶리) ②제물진(강화읍 갑곶리) ③용진진(선원면 연리) ④덕진진(불은면 덕성리)
⑤초지진(길상면 초지리)인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용진진, 덕진진, 초지진의 3개이며,
7개의 보(堡)는
①광성보(불은면 덕성리) ②선두보(길상면 선두리) ③장곶보(화도면 장화리) ④정포보(내가면 외포리)
⑤인화보(양사면 인화리) ⑥철곶보(양사면 철산리) ⑦승천보(송해면 당산리)가 그것인데 지금은 광성보(廣城堡) 하나만 남아있다.
마니산과 참성단이 있는 화도면(華道面)은 지금은 강화도와 같이 붙어있지만 옛 기록을 보면 강화도와 떨어진 별개의 섬으로 고가도(高駕島)라는 이름이었으며 좁다란 뱃길이었던 바다를 가릉포(嘉陵浦)와 선두포(船頭浦)를 막고 그 사이의 뱃길을 메워서 강화도와 연결되었는데 지금은 넓은 논과 밭으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수많은 배들이 오가며 다니던 뱃길이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강화도에서 마니산의 참성단을 오려면 양도면의 도장리(道場里) 부근까지 와서 다시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했으며, 양쪽 해안의 포구에는 주막과 여각(旅閣)들이 즐비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화도면 덕포리(德浦里)는 당시 떡전거리로 유명하여 떡포라고 했다는데서 그 지명이 유래되어 아직도 옛 흔적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두 섬이 하나로 되면서 고가도(高駕島)는 강화도의 아래쪽에 있었다하여 하도면(下道面)이 되었다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때 아래 하(下)를 꽃 화(華)로 바꾸어서 화도면(華道面)으로 개명되었다.
참고로 지금도 비교적 상태가 양호하여 보호하고 있는 강화도 내의 국방유적지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국가 지정 사적(史蹟)<4곳>
①광성보(불은면 덕성리) ②초지진(길상면 초지리) ③덕진진(불은면 덕성리) ④갑곶돈대(강화읍 갑곶리)
▶ 시 지정 유형 문화재(有形 文化財)<3곳>
①후애돈대(길상면 선두리) ②상암돈대(내가면 외포리) ③분오리돈대(화도면 사기리)
▶ 시 지정 기념물(記念物)<8곳>
①용진진(선원면 연리) ②장곶돈대(화도면 장화리) ③계룡돈대(내가면 황청리) ④망양돈대(내가면 외포리) ⑤건평돈대(양도면 건평리) ⑥굴암돈대(양도면 하일리) ⑦미루지돈대(화도면 여차리) ⑧북일곶돈대(화도면 장화리)
▶ 시 지정 문화재 자료(文化財 資料)<4곳>
①선수돈대(화도면 내리) ②망월돈대(하점면 망월리) ③화도돈대(선원면 연리) ④무태돈대(하점면 창후리)